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42자) · 명지수 · 강태우 · 7월 2일(금)
서쪽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0155, 진천에 사격 명령이 내려왔다. 목록 머리에 7월 2일이라는 날짜가 찍혀 있었다. 두 발이었다. 지수는 표적을 봤다. 북쪽 해안이 아니었다. 좌표가 서쪽이었고 산둥반도였다.
목록에는 사격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제까지 참고였다. 참고에서 사격으로 한 번에 갔고 대기를 거치지 않았다. 대기는 준비하라는 것이고 사격은 쏘라는 것이어서, 이 사이에 사람이 한 번 보는 자리가 있었다. 이 자리가 없어진 것이었다. 절차상 대기는 건너뛸 수 있었다. 급할 때 그렇게 하라고 만들어 둔 길이었고, 언제가 급한 때인지는 명령을 내리는 편이 정했다.
지수는 화면을 두 번 봤다. 두 번 다 같았다.
0215에 대대장이 사격지휘차로 왔다. 지수가 화면을 돌려 보여 주자 이 사람은 이것을 오래 봤다.
“언제 내려왔나?”
“0155입니다. 어제 목록에는 참고였습니다.”
“확인해라. 상급 부대에 확인 요청 넣어. 정식으로.”
0230에 지수는 양식을 채웠다. 표적 번호와 명령 시각과 확인 사유를 적는 칸이 있었다. 사유란에 이렇게 적었다. 전일 목록 상태 참고, 금일 사격, 중간 단계 없음.
0248에 답이 왔다. 18분 만이었다. 확인 요청은 대개 한 시간이 걸렸다. 담당이 확인하고 상급자가 결재하고 다시 내려와야 했다. 18분이면 결재가 이미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물을 것을 알고 준비해 두었거나, 결재 없이 나갔거나.
내용은 한 줄이었다. 명령 유효, 시행하라. 이번에는 발신자란에 부대와 계급과 이름이 다 있었다. 합참 작전본부 소속이었다. 지수는 이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고, 대대장은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대장은 수첩을 꺼냈다가 이 이름을 적지 않고 도로 넣었다. 볼펜을 쥔 손이 무릎 위에서 한 번 딸깍, 하고 심을 넣었다 뺐다. 차 안의 넷이 모두 이 소리를 들었다.
0315에 대대장이 입을 열었다.
“명 대위, 쏘면 우리는 중국하고 싸우는 거다. 지금은 아니고.”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었다. 서해안 미군기지를 친 것은 중국 항공기였지만 그건 미군을 친 것이었다. 우리가 산둥반도를 치면 그건 우리가 친 것이었다. 한반도의 싸움은 지금까지 연평도와 동해안이었고, 북쪽이 마지못해 편의를 봐준 국지전이었다. 서쪽을 치면 이 선이 없어졌다. 지수는 이 선을 그은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다만 이 부대가 지금까지 이 선 안쪽에서 움직였다는 것은 알았다.
“명 대위, 절차상 문제가 있나?”
지수는 절차를 하나씩 짚었다. 명령이 정식 경로로 왔다. 발신자가 있었다. 확인 요청을 넣었고 답이 왔다. 답에도 발신자가 있었다. 문제가 없었다. 판단이 어려울 때 보라고 있는 것이 절차였다. 절차를 다 지켰는데 손이 안 움직이는 경우는 절차에 없었다.
“없습니다.”
“그러면?”
“쏴야 합니다.”
0348에 지수는 발사대에 명령을 내렸다. 셋 중 둘이 나갔다. 3호차는 보내지 않았다. 흰 테이프에 날짜가 적힌 이 차였다. 이은 자리가 발사 진동에서 빠질 수 있었다. 두 발이니 둘이면 됐다.
0402에 도현이 종이를 들고 왔다. 매일 적던 이 종이였다. 줄마다 날짜와 시각과 상태가 적혀 있었고 마지막 줄은 어제 2100이었다. 이 시각 목록 확인, 산둥반도 두 건 참고, 확인자 임도현. 명령이 온 것은 오늘 0155였다. 다섯 시간이었다.
“이거 몇 장이냐?”
“한 장입니다. 뒤에도 적었습니다. 앞뒤로 스무 줄쯤 됩니다.”
지수는 종이를 도로 줬다.
“오늘 것도 적어. 이 시각 사격 명령 수신, 상태 참고에서 사격, 중간 단계 없음. 그리고 하나 더. 확인 요청 발신, 회신 있음, 회신 발신자 이름 있음.”
도현이 받아 적고 나서 물었다. 이거 나중에 누가 보느냐고. 지수는 한참 뒤에 모른다고 했다. 다만 안 적으면 아무도 못 본다고 했다.
0512에 발사대 둘이 자리를 잡았다. 수평을 맞추고 좌표를 넣었다. 지수가 화면으로 읽고 도현이 종이에서 짚었다. 지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느렸다. 숫자 하나하나 사이가 벌어졌다. 도현이 이것을 알아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이를 짚은 손가락도 평소보다 오래 머물렀다.
0524에 발사관이 섰다. 세우는 70초 동안 지수는 위를 보지 않았다. 0526에 쐈다. 나무 밑이 대낮처럼 밝아졌다가 꺼졌고, 두 번째가 뒤따랐다. 흰 줄 둘이 서쪽 바다 쪽으로 낮게 누웠다.
“철수, 90초.”
0612에 지수는 일지를 폈다. 0155 사격 명령 수신 2발, 0230 확인 요청, 0248 회신, 0526 발사 2발. 이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 표적 서쪽. 지명은 적지 않았다. 지명은 명령서에 있었고 명령서는 남았다. 지수는 창밖을 봤다. 아직 어두웠다. 발사 빛이 남긴 잔상이 눈에 붙어서, 눈을 깜박여도 한참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
0540, 산둥반도 비행단의 시계는 서울보다 한 시간 늦게 가고 있었다. 팡 웨이 대령은 불타는 격납고 앞에 서 있었다. 한국 순항미사일 두 발 가운데 하나가 활주로 옆 연료 저장소를 쳤고, 하나가 3번 격납고 지붕을 뚫었다. 지붕이 안으로 주저앉으며 뜨거운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고, 소방차 물줄기가 불에 닿기도 전에 김이 되어 날아갔다. 들것 둘이 웨이의 옆을 지나갔다. 비행단 정비병이었다. 하나는 얼굴까지 덮여 있었다.
머리 위로 새벽에 군산을 치고 돌아오는 편대가 착륙 순서를 기다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저 비행기들이 떠날 때 이 격납고는 멀쩡했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검은 연기를 활주로 쪽으로 눕혀서, 선회하던 편대 하나가 연기를 피해 착륙 방향을 반대로 바꿨다. 탄 고무와 항공유 냄새가 웨이의 제복에 배어들었다.
부관이 위성 전화를 내밀었다. 전구 공군 부사령관이었다.
“피해는?”
“격납고 하나, 연료 저장소 하나, 정비병 둘입니다. 활주로는 삽니다.”
“한국이 쐈다. 윗선에서 보복은 지금 하지 않기로 했다. 8월에 한꺼번에 한다. 8월 공세에 한국 서해안을 넣는다는 이야기가 벌써 나온다.”
팡 웨이는 불길을 보면서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짠 계획은 한국이 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3주를 맞기만 했고 쏘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새벽 대기도 없이 한 번에 쐈다.
“부사령관님, 한국이 이 결심을 이렇게 빨리 할 리가 없습니다. 이 좌표는 어디서 왔습니까?”
“그건 자네 일이 아니야.”
전화가 끊겼다. 팡 웨이는 들것이 나간 자리의 콘크리트를 내려다봤다. 누군가의 정비 장갑 한 짝이 물에 젖어 거기 떨어져 있었다.
*
0410, 군산에 경보가 울렸다. 소리가 달랐다. 태우가 이 기지에서 한 번도 듣지 못한 소리였다. 전 인원 방공호. 정비반도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정비반은 공습 중에도 기체를 옮기고 소화 장비를 붙이느라 대개 안 들어갔다. 들어가라는 것은 할 일이 없다는 뜻이거나 이 일보다 사람이 급하다는 뜻이었다. 오늘은 둘 다였다.
0418에 방공호 안이 찼다. 서른이 넘었다. 도영이 옆에 있었다. 0424에 첫 번째가 멀리서 왔고 두 번째는 가까웠으며 세 번째에 방공호가 흔들렸다. 0431에 전등이 꺼졌다가 들어오고, 두 번째로 꺼졌을 때는 안 들어왔다. 붉은 비상등이 켜지자 사람들 얼굴이 다 같은 색이 됐다.
0448에 멎었고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0512에 두 번째 파가 왔다. 이번에는 30분 넘게 나눠서 왔다. 나눠서 오면 사람이 밖으로 못 나왔고, 못 나오면 불을 못 끄고 구멍을 못 메웠다. 첫 번째 피해가 그대로 커졌다. 비상등 아래에서 누군가 소리 내어 폭음을 세다가 스물을 넘기자 그만뒀다. 도영은 무릎을 세우고 앉아 헬멧 턱끈을 두 번 당겼다. 0555에 끝났다.
0620에 밖으로 나왔다. 활주로가 없었다. 정확한 말은 아니었다. 활주로 자리에 구멍이 스물 넘게 있었고 이어진 구간이 한 군데도 없었다. 구멍 하나가 가운데 있으면 앞뒤 어느 쪽도 못 썼다. 구멍 하나를 메우는 데 반나절이면 스물은 열흘이었다. 열흘 동안 이 기지에서는 아무것도 못 떴다.
태우는 구멍 하나 옆에 섰다. 지름이 사람 키보다 컸고 안쪽 흙이 아직 따뜻했다. 발밑에 원래 활주로에 없던 자갈이 흩어져 있었다. 아래에서 올라온 것이었다. 북쪽 격납고 하나는 지붕이 안으로 내려앉아 철골이 접혀 있었고, 이 아래 기체 둘의 꼬리 날개 하나만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며칠 전 태우가 무장을 달았던 기체였다.
“강 병장, 인원.”
오상혁 중사가 흙 묻은 얼굴로 왔다. 태우는 정비반을 셌다. 이번에는 뺄 것이 없었다.
“열넷입니다.”
“다시 세.”
태우는 한 사람씩 얼굴을 보며 손가락을 접었다. 흙투성이 얼굴 열넷이 저마다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태우를 보고 있었다.
다시 셌다. 열넷이었다. 오상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0805에 명령이 내려왔다. 기체가 없으니 조종사는 기체가 있는 데로 보냈고, 기체마다 손에 익은 정비병도 같이 보냈다. 남는 것은 활주로와 이것을 메울 사람이었다. 명단에 조종사 일곱과 정비반 여섯이 있었다. 여섯 중에 태우가 있었고 도영은 없었다.
“남는 사람도 있어야지. 여기 활주로 메워야 하고 남은 것 지켜야 해.”
0838에 태우는 격납고 잔해 앞에 서 있는 도영에게 갔다. 명단을 봤다고 도영이 먼저 말했다.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님, 시험 결과 나왔습니다. 어제요. 붙었습니다.”
태우는 웃었다. 웃고 나서 오늘 처음 웃었다는 것을 알았다. 축하한다고, 술은 못 사 준다고 하자 도영이 괜찮다고 했다.
0910에 태우는 가방을 쌌다. 옷 두 벌, 세면도구, 외워지지 않는 부품 번호를 적은 수첩 하나였다. 공구함을 열자 헬멧과 종이가 있었다. 공구함은 여기 물건이었다. 새 데로 가면 새 공구함을 받을 것이고 그건 이 데 물건일 것이었다. 태우는 종이를 폈다. 앞면에 일곱, 뒷면에 둘이었다. 반으로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고, 헬멧은 공구함에 도로 넣었다.
0940에 격납고 앞에서 도영에게 공구함을 내밀었다.
“내 공구함 니가 써라. 나 두 달 남았다. 두 달 뒤면 어차피 두고 간다. 안에 헬멧 있다. 그거 버리지 마.”
“누구 겁니까?”
“모른다. 6월 4일에 주웠다. 미군 거다.”
1010에 트럭이 왔고 여섯이 탔다. 태우가 마지막으로 탔다. 도영이 격납고 앞에 서서 두 손으로 공구함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1030에 트럭이 정문을 나갔다. 정문 옆으로 활주로가 보였다. 아침 해가 구멍 안쪽까지 비스듬히 들어가서, 구멍 스무 개마다 그림자가 한쪽에만 고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