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5,176자) · 팡 웨이 · 7월 17일(토)

계획서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7월 17일 0510, 팡 웨이 대령은 밤을 새운 작전실에서 첫 타격 표적란에 두 이름을 연필로 적어 놓고 있었다. 평택. 군산. 두 이름 사이에 줄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어느 쪽에도 동그라미는 없었다. 재떨이 대신 쓰는 찻잔 받침에 연필 깎은 부스러기가 수북했다. 밤새 연필을 세 번 깎았고, 세 번 다 같은 두 이름 앞에서 심이 부러졌다. 창밖에서는 새벽 초계를 나갈 J-16 두 대가 엔진을 데우고 있었다.

탁자에는 위성 사진 두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평택은 넓었다. 활주로 둘레로 미군 수송기와 연료 탱크가 줄지어 있었고, 지난달 불탄 유류고 자리에는 새 탱크가 들어서 있었다. 미군은 부서진 것을 빨리 갈았다. 가는 데 쓰는 것이 태평양 건너에서 왔고, 그것이 올 때마다 해협으로 갈 것 하나가 여기 멈췄다.

군산 사진은 사흘 전 것이었다. 활주로 한가운데 노란 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쑨 상위가 확대해서 셌다. 열흘 전에는 서른 개가 넘던 점이 스물 남짓으로 줄어 있었다. 점이 사라진 자리 둘레로 회색 반점이 몇 개 생겨 있었다. 메운 구멍이었다. 남쪽 끝부터 하나씩이었다.

“한국군이 메우고 있습니다. 미군 구역이 아니라 한국 쪽 정비 구역 앞부터입니다.”

“사람 손으로 하고 있군. 기계로 하면 한꺼번에 한다.”

팡 웨이는 회색 반점을 연필 끝으로 짚어 갔다. 셋, 넷, 다섯. 정보 보고 한 장이 사진 밑에 깔려 있었다. 한국 공군이 새 전투기 분견대를 군산으로 옮길 준비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시기는 활주로가 열릴 때. 그는 그 한 줄을 두 번 읽었다.

*

0700에 참모 회의가 열렸다. 넷이 둘러앉았다. 작전과장이 먼저 말했다.

“첫 타격은 평택이어야 합니다. 미국을 묶는 것이 이 공세의 목적입니다. 미군 수송 거점을 끊으면 해협에 닿는 보급이 한 주는 늦어집니다.”

“평택은 방공이 두텁다. 첫 파의 절반을 요격에 뺏긴다.”

팡 웨이의 말에 작전과장이 되물었다.

“군산은 한국 기지입니다. 한국 기지를 첫 표적으로 삼으면 한국은 더 이상 맞은 나라가 아닙니다. 대령님이 늘 하시던 말씀 아닙니까?”

팡 웨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늘 하던 말이 맞았다. 그리고 그 말은 7월 2일 새벽에 한 번 틀렸다. 한국은 맞은 나라로 남지 않고 쐈다. 누가 그 좌표를 쥐여 줬든, 쏜 것은 한국의 발사대였다.

“군산을 다시 열면 한국은 거기서 서해를 지킨다. 새 기체가 거기 앉는다. 그러면 서해의 절반이 다시 한국 것이 된다. 우리가 흔들어서 비워 놓은 자리를 한국이 제 손으로 다시 메우고 있다.”

그는 표적란의 두 이름 가운데 군산에 동그라미를 쳤다.

정비과장이 가동률 표를 내밀었다. J-16은 열여덟 가운데 열넷이 떴다. 7월 2일 이후 격납고 하나가 없어서 넷은 밖에서 비를 맞으며 정비했고, 비 맞은 기체는 전자 장비가 먼저 탈이 났다. 기상 담당은 8월 하순에 태풍이 하나 올라올 수 있다고 했다. 오면 서해가 사흘 닫혔다. 공세 날짜는 바다가 아니라 베이징이 정할 것이었다. 팡 웨이는 태풍이라는 두 글자를 계획서 여백에 적었다.

“한국이 다시 열면, 한국이 다시 맞는다.”

*

0900부터 그는 계획서를 썼다. 쓰는 일은 순서였다. 첫 장은 시각이었다. 8월 28일 0300. 그 옆에 괄호를 치고 적었다. 표적 현지 0400. 한국은 한 시간 빨랐다. 새벽 네 시는 사람이 가장 깊이 자는 시각이었고, 교대 직전이라 당직이 가장 지친 시각이었다.

둘째 장은 순서였다. H-6 폭격기 편대가 해안 멀리서 순항미사일을 한꺼번에 쏜다. J-16이 그 폭격기들을 호위한다. 그리고 군산 상공에서 비핵 전자기 펄스탄(폭발 대신 강한 전자기파를 뿌려 전자 장비를 태우는 탄) 한 발. 그 한 발이 첫 번째여야 했다. 기지의 레이더와 통신과 전자 장비가 먼저 멎어야, 뒤따르는 미사일이 눈먼 기지로 들어갔다.

기술 부서가 붙인 효과 추정표가 있었다. 팡 웨이는 그것을 한 줄씩 읽었다. 레이더, 통신, 비행 조종 전산, 고장률 높음. 차량 엔진, 대부분 작동. 기계식 공구와 유압 장비, 영향 없음. 그는 마지막 줄에서 연필을 멈췄다. 영향이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는 알았다. 손으로 쓰는 것들이었다. 손으로 쓰는 것만 남은 기지가 얼마나 빨리 다시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지는 표에 없었다. 표를 만든 사람들은 활주로에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 아래에 한 칸이 더 있었다. 주변 민간 영향. 기지 반경 안의 시내 신호등, 병원 비상 발전 제어기, 휴대전화 기지국. 추정, 상당. 팡 웨이는 그 칸을 오래 보지 않았다. 그 칸을 지울 권한은 그에게 없었고, 채울 권한도 없었다. 기지 담장 너머로 아파트가 줄지어 선 사진을 그는 여러 번 봤다. 연필이 추정이라는 두 글자 위에서 한 번 멈췄다가 지나갔다.

*

1300에 가오 쥔의 편대가 다시 떴다. 이틀 전에 둘을 잃은 편대였다. 빈자리 둘은 다른 대대에서 빌려 온 조종사로 채웠다. 오늘은 데이터링크가 끊기면 곧바로 음성 절차로 바꾸기로 했다. 화면이 얼면 화면을 믿지 않는다. 옛날 방식이었다. 가오 쥔이 나가기 전에 그 절차를 종이 한 장에 적어 넷에게 나눠 줬다.

1332에 링크가 다시 흔들렸다. 이번에는 얼기 전에 가오 쥔의 목소리가 먼저 왔다. 링크 버린다, 음성으로 간다. 작전실 상황판의 점들이 멈췄고 팡 웨이는 이번에도 상황판을 보지 않았다. 스피커에서 네 목소리가 차례로 제 위치를 불렀다. 넷 다 불렀다. 1336에 경보음이 섞였다. 저쪽이 쐈고, 가오 쥔이 쐈고, 누구의 것도 닿지 않았다. 1341에 한 목소리가 피격이라고 외쳤다가, 몇 초 뒤에 아직 난다고 고쳐 말했다. 그 몇 초 동안 작전실 안의 누구도 숨을 쉬지 않았다. 1345에 가오 쥔이 저쪽 편대가 먼저 돌아선다고 알렸다. 저쪽도 무언가를 세고 있을 것이었다.

1440에 넷이 내렸다. 팡 웨이는 활주로 끝에서 셌다. 하나, 둘, 셋, 넷. 넷째 기체의 오른쪽 수직 꼬리날개에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여럿 비스듬히 뚫려 있었다. 빌려 온 조종사가 사다리를 내려와 그 구멍을 올려다봤다. 나이가 스물여섯이라고 했다. 팡 웨이는 그 조종사의 이름을 물었다. 정비 일지의 기체 번호 옆에 그 이름이 적혔다.

*

1700, 3번 격납고에서는 무너진 지붕 철골을 크레인으로 들어내고 있었다. 정비 준위 하나가 들것에 실려 나간 정비병 둘의 반장이었다. 쉰이 넘은 사람이었고, 그날 이후 격납고 바닥의 그을음 자국 위에 모래를 깔아 놓고 아무도 그 위에 공구를 놓지 못하게 했다. 팡 웨이가 들어서자 준위는 경례를 하고 크레인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대령님, 지붕은 다음 주면 덮습니다. 기체는 이 안으로 다시 들입니다.”

“서둘지 마. 사람이 먼저다.”

“서두르지 않으면 비행기가 비를 맞습니다.”

준위는 그 말을 하고 크레인 신호수에게 손짓을 했다. 철골 하나가 삐걱거리며 들렸다. 준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 애들도 지금 저 짓을 하고 있겠지요. 구멍을 손으로 메우고.”

“하고 있다. 사흘 전 사진에 다섯 개 메웠다.”

“그럼 그 다섯 개를 다시 파러 가시는 겁니까?”

팡 웨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준위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들린 철골이 트럭 적재함에 내려앉으며 쇳소리를 냈고, 모래를 깐 자리 위로 녹 부스러기가 한 줌 떨어졌다. 준위가 쪼그려 앉아 그 부스러기를 손으로 쓸어 냈다.

*

1600에 중앙군사위원회의 전문이 종이로 내려왔다. 한 장이었다. 8월 공세 개시일 승인, 8월 28일. 세부 계획은 전구 사령부 책임 아래 작성. 서명란에는 도장만 찍혀 있었다. 이 한 장이 내려오기까지 베이징의 어느 방에서 몇 시간이 걸렸는지 팡 웨이는 몰랐다. 그 방이 서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결정은 늘 종이로 왔고, 종이는 늘 한 장이었다. 그 한 장 밑에서 그가 쓰는 계획서는 쉰 장이 넘을 것이었고, 그 쉰 장 밑에서 비행단의 정비병과 조종사 수백 명이 각자 한 줄씩을 맡을 것이었다. 맨 아래 한 줄을 맡은 사람은 맨 위 한 장을 볼 일이 없었다. 부관이 전문을 철하면서 수신 시각을 적었다. 1604.

그는 달력을 넘겨 8월 28일에 연필로 점을 찍었다. 오늘부터 마흔이틀이었다.

1900에 그는 숙소 책상에서 엽서 한 장을 꺼냈다. 비행단 매점에서 파는 엽서였고, 앞면에 이 도시 바닷가의 등대 사진이 박혀 있었다. 아내는 이 등대를 본 적이 없었다. 부임하고 두 해 동안 한 번도 오지 못했다. 처음에는 딸의 시험 때문이었고, 그다음에는 해협 연습 때문이었고, 올봄부터는 이유를 적을 필요가 없었다. 아내에게 쓰는 엽서였다. 그는 몇 줄을 썼다. 잘 지낸다. 여기는 덥다. 8월 말에 간다. 쓰고 나서 마지막 줄을 오래 봤다. 8월 말에 그가 어디에 있을지는 그가 쓴 계획서가 정했다. 그는 우표를 붙이지 않았다. 엽서를 계획서 문서철 뒤표지 안쪽에 끼워 넣었다. 문서철을 덮자 엽서 모서리가 표지 밖으로 조금 비어져 나왔다. 그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밀어 넣지 않았다. 창밖 계류장에서는 야간 정비조가 작업등을 켜고 H-6 날개 밑을 오가고 있었다. 6월 3일 밤에도 저 자리에서 저 불빛들이 움직였다. 그때 그가 그은 줄 한 줄이 여섯 주 동안 몇 번의 구멍이 됐는지 그는 세어 본 적이 없었다. 세기 시작하면 계획서를 쓸 수 없었다.

*

2100에 참모 회의 자료가 묶여 나왔다. 계획서 초안, 기상 예측, 정비 가동률, 그리고 맨 뒤에 다른 부대들의 이번 주 성과 보고가 몇 장 붙어 있었다. 대개는 읽지 않고 넘기는 장이었다. 참모 넷이 둘러앉아 계획서 초안을 한 장씩 넘기며 고칠 곳에 연필 표시를 했다. 작전과장은 군산에 친 동그라미 옆에 물음표를 하나 달았다가, 팡 웨이가 보는 앞에서 그것을 지웠다. 정비과장은 H-6 가동 대수를 둘 줄였다. 팡 웨이는 고친 곳마다 이유를 묻고, 이유가 맞으면 그대로 두었다. 팡 웨이는 습관대로 한 줄씩 훑었다. 해상 초계 몇 회, 기뢰 부설 몇 곳, 무인기 정찰 몇 회.

마지막 장 맨 아래, 정보지원부대라는 이름 옆에 한 줄이 있었다. 적 표적 체계 교란 작전 — 성공. 날짜도 장소도 없었다. 무엇을 교란했는지, 누구의 표적 체계인지도 없었다. 팡 웨이는 그 줄에서 잠깐 멈췄다. 표적 체계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떠올리려다 말았다. 그의 일은 활주로였고, 그 부대는 그가 아는 부대가 아니었다.

그는 다음 장으로 넘겼다. 넘겼다가 한 번 더 돌아와 그 줄을 봤다. 여전히 한 줄이었다. 그는 자료 묶음을 덮었다. 묶음 모서리를 꿰맨 스테이플러 심 하나가 비뚤게 박혀 종이 한 장을 반쯤 찢어 놓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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