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90자)
이상한 먹이
광장 비둘기들의 복수 · 문들레
월요일 아침 광장에서 구슬이 쌀을 먹고 일어서자 뒤에서 여섯 마리가 따라 일어섰다.
젊은 새들이었다. 지난봄에 둥지를 떠난 것들이라 아직 목털 빛이 흐렸다. 젊은 새들은 구슬의 모이주머니를 보고 따라왔다. 목요일 저녁 구슬은 강 건너 차양에서 노란 알갱이를 배가 터지도록 먹고 왔다. 금요일 아침까지 목 아래가 불룩했다. 광장에서 모이주머니가 불룩한 새는 어딘가 좋은 밥상을 아는 새다. 비둘기는 그런 새를 따라간다.
짝까지 여덟이었다. 구슬이 길을 건너자 여덟이 길을 건넜고, 구슬이 의원회관 앞 가로등에 앉자 여덟이 가로등 두 개에 나눠 앉았다. 일곱 시 사십 분에 갈색 구두가 나타났다. 정학은 우산을 펴 들고 걸었다. 하늘은 맑았다. 정학이 걸으면 여덟이 땅으로 내려와 고개를 까딱이며 따라 걸었고, 정학이 돌아보면 여덟이 동시에 멈췄다. 정학이 다시 걸었다. 여덟이 다시 걸었다.
출근하던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정학이 걸음을 빨리하자 여덟도 빨라졌고, 사람들이 웃었다.
*
“‘비둘기의 복수’래요.”
보좌관이 휴대전화 화면을 정학 앞에 내밀었다. 창틀에 앉은 구슬은 유리 너머로 두 사람의 발밑을 보았다. 책상 밑에서 갈색 구두가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아침 출근길 영상이 이백만이에요. 엉덩방아까지 합치면 오백만이고요. 외국 방송에서도 퍼 갔어요. 비둘기를 잡겠다는 의원을 비둘기가 쫓아다닌다고요.”
“복수는 내가 하는 거야.”
“그리고 좋은 소식요. 소위원회가 하루 당겨졌어요. 수요일이에요. 위원장님이 화제 됐을 때 처리하자고 하셨대요.”
정학이 우산을 접어 책상에 기댔다.
“업체 사장님은?”
“열한 시에 오세요. 장비 사진 들고요.”
열한 시에 문이 열리고 새 신발이 들어왔다. 등산화였다. 밑창이 두껍고 홈이 깊게 파였는데, 홈마다 흙이 끼어 있었다. 흙 사이에 노랗고 동그란 알갱이가 박혀 있었다. 구슬의 목이 저절로 길어졌다. 강 건너 차양 홈통에 고여 있던 알갱이였다. 고소하고, 씹을 것도 없이 목으로 굴러 내려가던 것.
구슬은 생각보다 몸이 먼저 갔다. 창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머리는 들어갔다. 목도 들어갔다. 어깨가 틈에 막혔다. 구슬은 날개를 접고 발로 창틀을 밀었다. 어깨가 안 들어갔다. 머리만 방 안에 들어간 채로 구슬은 등산화 밑창을 노려보았다.
“의원님, 비둘기가요! 머리를!”
보좌관이 소리치고 재채기를 했다. 정학이 의자에서 튀어 올라 책장 앞까지 물러났다. 등산화의 주인만 웃었다. 쉰 넘은 사내였고, 목소리가 느리고 부드러웠다.
“허허. 의원님 사무실까지 들어오려고 하네요. 이놈들이 원래 이렇습니다. 틈만 있으면요.”
사내가 서류철을 말아 쥐고 창 쪽으로 걸어와 구슬의 머리 앞에서 탁 쳤다. 구슬은 목을 빼고 창틀로 물러났다. 사내가 창틈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구슬은 사내의 얼굴 대신 등산화를 다시 보았다. 알갱이 하나가 사내의 걸음에 밑창에서 떨어져 카펫 위로 굴렀다.
*
방역 업체 사장은 탁자에 사진을 늘어놓았다. 구슬은 창틀에서 목을 길게 빼고 보았다. 사진에는 그물과 철망 상자와 트럭이 있었다.
“한 번에 서른 마리씩 잡힙니다. 소리도 크지 않고 사람한테 해가 없습니다. 광장 같은 데는 사흘이면 눈에 띄게 줄어요.”
“잡은 다음에는요?”
“저희 시설에서 관리합니다.”
“관리가 뭡니까?”
“법에 맞게 합니다, 의원님.”
사장은 웃는 얼굴로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정학은 서류 대신 사장의 얼굴을 보았다. 구슬은 정학의 구두를 보았다. 구두 앞코가 카펫을 누르고 있었다. 물러서려다 만 발이었다.
“저희도 사정이 있습니다. 몇 해 전에는 소독 일만으로 직원 열둘이 먹고살았는데, 지금은 반으로 줄었어요. 이번 일 하나만 보고 장비 들여놨습니다. 그리고 의원님 시장 상인분들, 저희가 차양 청소도 몇 번 해 드렸어요. 무료로요.”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한테 들었어요.”
사장이 등산 조끼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두툼했다. 사장은 봉투를 사진들 위에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정학 앞까지 밀었다.
“시장 상인분들 마음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고생하시는데.”
구슬은 목을 갸웃했다.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 무언가를 밀어 놓는 것은 먹이를 주는 짓이었다. 할아버지가 쌀을 밀어 주듯, 편의점 앞 아이가 과자를 밀어 주듯. 그런데 흰 봉투에서는 먹을 것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먹이였다.
정학이 봉투를 보았다. 손을 대지 않았다. 한참 보다가 손가락 하나로 봉투 끝을 눌러 사장 쪽으로 도로 밀었다.
“사장님, 이러시면 법이 죽습니다. 가져가세요.”
“의원님도 참. 법은 법이고 마음은 마음이지요.”
“가져가세요.”
정학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댈 때보다 작았지만, 구두 앞코는 카펫을 더 세게 눌렀다. 사장이 웃음을 거두지 않고 봉투를 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보좌관이 문을 열었다.
사장은 곧장 나가지 않았다. 창가로 걸어와 고무나무 화분 옆에 멈추더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전망 좋네요. 광장이 다 보이고.”
사장의 몸이 화분을 가렸다. 정학과 보좌관에게는 사장의 등만 보였다. 창틀의 구슬에게는 사장의 손이 보였다. 손이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화분과 받침 사이 틈으로 밀어 넣었다. 받침에 고인 물이 봉투 귀퉁이를 적셨다. 손이 화분을 조금 돌려 틈을 가렸다.
구슬은 공원에서 다람쥐가 하는 짓을 본 적이 있었다. 도토리를 땅에 묻고 흙을 덮고 다른 다람쥐가 보는지 주위를 둘러보는 짓. 사장은 이상한 먹이를 화분 흙 옆에 묻었다. 둘러보지는 않았다. 사장의 눈은 창밖의 광장만 보고 있었다.
“그럼 의원님, 소위원회 잘 되길 바랍니다.”
등산화가 나갔다. 카펫에 노란 알갱이 하나가 남아 있었다.
*
오후에 광장으로 돌아가니 외발이 분수 가장자리에서 내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외발은 구슬 뒤에 붙은 젊은 새 여섯을 하나씩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외발로 껑충 뛰어 가장 앞에 있던 젊은 새의 머리를 쪼았다. 젊은 새가 비명을 지르며 느티나무로 달아났다. 외발은 다음 새를 쪼았다. 여섯이 다 흩어질 때까지 쪼았다. 마지막으로 구슬 앞에 와서 멈췄다.
외발의 목털이 부풀었다. 늙은 털이라 빛은 흐렸지만 부푼 크기는 짝보다 컸다. 외발이 날개를 반쯤 펴고 끄르륵 울었다. 낮고 길었다. 광장 무리가 쌀을 쪼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젊은 새들을 광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말라는 소리였고, 남의 밥상에서 배를 채우고 오지 말라는 소리였다. 외발은 다리를 건너 본 새였다. 다리 건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비둘기는 그런 것을 말할 소리가 없다.
구슬도 목털을 부풀렸다. 날개를 펴고 외발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외발이 구슬의 붉은 발을 쪼았다. 구슬이 외발의 목을 쪼았다. 깃털 두 개가 돌바닥에 떨어졌다. 둘은 날개를 퍼덕이며 서로를 밀었다. 외발은 발이 하나라 밀릴 때마다 몸이 기울었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날개 끝으로 바닥을 짚어 버텼다.
벤치에서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야, 야! 늙은이한테 대들면 못써!”
할아버지의 운동화 옆에 검은 구두 두 켤레가 와 있었다. 초록 조끼를 입은 구청 직원 둘이었다. 한 사람이 종이를 들고 읽었다.
“어르신, 다음 주부터는 계도 기간이에요. 먹이 주시는 거 사진 찍어서 기록으로 남겨요. 법 통과되면 과태료 나갑니다.”
“사진은 잘 나오게 찍어. 우리 애들 이쁘게.”
“어르신, 농담 아니에요.”
“나도 농담 아니여. 내가 이 광장에서 밥 준 지 육 년이여. 그동안 구청에서 나한테 밥 준 적 있어?”
직원 둘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할아버지가 쌀 한 줌을 직원들의 구두 앞에 뿌렸다. 무리가 구두 앞으로 몰려들었다. 직원 하나가 뒷걸음질 치다 다른 직원의 발을 밟았다. 외발과 구슬은 싸움을 멈추고 쌀로 달려갔다. 둘은 나란히 쌀을 쪼았다. 싸움은 쌀 앞에서 늘 이렇게 끝났다.
*
수요일 오후, 보좌관이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통과예요! 소위원회 만장일치요!”
정학은 우산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다. 구슬과 일곱 마리가 의원회관 처마에서 따라 내려왔다. 분수 앞에 다시 카메라 줄이 생겼다. 정학은 확성기 대신 우산을 들었다. 구슬의 무리가 머리 위를 맴돌자 정학이 우산을 활짝 폈다. 하얀 것이 우산 위에 툭, 툭 떨어지고 우산 살을 따라 굴러 떨어졌다. 정학은 우산 밑에서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보셨죠. 이제 대비가 됩니다. 이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달 셋째 주 본회의에서 표결합니다.”
카메라 줄에서 웃음과 박수가 같이 났다. 할아버지가 벤치에서 일어나 쌀 자루를 끌어안고 다가왔다. 정학이 우산을 조금 들어 할아버지를 보았다.
“어르신, 소위원회 통과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구청에서도 여기 계속 나와요.”
“의원 양반. 비둘기가 의원 양반을 좋아하는 게 내 눈에는 보여.”
“좋아하는 게 아니라 쫓아오는 겁니다.”
“그게 그거여. 밥 한 번 줘 봐. 그럼 덜 쫓아와.”
할아버지가 쌀 한 줌을 정학의 손에 쥐여 주려 했다. 정학이 손을 뒤로 뺐다. 쌀이 갈색 구두 위로 쏟아졌다. 구슬과 일곱이 한꺼번에 구두 위로 내려앉았다. 정학이 우산을 쥔 채 굳었다. 구두 위에 비둘기 여덟이 앉아 쌀을 쪼았다. 카메라 하나가 바닥까지 내려와 구두를 찍었다.
*
해 질 녘 구슬은 느티나무로 돌아가지 않았다. 의원회관 6층 창틀에 몸을 웅크렸다. 비둘기는 해가 지면 날지 않는다. 날지 않는 밤을 남의 창틀에서 보내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짝이 처마에서 구우우 하고 몇 번을 불렀다. 구슬은 대답하지 않았다. 해가 다 넘어가자 짝이 투덜거리듯 날개를 털고 창틀로 내려와 구슬 옆에 몸을 붙였다. 창틀은 둘이 앉기에 좁았다. 짝의 꼬리가 허공으로 삐져나왔다.
방 안에는 탁상 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정학이 혼자 남아 있었다. 넥타이를 풀고 구두를 벗어 책상 밑에 가지런히 놓았다. 양말 바람으로 걸어와 컵에 물을 받아 고무나무 화분에 부었다. 물이 받침에 넘쳐 카펫을 적셨다. 정학이 혀를 차며 화분을 들어 올렸다.
받침 위에 흰 봉투가 젖어 있었다.
정학은 화분을 든 채 한참 서 있었다. 화분을 바닥에 내려놓고, 봉투를 집어 탁상 등 밑으로 가져갔다. 봉투 입구를 손가락으로 조금 벌렸다. 구슬은 유리 너머로 보았다. 봉투 안에 누런 종이가 같은 크기로 잘려 겹겹이 들어 있었다. 먹이는 아니었다.
정학은 봉투를 닫았다.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다시 들었다. 내려놓았다. 휴대전화가 혼자 울렸다. 정학이 화면을 보고 숨을 한 번 고르고 받았다. 목소리가 시장 말투로 바뀌었다.
“응, 엄마. 아직 회관이야. …이자 날이 내일이라고? 알아.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응. 들어가.”
전화를 끊은 정학은 봉투를 두 손으로 들고 한참 앉아 있었다. 무게를 재는 손이었다. 그러다 책상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봉투를 서랍 안쪽 깊숙이 밀어 넣고, 서랍을 닫고, 작은 열쇠로 잠갔다. 열쇠는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탁상 등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구슬은 몸을 더 웅크렸다. 오늘 하루 큰 동물 둘이 같은 먹이를 두 번 묻었다. 등산화는 화분 옆에, 갈색 구두는 서랍 속에. 두 동물 모두 먹지 않았다. 묻어 두는 먹이는 배고플 때를 위한 것이다. 정학이라는 동물에게도 배고플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