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176자) · 서하린 · 강태우 · 7월 11일(일)
셋째 이름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7월 11일 0610, 서하린은 다시 서해 위에 있었다. 오늘은 싸우러 나온 것이 아니라 구조 헬기 한 대를 지키러 나왔다. 어제 송재익의 KF-16이 떨어진 자리에서 서쪽으로 조금 흘러간 해역이었다. 해경과 해군이 밤새 뒤졌고, 새벽에 무언가를 찾았다는 연락이 와서 공군 헬기가 뜬 것이었다.
헬기는 바다 위 낮은 데서 느리게 원을 그렸다. 서하린과 권 소령의 KF-21 두 대는 그 위 높은 데서 더 큰 원을 그렸다. 0624에 피스아이가 불렀다. 북서쪽에서 저쪽 두 대가 내려오고 있었다. 어제의 넷 가운데 남은 편대인지 다른 편대인지는 몰랐다.
“편대, 헬기 쪽으로 붙는다. 먼저 쏘지 마.”
저쪽 두 대는 헬기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자리까지 와서 멈추듯 원을 그렸다. 서로가 서로를 화면에 올려놓고 한동안 돌기만 했다. 서하린은 발사 버튼 옆에 엄지를 얹고 숨을 셌다. 어제와 같은 30초가 두 번, 세 번 지나갔다. 저쪽은 쏘지 않았고 이쪽도 쏘지 않았다. 헬기 아래로 흰 물보라가 일었다. 무언가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0638에 조종석 안에서 짧은 경보음이 울렸다. 저쪽 레이더가 이쪽을 잠갔다는 표시였다. 쏜 것이 아니라 겨눈 것이었다. 서하린은 화면을 봤다. 저쪽 두 대 가운데 앞의 한 대가 원을 풀고 앞머리를 헬기 쪽으로 돌려 놓고 있었다. 헬기는 그것을 모르고 여전히 물 위에 떠 있었다. 헬기 조종사는 호이스트(줄을 내려 사람이나 물건을 끌어 올리는 장치) 줄 끝만 보고 있을 것이었다.
“2번, 헬기와 저쪽 사이로 들어가. 레이더 켜. 쏘지는 마.”
서하린은 기체를 돌려 헬기와 저쪽을 잇는 선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저쪽 화면에서 헬기 앞에 자기가 있었다. 레이더를 켜자 저쪽도 경보음을 들었을 것이었다. 겨눈 사람과 겨눈 사람이 40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마스크 안에서 숨이 빨라지려 했고, 서하린은 그 숨을 넷까지 세며 늦췄다. 연료계의 바늘이 돌아갈 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헬기는 아직 줄을 감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비키면 저쪽 화면에는 다시 헬기만 남았다. 서하린은 비키지 않았다. 경보음은 1분 가까이 끊기지 않다가 한순간에 멎었다.
0651에 저쪽 두 대가 먼저 북쪽으로 돌았다. 서하린은 그들이 왜 돌아가는지 몰랐다. 구조 헬기를 보고 돌아간 것인지 연료가 모자랐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헬기가 무전으로 짧게 보고했다. 사출 좌석 하나를 인양했다. 좌석에 사람은 없었다. 낙하산 줄이 잘려 있었다.
*
0900, 서하린은 비행단 사고 조사실에 앉아 있었다. 창이 없는 방이었고 형광등 하나가 깜박였다. 조사관은 소령이었고 손목시계를 두 번 봤다.
“서 대위, 이건 안 쓰셔도 됩니다. 편대장 보고서에 교신 내용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들었습니다. 편대장님은 그때 위에서 미사일을 쫓고 계셨습니다.”
조사관은 잠깐 서하린을 보다가 빈 진술서 양식을 밀어 줬다. 서하린은 어제 가슴 주머니에서 나온 그 펜을 꺼냈다. 은색 클립 끝의 파란 잉크 자국이 그대로였다. 그녀는 시각을 적었다. 1437. 들은 말을 그대로 적었다. 3번 피격, 3번 피격, 조종 불능, 탈출. 그다음은 잡음이었다고 적었다. 낙하산을 보지 못했다고 적었다. 찾으려고 했으나 편대 유지 명령으로 한 바퀴를 돌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 줄은 쓰지 않아도 되는 줄이었다.
맨 아래 진술자 칸에 자기 이름을 쓰기 전에, 그 위 대상자 칸에 이름을 먼저 썼다. 대위 송재익. 그 세 글자를 쓰는 동안 펜이 한 번 종이에 걸렸다. 종이에 작은 보풀이 일었다.
조사관이 진술서를 받아 끝까지 읽었다. 그는 편대 유지 명령이 적힌 줄에서 볼펜을 멈췄다.
“이 줄은 편대장 판단이 옳았다는 기록으로 읽힙니다. 서 대위가 돌지 못한 게 아니라, 돌지 않은 게 맞았다는 기록입니다. 그렇게 읽혀도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맞았으니까요.”
조사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진술서를 서류철 맨 위에 올렸다. 서하린은 펜 뚜껑을 닫았다. 클립이 가슴 주머니 천을 물면서 작게 딸깍 소리를 냈다.
*
1030에 비행단 작전참모가 KF-21 조종사 넷을 불렀다. 칠판에 서해 지도가 붙어 있었고 군산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KF-21 넷을 군산 분견대로 보낸다. 여기서 뜨면 서해 중간선까지 연료의 절반을 길에 버린다. 어제 교전도 오래 못 버틴 게 그거였다. 군산에서 뜨면 서해 한가운데에서 20분을 더 싸운다.”
서하린이 손을 들었다. 대위가 참모 앞에서 손을 드는 일은 드물었다.
“참모님, 그 활주로는 표적입니다. 6월 4일부터 네 번 맞았습니다. 지금은 구멍이 스물 넘습니다. 새 기체 넷을 거기 두면 저쪽은 거기를 다섯 번째로 칠 겁니다. 그리고 군산 시내가 기지 바로 옆입니다.”
작전참모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서하린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 분필로 군산의 빨간 동그라미를 한 번 더 그렸다.
“표적이라서 가는 거다. 서해를 지키려면 서해에서 떠야 해. 저쪽도 그걸 알아서 거기를 치는 거고. 우리가 거기서 안 뜨면 저쪽은 거기를 안 쳐도 서해를 가져가.”
“시내는요?”
작전참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명령서 한 장을 탁자에 놓았다. KF-21 분견대 군산 전개. 시기는 활주로 개방 시. 서하린은 그 명령서를 봤다. 활주로 개방 시라는 네 글자 뒤에 날짜가 없었다.
*
1400, 군산 오식도동의 한 아파트 계단은 어두웠다. 정전 엿새째였다. 38전대 인사과 대위 하나가 군종 장교와 함께 손전등을 들고 7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에는 운행 중지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고, 계단참마다 누가 내다 놓은 생수 빈 병이 쌓여 있었다.
703호 문을 두드리자 한참 뒤에 문이 열렸다. 서른 남짓한 여자가 손전등을 들고 서 있었다. 그 뒤로 거실 바닥에 앉은 아이 하나가 보였다. 창에 담요를 쳐 놓아서 거실은 대낮인데도 어둑했다. 여자는 두 사람의 정복을 보고, 군종 장교의 가슴에 달린 십자 표지를 봤다. 그러고는 손전등을 끄지 않은 채 문손잡이를 잡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대위가 입을 열기 전에 여자가 먼저 말했다.
“들어오지 마세요. 거기서 말씀하세요.”
대위는 문턱 밖에 선 채로 준비한 말을 했다. 여자는 끝까지 들었다. 손전등 불빛이 대위의 군화 끝에 머물러 있다가, 말이 끝나자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갔다. 거실의 아이가 엄마, 하고 불렀다. 여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
1215, 군산 활주로에서 기관포가 먼저 울었다. 무인기 둘이 바다 쪽에서 낮게 들어왔다. 공습 경보가 울리기도 전이었다. 활주로에 흩어져 있던 시설대대원들이 삽을 던지고 가장 가까운 배수로로 뛰었다. 태우는 도영의 방탄복 어깨끈을 잡아 끌고 활주로 가장자리 콘크리트 배수로에 엎드렸다. 배수로 바닥에 고인 물이 무릎으로 스며들었다.
예광탄 줄이 하늘을 긁었다. 한 대가 맞아 비틀거리며 활주로 북쪽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가 파란 깃발 셋이 모인 구멍 옆이었다. 짧은 폭음 뒤에 한 박자 늦게 두 번째 폭음이 났다. 무인기가 아니라 흙 속에 박혀 있던 자탄 하나가 같이 터진 소리였다. 흙과 자갈이 비처럼 쏟아져 배수로 위를 두드렸다. 두 번째 무인기는 기지 위를 한 바퀴 돌고 격납고 쪽으로 가다가 기관포에 걸려 유도로에 떨어졌다. 터지지 않았다. 폭발물 처리반 중사가 욕을 하며 무전기를 들었다.
1231에 곽 상사가 배수로에서 일어나 인원을 불렀다. 대원 스물이 다 대답했다. 곽 상사는 배치도를 펴서 파란 깃발 셋에 볼펜으로 가위표를 치고, 그 옆에 빨간 동그라미를 새로 그렸다. 나중에 가도 된다던 것 하나가 먼저 터졌다. 사람이 그 옆에 없었던 것은 순서 덕이 아니라 시각 덕이었다. 곽 상사는 그 말을 하지 않았고 태우도 하지 않았다. 도영이 배치도의 자기 동그라미들을 한참 내려다봤다.
*
1600, 군산 활주로 남쪽 끝에서 태우는 세 번째 구멍의 가장자리를 다지고 있었다. 로봇이 빨간 깃발을 사흘 동안 열한 개 끝냈고, 깃발이 없어진 둘레부터 구멍이 하나씩 메워졌다. 오늘 세 번째였다. 급결 보수재가 김을 올렸고 도영이 테이프 감은 손으로 삽을 잡고 있었다.
1620에 오상혁 중사가 활주로를 가로질러 걸어왔다. 걸음이 평소보다 느렸다. 그는 구멍 가장자리에서 멈춰 태우와 도영을 번갈아 봤다.
“어제 서해에서 KF-16 한 대가 안 돌아왔다. 우리 대대에서 간 일곱 가운데 하나야. 오늘 아침에 좌석만 건졌대.”
태우는 삽을 세웠다.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오상혁이 이름을 말했다.
“송재익 대위.”
태우는 그 이름을 알았다. 편성표에서 외운 아홉 가운데 하나였고, 내륙 기지 유도로 끝에서 꼬리날개 구멍 여섯을 손가락으로 짚던 사람이었다. 박 소령님 사다리 잡아 주던 게 자네구나, 하던 목소리가 아직 귀에 있었다. 도영이 삽을 내려놓았다. 셋은 한동안 굳어 가는 보수재 위의 김을 보고 서 있었다. 활주로 저편에서 곽 상사의 대원들이 낮에 터진 자리의 흙을 삽으로 퍼내고 있었고, 삽날이 자갈에 부딪히는 소리가 바닷바람을 타고 끊겼다 이어졌다. 오상혁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가 불을 붙이지 않은 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그 손이 주머니 안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도영은 삽자루에 감은 절연 테이프를 엄지로 문질렀다. 테이프 끝이 들떠 있었는데 누르지는 않았다. 태우는 서쪽을 봤다. 어제 그 사람이 떨어진 바다가 그쪽이었다. 여기서는 개펄 너머 수평선에 흐린 선 하나만 보였다.
“일해.”
오상혁이 말했다. 셋은 다시 일했다. 1840에 세 번째 구멍이 굳었다. 곽 상사가 배치도에 3을 적었다.
*
2300, 태우는 불 꺼진 생활관 침상에 앉아 공구함을 무릎에 올렸다. 손전등을 입에 물고 뚜껑을 열었다. 헬멧 옆에 반으로 접은 종이가 있었다. 앞면에 일곱, 뒷면에 둘이었다. 태우는 앞면의 셋째 이름에 줄을 그었다. 볼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조용한 생활관에서 크게 들려 옆 침상의 도영이 몸을 뒤척였다. 줄을 두 번 그었다. 그리고 종이를 뒤집어 뒷면 둘째 이름 아래에 적었다. 송재익.
같은 날 아침 10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내륙 비행단 사고 조사실에서 모르는 사람 하나가 같은 세 글자를 적었다는 것을 태우는 알지 못했다. 앞면에 여섯, 뒷면에 셋이 됐다.
태우는 종이를 접어 넣고 공구함을 닫았다. 복도로 나가 화장실에 가는 길에 게시판을 지났다. 오늘 저녁에 새로 붙은 공문 하나가 손전등 불빛에 걸렸다. KF-21 분견대 도착 예정, 활주로 개방 시. 날짜 칸은 비어 있었다. 공문 네 귀퉁이를 붙인 테이프 하나가 벌써 떨어져 한쪽 모서리가 복도 바람에 들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