21화(5,407자) · 윤석주 · 배소현 · 7월 26일(월)~28일(수)
수첩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7월 26일 0652, 윤석주 중령은 국가안보실 지하 회의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수첩이 든 가슴 주머니를 한 번 눌렀다. 중령이 이 계단을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 작전본부장이 어젯밤 전화로 한 말은 짧았다. 차장이 자네를 직접 보자고 한다, 자네가 만든 표 때문이다, 수첩은 두고 와라. 석주는 수첩을 두고 오지 않았다.
회의실은 합참 지하보다 밝았다. 벽 한쪽이 화면이었고 서해와 연평도가 떠 있었다. 섬 둘레에 붉은 점이 몇 초마다 새로 찍혔다. 스피커는 소리를 줄여 놓았는데도 해병부대 교신이 낮게 새어 나왔다. 대피소 번호, 부상자 수, 또 대피소 번호.
국가안보실 차장 한도겸은 긴 탁자 끝에 앉아 있었다. 넥타이는 목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 앞에 종이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석주의 표였다. 시각과 회선과 표적, 상태가 무엇에서 무엇으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발신자란. 발신자란 넷이 다 없음이었다. 작전본부장은 탁자 옆 벽 쪽 의자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윤 중령, 앉으세요.”
석주가 앉자 한도겸은 표를 석주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는 펜을 들고 있지 않았다. 탁자 위에 펜이 없었다.
“이 표, 어젯밤 열한 시에 받았어요. 받고 나서 합참 지하 인쇄 기록부터 봤습니다. 이 표를 뽑은 기록이 없더군요. 화면에서 만들고 화면에서 넘겼어요. 인쇄를 한 번 눌렀다가 취소한 기록은 있었고.”
석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취소가 남는다는 것을 석주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찾아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넷이 다 올리기만 했군요. 참고에서 대기, 대기에서 사격. 내린 건 없어요. 셋이 부대로 내려갔고, 하나는 실제로 쐈고, 그게 맞았고.”
“예. 맞았습니다.”
“맞았으니까 우리 체계가 그 자료를 더 믿게 됐고. 다음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고. 그래서 7월 2일 새벽에 산둥 비행장 두 곳이 대기를 거치지 않고 사격으로 내려갔죠.”
석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연결은 석주의 표에 없었다. 넷의 날짜 뒤에 7월 2일을 붙이는 것은 석주가 사흘 밤을 걸려 한 생각이었는데, 한도겸은 종이 한 장을 받고 하룻밤에 거기 닿아 있었다.
“누가 우리 손으로 중국을 치게 하고 있어요. 그렇게 읽힙니다. 윤 중령도 그렇게 읽었죠?”
“모르겠습니다.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누구인지 모르는 건 나도 같아요. 그런데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겠어요. 우리가 쏘는 것. 그러니 답은 하나예요. 덜 쏩니다.”
“덮으면 다음에 또 밀립니다. 누가 미는지 모르는 채로요.”
“덮는 게 아니에요. 안 내보내는 겁니다. 빈 건 넷이 밖으로 나가면 여론은 누가 밀었는지를 안 물어요. 우리가 맞았다는 것만 들어요. 그러면 복수를 원하죠. 복수는 우리가 쏘는 거고, 그게 저쪽이 원하는 거예요. 이 표가 신문에 나가는 날 이 표를 만든 사람의 일을 우리가 대신 해 주는 겁니다.”
벽 쪽에서 작전본부장이 처음 입을 열었다.
“차장님, 그 논리면 저쪽이 쏘라고 할 때마다 우리는 안 쏴야 합니다. 그러면 저쪽은 우리를 안 쏘게 하고 싶을 때 그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한도겸은 본부장 쪽을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본부장은 쏘자는 거고, 나는 버티자는 거고, 윤 중령은 보자는 거죠. 셋 다 이 표를 보고 하는 말이에요.”
화면 속 연평도에서 붉은 점이 넷 한꺼번에 찍혔다.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던 교신이 잠깐 끊겼다가 다른 목소리로 이어졌다. 방 안의 누구도 화면을 돌아보지 않았지만, 본부장의 팔짱 낀 팔이 한 번 조여졌다.
“윤 중령, 수첩 있죠? 이 표 말고 처음 손으로 적은 것.”
“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인사과에 내세요. 원본이든 사본이든 남기지 말고. 보안 사고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윤 중령이 한 일은 옳은 일이었다고 나는 생각해요. 옳은 일이 밖으로 새면 틀린 결과가 나와요.”
석주는 일어서서 경례를 했다. 수첩은 꺼내지 않았다.
*
7월 27일 1010, 합참 인사과 사무실에서 석주는 직위 해제 통지서를 받았다. 사유란은 한 줄이었다. 지시 불이행 및 보안 관리 소홀. 인사 담당 대령은 통지서를 건네고 보안 서약서를 내밀었다. 재직 중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업무 관련 기록을 반출하지 않는다. 석주는 읽고 서명했다.
“개인 물품 확인하겠습니다. 형식입니다.”
인사과 상사가 석주의 서류 가방을 열었다. 서랍에서 꺼낸 것들이었다. 면도기, 양말 두 켤레, 손목시계 수리 영수증, 볼펜 다섯 자루, 딸이 유치원 때 그려 준 그림이 든 액자. 상사는 볼펜을 한 자루씩 뚜껑까지 열어 봤다. 액자 뒤판도 뜯어 봤다. 그림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방 맨 밑에 갈색 가죽 수첩이 하나 있었다. 상사는 그것을 집어 올렸다가, 잠깐 들고 있다가, 펼치지 않고 가방 안 원래 자리에 도로 놓았다. 수첩은 개인 물품이었다. 규정이 아니라 관행이었고, 이 방의 누구도 그 관행을 깨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상 없습니다.”
1130에 석주는 합참 정문을 나왔다. 여섯 해를 내려가던 지하 계단의 환기구 소리가 등 뒤에서 끊겼다. 7월 한낮의 볕이 정수리를 눌렀다. 귀가 그 조용함에 한참 익숙해지지 않았다.
1140, 정문 앞 버스 정류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작전본부장이었다. 수첩을 냈느냐고 물었다. 석주가 안 냈다고 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한참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그 수첩을 본 적이 없는 거다, 본부장은 그렇게 말하고 끊었다. 석주는 그 말이 자기를 지키는 말인지 본부장 자신을 지키는 말인지 가르지 못했다. 버스가 와서 문을 열었다가, 아무도 타지 않자 닫고 떠났다.
*
1910, 광화문 광장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경찰 버스가 광장 한가운데에 줄지어 서서 벽이 되어 있었고, 석주는 그 벽 사이 좁은 틈으로 지나갔다.
북쪽 절반에는 촛불이 있었다. 종이컵을 끼운 초가 수천 개였고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맨 앞 천막에 「쏘자」라는 글자가 크게 걸려 있었다. 맞기만 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는 구호가 확성기로 번갈아 나왔다. 군산에서 아들을 잃었다는 여자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가 한 마디도 못 하고 내려왔다. 그때 박수가 가장 컸다.
남쪽 절반에는 태극기가 있었다. 늙은 사람이 많았고, 손바닥만 한 태극기를 양손에 하나씩 든 사람도 있었다. 무대 위 현수막은 「버티자」였다. 쏘면 그다음은 서울이라는 말이 확성기로 나왔다. 한 남자가 휴대전화를 높이 들어 사람들에게 화면을 보여 주고 있었다. 석주는 걸음을 멈췄다.
영상이었다. 불타는 빌딩 숲 위로 미사일 궤적이 그려지고, 남자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한국이 중국을 쏘면 서울이 불탄다, 수도권 사상자 230만. 화면 아래 작은 글씨로 어느 연구소 이름과 연도가 붙어 있었다. 석주는 그 숫자를 알았다. 지하 서고에 그 보고서가 있었다. 북쪽이 휴전선 전체에서 전면전을 시작했을 때 첫 24시간을 230만으로 잡고 있다는 예상이었다. 중국을 쏘면이라는 말은 그 보고서 어디에도 없었다. 남의 계산에 남의 조건이 붙어 있었다. 영상 속 불타는 빌딩들은 서울에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던 할머니는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석주는 그 손이 떨리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1924에 벽이 한 군데 터졌다. 경찰 버스 두 대 사이 틈으로 북쪽의 젊은 남자 몇이 넘어왔고 남쪽에서 깃대를 든 노인들이 그들을 밀었다. 확성기 두 개가 서로를 덮으며 같은 높이로 울렸다. 누군가의 종이컵 초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고, 그 불이 바닥에 떨어진 작은 태극기 귀퉁이를 핥았다. 석주는 그것을 군화로 밟아 껐다. 천 타는 냄새가 짧게 올라왔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를 밀친 노인과 그를 밀친 젊은이가 동시에 그의 얼굴을 봤다. 둘 다 계급장 떼어 낸 군복을 무슨 편으로 읽어야 할지 몰라 했다.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며 틈을 다시 메웠다.
같은 시각 국가안보실에서는 차장의 지시로 광장 사진 두 장과 그 영상의 화면 캡처가 이튿날 안보회의 자료 맨 뒤에 붙었다.
*
7월 28일 0640, 석주는 용산의 한 복사 가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가게 주인이 셔터를 반쯤 올리자 허리를 숙여 들어갔다. 그는 수첩 뒤표지 안쪽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6월 27일에 처음 끼운 종이였다. 앞면에 좌표 둘과 변경 시각, 뒷면에 넷의 시각과 표적. 앞면 맨 아래 남은 자리에는 나중에 덧붙인 날짜 하나가 네모 안에 들어 있었다. 접힌 자리마다 보풀이 일어 있었다.
복사기 유리판에 종이를 펴 놓자 기계 안에서 빛이 한 번 지나갔다. 따뜻한 종이 두 장이 나왔다. 원본에는 석주의 글씨가 볼펜 자국으로 오목하게 남아 있었고 사본에는 그 오목한 것이 없었다. 석주는 사본 두 장을 반으로 접어 흰 봉투에 넣었다. 봉투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원본은 다시 수첩 뒤표지 안쪽에 끼웠다.
원본을 주면 일이 쉬웠다. 받은 사람이 원본을 들고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으면 됐다. 그러면 틀렸을 때 틀린 것이 둘이 됐다. 쓴 사람과 받은 사람. 사본은 증거가 아니었다. 사본을 받은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야 했다. 그 대신 석주가 틀렸으면, 틀린 것은 수첩을 가진 석주 하나였다. 그는 가게 주인에게 동전 두 개를 건넸다.
*
1030, 국방부 정문 옆 출입 기자들이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화단 앞에 석주가 서 있었다. 열사흘 전 신문에서 읽은 기사 하나 때문이었다. 서해안 보급선 잇단 실종. 날짜는 남기고 해역은 지운 기사였다. 무엇을 지워야 사람이 덜 죽는지 아는 사람이 쓴 기사였다. 바이라인은 서울통신 배소현이었다.
1047에 그녀가 나왔다. 노트북 가방을 어깨에 메고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화단 앞에 선 군복을 보고 전화를 끊었다. 석주는 그녀에게 다가가 봉투를 내밀었다. 소현이 그의 얼굴을 봤다. 군복이었는데 계급장이 떼어져 있었다. 실밥 자국이 어깨에 네모나게 남아 있었다.
석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현은 봉투를 받았다.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석주는 벌써 정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자 정문 초소의 헌병이 습관처럼 경례를 하려다 어깨를 보고 손을 내렸다.
소현은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이런 봉투는 보통 말과 함께 왔다. 이걸 쓰면 누가 다친다거나, 이걸 써야 누가 산다거나. 말 없이 온 봉투는 처음이었다. 말이 없으면 그녀가 무엇을 쓰든 그의 이름은 거기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것도 안 써도 그는 그녀를 탓할 자리에 없었다. 정문 너머로 그의 등이 차도를 건너 사라졌다.
소현은 화단 옆 벤치에 앉아 봉투를 열었다. 사본 두 장이었다. 손으로 쓴 숫자와 좌표와 시각이 빽빽했다. 군의 말이었고 절반은 읽히지 않았다. 발신자란이라는 말이 네 번 나왔고 네 번 다 옆에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숫자들을 손가락으로 따라 내려갔다. 그러다 첫 장 맨 아래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날짜 하나가 다른 줄과 떨어져 혼자 적혀 있었고, 볼펜으로 네모가 쳐져 있었다. 그 네모가 두 번 덧그어져 사본에서도 굵었다. 7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