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5,063자) · 명지수 · 7월 20일(화)

노출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7월 20일 0140, 진천의 다섯째 진지는 임도가 끝나는 자리에 있었다. 산을 깎아 낸 흙길이 참나무 숲 속으로 2킬로미터쯤 들어오다가 갑자기 멎었고, 멎은 자리 오른쪽 비탈에 갱도 입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13일 오후에 무인기 셋이 두 번째 진지로 곧장 간 뒤, 대대는 그날 밤으로 짐을 쌌다. 남은 진지 가운데 쓸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이었다. 길이 끝나는 자리라서 차가 돌아 나올 데가 없었고, 그래서 대대장은 이 진지를 늘 마지막으로 미뤄 두었다.

새 목록이 사격지휘차 화면에 떴다. 사격 넷이었다. 연평도 건너편 해안포 진지들이었고 넷 다 산비탈이었다. 지수는 넷을 하나씩 지도에 얹었다. 도현이 옆에서 축척을 두 번씩 키웠다. 학교도 마당도 없었다. 도현이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고, 지수는 그 숨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발사대는 셋이었다. 2호차와 3호차가 첫 두 발을, 4호차가 셋째를 맡고, 넷째는 크레인으로 다시 채운 4호차가 맡을 것이었다. 2호차와 4호차에 한 발씩 있으니 다시 채우는 데 7분이 걸렸다. 지난달 크레인 하나로 여섯 발을 쏘던 밤에도 7분이었다. 그날 지수는 7분과 7분 사이에서 계속을 골랐고, 그 선택을 일지 결정자 칸에 자기 이름으로 적었다.

*

0212에 관 셋이 섰고 0214에 쐈다. 나무 밑이 세 번 밝아졌다. 도현이 이격선에서 3호차의 흰 테이프를 보고 있다가, 흰 줄이 나가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0219에 크레인이 4호차 옆에 붙었다. 운전병이 레버를 잡자 비닐을 댄 운전석 창이 바람에 한 번 부풀었다.

0221에 소리가 났다. 지수가 먼저 들었다. 벌 떼 소리가 서쪽 능선 위에서 낮게 깔려 왔다. 셋이었다. 지난번처럼 돌지 않았다. 능선을 넘자마자 곧장 임도를 따라 내려왔다. 흙길 위의 하늘을 한 줄로 긁으며 오는 소리였고, 그 줄이 끝나는 곳이 여기였다.

지수는 사격지휘차에서 뛰어내려 대대장을 찾았다. 대대장은 갱도 입구에서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머리 위로 무인기 소리가 지나갔다가 되돌아왔다.

“대대장님, 크레인 빼겠습니다. 탄 올리다가 걸리면 크레인하고 발사대가 한자리에 섭니다. 사람도 다섯이 붙어 있습니다.”

“지금 빼면 넷째를 못 쏜다.”

“다음 목록에서 쏘면 됩니다.”

“다음 목록은 없어. 연평도가 지금 맞고 있다. 저쪽 해안포 넷 가운데 셋을 쐈고 남은 하나가 오늘 새벽 섬을 치는 거다. 그걸 남기고 빠지면 섬에서 누가 그 값을 치러.”

대대장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무전기에서 연평도 교신이 겹쳐 흘러나왔다. 대피소 번호가 불리고 있었다. 지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여기서 7분을 버티면 섬에서 누가 덜 다쳤고, 여기서 7분을 못 버티면 여기서 누가 다쳤다. 무인기 하나가 갱도 위 나무 우듬지에 걸리듯 낮게 떠서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채워. 명 대위, 채워.”

“채우겠습니다.”

지수는 돌아서서 크레인 쪽으로 손을 들었다. 운전병이 그 손을 보고 레버를 당겼다. 탄이 들렸다. 지수는 시계를 봤다. 0223이었다.

*

7분은 길었다. 크레인 팔이 탄을 4호차 관 뒤로 옮기는 동안 무인기 소리는 떠나지 않았다. 셋이 번갈아 가며 머리 위를 지나갔다. 누구도 위를 보지 않았다. 위를 보면 손이 멈췄다. 탄이 관 입구에 닿자 발사대 요원 둘이 손바닥으로 탄 끝을 밀어 넣었고, 그 손바닥에 탄의 냉기가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 흙 냄새와 유압유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지수는 초시계를 보지 않고 운전병의 뒤통수를 봤다. 그는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마의 유리 자국이 땀에 번들거렸다.

0230에 탄이 들어갔다. 7분이었다. 0232에 관이 섰고 0234에 넷째가 나갔다. 흰 줄이 북쪽으로 휘자마자 지수가 소리쳤다.

“전원 갱도로. 발사대 두고 사람만. 90초 아니야, 지금.”

운전병이 크레인 운전석에서 뛰어내렸다. 4호차 조종수는 시동을 걸려고 손을 뻗다가 지수의 목소리에 손을 거두고 뛰었다. 발사대를 빼내려면 흙길을 후진으로 300미터 나가야 했고, 길이 끝나는 자리라 돌려 나갈 데가 없었다. 사람이 먼저였다. 열여덟이 갱도 입구를 지나는 것을 지수는 하나씩 셌다. 도현이 맨 뒤에서 들어왔다. 그 뒤로 대대장이 들어왔다.

0239에 대공 경보가 무전으로 떨어졌다. 서해 쪽에서 낮게 들어오는 것 둘. 순항미사일이었다. 0241에 첫 번째가 발사 진지 앞 흙길에 떨어졌다. 갱도 안의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 들어와 귀가 먹먹해졌고, 천장에서 흙이 비처럼 쏟아졌다. 누군가 헬멧 위로 두 팔을 감쌌다. 두 번째는 1분 뒤에 왔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갱도 입구의 모래주머니 벽이 안쪽으로 무너지며 전등 둘이 한꺼번에 꺼졌다. 어둠 속에서 쇳덩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길게 났다. 무언가 무거운 것이 옆으로 누우며 흙을 긁는 소리였다.

*

0300에 지수는 손전등을 켜고 인원 점검을 했다. 이름을 부르면 대답이 왔다. 열일곱째까지 대답이 왔고, 열여덟째 이름에서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크레인 운전병이었다. 그는 갱도 가장 안쪽에서 비닐 조각을 손에 쥐고 앉아 있었는데, 그 비닐은 그가 뛰어나올 때 운전석 창에서 뜯겨 따라온 것이었다. 그가 손을 들었다.

“열여덟 명 전원.”

지수가 말하고 나서야 몇이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흔들리는 웃음이었다. 통신병 하나가 흙 묻은 얼굴로 운전병에게 대답이 왜 늦었냐고 했고, 운전병은 비닐을 개느라 그랬다고 했다. 이번에는 소리 내서 웃는 사람이 있었다.

밖에서는 무인기 소리가 한동안 더 들렸다. 셋이 아니라 하나였다. 그 하나가 임도 끝 위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떠나지 않았다. 통신병 하나가 입구로 기어가 내다보려 하자 대대장이 그의 방탄복 뒷덜미를 잡아 도로 앉혔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갱도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누군가의 헬멧을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똑, 하고 한참 있다가 또 똑. 지수는 그 간격을 세다가 그만두었다.

도현이 옆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낮게 말했다.

“대위님, 7분 동안 머리 위로 지나간 게 열한 번입니다. 제가 셌습니다. 한 번도 안 내려왔습니다.”

“쏠 게 없는 놈들이었어. 보는 놈들이지.”

“그러면 크레인을 뺐어도 똑같았습니까?”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인기는 처음부터 치러 온 것이 아니라 자리를 잡아 두러 온 것이었다. 임도 끝이라는 자리를 붙들고 뒤에 올 것을 불렀다. 크레인을 뺐어도 4호차는 길 끝에 있었고, 길 끝은 그들이 이미 알았다. 7분은 발사대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7분이 바꾼 것은 넷째 탄이 섬 건너편으로 나갔느냐였다. 그리고 지수가 마지막에 외친 한마디가 바꾼 것은 사람이었다. 그 둘을 나눠서 생각하자 목 뒤가 뻣뻣해졌다. 그녀는 대대장 쪽을 봤다. 어둠 속에서 대대장은 무전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얼굴은 아니었다.

0340에 날이 밝기 전 밖으로 나갔다. 4호차가 옆으로 누워 있었다. 임도 끝 비탈 아래로 반쯤 미끄러진 채 바퀴 여섯 개를 하늘로 쳐들고 있었다. 발사관은 흙에 처박혀 있었고, 크레인은 팔이 꺾여 4호차 옆구리에 기대 서 있었다. 그 둘이 한자리에 있었다. 지수가 7분 동안 걱정한 그대로였다. 다만 그 자리에 사람이 없었다.

2호차와 3호차는 갱도 옆 나무 밑에서 흙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멀쩡했다. 발사대는 셋에서 둘이 됐다. 크레인은 하나에서 없음이 됐다. 도현이 3호차 뒤칸에 들어가 흰 테이프 감은 자리를 비췄다. 이번에도 버텼다.

0510에 대대장이 전략사와 화상으로 연결했다. 화면 속 참모는 피해 보고를 받아 적고 나서 한 가지만 물었다. 남은 발사대로 목록을 계속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대대장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진지를 옮기겠다는 말에 참모는 옮길 데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대대장은 잠깐 지도를 봤다. 다섯 진지 가운데 둘은 맞았고 하나는 들켰고 여기는 길 끝이었다. 그는 있다고 대답했다. 화면이 꺼진 뒤 그는 지도 위의 남은 동그라미 하나를 손톱으로 한참 눌렀다. 동그라미 둘레의 등고선이 손톱자국에 눌려 휘었다.

*

0620에 대대장이 사격지휘차 안에서 일지를 폈다. 지수가 쓰던 일지였다. 0140 사격 4건 수신, 0214 발사 3발, 0234 발사 1발, 0241 피격. 그 아래 결정자 칸이 비어 있었다. 무인기가 온 뒤 재장전을 계속한 결정의 칸이었다. 지난달 크레인 여섯 발의 밤에 지수는 이 칸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그때 대대장은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수가 볼펜을 집자 대대장이 손바닥으로 일지를 눌렀다.

“이건 내 거다.”

그는 볼펜을 받아 결정자 칸에 자기 계급과 이름을 적었다. 글씨가 작고 곧았다. 적고 나서 그 옆에 한 줄을 더 붙였다. 재장전 계속 지시, 사격통제장교 이의 있었음. 지수는 그 줄을 읽었다. 이의라는 두 글자가 거기 있어서, 그 칸의 이름은 지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지수를 적어 두는 것이 됐다.

“대대장님, 그 줄은 안 쓰셔도 됩니다.”

“써야 돼. 나중에 누가 이 칸을 읽으면, 누가 말렸는지도 알아야지. 말린 사람 없이 결정한 거면 그게 더 나빠.”

대대장은 일지를 덮어 지수에게 돌려주고, 반합 뚜껑에 남은 식은 커피를 한 번에 마셨다. 턱의 흰 수염에 커피가 한 방울 맺혔다. 그는 그것을 손등으로 닦았다.

0700에 도현이 방탄복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앞뒤로 빈 줄이 없었다. 도현은 한참 들여다보다가 종이를 옆으로 돌려 가장자리 여백에 세로로 적었다. 글씨가 콩알만 했다. 7월 20일 0234, 4호차 발사 후 피격, 인원 전원. 발사대 둘.

*

0900에 지수와 도현은 4호차 쪽으로 내려갔다. 공병이 넘어진 발사대를 어떻게 세울지 보러 와 있었다. 공병 상사가 고개를 저었다. 세울 수는 있어도 쏠 수는 없을 거라고 했다. 관이 휘었다.

비탈 흙 속에 쇳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순항미사일의 파편이었다. 지수는 쪼그려 앉아 손바닥만 한 조각 하나를 들었다. 아직 조금 따뜻했다. 불에 그을린 면을 뒤집자 페인트가 남은 쪽이 나왔다. 글자가 찍혀 있었다. 한자였다. 도현이 옆에서 들여다봤다.

“대위님, 이건 북쪽 거 아닙니다.”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북쪽이 쏜 것이 아니면 이 길 끝을 아는 것도 북쪽이 아니었다. 지수는 파편을 뒤집어 흙 묻은 쪽이 위로 오게 들었다. 그을린 금속 위에 붉은 한자 넉 자가 반쯤 지워진 채 찍혀 있었다.

1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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