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221자) · 강태우 · 7월 5일(월)
자원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7월 5일 0600, 충청 내륙의 비행단 격납고에서 태우는 남의 공구함을 열었다. 서랍이 여섯 칸인 것은 같았는데 순서가 달랐다. 군산에서는 둘째 서랍에 있던 10밀리 렌치가 여기서는 넷째 서랍에 있었다. 손이 둘째 서랍을 먼저 열었고, 비어 있는 홈을 더듬고 나서야 여기가 군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흘째 그랬다. 공구함 손잡이에는 태우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유성펜으로 적혀 있었고, 그 사람은 오산으로 차출됐다고 했다.
이 기지 활주로는 온전했다. 끝에서 끝까지 구멍 하나 없는 회색 띠가 아침 안개 속으로 곧게 뻗어 있었다. 태우는 그것을 처음 봤을 때 한참 서 있었다. 활주로가 원래 이렇게 긴 것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여기서는 기체가 급제동 없이 내렸고 타이어가 사흘에 하나 나갔다.
군산에서 온 조종사 일곱은 여기 기체를 받아 하루 두 번씩 서해로 나갔다. 여섯 정비병은 이 기지 정비반 사이사이에 한 명씩 끼워졌다. 태우가 붙은 조의 반장은 친절했고, 태우가 공구를 찾아 서랍을 두 번 열 때마다 말없이 맞는 서랍을 톡 쳐 줬다. 친절한 것이 오히려 태우를 더 손님으로 만들었다.
가슴 주머니에는 반으로 접은 종이가 들어 있었다. 앞면에 일곱, 뒷면에 둘. 여기서도 태우는 매일 아침 편성표 앞에 섰고, 일곱 이름이 다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격납고로 갔다.
0715에 경보 사이렌이 짧게 두 번 울렸다. 공습이 아니라 비상 출격이었다. 서해 중간선 근처로 저쪽 편대가 또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출격 대기 자리에 서 있던 두 대의 조종사가 헬멧을 머리에 얹으며 뛰어왔고, 태우는 이 기지 정비병 둘과 함께 첫 번째 기체 날개 밑으로 들어갔다. 공대공 두 발은 이미 걸려 있었다. 남은 것은 안전핀과 핀 끝에 달린 붉은 리본이었다. 태우가 핀을 뽑아 리본째 손에 쥐고 기체 밑에서 걸어 나오자, 옆 기체를 맡은 이 기지 병장이 태우 손에 든 붉은 리본을 보고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그 병장은 핀을 주머니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두 대가 활주로 끝에서 후연소기를 켜자 뜨거운 바람이 대기 자리까지 밀려와 태우의 작업복 앞섶을 뒤로 젖혔다. 그 소리가 산에 한 번 부딪혀 돌아왔다.
*
1340에 두 대가 서해에서 돌아왔다. 두 번째 기체는 착륙 접근 때부터 꼬리 아래로 가느다란 흰 줄을 끌고 있었다. 유압유였다. 관제가 소방차를 불렀고, 태우는 소화기를 들고 유도로 끝까지 뛰었다. 기체는 활주로 끝에서 겨우 섰다. 왼쪽 수평 꼬리날개 아래쪽에 손가락 굵기의 구멍 여섯 개가 비스듬히 줄지어 뚫려 있었다. 가까이서 무엇이 터지며 파편을 뿌린 자국이었다.
조종사가 캐노피를 열고 사다리 없이 날개를 밟아 뛰어내렸다. 산소마스크를 벗은 얼굴에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군산 편성표에서 태우가 외운 일곱 이름 가운데 하나였다. 송재익 대위.
“군산에서 온 친구지?”
“예, 무장입니다.”
송재익은 구멍 여섯 개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었다.
“저쪽이 먼저 쐈어. 한 20킬로미터 밖에서 꺾었는데도 이렇게 왔네. 여기 사람들은 우리 기체를 모르니까 자네가 좀 봐 줘. 군산 활주로는 어떻대?”
“구멍이 스물 넘습니다.”
“그럼 당분간은 여기서 뜨겠네.”
송재익이 돌아서려다 태우의 가슴 명찰을 봤다.
“강태우. 군산에서 박 소령님 사다리 잡아 주던 게 자네구나. 조종사 대기실에서 다들 알았어. 그 양반 그거 좋아했어.”
태우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송재익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송재익은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갔다. 태우는 유압관 파손 자리를 찾느라 꼬리 아래로 들어갔다. 뜨거운 유압유가 패널 이음새로 한 방울씩 떨어져 활주로에 검은 점을 만들고 있었다. 파편 하나가 유압관 곡선부를 스치며 얇게 째 놓았고, 손전등을 비추자 짼 자리에서 기름이 맥박처럼 한 번씩 솟았다. 태우는 이 기지 정비병에게 관 번호를 불러 주고 예비품이 있는지 물었다. 있다고 했다. 여기는 아직 있는 기지였다. 누군가 먼저 쐈고 누군가는 20킬로미터를 꺾었다. 정비병이 아는 것은 그 구멍 여섯이 전부였다.
*
그날 저녁 생활관에서는 휴대전화 하나를 여럿이 돌려 봤다. 영상이었다. 수송기가 활주로에 줄지어 서 있고 성조기를 단 병사들이 짐을 싣는 장면 위에, 미군이 한국을 버리고 철수한다는 자막이 떠 있었다. 배경은 군산 같기도 하고 오산 같기도 했다. 영상은 사흘 사이 수십만 번이 넘게 퍼졌다고 했다.
“진짜 가는 거 아닙니까? 남쪽 격납고 두 동 날아가고 나서 더 못 버틴다고.”
“미군 정비반 아직 군산에 있어. 내가 6월에 같이 일했어.”
태우의 말에 누군가 그건 6월이고 지금은 7월이라고 했다. 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영상 속 병사의 얼굴은 흐릿했고 목소리는 없었다. 저런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가를 방법이 태우에게는 없었다. 누군가 영상을 멈추고 수송기 꼬리 번호를 확대해 보려 했지만, 확대할수록 숫자가 네모난 얼룩으로 뭉개졌다. 그 얼룩을 보고 한 사람은 가짜라고 했고 한 사람은 그러니까 진짜라고 했다. 둘은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당직 하사가 들어오자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같은 영상 밑에 군산 시내 소식이 달려 있었다. 서해안 발전소 제어망 장애로 시내가 사흘째 정전이라고 했다. 병원은 자가 발전기로 버티고 있고, 오식도동 아파트 단지는 밤마다 촛불을 켠다고 했다. 사진 한 장이 있었다. 불 꺼진 아파트 창들 사이로 한 집만 작은 불이 켜져 있었다. 태우는 그 사진을 확대해 봤다. 도영의 어머니가 거기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100에 태우는 당직실에서 군 회선을 빌려 군산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가고 오상혁 중사가 받았다.
“중사님, 강태우입니다.”
“어, 거기는 어때?”
“활주로가 깁니다. 군산은 어떻습니까?”
오상혁은 잠깐 말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불도저가 후진할 때 내는 경고음이 멀리서 났다.
“시설대대가 구멍 메우는데 불발 자탄이 서른 개 넘게 박혀 있어. 폭발물 처리반 로봇이 하나고 사람은 모자라. 자탄 신관을 눈으로 알아보는 무장 인력이 없어서 시설대대 반장이 하루에 세 번씩 나를 찾아와.”
“제가 가겠습니다. 전속 신청하겠습니다.”
“하지 마.”
“중사님이 사람이 모자라다고 하셨습니다.”
“모자라다고 했지 오라고 안 했어. 강태우, 너 전역 쉰셋 남았어. 거기 있으면 쉰셋 뒤에 집에 간다. 여기 오면 몰라. 돌아오는 거 아니다. 여긴 끝났다.”
“끝났으면 왜 메웁니까?”
오상혁이 대답하지 않았다. 불도저 경고음이 끊겼다.
“내일 인사과에 신청서 넣겠습니다.”
“강 병장.”
“예.”
“…말 안 듣는 건 누구한테 배웠냐.”
전화가 끊겼다. 태우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동안 당직실 벽에 붙은 비상 연락망을 봤다. 군산 기지 번호에 누가 볼펜으로 두 줄을 그어 놓았고, 그 옆에 새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날 밤 태우는 잠이 오지 않아 생활관 창가에 섰다. 이 기지 활주로의 유도등이 끝에서 끝까지 한 줄로 켜져 있었다. 구멍 하나 없는 불빛의 줄이 그렇게 긴 것을 태우는 한참 봤다. 군산 활주로에는 지금 저 불이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
7월 6일 0800, 태우는 인사과에서 전속 신청서를 썼다. 희망 부대 칸에 제38전투비행전대, 사유 칸에 활주로 복구 지원이라고 적었다. 인사 담당 상사가 서류를 받아 전역 예정일을 확인하더니 안경을 벗었다.
“8월 27일이면 쉰둘 남았는데. 쉰둘 남은 병장이 폭탄 맞은 데로 가겠다고?”
“예.”
“거기서 무슨 일 생기면 전역이 밀릴 수도 있어. 알고 쓰는 거지?”
“압니다.”
“군산에 누가 있나? 애인이라도 있어?”
“반장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제 공구함이 있습니다.”
상사는 한참 태우를 보다가 결재란에 도장을 받으러 서류를 들고 나갔다. 40분 뒤에 돌아와 오늘 1500 군산행 보급 트럭에 자리가 있다고 했다. 서류 맨 아래 비고란에 상사가 볼펜으로 짧게 적어 넣은 것이 보였다. 본인 희망, 설득했으나 불응.
1430에 태우는 짐을 쌌다. 올 때보다 쌀 것이 더 없었다. 이 기지에서 받은 헬멧과 방탄복과 공구 롤은 반장 책상 위에 가지런히 두었다. 그건 이 기지 물건이었다. 반장이 그것을 보고 헬멧은 가져가도 된다고 했지만 태우는 고개를 저었다.
1500에 트럭이 출발했다. 적재함에는 자갈 포대와 활주로 보수재 드럼통이 실려 있었고 태우는 그 사이에 끼어 앉았다. 운전석의 시설대대 병장이 백미러로 태우를 보더니 휴대전화를 뒤로 넘겼다. 그 영상이었다. 미군이 간다던데 병장님은 왜 거꾸로 가시느냐고 물었다. 태우는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고 전화를 돌려줬다. 간다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는데, 말하고 보니 오상혁이 할 법한 말이었다.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는 동안 논과 비닐하우스가 이어졌고, 주유소마다 차가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한 주유소 앞에는 휘발유 없음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도 줄이 줄지 않았다.
군산 시내로 들어서자 해가 지고 있었다. 신호등이 꺼진 교차로에서 경찰 하나가 야광 봉을 흔들고 있었다. 상가 유리문에는 영업 중단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고, 그 옆 약국 하나만 문을 반쯤 열고 손전등을 켜 둔 채 약을 팔고 있었다. 오식도동 아파트 단지 창들은 대부분 검었다. 몇 집에서 촛불인지 손전등인지 모를 작은 불빛이 흔들렸다. 태우는 적재함 난간을 잡고 그 불빛 수를 셌다. 열한 집이었다. 창문을 연 집에서 라디오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전지로 켠 라디오였고, 아나운서가 서해안 정전 복구가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는데 트럭이 지나가자 그 목소리가 뒤로 멀어졌다.
2200, 트럭이 기지 정문에서 섰다. 정문 초소 옆 가로등 아래 오상혁이 서 있었다. 작업복 소매를 걷어 올렸고 한 손에 헬멧 하나를 들고 있었다. 새것이 아니었다. 창고 구석에서 꺼냈는지 먼지를 닦은 자국이 헝겊 모양으로 남아 있었고, 턱끈 버클은 새로 갈아 끼운 것이었다.
“돌아오지 말라니까.”
오상혁이 헬멧을 내밀었다. 태우는 받아서 썼다. 머리에 조금 컸다. 오상혁이 손을 뻗어 턱끈을 한 칸 당겨 줬다.
“거기 헬멧 두고 왔지. 너는 그럴 줄 알았어.”
“도영이는요?”
“자는 척하고 있어. 네가 온다는 소리 듣고 공구함 닦다가, 내가 보니까 얼른 누웠어. 내일 아침에 봐.”
오상혁이 앞장서서 걸었다. 태우는 반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가로등 불빛에 둘의 그림자가 겹쳤다가 떨어졌다.
정문을 지나자 활주로 쪽에 작업등이 켜져 있었다. 발전기 소리가 낮게 깔렸다. 불빛 아래로 활주로 한가운데에 노란 깃발들이 줄지어 꽂혀 있었다. 태우는 걸음을 멈추고 셌다. 서른한 개였다. 깃발 천이 밤바람에 한꺼번에 같은 쪽으로 누웠다가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