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156자) · 서하린 · 7월 10일(토)
30초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7월 10일 1310, 충청 내륙 비행단의 합동 브리핑실은 에어컨이 고장 나 있었다. 창문을 다 열어 놓았는데도 공기가 움직이지 않았고, 조종복 등판이 의자 등받이에 달라붙었다. 서하린 대위는 둘째 줄에 앉아 무릎판에 주파수를 옮겨 적고 있었다.
KF-21 초도 양산분 넷이 이 기지로 분산 배치된 지 아흐레째였다. 서하린은 그 넷을 모는 조종사 넷 가운데 하나였다. 서른한 살이었고, 작년까지는 KF-16을 탔다. 새 기체는 조종석이 넓었고 화면이 밝았으며 엔진이 둘이었다. 엔진이 둘이라는 것이 바다 위에서 얼마나 큰 것인지를 그녀는 아직 전투에서 확인해 보지 않았다.
오늘 편성은 넷이었다. 서하린의 KF-21 두 대, 그리고 군산에서 옮겨 온 KF-16 두 대였다. KF-16 편대장은 송재익 대위였다. 브리핑이 시작되기 전 그가 몸을 돌려 서하린의 무릎판을 들여다봤다.
“대위님, 펜 좀 빌립시다. 내 건 잉크가 말랐어.”
서하린이 가슴 주머니에서 펜을 뽑아 줬다. 검은 몸통에 은색 클립이 달린, 교육 수료 때 받은 펜이었다. 송재익은 그것으로 자기 손등에 무언가를 적었다. 교전 규칙이 바뀌면 손등에 적는 게 버릇이라고 했다. 적고 나서 펜을 흔들며 뭐라고 농담을 했는데, 브리핑 장교가 들어오는 바람에 서하린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펜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하린은 신경 쓰지 않았다. 펜은 또 있었다.
브리핑 장교가 화면을 켰다. 저쪽 J-16 편대가 매일 1400 전후 서해 중간선까지 내려왔다가 돌아간다. 우리가 올라가면 돌아가고 안 올라가면 더 내려온다. 그저께는 한 대가 돌아가지 않고 우리 쪽으로 내려왔다가 격추됐다.
“교전 규칙은 그대로다. 장거리 미사일, 먼저 쏘지 마. 저쪽이 먼저 쏘면 그때부터는 자위다. 우리가 먼저 쏘면 그때부터는 우리 전쟁이 된다.”
송재익이 손등을 내려다봤다. 거기 적힌 것이 그 문장이었다. 먼저 쏘지 마.
1340에 서하린은 헬멧 가방을 들고 계류장으로 걸었다. 볕이 아스팔트에 부딪혀 올라와 발목이 먼저 뜨거웠다. 정비병 둘이 그녀의 기체 날개 밑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하나는 이 기지 병장이었고 하나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서하린은 기체를 한 바퀴 돌면서 날개 밑 공대공 미사일의 붉은 리본들을 하나씩 봤다. 리본이 달려 있으면 안전핀이 꽂혀 있는 것이었다. 사다리를 오르기 전에 늘 하는 대로 앞바퀴를 손바닥으로 한 번 두드렸다. 고무가 볕에 달아 있었다. 옆 계류장에서 송재익이 자기 기체 사다리를 오르다가 그녀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
1410, 서하린은 활주로 끝에서 스로틀을 밀었다. 엔진 두 개가 뒤에서 한꺼번에 깨어났다. 좌석이 등을 밀었고, 활주로 가장자리의 유도등이 빠르게 뒤로 흘러가 하나의 줄이 됐다. 기체 앞머리가 들렸다. 조종석 밖의 풍경이 논과 산에서 하늘로 바뀌는 데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산소마스크 안에서 자기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들이쉬면 고무 냄새가 났고 내쉬면 마스크 안쪽에 습기가 맺혔다.
1418에 편대가 서해 해안선을 넘었다. 해안선 위로 군산 쪽 하늘이 멀리 보였다. 활주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작업 먼지 같은 것이 옅게 떠 있었다. 발밑으로 개펄이 은박지처럼 번쩍였고, 그 너머로 바다가 녹색에서 회색으로 짙어졌다. 서하린은 편대장 권 소령의 오른쪽 뒤에 붙었다. KF-16 두 대는 조금 아래, 조금 앞에서 갔다. 송재익의 기체 꼬리에 박힌 번호가 햇빛에 잠깐 읽혔다.
1428에 피스아이가 불렀다. 조기경보기의 목소리는 늘 낮고 고르고 빨랐다.
“북서쪽 120킬로미터, 남하 중, 넷. 고도 높음. 속도 빠름. 식별 J-16.”
서하린의 화면에 점 넷이 떴다. 피스아이가 준 것이었다. 그녀의 레이더는 아직 그것을 직접 보지 못했다. 서해 위를 하루 종일 떠서 눈 노릇을 하는 조기경보기가 이 나라에 몇 대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 몇 대 가운데 한 대가 지금 저 점 넷을 그녀에게 주고 있었다. 저 한 대가 떨어지면 서해의 눈이 절반으로 감긴다고 교관들은 말했다. 서하린은 가끔 그 조기경보기 안에서 화면을 보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목소리들이었다.
“편대, 속도 유지. 레이더는 아직 켜지 마. 먼저 쏘지 마.”
권 소령의 목소리였다.
*
1431에 거리가 줄었다. 저쪽이 쏠 수 있는 거리로 들어오는 것은 이쪽이 쏠 수 있는 거리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순간이었다. 저쪽 미사일이 조금 더 멀리 간다는 것만 달랐다. 서하린은 오른손 엄지를 조종간의 발사 버튼 옆에 얹었다. 누르지 않았다. 버튼 옆 금속이 장갑을 뚫고 차갑게 닿았다.
그때부터 30초였다. 누구도 그 30초라는 숫자를 정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그렇게 셌다. 저쪽도 알고 이쪽도 알았다. 먼저 쏘는 쪽이 전쟁을 한 칸 키운다. 늦게 쏘는 쪽은 맞는다. 그 사이에서 네 사람과 네 사람이 서로를 겨누며 기다렸다. 서하린은 먼저 쏜 사람의 이름이 어디에 남는지를 생각했다. 브리핑 장교는 우리 전쟁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은 곧 그녀 엄지 하나가 이 나라를 한 칸 더 전쟁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저쪽 조종석에도 같은 엄지가 있을 것이었다. 저쪽도 누가 먼저 쏘지 말라고 했을까. 그녀는 그런 생각을 오래 할 수 없었다. 숨을 세야 했다.
서하린은 숨을 셌다. 들이쉬는 데 둘, 내쉬는 데 둘. 마스크 안에서 숨이 여덟 번 오갔다. 화면의 점 넷이 조금씩 커졌다. 송재익의 KF-16이 앞머리를 약간 들었다. 그도 기다리고 있었다.
열여덟 번째 숨에 경보가 울렸다. 날카롭고 끊이지 않는 소리였다.
“미사일 발사! 저쪽이 먼저 쐈다! 편대 산개!”
서하린은 조종간을 왼쪽으로 꺾고 당겼다. 몸이 좌석에 박혔다. 지 슈트(급기동 때 하반신을 조여 피가 다리로 쏠리지 않게 하는 옷)가 허벅지와 배를 한꺼번에 조였다. 시야 가장자리부터 회색이 번졌다. 서하린은 이를 악물고 배에 힘을 줘 숨을 끊어 쉬었다. 회색이 가운데까지 오기 전에 멈췄다. 기체가 바다 쪽으로 기울었다. 오른쪽 날개 끝으로 수면이 가깝게 보였다. 기만체가 꼬리에서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등 뒤에서 탁탁 났다.
경보가 끊겼다가 다시 울렸다가 끊겼다. 무엇이 무엇을 쫓는지 화면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서하린은 편대장의 기체를 찾았다. 위쪽 멀리 있었다. 권 소령이 짧게 불렀다.
“2번, 괜찮나.”
“2번 이상 없습니다.”
“자위 사격 허가. 쏴.”
권 소령이 먼저 쐈다. 먼저라고 해도 저쪽보다는 나중이었다. 흰 연기 줄 하나가 그의 날개 밑에서 앞으로 길게 뻗었다. 서하린도 쐈다. 기체가 미사일 무게를 덜며 한 번 가볍게 들렸다. 흰 줄이 북서쪽 하늘로 뻗어 가다가 너무 멀어져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무전에 다른 목소리가 섞였다. 송재익의 목소리였다.
“3번 피격, 3번 피격. 조종 불능, 탈출….”
말이 거기서 끊겼다. 끊긴 자리에 잡음이 길게 이어졌다. 서하린은 고개를 돌려 아래를 봤다. 바다 위 낮은 곳에 검은 연기 한 줄이 비스듬히 그어져 있었고, 그 끝이 수면에 닿아 있었다. 낙하산은 보이지 않았다. 찾으려고 눈을 부릅떴지만 흰 것은 파도밖에 없었다.
“2번, 3번 위치로 가겠습니다. 한 바퀴만 돌겠습니다.”
“안 된다. 저쪽이 아직 셋이다. 네가 내려가면 네가 넷째가 된다. 편대 유지.”
서하린은 조종간을 쥔 손에 힘을 줬다가 풀었다. 명령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알면서 한 번 더 아래를 봤다. 4번 KF-16이 혼자 3번 자리 위를 크게 돌고 있었다. 그도 명령을 들었을 것이다. 그는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서야 편대로 붙었다.
*
1446에 저쪽 편대가 북쪽으로 돌아섰다. 화면의 점이 넷에서 셋이 됐다. 저쪽 하나가 사라진 것인지, 레이더가 놓친 것인지는 몰랐다. 피스아이가 저쪽 하나 소실이라고만 했다. 이쪽은 넷에서 셋이었다.
“편대 귀환. 3번 위치 표시했다. 구조대가 간다.”
권 소령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갈라졌다. 서하린은 연료계를 봤다. 돌아갈 만큼 있었다. 그녀는 바다 위 연기가 있던 자리를 한 번 더 내려다보고 나서 기체를 동쪽으로 돌렸다. 연기는 이미 바람에 풀려 흔적만 남아 있었다.
돌아오는 40분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편대 대형은 넷일 때 모양 그대로 날았다. 3번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고, 4번은 그 빈자리 옆을 그대로 지켰다. 바다에서 육지로 넘어오자 발밑의 색이 회색에서 초록으로 바뀌었다. 서하린은 그 초록을 보는 것이 이상하게 견디기 어려웠다.
1515에 활주로에 내렸다. 바퀴가 닿을 때 몸이 한 번 흔들리고, 그제야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캐노피를 열자 뜨거운 공기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정비병 하나가 사다리를 걸고 올라와 안전핀을 꽂았다. 서하린은 사다리를 내려가다가 세 번째 칸에서 다리가 풀려 난간을 잡았다. 정비병이 아래에서 사다리를 붙잡았다. 사다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계류장 건너편 송재익의 자리에는 KF-16 정비반 셋이 서 있었다. 무장 카트와 소화기와 사다리를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4번기가 들어오자 그중 하나가 고개를 빼고 그 뒤를 봤다. 뒤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한참 서 있다가 사다리를 도로 접었다. 서하린은 그 사다리 접히는 소리를 등 뒤로 들었다.
1530, 편대 결산실에서 권 소령이 녹화 화면을 되감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점 넷과 점 넷이 서로에게 다가가다가, 저쪽 점 하나에서 가느다란 선이 먼저 뻗어 나왔다. 권 소령은 그 순간에서 화면을 멈추고 시각을 받아 적었다. 저쪽이 먼저 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숫자였다. 그 숫자가 있어야 이쪽이 쏜 것이 자위가 됐다. 서하린은 산소마스크 자국이 남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의자에 앉았다. 조종복 가슴 주머니 지퍼를 내리고 담배 대신 챙겨 다니는 박하사탕을 찾았다. 손가락에 딱딱한 것이 걸렸다. 펜이었다. 검은 몸통에 은색 클립. 송재익이 빌려 간 펜이었다. 그가 브리핑 중에 언제 도로 꽂아 넣었는지 서하린은 알지 못했다. 클립 끝에 파란 볼펜 자국이 조금 묻어 있었다. 그가 손등에 먼저 쏘지 말라고 적을 때 묻은 잉크였다.
권 소령이 화면을 멈추고 돌아봤다.
“서 대위, 위에서 이야기가 있다. 서해 쪽 활주로가 필요하다. 여기서 뜨면 서해까지 너무 멀어. 오늘도 연료 때문에 오래 못 버텼다. 군산이 열리면 거기로 간다.”
“군산은 구멍이 스물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여는데요?”
권 소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하린은 펜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은색 클립이 형광등을 받아 한 줄로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