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5,227자) · 명지수 · 7월 13일(화)
받아들인다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7월 12일 2310, 평양의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실은 창이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긴 탁자 위에 찻잔이 여럿 놓여 있었는데 김이 오르는 잔은 하나도 없었다. 회의가 세 시간째였다.
탁자 맨 끝, 원래 기록관이 앉는 자리에 중국군 연락관 하나가 앉아 있었다. 계급장은 소장이었고 통역을 데려오지 않았다. 그는 이 방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 사실을 방 안의 모두가 알았고, 그래서 다들 말을 한 번씩 골랐다.
총참모장이 지도 앞에 섰다. 연평도와 그 건너편 해안선에 붉은 연필로 동그라미 셋이 새로 쳐져 있었다.
“섬 건너편 진지 세 곳을 더 엽니다. 지금까지는 하루 한 번, 방파제만 쳤습니다. 내일부터는 하루 세 번, 섬 전체입니다.”
연락관이 찻잔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한국의 눈이 서해 남쪽에 가 있습니다. 그 눈을 북쪽으로 돌려 주면 됩니다. 오래 할 필요는 없습니다. 8월까지면 됩니다.”
외무성에서 온 배석자는 탁자 가운데쯤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서류가 한 장뿐이었다. 러시아어로 된 문서였고, 맨 위에 두 나라 국장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3년 전에 모스크바와 맺은 조약의 한 조항을 옮겨 적은 것이었다. 어느 한쪽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쪽이 지체 없이 돕는다. 배석자는 그 종이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은 채 한 번도 떼지 않았다. 그 조항은 두 가지로 읽혔다. 이 전쟁에 더 깊이 들어가도 뒤에 누가 있다는 뜻으로도, 여기서 빠져도 기댈 데가 베이징만은 아니라는 뜻으로도. 방 안의 누구도 그 종이를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외무성 의견은?”
총참모장이 물었다. 배석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바닥 밑의 종이 모서리가 조금 구겨졌다.
총참모장 옆의 작전국장이 서류를 넘겨 숫자를 읽었다. 해안포 진지 한 곳이 하루 세 번 쏘면 한 달에 쓰는 포탄이 얼마인지, 지금 갱도에 쌓인 것이 며칠 치인지. 스무 날 치였다. 8월까지는 모자랐다. 연락관이 그 숫자를 듣고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 모자라는 만큼이 어디서 올지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방 안의 모두가 알았다. 포탄이 오면 포탄을 준 쪽의 시간표도 같이 왔다.
작전국장이 한 가지를 더 읽었다. 남쪽의 반격이 해안포 진지를 몇 번 찾아냈는지였다. 6월에 넷, 7월 들어 셋. 찾아낸 자리마다 갱도 입구가 무너졌고 그 안의 사람 수는 적혀 있지 않았다. 총참모장은 그 줄을 듣고 붉은 연필을 한 번 굴렸다.
탁자 머리의 높은 등받이 의자는 방 안쪽을 등지고 창 쪽으로 돌려져 있었다. 거기 앉은 사람의 뒤통수와 한쪽 어깨만 보였다. 회의 내내 그 의자는 한 번도 돌지 않았다. 2340에 의자 옆에 서 있던 서기가 몸을 숙여 무언가를 들었고, 허리를 펴서 짧게 말했다.
“받아들인다고 하십니다.”
연락관이 처음으로 찻잔의 차를 마셨다. 식은 차였다. 총참모장은 붉은 연필로 동그라미 셋 옆에 날짜를 적었다. 외무성 배석자는 그제야 러시아어 문서에서 손을 뗐다. 종이에 손바닥 모양으로 습기가 남아 있었다.
*
7월 13일 0240,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진천 사격지휘차의 무전기에서 해병부대 교신이 겹겹이 쏟아졌다. 방파제가 아니라 섬 안쪽이라고 했다. 대피소 번호가 불렸고 부상자 수가 고쳐 불렸다.
0302에 새 목록이 내려왔다. 사격 넷이었다. 모두 연평도 건너편 해안포 진지였고, 그중 셋은 어제까지 목록에 없던 좌표였다. 지수는 좌표를 넣기 전에 넷을 하나씩 지도에 얹었다. 도현이 옆에서 축척을 바꿨다.
첫째와 둘째와 셋째는 산비탈이었다. 넷째에서 지수의 손이 멈췄다. 점이 해안 마을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도에 작은 네모 하나와 그 옆의 빈 마당이 그려져 있었다. 도현이 축척을 한 번 더 키웠다. 네모 옆에 글자가 떴다. 학교였다.
“거리.”
“180미터입니다. 진지 갱도 입구가 학교 뒤 언덕에 있습니다. 좌표는 갱도 입구가 아니라 학교 쪽 언덕 아래로 찍혀 있습니다.”
도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빨랐다. 지수는 시계를 봤다. 발사 예정은 0340이었다. 38분이 남아 있었다. 6월 8일에는 12분이었다. 시간이 넉넉하다는 것이 이번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는 모르고 되물었지만 이번에는 알고 되물어야 했다. 두 번째 되묻는 사람은 첫 번째보다 무겁게 기억됐다.
무전기에서 연평도 교신이 또 들렸다. 섬 초등학교 체육관에 주민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지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건너편 해안의 학교가 비어 있는지 차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저쪽도 주민을 모을 데가 필요했을 것이다.
0306에 대대장이 사격지휘차 문을 열었다. 지수가 화면을 돌리자 그는 거리 숫자를 먼저 읽었다.
“또냐.”
“예. 또입니다.”
대대장은 잠깐 차 천장을 올려다봤다. 머리를 부딪히지 않으려고 허리를 굽힌 채였다.
“명 대위, 두 번이면 위에서 이름을 기억해. 한 번은 꼼꼼한 거고 두 번은 버릇이 되는 거다. 그래도 올리겠나?”
“올리겠습니다.”
“그럼 사유를 짧게 써. 길게 쓰면 따지는 걸로 읽힌다.”
지수는 양식을 채웠다. 넷째 좌표 재확인, 사유 인접 교육 시설 180. 전송을 누른 것이 0309였다.
*
0315에 발사대가 나갔다. 2호차와 4호차, 그리고 흰 테이프를 감은 3호차였다. 3호차의 이은 배선은 열흘 동안 시험 신호를 세 번 받았고 세 번 다 살아 있었다. 지수는 첫째와 둘째를 2호차와 3호차에, 셋째를 4호차에 넣게 했다. 넷째 자리는 비워 두었다. 넷째는 한 번 쏘고 다시 채운 4호차가 맡을 것이었다. 비워 둔 칸이 화면 맨 아래에서 커서를 깜박이고 있었다.
3호차가 먼저 나가는 것은 배선을 이은 뒤 처음이었다. 도현이 3호차 뒤칸에 들어가 흰 테이프를 감은 자리를 손전등으로 비췄다. 테이프 위의 유성펜 날짜가 땀과 먼지에 번져 있었다. 이은 자리는 발사 진동에서 빠질 수 있었고, 빠지면 쏘는 순간에 빠졌다. 도현이 테이프 위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러 보고 나왔다.
“이상 없습니다. 제가 이었으니까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아니. 이격 거리 밖에 있어. 이은 사람이 옆에 있다고 덜 빠지는 게 아니야.”
도현은 대답하지 않고 이격선까지 물러났다. 물러난 자리에서도 눈은 3호차에서 떼지 않았다.
0321에 답이 왔다. 12분 만이었다. 좌표 정정, 북 180, 재확인 요망 사항 확인함. 6월 8일과 거의 같은 문장이었다. 지수는 읽고 나서 한 번 더 읽지 않았다. 도현이 지도에 새 좌표를 얹었다. 점이 학교 뒤 언덕 너머 갱도 입구 위로 올라가 앉았다.
“넣어.”
0340에 관 셋이 섰다. 0342에 쐈다. 나무 밑이 세 번 대낮처럼 밝아졌고, 흰 줄 셋이 북쪽으로 휘었다. 3호차의 관에서도 흰 줄이 나갔다. 도현이 이격선에서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무전기 너머로도 들렸다. 0351에 크레인이 4호차에 붙었다. 유리 대신 비닐을 댄 운전석 창이 바람에 부풀었다. 0409에 넷째가 나갔다.
“철수, 90초.”
0448에 포가 왔다. 첫 진지 자리였다. 쏘고 나서 39분이었다. 도현이 무전기 옆 종이에 숫자를 하나 더 적었다. 48, 44, 41, 39. 0453에는 능선 너머로 방사포 세 발이 떨어졌다. 지난주보다 가까웠다. 두 번째 진지 갱도 입구의 모래주머니가 무너져 한쪽 벽이 흙더미가 됐다. 사람들은 갱도 안쪽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흙먼지가 전등 불빛 속에서 한참 가라앉지 않았다. 지수는 입안에 씹히는 흙을 뱉지 않고 셌다. 옆에 앉은 크레인 운전병은 무릎 위에서 운전석 창에 댔던 비닐 조각을 접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0520에 점검이 끝났다. 열여덟 명 전원. 발사대 셋 다 살아 있었다.
0605에 연평도 쪽 교신이 조금 조용해졌다. 건너편 해안포 넷 가운데 셋이 멎었다고 했다. 넷째가 멎었는지는 교신에 나오지 않았다.
*
0710에 도현이 방탄복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네 번 접은 자국이 닳아 접힌 선마다 종이 결이 일어나 있었다. 앞뒤로 스무 줄 가까이 적혀 있었고 빈 데가 거의 없었다. 도현은 뒷면 맨 아래 남은 한 줄에 작게 적었다.
7월 13일 0309, 넷째 좌표 재확인 요청, 사유 학교 180. 0321 정정 수신, 북 180. 둘째 정정.
적고 나서 도현은 볼펜을 잠깐 들고 있다가 줄 끝에 네 글자를 더 붙였다. 대위님 두 번.
지수가 어깨 너머로 그것을 봤다.
“하사, 그거 두 번 아니야. 처음 학교를 찾은 건 네가 축척을 키워서야. 너도 봤잖아.”
“저는 세 번째로 본 겁니다. 대위님이 먼저 멈추셨습니다. 멈추신 걸 보고 제가 키운 겁니다.”
“그러면 너도 적어.”
도현은 대답 대신 볼펜 뚜껑을 닫았다. 자기 이름은 그 줄에 없었다. 확인자 칸에만 늘 쓰던 대로 임도현이 적혀 있었다. 지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도현은 종이를 다시 네 번 접어 안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두 번 눌러 잠갔다.
*
1130에 지수는 일지를 썼다. 0302 사격 4건 수신, 0309 넷째 좌표 재확인 요청, 0321 정정 수신, 0342 발사 3발, 0409 발사 1발.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좌표 정정 누계 2건. 누계라는 칸은 일지에 없었다. 지수가 만든 말이었다.
1400에 대대장이 지휘 천막에서 지수를 불러 한 가지만 말했다. 오늘 정정 요청에 답한 쪽은 합참이 아니라 연합사 쪽 표적 담당이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사람이 확인했고, 사람이 고쳤다고 했다. 지수는 그 말이 좋은 소식인지 아닌지 한참 생각했다. 좌표를 처음 찍은 쪽도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명 대위, 오늘 정정 요청은 이름 붙여 올렸지.”
“예. 요청자 명지수로 올렸습니다.”
“잘했다. 사유가 짧아서 위에서 따질 데가 없었다더라.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짧아야 한다. 세 번째가 오면 더 짧게 써.”
대대장은 그 말을 하고 식은 반합 뚜껑의 커피를 마셨다. 지수는 경례를 하고 나오다가 천막 기둥에 걸린 대대 인원 명판을 봤다. 열여덟 개의 이름표가 두 줄로 꽂혀 있었고, 그중 하나는 모서리가 깨져 테이프로 붙여 놓은 것이었다.
1540에 지수는 사격지휘차 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들였다. 오후 볕에 달궈진 참나무 잎 냄새가 들어왔다. 그때 소리가 났다. 벌 떼 같은 그 소리였다. 지수는 세었다. 셋이었다. 도현이 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귀를 기울였다.
“대위님, 이번에는 돌지 않습니다.”
지난번까지 무인기는 능선 위를 크게 돌며 훑었다. 이번 셋은 돌지 않았다. 서쪽에서 들어와 한 줄로, 한 방향으로만 갔다. 두 번째 진지 쪽이었다. 찾는 소리가 아니라 아는 데로 가는 소리였다. 능선 위 참나무 가지 하나가 그 소리가 지나간 쪽으로 늦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