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57자)

그물

광장 비둘기들의 복수 · 문들레

알 속에서 소리가 났다⁠.

새벽에 구슬은 가슴 밑에서 아주 작은 두드림을 느꼈다⁠. 톡⁠. 한참 있다가 또 톡⁠. 첫 알이었다⁠. 구슬은 몸을 조금 들고 귀를 알에 가까이 댔다⁠. 껍데기 안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삐⁠, 삐⁠. 짝이 처마에서 목을 길게 뺐다⁠. 구슬은 몸을 다시 낮추고 알 둘을 꼭 덮었다⁠. 날이 밝아도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일곱 시⁠, 정학이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였다⁠. 정학은 우산을 세워 두지도 않고 곧장 창가로 와서 쪼그려 앉았다⁠. 둥지 속에서 삐⁠, 삐 소리가 났다⁠. 정학이 창틈에 귀를 댔다⁠.

“⁠벌써 나와⁠?⁠”

구슬은 끄르륵 울며 날개를 부풀렸다⁠. 정학은 귀를 떼지 않았다⁠. 삐⁠, 하는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정학의 입꼬리가 올라가다 멈췄다⁠. 정학은 일어나 책상으로 가서 맨 아래 서랍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열지는 않았다⁠. 손잡이를 한참 쥐고 있다가 넥타이를 꺼내 맸다⁠. 거울 대신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맸다⁠. 매듭이 두 번 비뚤어졌다⁠.

“⁠오늘은 나오지 마라⁠. 오늘은 밖이 시끄럽다⁠.⁠”

아홉 시 무렵⁠, 광장에서 트럭 소리가 몰려왔다⁠. 한 대⁠, 두 대⁠, 세 대⁠. 6층 창틀에서도 들렸다⁠. 짝이 내려와 구슬의 옆구리를 부리로 밀었다⁠. 짝의 시간이 조금 일렀다⁠. 짝은 구슬을 밀어내고 알 위에 엎드렸다⁠. 이번에는 투덜거리지 않았다⁠. 짝은 엉덩이도 둥지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게 몸을 꼭 접었다⁠. 구슬은 창틀을 박찼다⁠.

*

광장은 잿빛 대신 흰색과 초록색으로 가득했다⁠. 흰 트럭 세 대가 분수 둘레에 서 있었고⁠, 초록 조끼의 구청 직원들이 끈을 둘러 사람들을 밀어냈다⁠. 끈 밖에 카메라 줄이 길었다⁠. 지난주 하얀 칠로 그린 동그라미마다 통 모양 장치가 놓여 있었고⁠, 장치 옆에 접힌 그물이 쌓여 있었다⁠. 동그라미 한가운데에는 노란 알갱이가 소복이 부어져 있었다⁠.

구슬은 가로등 꼭대기에 앉아 내려다보았다⁠. 신발이 너무 많았다⁠. 정학의 갈색 구두⁠, 보좌관의 운동화⁠, 사장의 등산화⁠, 안전화 여럿⁠, 구청 직원의 검은 구두⁠, 카메라 줄의 온갖 신발⁠. 맨 뒤쪽 카메라 줄 끝에 고무 장화가 있었다⁠. 상인 대표로 불려 온 상인회장이었다⁠. 상인회장은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벤치 앞 하얀 동그라미 안에 앉아 있었다⁠. 신문지를 깔고 쌀 포대를 무릎에 안고⁠. 동그라미 밖에 구청 직원 둘이 서 있었다⁠.

“⁠어르신⁠, 오늘만 자리 비켜 주세요⁠. 위험해요⁠.⁠”

“⁠여기 앉은 지 육 년이여⁠.⁠”

정학이 끈을 넘어 벤치로 걸어왔다⁠. 오늘은 확성기도 없고⁠, 우산은 접혀 있었다⁠. 정학은 동그라미 밖에서 멈췄다⁠. 하얀 칠을 밟지 않으려고 구두 앞코를 들었다⁠.

“⁠어르신⁠. 오늘 하루만입니다⁠.⁠”

할아버지가 정학을 올려다보았다⁠.

“⁠의원 양반⁠. 저놈들 잡아서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어⁠?⁠”

정학이 대답 대신 돌아서서 사장을 보았다⁠. 사장은 흰 트럭 옆에서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사장님⁠. 잡은 비둘기 어디로 갑니까⁠. 오늘은 말씀해 주세요⁠. 카메라 앞에서요⁠.⁠”

카메라 줄이 웅성거리며 사장에게 돌았다⁠. 사장은 웃는 얼굴로 걸어왔다⁠. 등산화 밑창은 깨끗했다⁠.

“⁠저희 시설에서 법에 맞게 관리합니다⁠, 의원님⁠.⁠”

“⁠관리가 뭡니까⁠?⁠”

“⁠법에 맞게요⁠.⁠”

끈 밖에서 피켓을 든 젊은 남자가 소리쳤다⁠. 지난번 비둘기 탈 안에 들어 있던 남자였다⁠.

“⁠안락사잖아요⁠! 다른 나라 도시들은 모이로 숫자를 줄인다고요⁠! 왜 잡아 죽이는 법을 만들어요⁠!⁠”

보좌관이 정학 곁으로 와서 낮게 말했다⁠. 구슬은 가로등에서 보좌관의 입술만 보았다⁠.

“⁠의원님⁠, 카메라요⁠. 지금 망설이시면 안 돼요⁠.⁠”

정학이 할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할아버지가 쌀 포대를 더 꼭 안았다⁠. 정학의 구두가 하얀 칠 앞에서 한 번 앞으로 갔다가 뒤로 물러났다⁠.

“⁠어르신⁠. 법 집행을 방해하시면 안 됩니다⁠.⁠”

할아버지가 픽 웃었다⁠.

“⁠법은 아직 없잖어⁠.⁠”

정학은 대답하지 않고 끈 밖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카메라 줄 끝의 고무 장화 앞에서 멈췄다⁠.

“⁠회장님⁠. 시장 비둘기 두 배 된 거요⁠. 원인 아세요⁠?⁠”

상인회장의 장화 뒤꿈치가 돌바닥을 긁었다⁠. 구슬은 가로등에서 긁는 소리를 들었다⁠. 지난주 상인회 사무실에서 무릎을 떨 때 나던 소리였다⁠.

“⁠광장에서 밀려왔겠죠⁠. 사장님이 그러던데요⁠.⁠”

“⁠회장님 생각은요⁠?⁠”

“⁠내 생각이 뭐가 중요해요⁠. 차양이 썩는데⁠.⁠”

상인회장은 정학을 보지 않고 흰 트럭을 보았다⁠. 정학이 상인회장의 얼굴을 한참 보았다⁠. 상인회장이 허리를 굽혀 장화를 고쳐 신는 시늉을 했다⁠. 손이 장화 목을 눌렀다⁠. 정학은 장화를 내려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끈 앞으로 갔다⁠.

사장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시작합니다⁠.⁠”

*

동그라미 한가운데의 노란 알갱이에 처음 내려앉은 것은 강을 건너던 새들이었다⁠. 시장 차양에서 맛을 본 새들이 먼저 알아보았다⁠. 한 마리가 내려앉자 다른 새들이 내려앉았다⁠. 비둘기는 앞선 새가 앉는 곳이 밥상이라고 믿는다⁠. 느티나무에서⁠, 의원회관 처마에서⁠, 길 건너 건물 난간에서 잿빛 몸들이 쏟아졌다⁠.

구슬의 몸도 가로등에서 떨어졌다⁠. 날개가 먼저 움직였다⁠. 노란 알갱이가 햇볕에 반짝였다⁠. 고소하고⁠, 씹을 것도 없이 목으로 굴러 내려가던 것⁠. 구슬은 동그라미 가장자리에 내려앉아 한 걸음⁠, 두 걸음 걸어 들어갔다⁠. 고개가 까딱였다⁠. 부리가 알갱이에 닿기 직전이었다⁠.

옆에서 무언가가 구슬을 들이받았다⁠.

외발이었다⁠. 외발이 날개를 활짝 펴고 구슬의 옆구리를 쳤다⁠. 구슬은 동그라미 밖으로 나동그라졌다⁠. 외발이 날개를 세게 맞부딪쳤다⁠. 딱⁠. 딱⁠. 두 번⁠. 위험하니 모두 뜨라는 소리였다⁠. 무리 절반이 떠올랐다⁠.

퍽⁠, 하는 소리가 났다⁠. 통 모양 장치에서 그물이 튀어나와 공중에서 펼쳐졌다⁠. 그물이 하늘을 덮었다가 내려앉았다⁠. 그물 밑에서 날개들이 한꺼번에 퍼덕였다⁠. 퍼덕일수록 그물코에 날개가 끼었다⁠. 구슬은 동그라미 밖 돌바닥에 엎어진 채 그물을 보았다⁠.

그물 가장자리에 외발이 있었다⁠. 외발은 날지 못했다⁠. 하나 남은 왼발이 그물코에 감겨 있었다⁠. 외발이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그물코가 발목을 더 조였다⁠. 실이 첫 발을 가져갔고⁠, 그물이 남은 발을 붙잡았다⁠.

구슬은 그물로 달려갔다⁠. 부리로 그물코를 물고 당겼다⁠. 질기고 미끄러웠다⁠. 안전화 하나가 구슬을 발로 밀었다⁠. 구슬은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다시 밀렸다⁠.

“⁠얘들아⁠!⁠”

할아버지가 동그라미에서 일어났다⁠. 보따리를 뒤져 녹슨 가위를 꺼내 들고 그물로 달려왔다⁠. 뒤축 꺾인 운동화가 하얀 칠을 밟고 미끄러졌다⁠. 할아버지는 무릎을 꿇은 채 그물코를 자르기 시작했다⁠. 한 코⁠, 두 코⁠. 그물 밑에서 비둘기 하나가 빠져나와 날아올랐다⁠.

“⁠어르신⁠! 그만하세요⁠!⁠”

안전화 둘이 할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할아버지가 팔을 뿌리치고 가위를 쥔 채 일어났다⁠. 사장이 다가와 할아버지 앞을 막았다⁠. 할아버지는 사장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었다⁠. 사장이 뒤로 비틀거리다 등산화로 버텼다⁠. 넘어지지 않았다⁠. 사장은 웃음을 거두고 끈 밖을 향해 손을 들었다⁠.

“⁠경찰관님⁠, 여기요⁠.⁠”

푸른 옷을 입은 사람 둘이 와서 할아버지의 팔을 뒤로 잡았다⁠. 가위가 돌바닥에 떨어졌다⁠. 할아버지는 끌려가면서 카메라 줄 끝을 돌아보았다⁠. 고무 장화가 서 있는 곳이었다⁠.

“⁠니도 보고만 있냐⁠! 니 쌀이잖어⁠!⁠”

상인회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구슬은 상인회장의 손을 보았다⁠. 한 손이 허리를 굽혀 장화 목을 눌렀다⁠. 누르고⁠, 떼고⁠, 다시 눌렀다⁠. 장화는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정학은 끈 앞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정학 앞을 지나갔다⁠. 할아버지가 정학에게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경찰이 팔을 당겼다⁠. 정학의 구두가 한 걸음 따라 나갔다가 멈췄다⁠. 구두 밑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의 포대에서 쏟아진 쌀이었다⁠. 정학은 쌀을 밟고 서 있었다⁠. 발을 들면 할아버지를 따라가야 할 것처럼⁠, 정학은 한참 발을 들지 않았다⁠. 구두 밑에서 쌀알이 몇 개 더 부서졌다⁠.

“⁠의원님⁠! 노인이 연행됐는데 한 말씀 해 주시죠⁠!⁠”

카메라가 몰려들었다⁠. 정학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작았다⁠.

“⁠…법이 생기면⁠,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법이 생겨서 이런 일이 생긴 거 아닙니까⁠?⁠”

정학은 대답하지 않았다⁠. 보좌관이 정학의 팔을 잡고 끈 밖으로 데려갔다⁠.

*

안전화들이 그물을 걷었다⁠. 그물째 들어 철망 상자에 넣었다⁠. 철망 상자가 하나씩 맨 끝의 흰 트럭 짐칸에 실렸다⁠. 구슬은 가로등에서 상자를 하나씩 보았다⁠. 세 번째 상자의 철망에 잿빛 몸 하나가 바짝 붙어 있었다⁠. 오른발이 없고⁠, 왼발은 아직 그물코에 감긴 채였다⁠. 외발이 철망 너머로 고개를 들었다⁠. 끄르륵⁠, 하고 울었다⁠. 낮고 짧았다⁠. 돌아오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가라는 소리였다⁠.

오후가 되자 트럭 두 대가 먼저 떠나고 카메라 줄도 흩어졌다⁠. 광장에는 하얀 동그라미와 짓밟힌 쌀과 찢어진 그물 조각이 남았다⁠. 남은 무리가 하나둘 느티나무에서 내려와 동그라미 가장자리의 쌀을 쪼았다⁠. 동그라미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갈색 구두가 혼자 돌아왔다⁠. 보좌관도 우산도 없었다⁠. 정학은 벤치 앞에 서서 돌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할아버지의 녹슨 가위가 떨어진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정학은 쪼그려 앉아 가위를 집었다⁠. 날에 그물 실 한 가닥이 감겨 있었다⁠. 정학은 실을 손톱으로 떼어 내고 가위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비둘기 하나가 쌀을 쪼며 정학의 구두 앞까지 왔다⁠. 정학은 물러나지 않았다⁠. 비둘기도 물러나지 않았다⁠. 정학은 비둘기가 구두 코 앞의 쌀알을 다 쪼아 먹을 때까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반쯤 비어 쓰러진 쌀 포대를 일으켜 벤치 위에 올려놓고⁠, 주둥이를 접어 신문지로 덮었다⁠.

정학이 고개를 들어 가로등을 보았다⁠. 구슬과 눈이 마주쳤다⁠. 정학이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구슬은 날아가지 않았다⁠. 정학이 먼저 일어나 광장을 나갔다⁠. 걸음이 느렸다⁠. 우산이 없는데도 위를 보지 않았다⁠.

*

구슬은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창틀로 돌아왔다⁠. 짝이 알 위에서 고개를 들었다⁠. 짝의 가슴 밑에서 삐⁠, 삐 소리가 났다⁠. 첫 알 껍데기에 가느다란 금이 가 있었다⁠. 금 사이로 무언가 젖은 것이 꿈틀거렸다⁠.

구슬은 둥지 가장자리에 앉아 금 간 알을 내려다보았다⁠. 짝이 몸을 조금 비켜 구슬이 들어올 자리를 냈다⁠. 구슬의 시간이었다⁠. 해가 지면 구슬이 품는다⁠.

창틀 아래 길에서 엔진 소리가 났다⁠. 흰 트럭 한 대가 광장을 빠져나와 의원회관 앞 큰길로 나서고 있었다⁠. 짐칸에 철망 상자가 쌓여 있었다⁠. 노을빛이 철망에 부딪혀 붉게 번쩍였다⁠.

구슬은 알을 보았다⁠. 트럭을 보았다⁠. 다시 알을 보았다⁠. 금 사이로 젖은 부리 끝이 조금 내밀어졌다⁠.

짝이 구슬을 보았다⁠. 구슬이 고개를 한 번 까딱였다⁠. 짝은 까딱이지 않았다⁠. 대신 몸을 넓게 펴서 알 둘을 다시 덮었다⁠. 해가 지는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둘기는 해가 지면 날지 않는다⁠. 구슬은 창틀을 박찼다⁠. 어두워지는 하늘로⁠, 붉은 철망을 실은 트럭의 꽁무니를 향해 날개를 저었다⁠. 등 뒤에서 금 간 알이 삐⁠, 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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