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63자)

한 달만 참아요

광장 비둘기들의 복수 · 문들레

일요일 정오⁠, 광장 돌바닥이 발바닥에 뜨거웠다⁠. 구슬은 알을 짝에게 넘기고 내려와 벤치 그늘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의 쌀은 이제 아침에 다 먹히지 않고 점심까지 남았다⁠. 무리 절반이 새벽마다 강을 건넜다⁠. 그저께 새벽의 소동 이후로 흰 트럭은 오지 않았지만⁠, 한번 맛을 본 새들은 빈 차양 홈통이라도 쪼러 갔다⁠.

바퀴 구르는 소리가 났다⁠. 고무 장화가 손수레를 끌고 오고 있었다⁠. 손수레에 쌀 포대 두 개가 실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장화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형님⁠, 쌀이요⁠.⁠”

“⁠니가 확성기 옆에 서서 비둘기 잡자고 해 놓고⁠, 쌀은 왜 끌고 와⁠.⁠”

“⁠형님 밥이지⁠, 그게 비둘기 밥이요⁠? 형님 드시라고 가져온 거요⁠.⁠”

“⁠나는 묵은 쌀 안 먹어⁠. 묵은 쌀은 애들 거여⁠.⁠”

상인회장이 손수레를 벤치 옆에 세우고 포대 하나를 내려놓았다⁠. 포대에서 구슬이 아는 냄새가 났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구슬도 아는 냄새였다⁠. 아침마다 돌바닥에 쏟아지던 쌀의 먼지 냄새⁠. 구슬은 포대 귀퉁이를 쪼아 보았다⁠. 같은 쌀이었다⁠. 할아버지가 육 년 동안 뿌린 쌀은 장화가 끌고 온 쌀이었다⁠.

“⁠형님 쌀가게 하던 자리 지금 휴대전화 가게 된 거 아세요⁠? 그 집 주인이 묵은 쌀 버리려는 거⁠, 내가 달라고 했어요⁠.⁠”

“⁠안다⁠. 니가 몇 년째 달라고 하는 것도 안다⁠.⁠”

상인회장이 벤치 끝에 엉덩이를 걸쳤다⁠. 장화 코의 하얀 얼룩이 햇볕에 바삭하게 말라 있었다⁠. 상인회장은 손을 무릎에 올렸다 내렸다 했다⁠. 무언가 말하기 전의 손이었다⁠.

“⁠형님⁠. 한 달만 참아요⁠. 이번 일 끝나면 내가 시장에 자리 하나 알아볼게⁠.⁠”

“⁠무슨 일⁠?⁠”

상인회장의 입이 한 번 열렸다 닫혔다⁠. 구슬은 장화 뒤꿈치가 바닥을 긁는 것을 보았다⁠.

“⁠다음 주 화요일에 여기 그물 친대요⁠. 구청이 시범으로요⁠. 형님 그날은 여기 나오지 마요⁠. 사진 찍히면 형님만 곤란해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장화가 아니라 상인회장의 얼굴을 보았다⁠.

“⁠니가 준 쌀로 애들 불러 놓고⁠, 니가 그물을 친다고⁠?⁠”

“⁠내가 치는 거 아니요⁠!⁠”

“⁠니 옆에 서 있던 놈들이 치지⁠.⁠”

“⁠형님은 차양 안 닦아 봐서 몰라요⁠! 우리 옆집 양반은 다리가 부러졌어요⁠. 손님들이 하늘부터 쳐다본다니까요⁠!⁠”

상인회장의 목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분수 가장자리의 외발이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쌀 포대 주둥이를 풀었다⁠. 한 줌 쥐어 돌바닥에 뿌렸다⁠. 남아 있던 무리가 그늘에서 쏟아져 나왔다⁠. 구슬도 쌀을 쪼았다⁠. 할아버지가 한 줌을 더 쥐었다가 상인회장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너도 뿌려 봐⁠. 니 쌀이잖어⁠.⁠”

상인회장은 할아버지의 손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쌀을 받지 않았다⁠. 일어나서 빈 손수레를 끌고 광장을 나갔다⁠. 바퀴 소리가 멀어지는 동안 할아버지는 쌀을 쥔 손을 펴지 않았다⁠.

*

월요일 오전⁠, 등산화가 다시 정학의 사무실에 왔다⁠. 이번에는 사진 대신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구청장님하고는 얘기 끝났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광장에서 시범 포획을 합니다⁠. 표결 전에 결과를 보여 드려야 의원님들이 손을 듭니다⁠. 숫자가 있어야지요⁠.⁠”

“⁠시장 비둘기가 두 배로 늘었다고 회장님이 그러던데요⁠. 시장이 먼저 아닙니까⁠?⁠”

“⁠광장에서 밀려간 겁니다⁠. 그러니까 광장에서 먼저 잡아야지요⁠. 뿌리를 뽑아야 줄기가 마릅니다⁠.⁠”

사장의 목소리는 느리고 부드러웠다⁠. 구슬은 알 위에서 등산화를 노려보았다⁠. 밑창 홈의 노란 알갱이는 오늘 보이지 않았다⁠. 홈이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사장이 창가로 와서 둥지를 내려다보았다⁠. 구슬은 목털을 부풀리고 끄르륵 울었다⁠. 사장이 웃었다⁠.

“⁠알 깨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새끼까지 크면 일이 커집니다⁠. 저희가 깔끔하게 치워 드리겠습니다⁠.⁠”

“⁠둥지는 놔둡니다⁠.⁠”

“⁠의원님⁠, 사진 한 장이면 끝나는 일인데요⁠.⁠”

“⁠놔둔다고요⁠.⁠”

정학이 일어났다⁠. 셔츠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흰 봉투를 꺼내 탁자 위 사장 앞에 내려놓았다⁠. 귀퉁이에 누런 물 자국이 있는 봉투였다⁠.

“⁠이거 가져가세요⁠.⁠”

사장이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손을 대지 않았다⁠. 웃음이 조금 더 깊어졌다⁠.

“⁠제가 드린 적이 없는 걸 왜 저한테 주십니까⁠?⁠”

“⁠화분 밑에 있었어요⁠.⁠”

“⁠화분 밑에서 나온 거면 화분 주인 거지요⁠. 의원님 방 화분 아닙니까⁠?⁠”

사장이 일어나 등산 조끼의 지퍼를 올렸다⁠. 봉투는 탁자 위에 그대로 있었다⁠.

“⁠그럼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카메라 많이 올 겁니다⁠. 의원님 앞에 서 주셔야 그림이 됩니다⁠.⁠”

등산화가 나갔다⁠. 정학은 봉투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봉투를 들어 서랍에 도로 넣었다⁠. 열쇠를 돌리는 소리가 오늘은 두 번 났다⁠. 한 번 잠그고⁠, 잠긴 것을 확인하려고 한 번 더 돌렸다⁠.

*

월요일 밤 정학은 탁상 등을 켜지 않았다⁠. 창가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구슬과 정학 사이에는 유리 한 장과 손바닥 하나 너비의 틈이 있었다⁠. 길 건너 전광판 불빛이 정학의 얼굴을 푸르게 비췄다⁠.

정학이 창틈에 대고 말했다⁠. 확성기 앞의 목소리도⁠, 어머니 앞의 목소리도 아닌 목소리였다⁠.

“⁠너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못 하겠다⁠.⁠”

구슬은 고개를 갸웃했다⁠. 낮고 느린 소리였다⁠. 해 질 녘 느티나무에서 늙은 새들이 잠들기 전에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나 어릴 때 엄마 가게에서 국수 나르다가⁠, 손님 그릇에 그게 떨어졌어⁠. 차양 틈으로⁠. 손님이 그릇을 엎었어⁠. 엄마가 무릎 꿇고 닦았어⁠. 보건소에서 나와서 벌점 받고⁠, 그 주에 가게 문 닫았어⁠. 나는 그때부터 너희가 무서워⁠. 위에서 뭐가 떨어질까 봐⁠. 우산 들고 다니는 거 웃기지⁠? 나도 웃겨⁠.⁠”

정학이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들썩였다⁠. 구슬은 알 위에서 몸을 조금 일으켰다가 다시 엎드렸다⁠. 정학의 손이 창틈으로 들어오면 쪼려고 목을 세웠지만⁠, 손은 들어오지 않았다⁠. 손은 정학의 무릎 위에서 셔츠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근데 그 사장이 시장 차양 청소해 줄 때 사람들이 박수 치더라⁠. 나는 일곱 번 약속했는데⁠. 그 양반은 걸레 한 번 들었는데⁠.⁠”

정학이 일어나 의자를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문을 열고 나가다가 돌아서서 창틀을 보았다⁠.

“⁠알 잘 품어라⁠. 다음 주에 너희 식구 잡으러 간다⁠.⁠”

*

화요일 아침 광장에 안전화들이 왔다⁠. 쇠코를 댄 안전화 넷이 분수 둘레를 돌며 바닥에 노란 줄자를 길게 늘였다⁠. 한 사람이 줄자 끝을 잡고 서 있으면 다른 사람이 줄자를 풀며 걸었다⁠. 줄자가 지나간 자리마다 하얀 분무 칠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물을 펼 자리라고 안전화 하나가 말했다⁠.

구슬의 눈에 줄자는 광장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노란 지렁이였다⁠. 젊은 새 하나가 줄자 끝으로 달려가 쪼려 했다⁠. 외발이 분수에서 날개를 세게 맞부딪쳤다⁠. 딱⁠. 젊은 새가 펄쩍 물러났다⁠. 외발은 높은 돌에서 뛰어내려 외발로 껑충껑충 줄자 앞까지 가더니 줄자를 부리로 물고 흔들었다⁠. 줄자를 잡고 있던 안전화가 휘청했다⁠.

“⁠야⁠, 이놈 봐라⁠! 놔⁠, 놔⁠!⁠”

외발은 놓지 않았다⁠. 발 하나로 버티며 목을 비틀었다⁠. 안전화가 줄자를 홱 당기자 외발이 질질 끌려가다 날개를 펴고 겨우 떨어졌다⁠. 외발은 높은 돌로 돌아가 한참 숨을 몰아쉬었다⁠. 끈 같은 것은 무엇이든 무리에게서 떼어 놓아야 하는 새였다⁠.

안전화들이 벤치 앞에 하얀 동그라미를 그리려 하자 할아버지가 일어나 동그라미 자리에 신문지를 깔고 도로 앉았다⁠.

“⁠어르신⁠, 거기 좀 비켜 주세요⁠. 금방 그려요⁠.⁠”

“⁠나 여기서 육 년 앉았어⁠. 그림은 내 엉덩이 옆에 그려⁠.⁠”

안전화들은 서로 얼굴을 보다가 할아버지의 엉덩이 둘레를 따라 동그라미를 그렸다⁠. 할아버지는 하얀 동그라미 안에 앉아 쌀을 뿌렸다⁠. 무리가 동그라미 안으로 모여들었다⁠. 그물을 펼 자리 한가운데에 밥상이 차려졌다⁠.

*

화요일 오후⁠, 구슬은 짝에게 알을 맡기고 다리를 건넜다⁠.

상인회 사무실 창은 차양 바로 위에 열려 있었다⁠. 사무실에는 상인회장 혼자였다⁠. 상인회장은 책상 옆 검은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차양 위의 감시 카메라에서 줄이 내려와 꽂혀 있는 상자였다⁠. 상인회장은 바지 주머니에서 손가락만 한 것을 꺼내 상자 옆구리에 꽂았다⁠. 상자의 작은 불이 초록으로 깜박였다⁠. 상인회장은 깜박임을 노려보며 무릎을 떨었다⁠. 장화 뒤꿈치가 바닥을 두드렸다⁠.

불이 멈췄다⁠. 상인회장이 손가락만 한 것을 뽑았다⁠. 주머니에 넣으려다 말고⁠, 장화 목을 벌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장화 목이 불룩해졌다⁠. 상인회장이 장화를 바닥에 두 번 굴러 불룩한 것을 발목 아래로 내렸다⁠.

구슬은 차양 위에서 목을 길게 뺐다⁠. 다람쥐도 사장도 정학도 묻을 때는 땅이나 화분이나 서랍에 묻었다⁠. 장화 속에 묻는 동물은 처음이었다⁠.

계단에서 등산화 소리가 났다⁠. 사장이 둘둘 만 천을 옆구리에 끼고 들어왔다⁠. 사장은 천을 책상 위에 펼쳤다⁠. 반들반들한 새 천이었다⁠. 물방울이 굴러떨어질 것 같은 천⁠.

“⁠새 차양 견본입니다⁠. 비둘기 발톱이 안 박히는 천이에요⁠. 시장 차양 전부⁠, 제 협력 업체가 새로 해 드리겠습니다⁠. 이백 집 다요⁠. 표결 전에 시작해서 장마 전에 끝냅니다⁠. 위생 점검 벌점은 구청에 아는 분이 있어서 이번 한 번은 넘어가게 해 드리겠습니다⁠.⁠”

상인회장은 천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손바닥이 천 위에서 미끄러졌다⁠.

“⁠그 새벽에 뿌린 거⁠. 왜 그랬어요⁠?⁠”

사장이 의자에 앉았다⁠.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회장님⁠. 비둘기는 원래 있었습니다⁠. 저는 좀 모아 드린 거고요⁠. 모여야 눈에 보이고⁠, 눈에 보여야 법이 됩니다⁠. 법이 돼야 회장님 차양에 예산이 붙고요⁠. 제가 아니었으면 의원님이 이 법을 냈겠습니까⁠? 회장님이 확성기 옆에 섰겠습니까⁠?⁠”

“⁠우리 옆집 양반 다리는⁠.⁠”

“⁠그건 죄송합니다⁠. 그래서 차양을 해 드린다는 겁니다⁠.⁠”

문이 벌컥 열렸다⁠. 생선 냄새 밴 앞치마의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사장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사장님 계셨네요⁠. 회장님⁠, 우리 집 차양 언제 갈아요⁠? 오늘도 고등어 세 손 버렸어요⁠.⁠”

상인회장이 견본 천을 쥔 채 아주머니를 보았다⁠. 아주머니의 앞치마 끝이 젖어 있었다⁠. 상인회장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곧 갈아요⁠. 곧⁠. 가서 장사 봐요⁠.⁠”

아주머니가 나가자 사장이 휴대전화를 상인회장 앞에 내밀었다⁠.

“⁠그럼 그 영상요⁠. 지금 지워 주십시오⁠. 제가 보는 앞에서요⁠.⁠”

“⁠차양 먼저 다 갈고 나서 지우면 안 돼요⁠?⁠”

“⁠지금요⁠, 회장님⁠. 제가 차양을 먼저 하면 회장님이 영상을 나중에 안 지우실 수도 있잖습니까⁠. 서로 믿어야지요⁠.⁠”

상인회장이 검은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았다⁠. 휴대전화를 상자에 연결하고 화면을 눌렀다⁠. 화면 속에 새벽 골목이 떠올랐다⁠. 흰 트럭⁠, 바가지⁠, 쏟아지는 비둘기⁠. 상인회장의 손가락이 화면 아래쪽을 눌렀다⁠. 화면 속 골목이 하나씩 까맣게 꺼졌다⁠. 사장이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골목이 꺼졌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다음 주 월요일부터 차양 공사 들어갑니다⁠.⁠”

사장이 견본 천을 두고 나갔다⁠. 상인회장은 꺼진 화면 앞에 쪼그려 앉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손이 장화 목으로 내려가 불룩한 자리를 한 번 눌렀다⁠. 누르고⁠, 떼고⁠, 다시 눌렀다⁠. 구슬은 차양 위에서 날개를 접고 장화 목을 누르는 손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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