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97자)

깃 하나

광장 비둘기들의 복수 · 문들레

밤 하늘은 비둘기의 하늘이 아니었다⁠. 구슬은 가로등 불빛에서 가로등 불빛으로 건너뛰듯 날았다⁠. 트럭의 붉은 꼬리등만 보고 날았다⁠. 도시가 끝나자 가로등이 드문드문해졌고⁠, 불빛과 불빛 사이의 어둠이 길어졌다⁠. 구슬은 어둠 속에서 날개를 저으며 붉은 점 두 개가 사라지지 않기만 바랐다⁠.

트럭은 국도에서 꺾어 들어가 철문 앞에 멈췄다⁠. 철문 안쪽에 지붕이 낮고 긴 창고가 있었다⁠. 창고 처마 밑에 등 하나가 켜져 있었다⁠. 안전화 둘이 짐칸에서 철망 상자를 내려 처마 밑에 쌓았다⁠. 구슬은 창고 지붕 끝에 내려앉았다⁠. 발이 떨렸다⁠. 이렇게 멀리⁠, 이렇게 늦게 날아 본 적이 없었다⁠.

창고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안에 포대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구슬이 아는 포대였다⁠. 새벽 시장 뒷골목에서 등산화가 바가지를 꽂던 포대⁠. 찢어진 포대 귀퉁이에서 노란 알갱이가 바닥으로 흘러내려 작은 무덤을 이루고 있었다⁠. 창고 안쪽에 문이 하나 더 있었고⁠, 안쪽 문 앞에 검은 비닐 자루가 몇 개 묶여 있었다⁠.

등산화가 창고 안에서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걸어 나왔다⁠.

“⁠네⁠, 오늘 서른두 마리요⁠. 표결 전까지만 조용히 하면 됩니다⁠. 잡은 건 내일 아침에 다 처리하고⁠, 상자는 씻어서 다음 주 시장 쪽에 다시 씁니다⁠.⁠”

구슬은 처리라는 소리를 몰랐다⁠. 등산화의 목소리가 느리고 부드러웠다는 것만 알았다⁠. 등산화가 전화를 끊고 철망 상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상자 안에서 날개 몇 개가 퍼덕였다⁠. 등산화는 처마 밑 등을 끄지 않고 차에 올라 떠났다⁠. 안전화들도 떠났다⁠. 철문이 닫혔다⁠.

*

구슬은 처마 밑으로 내려갔다⁠.

철망 상자는 넷이었다⁠. 상자마다 잿빛 몸들이 서로 몸을 붙이고 웅크려 있었다⁠. 광장에서 아침마다 같이 쌀을 쪼던 얼굴들⁠, 강을 건너 노란 알갱이를 먹으러 가던 젊은 새들⁠. 구슬이 철망 앞에 내려앉자 상자 안에서 낮은 구구 소리가 일었다⁠. 반가워하는 소리도 겁먹은 소리도 아니었다⁠. 그냥 누가 왔다는 소리였다⁠.

외발은 맨 아래 상자 구석에 있었다⁠. 외발은 서 있지 않았다⁠. 배를 상자 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하나 남은 왼발이 그물코에 졸렸던 자리에서 퉁퉁 부어 있었다⁠. 구슬은 철망에 부리를 넣었다⁠. 부리 끝만 들어갔다⁠. 구슬은 철망을 물고 당겼다⁠. 철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구슬은 옆면 철망을 물었다⁠. 상자 모서리를 쪼았다⁠. 문고리를 쪼았다⁠. 쇠 맛이 부리 안에 퍼졌다⁠.

외발이 고개를 들었다⁠. 외발은 몸을 끌어 철망 가까이 왔다⁠. 외발과 구슬은 철망 한 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외발이 부리로 구슬의 부리를 한 번 건드렸다⁠. 아침마다 실 앞에서 구슬의 발을 쪼던 부리였다⁠. 이번에는 아프지 않았다⁠.

외발이 끄르륵 울었다⁠. 낮고 짧게⁠.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제 날개 밑을 쪼았다⁠. 깃털 하나가 뽑혀 나왔다⁠. 외발은 깃털을 부리로 물어 철망 틈으로 밀었다⁠. 깃털이 철망 틈에 반쯤 끼었다⁠. 외발은 엎드린 채 눈을 감았다⁠.

구슬은 밤새 처마 밑에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철문이 열렸다⁠. 안전화 하나가 들어와 상자를 하나씩 들어 창고 안쪽 문으로 옮겼다⁠. 맨 아래 상자를 들 때 구슬은 처마 밑 기둥 위로 날아올랐다⁠. 상자가 기울면서 외발의 몸이 상자 구석으로 미끄러졌다⁠. 외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안쪽 문이 열렸다 닫혔다⁠.

조금 뒤 안전화가 빈 상자를 들고 나왔다⁠. 상자를 호스로 씻었다⁠. 물이 철망 틈의 깃털을 적셨다⁠. 깃털은 씻겨 나가지 않고 철망에 끼어 남았다⁠. 안전화가 상자를 처마 밑에 엎어 두고 창고로 들어갔다⁠.

구슬은 엎어진 상자로 내려가 깃털 끝을 물고 당겼다⁠. 젖은 깃털이 철망에서 빠져나왔다⁠. 회색이었고⁠, 끝이 조금 해져 있었다⁠. 구슬은 깃털을 물고 날아올랐다⁠. 해가 뜨는 쪽으로⁠, 큰 물을 향해⁠.

*

창틀에 닿았을 때는 아침이 한참 지나 있었다⁠. 짝이 둥지에서 몸을 일으켰다⁠. 짝의 가슴 밑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새끼 둘이었다⁠. 둘 다 깨어 있었다⁠. 눈도 못 뜨고⁠, 살갗이 분홍빛으로 드러났고⁠, 몸에 노란 솜털이 듬성듬성 붙어 있었다⁠. 머리에 비해 부리가 우스꽝스럽게 컸다⁠. 비둘기 새끼는 못생겼다⁠. 사람들이 광장에서 새끼 비둘기를 못 보는 까닭은 어미가 새끼를 둥지 밖으로 안 내보내기 때문이고⁠, 다 자라기 전에는 보여 줄 만한 꼴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끼 하나가 큰 부리를 짝의 부리 안에 처박고 고개를 흔들었다⁠. 짝은 목 아래에서 젖빛 먹이를 끌어 올려 새끼 입에 흘려 넣었다⁠. 짝이 밤새 혼자 먹인 것이었다⁠.

구슬은 둥지 가장자리에 깃털을 내려놓았다⁠. 깃털을 부리로 밀어 새끼 둘 밑에 깔았다⁠. 새끼들이 깃털 위에서 꼼지락거렸다⁠. 짝이 깃털을 보았다⁠. 짝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구슬의 목털을 부리로 한 번 골라 주었다⁠. 구슬은 짝을 밀어내고 새끼 둘을 가슴 밑에 품었다⁠. 목 아래에서 처음으로 젖빛 먹이가 차올랐다⁠.

*

오후에 짝에게 새끼를 맡기고 광장에 내려가 보니 할아버지가 벤치에 돌아와 있었다⁠. 뒤축 꺾인 운동화 한 짝의 끈이 없었다⁠. 경찰서에서 풀어 갔다가 돌려주지 않았다고⁠,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구청 직원에게 투덜거렸다⁠.

할아버지는 벤치 위의 쌀 포대를 오래 보았다⁠. 쓰러졌던 포대가 반듯하게 서 있었고⁠, 주둥이가 접혀 신문지로 덮여 있었다⁠.

“⁠누가 이렇게 해 놨댜⁠.⁠”

할아버지는 신문지를 걷고 쌀을 한 줌 쥐었다⁠. 뿌리려다 말고 분수 가장자리를 보았다⁠. 가장 높은 돌이 비어 있었다⁠.

“⁠외발 그놈은⁠?⁠”

할아버지가 쌀을 뿌렸다⁠. 무리가 내려앉았다⁠. 할아버지는 무리를 하나씩 훑어보았다⁠. 늘 하던 대로 구구구구⁠, 넷을 했다⁠. 아무리 훑어도 발 하나로 껑충거리는 새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쌀 쥔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구슬은 쌀을 먹지 않고 분수로 날아갔다⁠. 가장 높은 돌에 내려앉았다⁠. 돌은 오후 볕에 데워져 있었고⁠, 가운데가 외발의 발 하나 크기만큼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구슬은 닳은 자리에 두 발을 올려놓았다⁠. 두 발이 다 들어가지 않았다⁠. 구슬은 한 발을 들고 섰다⁠. 광장이 내려다보였다⁠. 쌀을 쪼는 무리⁠, 하얀 동그라미⁠, 의원회관의 창들⁠.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높은 돌을 보았다⁠.

“⁠너는 발이 둘이잖어⁠. 내려와⁠.⁠”

구슬은 내려가지 않았다⁠.

*

전광판에는 광장이 떠 있었다⁠. 펼쳐지는 그물⁠, 무릎 꿇고 가위질하는 노인⁠, 팔이 뒤로 꺾인 채 끌려가는 노인⁠. 보좌관이 휴대전화를 넘기며 말했다⁠.

“⁠여론이 반반이에요⁠. 노인 연행 영상이 엉덩방아보다 더 봤어요⁠. 외국 방송은 ‘⁠비둘기 잡는 나라⁠’라고 했고요⁠. 근데 시장 상인분들 인터뷰도 같이 퍼져서⁠, 차양 사진 보고는 다들 법 필요하다고 해요⁠.⁠”

“⁠어르신은⁠?⁠”

“⁠경찰서에서 하룻밤 계시다 나오셨대요⁠. 벌금 나온대요⁠.⁠”

“⁠벌금은 내가⁠…⁠.⁠”

“⁠의원님이 내시면 그게 기사예요⁠. 안 돼요⁠.⁠”

정학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가로 와서 둥지를 내려다보았다⁠. 새끼 둘이 구슬의 가슴 밑에서 빠져나와 큰 부리를 벌렸다⁠. 정학이 한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다가왔다⁠. 정학의 눈이 새끼들 밑에 깔린 회색 깃털에서 멈췄다⁠. 정학은 깃털을 오래 보았다⁠. 광장에서 외발로 줄자를 물고 버티던 새를 정학도 보았다⁠.

*

이튿날 밤⁠, 보좌관이 퇴근하고 한참 지나 사무실 문을 누가 두드렸다⁠. 고무 장화였다⁠. 상인회장은 문을 닫고 들어와 정학의 책상 앞 의자에 앉더니 말도 없이 장화를 벗었다⁠. 장화를 거꾸로 들고 흔들었다⁠. 장화 목에서 손가락만 한 것이 툭 떨어졌다⁠. 정학이 코를 찡그리며 의자를 뒤로 뺐다⁠.

“⁠회장님⁠, 이게 뭡니까⁠?⁠”

“⁠새벽 영상이요⁠. 시장 뒷골목⁠. 사장이 지우라고 해서 지웠는데⁠, 지우기 전에 이거 하나 떴어요⁠.⁠”

상인회장이 손가락만 한 것을 정학의 컴퓨터에 꽂았다⁠. 화면에 새벽 골목이 떴다⁠. 흰 트럭⁠, 모자 쓴 사내⁠, 바가지⁠, 쏟아지는 비둘기⁠.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구슬은 창틀에서 목을 빼고 화면을 보았다⁠. 화면 속 골목 차양 끝에 잿빛 새 하나가 앉아 있었다⁠. 구슬이었다⁠.

정학은 화면을 끝까지 보았다⁠. 의자 등받이를 쥔 손가락이 하얬다⁠.

“⁠이걸 왜 이제 가져와요⁠!⁠”

“⁠차양 받으려고요⁠.⁠”

상인회장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확성기 없이도 쩌렁쩌렁하던 목소리가 장화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이백 집 차양이요⁠. 의원님은 일곱 번 약속했고⁠, 그 양반은 천을 들고 왔어요⁠. 반들반들한 천을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공사 들어간대요⁠. 이거 터지면 공사 끝나요⁠. 법도 끝나고요⁠.⁠”

“⁠그럼 왜 가져오셨어요⁠.⁠”

상인회장이 맨발을 내려다보았다⁠. 발가락이 바닥을 꾹 눌렀다⁠.

“⁠형님이 끌려가면서 나를 봤어요⁠. 니 쌀이잖어⁠, 하고⁠. 맞아요⁠. 내 쌀이에요⁠. 형님 가게 망할 때 보증 선 게 나예요⁠. 내가 빚 못 갚아서 형님 가게가 넘어갔어요⁠. 그래서 쌀을 갖다 드렸어요⁠. 묵은 쌀이라도⁠.⁠”

정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인회장이 장화를 다시 신었다⁠.

“⁠의원님이 정하세요⁠. 차양을 살릴지⁠, 이걸 살릴지⁠. 나는 못 정하겠어요⁠. 한 번 정했다가 형님이 끌려가는 걸 봤어요⁠.⁠”

장화가 나갔다⁠. 정학은 컴퓨터에서 손가락만 한 것을 뽑아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작은 열쇠 옆이었다⁠.

*

아침 열 시⁠, 정학이 사장을 불렀다⁠. 구슬은 새끼 둘을 품은 채 등산화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정학은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서랍에서 흰 봉투를 꺼내 탁자에 놓고⁠, 휴대전화로 새벽 골목 영상을 틀어 봉투 옆에 놓았다⁠. 화면 속에서 바가지가 휘둘렸다⁠.

“⁠이거 가져가세요⁠. 그리고 표결 전에 이 영상 공개합니다⁠.⁠”

사장은 화면을 오래 보았다⁠.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장은 의자를 끌어 앉았다⁠.

“⁠회장님이 약속을 안 지키셨네요⁠. 그럼 차양 공사도 없던 일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 공사요⁠.⁠”

“⁠차양은 법으로 지원합니다⁠.⁠”

“⁠법이 된다면요⁠. 의원님⁠, 그 봉투요⁠. 석 주를 서랍에 두셨습니다⁠. 잠가서요⁠. 봉투 띠지에 은행 도장이 있고⁠, 돈 찾은 사람이 제 직원입니다⁠. 봉투를 드린 게 6월 15일⁠, 소위원회가 하루 당겨진 게 그다음 날입니다⁠. 사람들은 순서대로 읽습니다⁠. 영상이 나오면 봉투도 나옵니다⁠.⁠”

“⁠돌려드리려고 했어요⁠.⁠”

“⁠석 주 동안요⁠?⁠”

정학의 구두가 카펫 위에서 멈췄다⁠. 구슬은 구두 앞코를 보았다⁠. 물러서지도 나아가지도 않는 발이었다⁠.

사장이 봉투를 집어 정학의 책상 위⁠, 서랍 앞에 다시 올려놓았다⁠.

“⁠의원님⁠, 저는 의원님 법을 도운 겁니다⁠. 의원님이 시장 분들 위해 낸 법이잖습니까⁠. 비둘기는 줄고 차양은 새로 하고⁠, 저희 직원 열둘은 일감이 생기고요⁠. 다들 좋은 일입니다⁠. 표결만 해 주세요⁠. 원안대로요⁠.⁠”

등산화가 나갔다⁠. 밑창 홈이 깨끗했다⁠.

정학은 봉투를 서랍에 넣지 않았다⁠. 책상 위에 둔 채 창가로 걸어왔다⁠. 둥지 앞에 쪼그려 앉았다⁠. 새끼 하나가 구슬의 가슴 밑에서 큰 부리를 내밀고 삐 하고 울었다⁠. 정학이 새끼를 보다가 회색 깃털을 보았다⁠.

문이 열리고 보좌관이 들어왔다⁠. 정학은 일어나지 않고 물었다⁠.

“⁠보좌관⁠. 본회의에서 수정안 내려면 서명 몇 명 받아야 돼⁠?⁠”

“⁠서른 명요⁠. 의원님⁠, 설마⁠…⁠.⁠”

“⁠사장님 후원회에 넣은 사람들 명단⁠, 너 알지⁠?⁠”

보좌관의 운동화가 문턱에서 멈췄다⁠. 보좌관은 재채기를 하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서 있었다⁠. 정학은 창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구슬은 새끼 둘을 가슴 밑으로 끌어당기고⁠, 유리 너머 큰 동물의 숨이 길고 무거워지는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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