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5,347자) · 강태우 · 7월 22일(목)
구멍 열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7월 22일 0540, 아홉째 구멍에 자갈이 쏟아지고 있었다. 덤프트럭 적재함이 비스듬히 들리자 회색 돌이 한꺼번에 미끄러져 내려가 구멍 바닥의 누런 물을 밀어냈고, 물은 갈 데가 없어 가장자리로 넘쳐 활주로 위에 얇게 번졌다. 태우는 삽을 들고 구멍 남쪽 턱에 섰다. 도영이 맞은편 턱에 섰다. 둘 사이로 진동 다짐기가 들어갈 자리를 비워 두고, 둘은 넘어온 자갈을 안쪽으로 긁어 넣었다.
구멍 하나에 반나절이었다. 6월 4일부터 계산하던 숫자였는데 이제는 반나절보다 조금 빨랐다. 손이 순서를 알았고, 곽 상사의 대원들은 태우가 빨강이라고 하면 묻지 않고 물러섰다. 처리 로봇은 아직 하나였다. 예비 배터리는 어제 오산에서 두 개가 왔다.
활주로 가장자리에는 방공 부대에서 보낸 병사 하나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총처럼 생긴 것을 들었는데 총구 대신 안테나 다발이 달려 있었다. 드론의 조종 전파를 끊는 물건이었다. 복구반마다 이런 사수가 하나씩 짝으로 붙은 지 사흘째였다. 사수는 하늘만 봤고 태우는 구멍만 봤다. 그렇게 나눠 보기로 했다.
0612에 사수가 먼저 일어났다. 바다 쪽에서 작은 점 둘이 낮게 들어오고 있었다. 벌 떼 소리보다 가늘었다. 사수가 안테나 다발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자 앞의 점 하나가 공중에서 한 번 휘청거리더니 개펄 쪽으로 기울어 떨어졌다. 뒤의 점은 방향을 틀었다. 활주로를 가로질러 기지 담장 너머로 넘어가더니, 오식도동 아파트 단지 위에서 작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수가 총을 내렸다.
“저쪽으로는 못 쏩니다. 떨어지면 아파트 지붕입니다.”
점은 아파트 옥상 높이에서 한참을 돌았다. 그 자리에서 내려다보면 활주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메운 회색 자리 여덟, 오늘 메우는 아홉째, 노란 깃발이 아직 꽂힌 자리들. 태우는 삽을 세우고 그것을 올려다봤다. 점은 서두르지 않았다. 다 보고 나서 바다 쪽으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
0900에 아홉째가 굳었다. 곽 상사가 군화 뒤꿈치로 두 번 구르고 배치도에 9를 적었다. 그는 볼펜을 귀에 꽂으며 오늘 안에 열을 채우자고 했다. 열째는 활주로 가운데쯤, 깃발이 빠진 지 이틀 된 구멍이었다.
배치도에는 노란 깃발 자리가 아직 열넷 남아 있었다. 열넷 가운데 빨강이 여섯이었다. 빨강이 다 빠지기 전에는 그 둘레 구멍에 사람이 못 들어갔고, 그래서 메우는 순서는 로봇의 배터리가 정했다. 곽 상사는 그 사실을 배치도 귀퉁이에 적어 놓지 않았지만 매일 아침 배터리 눈금부터 확인했다.
태우는 머릿속으로 셈을 했다. 7월 22일이었다. 8월 27일까지 서른엿새였다. 셈을 한 날은 손이 조금 빨라졌고, 그게 싫어서 셈을 안 한 날도 있었다. 공구함 속 종이는 앞면에 여섯, 뒷면에 셋이었다. 그 숫자는 셈하지 않아도 외워졌다.
1215, 덤프트럭이 열째 구멍 쪽으로 후진하고 있었다. 후진 경고음이 짧게 끊겨 울렸고, 운전석 창 밖으로 시설대대 일병이 고개를 내밀어 뒤를 봤다. 사수가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하나였는데 높이가 달랐다. 아까 것들처럼 떠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내리꽂히는 각도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수의 안테나가 그것을 쫓았다. 방아쇠를 당겼다. 점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려! 차에서 내려!”
태우가 소리치며 운전석 쪽으로 뛰었다. 일병이 문을 박차고 굴러떨어졌다. 둘이 활주로 가장자리 배수로로 몸을 던지는 사이 머리 위의 소리가 갑자기 높아졌고, 1217에 트럭 적재함 한복판이 터졌다. 뜨거운 바람이 배수로 위를 한 번 쓸고 지나갔다. 태우는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을 붙인 채 숨을 참았다. 물기 밴 콘크리트에서 오래된 기름 냄새가 올라왔고, 그 위로 고무 타는 냄새가 덮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트럭은 앞바퀴를 땅에 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쳐든 채 타고 있었다. 실려 있던 자갈이 적재함 찢어진 옆구리로 쏟아져 열째 구멍 가장자리에 무더기로 흘러 있었다.
일병은 무사했다. 귀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뭐라고 했는데 자기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 같은 말을 세 번 했다. 사수는 안테나 다발을 내려다보며 이를 물고 있었다. 저것은 전파를 안 듣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정해 놓은 자리로 떨어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
1240, 소화기 거품이 트럭 잔해 위에서 사그라들고 있었다. 오상혁이 활주로를 가로질러 왔다. 그는 불 꺼진 트럭을 한 번 보고, 쏟아진 자갈을 한 번 보고, 태우를 봤다.
“강 병장, 잠깐 이리 와.”
둘은 활주로 동쪽 가장자리로 걸었다. 담장 너머로 오식도동 아파트들이 보였다. 낮이라 불이 꺼진 것이 티 나지 않았지만, 창 여러 개에 담요와 은박 돗자리가 쳐져 있었다.
“아침에 저 위에서 한참 돌던 거 봤지. 그게 보고 간 거다. 오늘 메운 자리, 내일 메울 자리 다. 그리고 점심때 이게 왔어.”
“압니다.”
“구멍 몇 개는 남기자. 위에서 보기에 아직 못 쓰는 활주로로 두자고. 메우면 메운 만큼 다시 판다. 열면 또 맞는다. 저쪽은 활주로를 노리고 쏘겠지만 다 활주로에 떨어지진 않아.”
“남겨 두면 KF-21이 안 옵니다. 분견 명령에 활주로 개방 시라고 돼 있습니다. 안 오면 서해 하늘이 저쪽 겁니다.”
“서해 하늘이 저쪽 거면 저쪽이 여기 올 이유가 없어.”
“그러면 저쪽이 오고 싶을 때 옵니다. 우리가 막을 게 없으니까요.”
오상혁은 대답 대신 담장 너머를 턱으로 가리켰다.
“너 7월에 트럭 타고 들어올 때 저기 불 켠 집 셌다며. 도영이가 그러더라.”
“열한 집이었습니다.”
“어젯밤엔 아홉이었어. 내가 셌어. 두 집은 이사를 갔는지, 초가 떨어졌는지 몰라. 너 그게 뭔지 알아?”
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담장 너머 아파트 7층 어딘가에 6월에 통지를 받은 집이 있었다. 도영의 어머니가 그 단지 어딘가에 있었다. 활주로를 열면 저쪽이 활주로를 친다는 것은 셈이었다. 그 셈이 담장 하나를 넘을지 안 넘을지는 셈에 없었다.
오상혁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필터가 짓눌려 납작했다.
“나는 말했다. 반장으로서 말한 거야. 너는 병장이고, 너는 메우자는 거고.”
“예. 메우자는 겁니다.”
“이유를 대 봐. 서해 하늘 말고.”
태우는 담장을 봤다. 오래 봤다. 이유는 있었는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6월 4일 새벽 카트 밑에서 누군가 대신 채워 준 턱끈이 이유였는지, 공구함 뒷면의 세 이름이 이유였는지, 그냥 메우던 것을 멈추는 법을 몰라서였는지 태우는 가를 수가 없었다. 가를 수 없는 것은 이유가 아니었다.
“모르겠습니다, 반장님.”
오상혁이 담배를 입에서 뺐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열째 구멍 쪽으로 걸어갔다.
*
1310, 트럭은 없었다. 다음 트럭은 기지 반대편 골재장에서 오려면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쏟아진 자갈 무더기가 열째 구멍 턱에 반쯤 걸쳐 있었다. 오상혁이 그 앞에 섰다. 그는 시설대대원 하나가 배수로 옆에 던져 둔 삽을 집어 들었다.
중사가 삽을 드는 것을 태우는 처음 봤다. 정비반장은 공구를 들지 삽을 들지 않았다. 오상혁은 삽날을 무더기 밑에 찔러 넣고 허리를 썼다. 자갈이 삽날 위에서 한 번 출렁이다가 구멍 안으로 쏟아졌다. 돌이 돌에 부딪는 소리가 구멍 바닥에서 울려 올라왔다. 그는 두 번째 삽을 떴다. 구멍을 남기자고 말한 사람이었다. 말한 지 30분이 안 됐다.
곽 상사의 대원들이 하나씩 일어났다. 도영이 삽을 들고 맞은편 턱으로 갔다. 태우는 오상혁 옆에 섰다. 오상혁이 태우를 보지 않고 말했다.
“남기자는 건 내 말이고 메우는 건 내 일이야. 둘 다 내 거다.”
태우는 대답하지 않고 삽을 떴다. 7월 볕이 정수리를 눌렀다. 아스팔트가 볕을 먹어 군화 바닥으로 열이 올라왔고, 삽자루를 쥔 손바닥에 땀이 고여 미끄러질 때마다 장갑 손등으로 문질러 닦았다. 아까 탄 트럭에서 아직 매운 연기가 한 줄씩 넘어왔다. 오상혁의 작업복 등판이 땀에 젖어 어깨뼈 모양으로 검게 붙었다. 공구만 쥐던 사람의 삽질은 느렸지만 한 번도 쉬지 않았다.
*
1600, 기지 남쪽 문으로 트럭 행렬이 들어왔다. 모래색 덤프트럭 넷, 굴착기를 실은 저상 트레일러 둘, 그 뒤로 지붕에 경광등을 단 픽업 한 대였다. 차문마다 성조기가 작게 붙어 있었다. 활주로 위의 누구도 처음에는 삽을 멈추지 않았다. 행렬이 남쪽 끝 무너진 강화 격납고 앞에 서고 사람들이 내려 공구를 부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몇이 허리를 폈다.
도영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생활관에서 돌던 그 영상이었다. 성조기를 단 병사들이 수송기 뒷문으로 상자를 올리고 있었고, 그 위로 철수 자막이 흘렀다. 도영은 화면과 남쪽 끝을 번갈아 봤다.
픽업에서 내린 사람들 가운데 한국군 군복이 하나 섞여 있었다. 주한미군 부대에 배속돼 같이 근무하는 한국군 병사, 카투사 상병이었다. 그가 활주로를 걸어와 곽 상사를 찾았고, 지나가다 도영의 화면을 봤다. 그는 웃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영상 속 활주로 뒤쪽을 짚었다.
“이거 군산 아닙니다. 뒤에 산이 이렇게 높게 선 데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 사람들 짐 싣는 거 우리가 봄마다 하던 이동 훈련입니다. 제가 작년에 저기서 짐 실었습니다.”
도영이 화면을 멈추고 확대했다. 수송기 뒤로 겹겹이 선 산등성이가 뭉개진 채로도 보였다. 군산에는 그런 산이 없었다. 바다와 개펄과 평평한 논이 있었다. 사흘 사이 수십만 번 퍼졌다던 영상이 그 산등성이 하나로 끝났다. 도영은 아무 말 없이 영상을 지웠다. 지우고 나서 남쪽 끝을 오래 봤다. 굴착기가 트레일러에서 내려와 무너진 격납고 앞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1730에 열째가 굳었다. 곽 상사가 그 위에서 두 번 구르고 배치도에 10을 적었다. 그는 볼펜을 귀에 꽂다 말고 오상혁에게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오상혁은 삽을 배수로 옆 원래 자리에 도로 던져 놓았다.
*
1800, 미군 복구반장이 활주로 남쪽 끝에 왔다. 마흔 중반의 상사였다.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는데 헬멧 뒤통수 안쪽에 비닐로 싼 사진 한 장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명찰에 델가도라고 적혀 있었다. 카투사 상병이 옆에서 말을 옮겼다.
“6월 4일 이후로 여기 오는 데 7주가 걸렸답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늦었답니다. 늦어서 미안하답니다.”
델가도 상사는 곽 상사의 배치도를 받아 들여다봤다. 남쪽 끝부터 매긴 번호와 볼펜으로 쓴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도면을 꺼냈다. 방수 비닐에 든 넓은 종이였다. 그는 그것을 픽업 보닛 위에 폈다. 바닷바람에 귀퉁이가 들리자 태우가 손바닥으로 한쪽을 눌렀다. 델가도 상사가 반대쪽을 눌렀다. 둘은 처음으로 같은 종이를 한쪽씩 붙잡았다.
도면에도 활주로가 있었고 구멍마다 번호가 있었다. 번호는 굵은 검정 펜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태우는 1번을 찾았다. 곽 상사의 1번은 남쪽 끝, 7월 8일에 처음 메운 그 자리였다. 델가도 상사의 도면에서 1번은 반대쪽, 활주로 북쪽 끝에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