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91자)

창틀

광장 비둘기들의 복수 · 문들레

짝은 나뭇가지를 하나씩 물어 왔다⁠.

한 번에 하나였다⁠. 의원회관 화단에서 마른 가지를 하나 골라 물고 6층까지 날아와⁠, 창틀에 앉은 구슬의 등에 올라탔다⁠. 구슬의 등 위에서 짝이 가지를 내밀면 구슬이 받아 제 가슴 밑에 밀어 넣었다⁠. 비둘기 둥지는 짝이 나르고 암컷이 깐다⁠. 짝은 가지 하나를 건넬 때마다 목을 부풀리고 구우우 하고 길게 울었다⁠. 가지 하나에 한 번씩 울었다⁠. 아침나절 내내 창틀이 시끄러웠다⁠.

짝이 물어 온 것이 다 가지는 아니었다⁠. 빨대 토막이 왔고⁠, 누가 버린 담배꽁초가 왔고⁠, 볼펜 뚜껑이 왔다⁠. 구슬은 볼펜 뚜껑을 부리로 밀어 창틀 밖으로 떨어뜨렸다⁠. 짝은 떨어지는 뚜껑을 내려다보다가⁠, 날아 내려가 다시 물고 올라왔다⁠. 구슬은 뚜껑을 가슴 밑 가장자리에 끼웠다⁠.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둥지는 가지 열두 개와 빨대와 꽁초와 볼펜 뚜껑으로 된 납작한 접시가 되어 있었다⁠. 비둘기 둥지는 원래 이렇게 허술하다⁠. 구슬은 접시 위에 엎드려 몸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배 밑이 꼭 맞았다⁠. 창틀은 오전 볕이 오래 머물렀고⁠, 뒤틀린 창틈으로 방 안의 따뜻한 공기가 새어 나왔다⁠. 광장의 느티나무보다 나은 자리였다⁠. 무엇보다 정학이 보였다⁠.

*

“⁠의원님⁠, 이거 큰일이에요⁠.⁠”

보좌관이 휴대전화를 들고 창가로 다가왔다가⁠, 유리 너머 구슬과 눈이 마주치자 재채기를 두 번 했다⁠.

“⁠밑에서 기자가 망원으로 찍었어요⁠. 길 건너 전광판 보세요⁠.⁠”

정학이 창가로 왔다⁠. 구슬은 둥지에 엎드린 채 고개만 돌렸다⁠. 길 건너 건물 벽의 큰 화면에 창틀 사진이 떠 있었다⁠. 납작한 둥지와 둥지에 엎드린 잿빛 새⁠, 유리 너머로 흐릿한 넥타이⁠. 보좌관이 화면 아래 글자를 읽었다⁠.

“⁠「⁠비둘기 금지법 낸 의원⁠, 창문엔 비둘기 둥지⁠」 지금 실시간 검색 일 등이에요⁠.⁠”

“⁠이게 나쁜 거야⁠, 좋은 거야⁠?⁠”

“⁠최악이에요⁠. 상인분들은 의원님이 비둘기랑 같이 산다고 할 거고⁠, 동물단체는 둥지 치우는 순간 달려들 거예요⁠. 그러니까 치우려면 지금 치워야 해요⁠. 아직 알 없을 때요⁠.⁠”

정학이 창틈으로 둥지를 내려다보았다⁠. 구슬은 목털을 부풀리고 끄르륵 울었다⁠. 내 자리라는 소리였다⁠. 정학이 반 걸음 물러섰다⁠.

“⁠지금 치우면 알 깨는 의원이 되잖아⁠.⁠”

“⁠알 없다니까요⁠. 지금은 그냥 쓰레기예요⁠. 나뭇가지랑 꽁초⁠.⁠”

“⁠꽁초는 누가 피운 거야⁠. 우리 층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없잖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사장님한테 연락하면 직원 보내 주신대요⁠. 십 분이면 돼요⁠. 무료로⁠.⁠”

정학의 구두가 카펫 위에서 멈칫했다⁠. 구슬은 구두 앞코가 책상 맨 아래 서랍 쪽으로 반쯤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사장님은 부르지 마⁠.⁠”

“⁠왜요⁠? 제가 사장님 소개해 드린 거⁠, 잘한 거라니까요⁠. 장비도 제일 좋고 후원회에도⁠…⁠.⁠”

“⁠부르지 말라고⁠.⁠”

보좌관이 입을 다물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켜고⁠, 다시 껐다⁠. 정학은 창틀 앞에 쪼그려 앉아 둥지와 눈높이를 맞췄다⁠. 구슬이 날개를 반쯤 펴 보였다⁠. 정학이 엉덩이를 뒤로 뺐다⁠.

“⁠시설과는 뭐래⁠. 창문⁠.⁠”

“⁠다음 달 중순에나 온대요⁠. 회관 창문이 다 이렇대요⁠.⁠”

“⁠다음 달이면 표결 끝나고잖아⁠.⁠”

“⁠그러니까 지금 치우자고요⁠.⁠”

정학은 대답하지 않고 의자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 서류 한 묶음이 있었다⁠. 보좌관이 맨 위 장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상임위 질의서요⁠. 외국 도시들이 번식 줄이는 모이 쓰는 사례⁠, 반대하는 의원들이 물어볼 거예요⁠. 답변 넣을까요⁠?⁠”

“⁠빼⁠. 몇 년 걸린다고만 해⁠.⁠”

*

정학이라는 동물은 밤에 하는 짓이 따로 있었다⁠.

보좌관이 퇴근하고 복도 불이 꺼지면 정학은 탁상 등 하나만 켰다⁠. 셔츠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흰 봉투를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봉투 귀퉁이는 화분 받침의 물에 젖었다 마른 자국이 누렇게 남아 있었다⁠. 정학은 봉투를 보기만 했다⁠. 한참 보다가 서랍에 넣고 잠갔다⁠. 다음 날 밤에도 그렇게 했다⁠.

사흘째 밤에는 봉투를 열었다⁠. 누런 종이를 꺼내 한 장씩 책상 위에 옮겨 놓았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구슬은 둥지에서 달싹이는 입술을 보았다⁠. 할아버지가 쌀을 뿌리며 구구구구 할 때와 비슷한 입이었다⁠. 정학은 절반쯤 옮기다가 손을 멈췄다⁠. 옮겨 놓은 종이를 쓸어 모아 봉투에 다시 쑤셔 넣었다⁠. 종이 한 장이 삐져나와 구겨졌다⁠. 정학은 구겨진 귀퉁이를 손톱으로 펴서 마저 넣었다⁠.

서랍이 잠기고 탁상 등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정학은 한동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창틈으로 정학의 숨소리가 들렸다⁠. 길고 무거운 숨이었다⁠. 구슬은 알을 품을 때 쉬는 숨과 같다고 생각했다⁠. 몸 밑에 깨뜨리면 안 되는 것을 깔고 앉은 숨이었다⁠.

*

새벽에 구슬은 창틀에서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6층은 높아서 광장의 느티나무가 한 덩어리 구름처럼 보였다⁠.

해가 다 뜨기 전⁠, 느티나무에서 잿빛 점들이 떠올랐다⁠. 열 마리쯤 되는 점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남서쪽으로 날아갔다⁠. 큰 물이 있는 방향이었다⁠. 잠시 뒤 또 한 덩어리가 떠올랐다⁠. 같은 방향이었다⁠. 구슬은 목을 길게 뺐다⁠. 맨 앞에서 무리를 끄는 새의 날갯짓을 구슬은 알았다⁠. 월요일에 구슬을 따라왔던 젊은 새였다⁠.

아침에 광장으로 내려가 보니 할아버지의 쌀이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늘 뿌리던 만큼 뿌렸는데⁠, 돌바닥에 쌀알이 하얗게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벤치에 앉아 남은 쌀을 내려다보았다⁠.

“⁠애들이 줄었네⁠. 어디 좋은 데 생겼나⁠.⁠”

외발이 분수 가장자리에서 구슬을 노려보았다⁠. 구슬은 외발의 눈을 피했다⁠. 구슬은 강 건너 차양 홈통의 노란 알갱이를 생각했다⁠. 모이주머니가 불룩한 채 돌아온 날⁠, 구슬을 따라 일어선 여섯 마리를 생각했다⁠. 젊은 새들은 구슬을 따라 정학을 쫓다가 강을 건넜고⁠, 강 건너에서 노란 알갱이를 맛보았다⁠. 비둘기는 좋은 밥상을 알면 다른 새를 데리고 간다⁠. 구슬이 길을 내 준 밥상이었다⁠.

같은 날 오전⁠, 정학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구슬은 둥지에서 들었다⁠. 스피커에서 상인회장의 목소리가 깔때기 없이도 쩌렁쩌렁 울렸다⁠.

“⁠의원님⁠! 요즘 우리 시장 비둘기가 두 배로 늘었어요⁠! 광장에서 쫓아낸 놈들이 다 이리 온 거 아니에요⁠?⁠”

“⁠회장님⁠, 광장에서는 아직 아무도 안 쫓았어요⁠.⁠”

“⁠그럼 이놈들이 어디서 와요⁠? 차양이 아주 내려앉게 생겼어요⁠. 엊그제 닦았는데 오늘 아침에 또 하얗다니까요⁠!⁠”

정학이 전화를 끊고 창틀의 구슬을 보았다⁠. 구슬은 정학을 마주 보지 않았다⁠. 창 너머로 남서쪽 하늘만 보았다⁠.

*

금요일 점심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낯선 신발이 들어왔다⁠. 뒤축을 꺾어 신은 낡은 단화였다⁠. 단화 위로 꽃무늬 바지가 보였고⁠, 손에 커다란 보온 통이 들려 있었다⁠. 국숫집의 어머니였다⁠. 어머니 뒤에서 보좌관이 쩔쩔맸다⁠.

“⁠어머님⁠, 미리 말씀하시면 제가 모시러 갔을 텐데요⁠.⁠”

“⁠지하철 타면 금방인데 뭘 모셔⁠. 우리 아들 밥은 먹고 사나 보러 왔지⁠.⁠”

정학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 앞에서 정학의 허리는 또 처음부터 굽었다⁠. 어머니가 보온 통을 책상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멸치 국물 냄새가 방에 퍼졌다⁠. 구슬의 코는 냄새를 잘 맡지 못하지만⁠, 김이 창틈으로 새어 나와 둥지 위에서 흩어지는 것은 보았다⁠.

어머니가 창가로 와서 둥지를 들여다보았다⁠. 정학이 막아서려 했지만 늦었다⁠.

“⁠아이고⁠, 텔레비전에 나온 게 이거냐⁠. 니 방 창문에⁠.⁠”

“⁠엄마⁠, 그거 치울 거야⁠.⁠”

“⁠치우긴 뭘 치워⁠. 비둘기도 집이 있어야지⁠. 우리 시장 놈들은 차양을 집으로 쓰는데⁠, 얘는 그래도 남의 차양은 안 썩히잖아⁠.⁠”

“⁠엄마⁠, 그 차양 썩히는 놈들 잡자고 낸 법이야⁠.⁠”

“⁠알지⁠. 니가 우리 가게 때문에 그러는 거 다 알지⁠.⁠”

어머니는 정학의 책상 의자에 앉아 국수를 그릇에 덜었다⁠. 정학이 서서 받아먹었다⁠. 이번에는 손수건을 깔지 않았다⁠. 면발 한 가닥이 카펫에 떨어졌다⁠. 구슬의 목이 저절로 길어졌다⁠. 정학이 처음으로 흘린 먹이였다⁠. 창틈이 좁아 닿지 않았다⁠.

어머니가 빈 그릇을 챙기다가 책상 맨 아래 서랍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서랍이 덜컹 하고 열리지 않았다⁠.

“⁠이건 왜 잠갔어⁠. 수저 넣어 두려 했더니⁠.⁠”

“⁠서류야⁠. 중요한 거⁠.⁠”

정학의 목소리가 확성기 앞에서처럼 커졌다⁠. 어머니가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정학은 어머니를 보지 않고 보온 통 뚜껑을 닫았다⁠. 어머니는 서랍을 한 번 더 보다가 손을 거두었다⁠.

“⁠차양 빚은 걱정 마⁠. 이자는 내가 낸다⁠. 너는 깨끗하게만 해⁠.⁠”

어머니의 단화가 문밖으로 나갔다⁠. 정학은 문이 닫힌 뒤에도 한참 보온 통을 쥐고 서 있었다⁠. 그러다 쪼그려 앉아 카펫에 떨어진 면발 한 가닥을 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

토요일 해 질 녘⁠, 구슬의 배 아래가 묵직해졌다⁠.

몸 안에서 무언가 천천히 내려왔다⁠. 구슬은 둥지 접시 위에서 꼬리를 들고 날개를 조금 펴고 버텼다⁠. 숨이 짧아졌다⁠. 창틀 아래에서 자동차 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짝이 처마에서 내려와 구슬 옆에 바짝 붙었다⁠. 짝은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다 내려오자 몸이 가벼워졌다⁠. 구슬은 일어나 둥지를 내려다보았다⁠. 가지와 빨대와 꽁초 사이에 하얀 알이 하나 놓여 있었다⁠. 엄지손톱만 한⁠, 매끄럽고 따뜻한 것⁠. 구슬은 알을 부리로 한 번 굴려 가슴 밑 한가운데로 옮기고 알을 덮어 엎드렸다⁠. 배 밑에서 알의 온기가 올라왔다⁠.

월요일 아침⁠, 정학이 출근해서 창가로 왔다⁠. 정학은 오늘은 쪼그려 앉지 않았다⁠. 손에 긴 자를 들고 있었다⁠. 정학이 창틈으로 자를 밀어 넣었다⁠. 자 끝이 둥지 가장자리의 볼펜 뚜껑에 닿았다⁠. 구슬은 일어나지 않았다⁠. 날개를 펴고 몸을 부풀려 둥지를 다 덮었다⁠. 끄르륵⁠, 끄르륵⁠. 자 끝이 둥지를 밀었다⁠. 둥지가 한 뼘 밀렸고⁠, 구슬의 몸이 같이 밀렸다⁠. 구슬의 날개 밑에서 알이 굴렀다⁠.

정학의 손이 멈췄다⁠. 하얀 것이 날개 밑에서 반쯤 보였다⁠.

정학은 자를 쥔 채 한참 서 있었다⁠. 구슬은 정학의 구두를 보았다⁠. 구두 앞코가 카펫을 누르다 힘이 빠졌다⁠. 정학이 자를 천천히 빼냈다⁠.

문이 열렸다⁠. 보좌관과 함께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들어왔다⁠. 발에는 쇠코를 댄 안전화를 신었고⁠, 손에 긴 막대와 두꺼운 장갑을 들고 있었다⁠. 보좌관이 정학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의원님⁠, 제가 그냥 불렀어요⁠. 사장님이 꼭 오늘 치워 드리라고 하셔서요⁠.⁠”

“⁠알 있어⁠.⁠”

“⁠네⁠?⁠”

“⁠알 낳았다고⁠. 하나⁠.⁠”

작업복 사내가 막대를 고쳐 잡았다⁠.

“⁠괜찮습니다⁠. 알 있어도 금방 치웁니다⁠. 사장님이 꼭 깔끔하게 하라고⁠…⁠.⁠”

“⁠놔두세요⁠.⁠”

“⁠의원님⁠, 그래도 사장님이⁠…⁠.⁠”

“⁠여기 내 방이에요⁠. 놔두라고요⁠.⁠”

사내가 보좌관을 보고⁠, 보좌관이 정학을 보았다⁠. 정학은 아무도 보지 않고 창 밖 광장을 보았다⁠. 사내가 막대를 내리고 장갑을 벗었다⁠. 안전화가 문밖으로 나갔다⁠. 보좌관이 따라 나가다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의원님⁠, 이거 사장님이 아시면 서운해하실 거예요⁠.⁠”

정학은 대답하지 않았다⁠. 셔츠 주머니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작은 열쇠가 든 자리였다⁠. 구슬은 알 위에 몸을 다시 고르게 펴고 엎드렸다⁠. 유리 너머 정학의 숨이 또 길고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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