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144자) · 명지수 · 7월 6일(화)
사격 셋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0140에 지수는 사격지휘차 뒤 칸 간이 침대에서 눈을 떴다. 누가 깨운 것이 아니었다. 무전기에서 연평도 쪽 해병부대 교신이 낮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잠결에도 귀가 그 소리의 높이가 바뀐 것을 먼저 알아들었다. 북쪽 해안포가 또 쐈다고 했다. 섬 동쪽 끝 방파제에 몇 발이 떨어졌고 부상자 수는 아직 세는 중이라고 했다. 지수는 침낭을 걷고 군화 끈을 맸다. 맞은편 침대에서 도현이 모로 누운 채 자고 있었는데, 방탄복을 벗지 않고 잔 탓에 어깨가 불편하게 들려 있었다. 지수는 깨우지 않았다. 20분 뒤면 어차피 깰 것이었다.
7월 6일 0210, 진천의 사격지휘차 화면에 새 목록이 떴다. 맨 위 석 줄 앞에 사격이 붙어 있었다. 북쪽 해안포 진지 셋이었다. 연평도 건너편 해안선을 따라 박힌 갱도 입구들이었고, 지난 사흘 동안 그 갱도에서 나온 포가 연평도 쪽으로 몇 번을 쐈는지는 아침마다 무전으로 들었다.
지수는 좌표 석 줄을 넣기 전에 목록을 끝까지 내려 봤다. 습관이었다. 맨 아래에 있어야 할 두 줄이 없었다. 산둥반도 비행장 두 곳이었다. 나흘 전 새벽에 사격으로 내려와서 대기도 거치지 않고 쏜 그 두 줄이었다. 참고도 대기도 아니었다. 그냥 없었다. 목록은 처음부터 그 두 줄이 없었던 것처럼 매끈하게 끝나 있었다. 지수는 화면을 위로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스크롤바가 끝에서 한 번 튕겼다. 쏜 것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배웠다. 쏜 것은 결과 보고로 이어지고, 결과 보고는 다음 표적의 근거가 됐다. 근거가 없어진 자리에 두 발의 흰 줄만 남아 있었다.
“임 하사, 그 종이 줘 봐.”
도현이 방탄복 안주머니에서 네 번 접은 종이를 꺼냈다. 앞뒤로 스무 줄이 넘게 적힌 종이였다. 지수가 화면을 가리키자 도현은 한참 보다가 볼펜 뚜껑을 입으로 물어 뺐다. 맨 아래 빈 줄에 적었다. 7월 6일 0212, 목록에서 산둥반도 두 건 삭제됨, 확인자 임도현. 볼펜 뚜껑에 도현의 잇자국이 남았다.
*
0231에 발사대가 나갔다. 셋 가운데 2호차와 4호차가 나갔고, 흰 테이프를 감은 3호차는 갱도에 남았다. 세 발을 쏘려면 둘 중 하나가 한 번 더 채워야 했다. 크레인은 하나였고 그 운전병은 이마에 유리 자국이 아물지 않은 채로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발사관을 세우기 전에 모두가 위를 올려다봤다. 무인기 소리는 없었다. 2호차의 관이 서는 70초 동안 지수는 초시계를 보지 않고 관 끝이 나무 우듬지를 넘는 순간만 봤다. 관이 나무보다 높아지면 그때부터는 누구 눈에나 보였다. 0304에 2호차가 쐈고 0305에 4호차가 쐈다. 빛이 두 번 났고 흰 줄 둘이 북쪽으로 휘었다. 크레인이 2호차에 붙은 것은 0341이었다. 이번에는 걸리지 않았다. 크레인 운전병은 탄을 관 뒤에 밀어 넣는 동안 한 번도 위를 보지 않았다. 지난번에 유리가 쏟아진 운전석 창에는 비닐이 테이프로 덧대어져 있어서, 그가 레버를 당길 때마다 비닐이 바람에 부풀었다 꺼졌다. 0402에 세 번째가 나갔다. 사격 셋이 다 나갔다.
0443에 포가 왔다. 첫 진지 자리에 떨어졌다. 쏘고 나서 41분이었다. 48분이던 것이 44분이 됐고 이제 41분이었다. 도현이 무전기 옆에 붙인 종이에 그 숫자를 적었다. 48, 44, 41. 숫자가 줄어드는 방향을 볼펜 끝이 따라 내려갔다.
0451에 두 번째 진지 능선 너머로 굵은 소리가 셋 떨어졌다. 포탄이 아니었다. 더 무겁고 더 길게 울렸다. 대구경 방사포였다. 북쪽이 처음으로 진천 쪽을 직접 겨눈 것이었다. 세 발 다 능선 너머 빈 골짜기에 떨어졌지만, 떨어진 자리에서 솟은 흙기둥이 사격지휘차 창으로도 보였다. 갱도 입구에 쌓아 둔 모래주머니가 한 번 들썩였다가 가라앉았다. 지수는 창유리에 손바닥을 댔다. 유리가 아직 떨고 있었다. 통신병이 대대 무전으로 피해 없음을 올리는 동안, 지수는 머릿속으로 거리를 셈해 봤다. 북쪽 해안에서 여기까지 닿는 것이 있다는 것은 전부터 알았다. 알던 것이 실제로 날아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저쪽도 이제 이 산을 셈에 넣고 있었다.
0520에 인원 점검을 했다. 열여덟 명 전원이었다. 지수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허리에 찬 수통 뚜껑을 열었다. 물이 미지근했고 쇠 맛이 났다.
*
0730에 대대장이 지휘 천막으로 지수를 불렀다. 대대장은 마흔여섯이었고, 개전하고 한 달 사이 머리가 눈에 띄게 셌다. 면도를 못 해 턱에 난 수염도 반쯤 희었다. 그는 식은 커피를 반합 뚜껑에 따라 마시다가 지수가 들어오자 그것을 탁자 끝으로 밀어 두었다. 탁자 위에 보고서 양식이 한 장 놓여 있었다. 7월 2일 사격 결과 보고서였다. 상급 부대가 오늘 1200까지 올리라고 했다.
“초안 명 대위가 써. 사실만.”
“사실만 쓰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그날 확인 요청 회신에 발신자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을 보고서에 넣겠습니다.”
대대장이 양식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절차는 지켰다. 이름은 명령서에 있다. 거기까지다.”
“명령서는 위에 있습니다. 보고서는 우리가 씁니다. 우리가 안 쓰면 그 이름은 위에만 남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그 두 줄이 목록에서 없어졌습니다.”
“없어졌다고?”
“참고도 대기도 아니고 없습니다. 쏜 표적은 목록에 남는 게 원래입니다. 그런데 없습니다.”
대대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천막 밖에서 누가 삽으로 흙을 퍼 모래주머니에 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명 대위, 그 이름을 보고서에 넣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아? 그 사람이 한 건 확인 요청에 답한 거야. 답했다는 이유로 이름이 올라가면, 다음부터는 아무도 답을 안 해. 답이 안 오면 우리는 모르는 명령을 모르는 채로 쏜다. 그게 더 나빠.”
“답한 사람이 그 명령을 알고 답했는지를 누가 확인합니까?”
“그건 우리 일이 아니야.”
“그러면 누구 일입니까?”
대대장이 천막 기둥에 등을 기댔다. 목소리를 낮췄다.
“명 대위, 여기 열여덟 명이 있어. 내 일은 그 열여덟이 이 전쟁 끝날 때 다 집에 가는 거야. 위에 누가 무슨 이름으로 답을 했는지 파고드는 대대는 다음 목록에서 제일 먼저 빠지거나, 제일 먼저 쓰여. 어느 쪽이든 우리한테 좋은 일은 아니야.”
“그 열여덟이 쏜 걸 누가 시켰는지 모르는 채로 집에 가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닙니다.”
대대장은 대답하지 않고 양식에서 손을 뗐다.
“초안 써 와. 이름은 빼고.”
*
0910에 지수는 사격지휘차 뒤 칸 접이식 책상에 앉았다. 보고서를 쓰기 전에 사격 근거를 적는 칸에 붙일 문서 번호를 찾느라 선반의 두꺼운 바인더를 내렸다. 대량응징보복 계획 표적 목록이라는 제목이 붙은 바인더였다. 임관하고 네 해 동안 지수는 그 바인더에서 자기 부대가 맡은 쪽만 펴 봤다. 오늘은 처음으로 첫 장 머리글부터 끝까지 읽었다. 표지에는 붉은 비밀 등급 도장이 두 번 찍혀 있었고, 바인더 고리가 녹슬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종이 구멍이 찢어질 듯 걸렸다.
머리글은 짧았다. 본 목록은 억제를 목적으로 한다. 적이 대량 살상 무기로 먼저 공격한 경우, 또는 그 징후가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시행한다. 그 아래로 분류가 이어졌다. 지휘부, 핵과 미사일, 장사정포, 기반 시설. 모두 북쪽이었다. 지수는 산둥반도 두 줄이 이 바인더 어디에 들어가는지 찾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그 두 줄은 이 계획이 아니라 연합 자료 회선에서 왔고, 계획 밖에서 온 좌표가 계획 안의 발사대에서 나갔다. 지수는 6월 8일을 생각했다. 민가 200미터 옆의 좌표 하나를 되물어 지운 날이었다. 그날 지운 것은 하나였다. 그 하나를 지운 손으로 나흘 전에는 계획 밖의 좌표 둘을 넣었다.
지수는 바인더를 덮고 보고서를 썼다. 0155 사격 명령 수신, 0230 확인 요청, 0248 회신, 0526 발사 2발. 비고란에 이르러 연필로 바꿔 쥐었다. 확인 요청 회신 발신자 합참 작전본부, 그리고 계급과 이름. 다 적고 나서 한참 봤다. 대대장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답한 사람의 이름이 올라가면 다음부터 답이 안 올 것이다. 지수는 지우개로 그 줄을 지웠다. 지우개 가루를 손날로 쓸어 냈다. 글씨는 없어졌지만 연필을 세게 눌러 쓴 자리가 종이에 오목하게 남았다. 불빛을 비스듬히 비추면 이름이 도로 읽혔다.
“대위님, 그거 다시 쓰시는 겁니까?”
도현이 문간에서 물었다.
“아니. 이대로 올릴 거야.”
도현이 종이를 봤다. 비고란이 비어 있었다. 도현은 몸을 기울여 형광등 불빛이 종이에 비스듬히 떨어지는 자리에서 한 번 더 봤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갔다.
*
1300에 지수는 초안을 대대장에게 가져갔다. 대대장은 천막 기둥에 매단 작업등 아래에서 그것을 읽었다. 첫 장을 넘기고, 비고란에서 멈췄다. 비어 있었다. 대대장이 종이를 작업등 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오목한 자국이 그림자로 떠올랐다. 대대장은 그것을 오래 봤다.
“이건 올리면 안 되겠다. 새로 써.”
“예.”
지수는 종이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대대장이 종이를 돌려주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반으로 접었다. 찢지 않았다. 접은 종이를 자기 야전 책상 서랍을 열어 넣었다. 서랍 안에는 무언가 이미 몇 장 들어 있었다. 서랍 레일이 모래를 씹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새로 써 오면 그걸 올린다. 이건 내가 갖고 있을게.”
지수는 경례를 하고 천막을 나왔다. 뒤에서 대대장이 서랍 손잡이를 한 번 더 밀어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현이 천막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들었느냐고 묻지 않았고, 지수도 말하지 않았다. 둘은 사격지휘차까지 나란히 걸었다. 발밑의 흙이 새벽 방사포 진동에 한 번 들렸다 내려앉아 푸석했다. 1340에 새로 쓴 보고서가 올라갔다. 비고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목한 자국도 없었다.
*
1500, 오후 볕에 사격지휘차 철판이 달아올라 안이 찜통이었다. 문을 열어 두면 빛이 새고 닫아 두면 숨이 막혔다. 도현은 발사대 쪽으로 점검을 나갔고 차 안에는 지수 혼자였다. 지수는 목록 이력을 열었다. 부대 단말에서도 볼 수 있는 이력은 짧았다. 언제 무엇이 바뀌었는지까지만 나왔다. 7월 6일 0200, 산둥반도 두 건, 삭제. 그 옆에 바꾼 계정이 떠 있었다. 시스템.
지수는 그 세 글자를 한참 봤다. 쏘라고 한 것도 계정이었고 지운 것도 계정이었다. 그 사이에 지수가 누른 발사 명령만 사람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지수는 도현의 종이에 한 줄을 받아 적게 하지 않고, 자기 수첩을 꺼내 직접 적었다. 삭제 계정 시스템. 수첩 표지는 모서리가 닳아 속지가 비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