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01자)

새벽 기장

광장 비둘기들의 복수 · 문들레

두 번째 알은 첫 알보다 하루 반 늦게 나왔다⁠.

구슬은 알 둘을 가슴 밑에 나란히 놓고 엎드렸다⁠. 둘을 함께 덮으려면 몸을 조금 더 넓게 펴야 했다⁠. 비둘기는 알을 번갈아 품는다⁠. 해가 높이 뜬 뒤부터 해가 기울 때까지는 짝이 품고⁠, 나머지 시간은 구슬이 품는다⁠. 정해 둔 것은 아니지만 비둘기는 다 그렇게 한다⁠. 새벽은 구슬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새벽에 무리가 강을 건넜다⁠.

나흘째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해가 뜨기 전 느티나무에서 잿빛 덩어리가 떠올라 남서쪽으로 갔다⁠. 덩어리는 날마다 조금씩 컸다⁠. 구슬은 알 위에 엎드려 목만 빼고 덩어리가 강 너머로 작아지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할아버지의 쌀은 날마다 더 많이 남았다⁠.

목요일 새벽⁠, 구슬은 일어섰다⁠. 처마에서 자던 짝의 머리를 부리로 쪼았다⁠. 짝이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들었다⁠. 구슬은 짝을 둥지 쪽으로 밀었다⁠. 짝은 꼬리를 털며 버텼다⁠. 아직 짝의 시간이 아니었다⁠. 구슬이 한 번 더 쪼았다⁠. 짝이 구우우 하고 항의했다⁠. 구슬이 세 번째로 쪼자 짝은 날개를 질질 끌며 둥지로 들어가 알 위에 엎드렸다⁠. 엎드리고 나서도 한참 투덜거렸다⁠. 엉덩이가 둥지 밖으로 반쯤 삐져나와 있었다⁠.

구슬은 창틀을 박차고 남서쪽으로 날았다⁠.

*

하늘은 아직 짙은 남빛이었다⁠. 강물이 검게 번들거렸고⁠, 다리의 불빛들이 물 위에 길게 흔들렸다⁠. 구슬은 앞서가는 덩어리의 꼬리를 쫓았다⁠. 다리를 건너자 차양이 끝없이 이어진 시장 지붕이 보였다⁠. 덩어리는 시장 한복판 대신 뒤쪽으로 돌았다⁠.

시장 뒷골목은 쓰레기 수거함이 줄지어 있는 좁은 길이었다⁠. 가게들의 뒷문과 차양 끝이 길 위로 처마처럼 나와 있었다⁠. 차양 위에도⁠, 수거함 뚜껑 위에도⁠, 전깃줄에도 비둘기가 빽빽했다⁠. 광장 무리에서 사라진 얼굴들이 시장 무리의 둥근 몸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다들 같은 곳을 내려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벤치 앞에서 쌀을 기다릴 때와 똑같은 목이었다⁠.

골목 입구로 흰 트럭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전조등을 끈 채였다⁠. 트럭이 멈추자 전깃줄의 비둘기들이 한꺼번에 들썩였다⁠.

트럭 문이 열리고 신발이 내려왔다⁠. 구슬은 차양 끝에서 목을 길게 뺐다⁠. 밑창이 두꺼운 등산화였다⁠. 홈마다 흙이 끼어 있었고 흙 사이에 노란 알갱이가 박혀 있었다⁠. 구슬의 깃털이 저절로 부풀었다⁠. 화분 옆에 이상한 먹이를 묻던 등산화였다⁠.

등산화의 주인은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 아래를 천으로 가렸다⁠. 트럭 짐칸에서 포대 하나를 끌어 내려 어깨에 메었다⁠. 트럭 안에서 라디오가 작게 울리고 있었다⁠. 외국 어느 도시가 매를 풀어 비둘기를 쫓는다는 소리였다⁠. 사장이 손을 뻗어 라디오를 껐다⁠.

사장이 포대 주둥이에 바가지를 넣었다⁠. 바가지에 노란 알갱이가 소복이 담겼다⁠. 사장이 팔을 크게 휘둘렀다⁠. 알갱이가 부채꼴로 날아가 차양 위에 쏟아졌다⁠. 차르르⁠, 빗소리가 났다⁠. 한 바가지⁠, 또 한 바가지⁠. 차양 홈통에⁠, 수거함 뚜껑에⁠, 가게 뒷문 앞에⁠.

전깃줄과 지붕의 비둘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날개 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구슬의 몸도 저절로 차양 위로 떨어졌다⁠. 부리가 먼저 알갱이를 쪼았다⁠. 고소했다⁠. 씹을 것도 없이 목으로 굴러 내려갔다⁠. 하나를 더 쪼았다⁠. 또 하나를⁠.

열 개쯤 삼켰을 때 구슬은 고개를 들었다⁠. 사장이 포대를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들어 차양을 찍고 있었다⁠. 화면 불빛이 천 밑의 얼굴을 비췄다⁠. 눈가가 웃고 있었다⁠. 사장은 찍은 것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가지로 남은 알갱이를 마저 뿌렸다⁠. 빈 포대를 접어 트럭에 던졌다⁠.

트럭이 골목을 빠져나갔다⁠. 차양 위에서는 수백 마리가 알갱이를 쪼고 있었다⁠. 차양은 무게에 출렁였고⁠, 쪼는 새들의 꽁무니에서 하얀 것이 차양 위로 떨어졌다⁠. 날이 밝아 오자 첫 상인이 셔터를 올렸다⁠. 상인은 차양을 올려다보고 욕을 했다⁠.

구슬은 이해할 수 없었다⁠. 구슬이 아는 세상에서 가장 넉넉한 모이꾼이었다⁠. 할아버지의 쌀 자루보다 포대가 컸고⁠, 할아버지보다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런데 등산화는 정학에게 그물 사진을 내밀었다⁠. 먹이를 주는 동물이 그물을 팔았다⁠.

구슬은 해가 높이 뜨기 전에 창틀로 돌아왔다⁠. 짝은 알 위에서 잔뜩 부풀어 있었다⁠. 구슬이 둥지로 들어서자 짝은 일어나 구슬의 목을 한 번 세게 쪼고 처마로 날아갔다⁠.

아홉 시에 출근한 정학이 창가로 와서 둥지를 들여다보았다⁠. 정학은 날마다 출근하면 우산을 세워 두고 둥지부터 보았다⁠. 오늘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아까 왔을 땐 너 아니었는데⁠.⁠”

보좌관이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누가요⁠?⁠”

“⁠아침에 회관 앞에서 올려다봤을 땐 목털 파란 놈이 앉아 있었어⁠. 지금은 자줏빛 놈이야⁠. 이놈들 교대해⁠.⁠”

“⁠의원님⁠, 비둘기 구별하세요⁠?⁠”

“⁠구별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눈에 들어와⁠. 자줏빛 놈이 내 구두 끈 쪼는 놈이고⁠, 파란 놈은 꼬리 끌고 빙빙 도는 놈이야⁠.⁠”

보좌관이 정학을 오래 보았다⁠. 정학이 헛기침을 하고 우산을 집어 들었다⁠. 구슬은 알 위에서 목털을 한 번 부풀렸다⁠. 큰 동물이 구슬을 알아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매도 먹이를 알아보고 내리꽂힌다⁠.

*

이튿날 오후 정학은 다시 다리를 건넜다⁠. 이번에는 구슬이 마음 놓고 따라갈 수 있었다⁠. 짝의 시간이었다⁠.

상인회 사무실은 시장 한가운데 이 층에 있었다⁠. 창이 차양 바로 위로 나 있었다⁠. 구슬은 차양에 앉아 열린 창으로 안을 보았다⁠. 접이식 의자에 상인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고무 장화⁠, 슬리퍼⁠, 앞치마 밑의 털신⁠. 정학의 갈색 구두는 맨 앞에 서 있었다⁠. 구두 옆에 낯익은 등산화가 있었다⁠.

“⁠우리 사장님이 이번 주에도 차양 청소를 무료로 해 주셨습니다⁠. 박수 한번 쳐 주세요⁠.⁠”

상인회장이 손뼉을 치자 상인들이 따라 쳤다⁠. 사장이 모자를 벗고 허리를 숙였다⁠. 구슬은 차양 위에서 목털을 부풀렸다⁠. 오늘 새벽에도 사장은 이 차양에 알갱이를 뿌렸다⁠. 박수 소리가 차양을 흔들었다⁠.

뒷줄에서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일어섰다⁠. 생선 냄새가 밴 앞치마였다⁠.

“⁠의원님⁠, 표결이 언제라고요⁠?⁠”

“⁠다음 달 셋째 주입니다⁠.⁠”

“⁠우리 남편 다리가 그때 붙어요⁠? 차양 닦다 떨어져서 깁스한 지 한 달이에요⁠. 혼자 가게 보는데 비둘기 똥 떨어진 생선은 팔지도 못해요⁠. 어제는 손님이 산 고등어 봉지 위에 떨어졌어요⁠. 손님이 봉지 놓고 그냥 갔어요⁠.⁠”

“⁠차양 지원 예산을 법에 같이 넣겠습니다⁠.⁠”

“⁠약속만 일곱 번째예요⁠, 의원님⁠.⁠”

아주머니는 앉지 않았다⁠. 정학도 대답하지 않았다⁠. 상인들이 아주머니와 정학을 번갈아 보았다⁠. 정학이 고개를 숙였다⁠. 허리를 반으로 접는 인사였다⁠. 이번에는 오래 숙였다⁠. 구슬은 정학이 아무것도 없는 땅을 쪼는 것을 다시 보았다⁠. 아주머니의 앞치마 끝이 떨렸다⁠.

사장이 끼어들었다⁠.

“⁠사모님⁠, 표결 전에라도 저희가 바깥양반 대신 차양 닦아 드리겠습니다⁠. 무료로요⁠.⁠”

아주머니가 사장을 보았다⁠. 앞치마 끝이 멈췄다⁠. 고맙다는 말이 사장에게 갔다⁠. 구슬은 사장의 등산화를 내려다보았다⁠. 밑창 홈에서 노란 알갱이 하나가 접이식 의자 다리 밑으로 굴러갔다⁠.

*

금요일 해 질 녘⁠, 구슬은 광장으로 날아갔다⁠.

광장에 남은 무리는 절반이었다⁠. 외발이 분수 가장자리에서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구슬은 느티나무 가지에 앉은 젊은 새들 사이로 들어가 고개를 까딱였다⁠. 같이 가자는 몸짓이었다⁠. 젊은 새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구슬은 모이주머니를 부풀려 보였다⁠. 아침에 먹은 노란 알갱이가 아직 목 아래에 불룩했다⁠. 젊은 새들의 눈이 커졌다⁠.

외발이 끄르륵 울었다⁠. 구슬은 외발을 마주 보았다⁠. 외발이 날개를 반쯤 들었다가 내렸다⁠. 외발은 구슬의 모이주머니를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높은 돌에서 내려와 구슬 옆 가지로 옮겨 앉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튿날 새벽⁠, 구슬은 짝을 또 쪼아 깨웠다⁠. 짝은 이번에는 세 번까지 버티지 않았다⁠. 구슬이 창틀을 박차자 처마와 의원회관 지붕에서 잿빛 몸들이 따라 떠올랐다⁠. 광장 느티나무에서 또 한 덩어리가 떠올라 합쳐졌다⁠. 맨 끝에 외발이 있었다⁠. 외발은 발이 하나라 앉을 때 서툴렀지만 날 때는 누구보다 곧았다⁠.

구슬은 시장 뒷골목 대신 큰길가로 갔다⁠. 흰 트럭이 오는 길이었다⁠. 트럭이 골목으로 꺾어 들어오려고 속도를 줄였을 때⁠, 구슬은 트럭 지붕으로 내리꽂혔다⁠. 뒤를 따르던 무리가 구슬이 앉는 곳에 앉았다⁠. 비둘기는 앞선 새가 앉는 곳이 밥상이라고 믿는다⁠. 지붕에⁠, 짐칸에⁠, 백미러에⁠, 앞 유리에⁠. 골목에서 기다리던 시장 무리가 트럭을 보고 한꺼번에 쏟아졌다⁠. 트럭이 잿빛으로 덮였다⁠.

트럭이 멈췄다⁠. 앞 유리가 날개로 가려져 앞이 안 보였다⁠. 문이 열리고 등산화가 내려오자 무리는 등산화로 몰렸다⁠. 어깨에⁠, 모자에⁠, 메고 있던 포대에⁠. 사장이 팔을 휘둘렀다⁠. 바가지를 휘두르던 팔이었다⁠. 무리는 팔이 휘둘릴 때마다 먹이가 나오는 줄 알고 더 몰려들었다⁠. 포대 주둥이가 부리에 쪼여 찢어졌다⁠. 노란 알갱이가 골목 바닥에 쏟아졌다⁠.

수백 개의 날개가 동시에 퍼덕였다⁠. 셔터 내린 가게들의 이 층 창에 하나둘 불이 켜졌다⁠.

“⁠이게 무슨 난리야⁠!⁠”

골목 끝에서 고무 장화가 철벅거리며 달려왔다⁠. 상인회장이었다⁠. 새벽 경매에 가려고 일찍 나온 길이었다⁠. 상인회장은 잿빛 덩어리 한가운데 선 사람을 한참 보고서야 알아보았다⁠.

“⁠사장님⁠? 이 새벽에 여기서 뭐 해요⁠?⁠”

사장이 모자를 고쳐 쓰고 얼굴의 천을 내렸다⁠. 웃는 얼굴이었다⁠.

“⁠아⁠, 회장님⁠. 비둘기 습성 조사 중입니다⁠. 몇 시에 모이는지 보려고요⁠.⁠”

“⁠습성 조사를 포대로 해요⁠?⁠”

상인회장이 찢어진 포대를 들어 올렸다⁠. 노란 알갱이가 포대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상인회장의 눈이 차양으로 올라갔다⁠. 차양 홈통에 고인 것과 같은 알갱이였다⁠. 상인회장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차양 위에 단 감시 카메라를 상인회가 지난달부터 휴대전화로 보고 있었다⁠. 화면 불빛이 상인회장의 얼굴을 비췄다⁠. 손가락이 화면을 넘겼다⁠. 넘기고⁠, 넘기고⁠, 또 넘겼다⁠. 구슬은 백미러 위에서 화면을 보았다⁠. 작은 화면 속에서 흰 트럭이 골목에 들어오고⁠, 등산화가 바가지를 휘두르고⁠, 비둘기들이 쏟아져 내렸다⁠. 다음 화면에서도⁠, 또 다음 화면에서도⁠.

상인회장이 휴대전화를 내렸다⁠. 그리고 포대를 거꾸로 들어 사장의 등산화 위에 쏟았다⁠. 알갱이가 등산화를 덮었다⁠. 무리가 사장의 발밑으로 몰려들어 등산화를 쪼았다⁠.

“⁠당신이 우리 차양에 비둘기 불렀어⁠? 한 달 동안 새벽마다⁠?⁠”

사장은 발을 빼지 않았다⁠. 비둘기가 발등을 쪼는데도 목소리가 느리고 부드러웠다⁠.

“⁠회장님⁠, 진정하시고요⁠. 이거 터지면 법도 끝나요⁠. 차양 지원 예산도 같이 없어지고요⁠. 상인분들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상인회장의 장화가 알갱이 속에 묻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구슬은 백미러에서 사장의 등산화 앞으로 내려앉았다⁠. 알갱이를 쪼지 않았다⁠. 등산화 앞코를 부리로 세게 쪼았다⁠. 한 번⁠, 두 번⁠. 사장이 처음으로 발을 뺐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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