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131자) · 강태우 · 7월 8일(목)

첫 구멍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7월 8일 0500, 태우가 생활관 문을 열자 도영이 복도에 서 있었다. 두 손으로 공구함을 들고 있었다. 어제 하루는 전입 신고와 안전 교육으로 다 가서 둘은 식당에서 눈인사만 했다. 도영은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기상 나팔보다 먼저 와 있었다.

“형님, 이거요.”

공구함 겉면이 닦여 있었다. 원래 벗겨져 있던 모서리 페인트는 그대로였는데 손때가 지워져 녹색이 한 톤 밝아 보였다. 도영이 뚜껑을 열어 보였다. 서랍 여섯 칸의 공구가 태우가 두고 간 순서 그대로였다. 둘째 서랍에 10밀리 렌치가 있었다. 맨 위 칸에 헬멧이 눌린 자리 그대로 들어 있었고, 헬멧 턱끈은 채워진 채였다.

“하나도 안 옮겼습니다. 헬멧도요. 끈은 제가 안 풀었습니다.”

“잘했다.”

태우는 둘째 서랍을 열어 렌치를 한 번 쥐었다가 도로 놓았다. 손이 맞는 자리를 찾아가는 데 한 번도 헤매지 않았다. 사흘 동안 남의 기지에서 헛손질하던 손이었다.

0520, 식당에는 정비반 여덟이 모여 있었다. 떠난 여섯의 자리는 비어 있었고 남은 여덟이 그 빈자리를 건너뛰지 않고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태우가 식판을 들고 들어서자 몇이 숟가락을 멈췄다. 누군가 전역 앞두고 미쳤다고 했고 누군가는 웃었다. 오상혁은 고개도 들지 않고 국을 떴다. 식당 전등은 발전기 전기라서 밥알이 누렇게 보였다. 태우는 오상혁 맞은편에 앉았다. 오상혁이 김치 접시를 태우 쪽으로 밀었다.

*

0540에 활주로로 나갔다. 새벽 해무가 걷히면서 노란 깃발 서른한 개가 하나씩 드러났다. 깃발 사이사이로 구멍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고, 구멍 가장자리의 아스팔트는 꽃잎처럼 바깥으로 들려 있었다. 비가 한 번 지나간 뒤라 구멍 바닥마다 누런 물이 고여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짠 개펄 냄새와 탄 아스팔트 냄새가 섞여 있었다.

시설대대 반장 곽 상사가 깃발 배치도를 들고 서 있었다. 쉰 가까운 사람이었고 목소리가 컸다. 그 옆에 폭발물 처리반 중사 하나와, 궤도가 달린 처리 로봇 한 대가 있었다. 로봇은 사람 허리 높이였고 앞쪽에 집게 팔과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조종하는 사람은 30미터 뒤 장갑 차량 안에 앉아 화면을 봤다.

“로봇이 하루에 여섯 개 한다. 서른하나면 엿새다. 엿새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메우면 돼.”

곽 상사가 말했다. 태우는 배치도를 봤다. 깃발이 구멍 스무 개 사이에 고르게 흩어진 것이 아니라, 몇 구멍 둘레에 몰려 있었다.

“상사님, 엿새 기다리면 그 사이에 한 번 더 맞습니다. 로봇이 할 순서를 먼저 정하면, 깃발 없는 구멍부터 사흘 안에 메울 수 있습니다.”

“병장이 순서를 정한다고?”

“자탄 신관은 모양이 세 가지입니다. 제가 눈으로 가릅니다. 손은 안 댑니다. 로봇이 먼저 가야 할 것과 나중에 가도 될 것만 나눕니다.”

곽 상사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자기 대대원 스무 명을 저 깃발 사이에 넣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활주로를 메우는 것은 그의 일이었고 폭탄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폭탄이 박힌 자리에 삽을 들고 들어가는 것은 그의 대대원이었다. 그는 그 둘 사이에서 한 달을 버텼고 그 사이 부하 하나를 잃었다고, 나중에 오상혁이 말해 줬다.

“나눴다가 틀리면? 나중에 가도 된다던 게 터지면 그 옆에서 삽질하던 내 애들은?”

“그래서 사람이 먼저 가는 데는 없습니다. 로봇 순서만 바꾸는 겁니다. 깃발이 몰린 구멍은 전부 로봇이 끝낸 뒤에 들어갑니다.”

둘 사이에 오상혁 중사가 끼어들었다. 그는 곽 상사보다 계급이 낮았고 그걸 알고 말했다.

“반장님, 이 친구가 6월 4일부터 이 활주로 파일런(무장을 매다는 날개 밑 장착대) 밑에서 산 놈입니다. 저쪽 자탄은 우리 폭탄 뒤집어 놓은 거랑 속이 같습니다. 눈은 믿어도 됩니다. 손은 제가 못 대게 하겠습니다.”

곽 상사는 한참 배치도를 내려다보다가 폭발물 처리반 중사를 봤다. 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곽 상사가 배치도를 태우에게 내밀었다.

“깃발에 테이프 붙여. 빨간 거 먼저, 파란 거 나중. 틀리면 네가 아니라 내가 여기 서 있는 거다.”

*

0710부터 태우는 폭발물 처리반 중사와 함께 깃발 사이를 걸었다. 깃발에서 3미터 밖에 서서 쌍안경으로 봤다. 흙에 반쯤 박힌 원통들이었다. 어떤 것은 날개가 펴진 채였고 어떤 것은 날개가 꺾여 있었다. 태우는 무엇을 보고 가르는지 말하지 않았다. 중사도 묻지 않았다. 태우가 빨강이라고 하면 중사가 깃대에 빨간 테이프를 감았고, 파랑이라고 하면 파란 테이프를 감았다. 서른한 개 가운데 빨강이 열넷이었다. 한낮이 가까워지자 아스팔트가 볕을 먹어 군화 밑창으로 열이 올라왔다. 쌍안경 고무 테에 땀이 고여 눈두덩이 미끄러웠다. 태우는 깃발 하나를 볼 때마다 쌍안경을 내리고 소매로 눈을 닦고 다시 들었다. 원통 하나를 잘못 보면 그 옆에 설 사람이 곽 상사의 대대원이었다. 세 번 본 것도 있었다.

도영이 뒤에서 배치도에 색을 옮겨 적었다. 시키지 않았다. 볼펜 두 자루를 번갈아 쥐고 깃발 번호 옆에 작은 동그라미를 칠했다. 빨강을 칠할 때는 동그라미를 꽉 채웠고 파랑은 테두리만 그렸다. 누가 봐도 헷갈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1030에 로봇이 첫 빨강으로 갔다. 궤도가 아스팔트 조각을 밟을 때마다 카메라 팔이 흔들렸다. 조종수가 장갑차 안에서 팔을 천천히 뻗었다. 집게가 원통 옆에 무언가를 내려놓고 물러났다. 1052에 원통 자리에서 짧고 둔한 폭음이 났다. 흙이 한 삽 솟았다가 떨어졌다. 하나였다.

1110에 로봇이 네 번째 빨강으로 가다가 섰다. 원통에서 4미터 앞이었다. 카메라 팔이 반쯤 들린 채로 멈췄다. 조종수가 장갑차 문을 열고 소리쳤다.

“배터리입니다! 표시는 40퍼센트였는데 떨어졌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로봇은 폭발물 4미터 앞에 서 있었고, 그것을 끌고 오려면 사람이 4미터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예비 배터리는 없었다. 오산 처리반에 있다고 했다. 트럭으로 2시간이었다.

곽 상사가 태우를 봤다. 태우는 로봇 쪽을 봤다. 궤도 옆에 박힌 원통은 파랑이 아니라 빨강이었다.

시설대대원 하나가 밧줄을 걸어 끌어내자고 했다. 4미터면 뛰어 들어갔다 나오는 데 10초라고 했다. 다른 하나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동안 기다리는 데 지친 얼굴들이었다.

“기다립니다.”

태우가 먼저 말했다. 병장이 상사의 대대원들 앞에서 한 말이었다. 곽 상사가 태우를 한 번 쳐다보고, 밧줄 이야기를 꺼낸 부하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쳤다. 곽 상사는 대답하지 않고 무전기를 들어 오산을 불렀다.

*

1215에 공습 경보가 울렸다. 서해 쪽에서 저쪽 편대가 또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가 활주로를 버리고 방공호로 뛰었다. 로봇은 활주로 한가운데 빨간 깃발 앞에 혼자 남았다. 방공호 총안구로 그것이 보였다. 오후 볕을 받아 노란 몸체가 반짝였다.

1232에 머리 위로 전투기 소리가 지나갔다. 우리 것인지 저쪽 것인지는 소리로 알 수 없었다. 서쪽 하늘 높은 데서 흰 줄 두 개가 교차하더니 한 줄이 끊겼다. 폭발음은 한참 늦게, 천둥처럼 둔하게 왔다. 방공호 안의 누구도 그 끊긴 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도영이 옆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헬멧 턱끈을 두 번 당겼다. 방공호 흙벽에서 스며 나온 물기가 등에 차갑게 배었다. 누가 활주로 위의 로봇을 걱정하는 소리를 했고, 누가 그건 기계라고 했다. 태우는 로봇 옆의 빨간 깃발을 걱정했다. 근처에 폭탄이 하나 떨어지면 그 원통이 같이 갈 것이었다. 1250에 해제가 났다. 활주로에는 새 구멍이 없었다. 저쪽은 이번에는 치지 않고 긁고만 갔다.

1410에 오산에서 배터리가 왔다. 조종수가 방호복을 입고 혼자 로봇까지 걸어가 배터리를 갈았다. 4미터 앞의 빨간 깃발 옆을 지날 때 그는 발을 들었다 놓는 것까지 천천히 했다. 모두가 숨을 참고 그 걸음을 셌다. 열한 걸음 가서 갈고 열한 걸음 돌아왔다. 1430에 로봇이 다시 움직였다. 로봇은 그날 해가 질 때까지 빨간 깃발 다섯을 더 끝냈다. 폭음이 날 때마다 활주로 가장자리에 앉은 시설대대원들이 고개만 한 번씩 돌렸다.

*

1530에 활주로 남쪽 끝의 깃발 없는 구멍 하나 앞에 시설대대 인원과 정비반이 모였다. 지름이 사람 키 반만 한 구멍이었다. 덤프트럭이 자갈을 쏟았고, 사람들이 삽으로 펴고, 진동 다짐기가 그 위를 몇 번 오갔다. 그 위에 급결 보수재를 부었다. 회색 반죽이 구멍 가장자리의 들린 아스팔트 틈까지 스며들며 김을 올렸다. 태우와 도영은 삽을 들고 가장자리를 다졌다. 삽날이 자갈을 긁는 소리가 이를 시리게 했다. 도영의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가 터졌다. 태우는 도영에게 장갑을 벗으라고 하고 자기 공구함 맨 아래 칸에서 절연 테이프를 꺼내 물집 자리에 감아 줬다. 도영은 그 손으로 다시 삽을 잡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구멍 안쪽의 그림자가 반대쪽 벽으로 옮겨 갔다. 그림자가 다 옮겨 갈 때까지 아무도 쉬지 않았다.

1840에 보수재가 굳었다. 곽 상사가 그 위에 올라가 군화 뒤꿈치로 두 번 굴렀다. 꺼지지 않았다. 그는 배치도 한쪽에 볼펜으로 숫자 하나를 적었다. 1. 그 숫자 옆에 오늘 날짜를 적고, 볼펜을 귀에 꽂았다. 굳은 보수재 표면은 아직 미지근했고, 태우가 손바닥을 대자 그 온기가 천천히 올라왔다.

“스물 넘게 남았다. 병장, 내일도 나와.”

곽 상사가 가고 나서 도영이 공구함을 들고 태우 앞에 섰다.

“형님, 이거 이제 돌려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니 거라 했다.”

“형님 오셨는데요.”

“그러면 같이 써. 둘째 서랍은 내 거, 넷째 서랍은 니 거. 헬멧은 우리 거.”

도영이 웃다가 입을 다물었다. 태우는 공구함 손잡이를 도영과 한쪽씩 나눠 쥐고 격납고로 걸었다. 공구함이 둘 사이에서 걸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태우는 머릿속으로 셈을 했다. 7월 8일이었다. 8월 27일까지 쉰 날이었다.

1900, 격납고 앞에서 오상혁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은 붙이지 않은 채 서쪽을 보고 있었다. 기지 안에서는 못 피우는 담배였다. 그는 한 달째 같은 개비를 물었다 뺐다 해서 필터가 누렇게 짓눌려 있었다.

“저쪽 편대가 매일 1400 전후에 서해 중간선까지 긁고 가. 우리가 올라가면 돌아가고, 안 올라가면 조금 더 내려와. 그런데 오늘은 한 대가 돌아가지 않고 남쪽으로 더 내려왔다더라. 낮에 끊긴 줄 봤지. 그게 누구 건지는 아직 모른대.”

태우는 서쪽 하늘을 봤다. 노을 속에 흰 줄 하나가 아직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끊긴 쪽 끝이 바람에 풀려 실밥처럼 늘어져 있었다.

1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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