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35자)

신발 끈

광장 비둘기들의 복수 · 문들레

화요일 아침⁠, 구슬은 할아버지의 쌀을 반만 먹고 일어섰다⁠. 무리가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아침 쌀을 남기고 떠나는 새는 아픈 새뿐이었다⁠. 외발이 높은 돌에서 끄르륵 울었지만 구슬은 돌아보지 않고 길을 건너 의원회관 앞 가로등에 올라앉았다⁠.

일곱 시 사십 분⁠,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는 신발들 사이로 갈색 구두가 나타났다⁠. 오늘도 왼쪽 끈이 풀려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는데 정학은 긴 우산을 들고 있었다⁠. 우산 끝이 돌바닥을 톡⁠, 톡 짚었다⁠. 정학은 걸으면서 자꾸 위를 보았다⁠. 가로등을 볼 때마다 걸음이 빨라졌다⁠.

구슬은 정학이 하는 짓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까딱이며 따라 걸었다⁠. 비둘기는 걸을 때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당긴다⁠. 그래야 땅이 흔들리지 않고 보인다⁠. 정학은 고개 대신 허리를 굽혔다⁠. 나이 든 구두가 지나갈 때마다 허리를 반으로 접었고⁠, 접을 때마다 머리가 땅에 가까워졌다⁠. 구슬은 정학이 땅에서 무언가를 쪼아 먹는 줄 알고 달려가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정학은 허리를 펴고 다시 걸었다⁠. 다음 구두 앞에서 또 접었다⁠. 아무것도 없는 땅을 하루에 스무 번은 쪼는 동물이었다⁠.

의원회관 앞 편의점에서 정학이 김밥 한 줄을 사 들고 나와 화단 턱에 앉았다⁠. 구슬의 심장이 빨라졌다⁠. 김밥은 광장에서 가장 잘 흘리는 먹이다⁠. 은박지를 벗기는 순간 밥알이 튀고⁠, 한입 베어 물면 단무지 끝이 떨어진다⁠. 구슬은 열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기다렸다⁠.

정학이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을 두 무릎 위에 반듯하게 펴고⁠, 김밥을 손수건 위에서만 베어 물었다⁠. 한입 씹고 손수건을 보고⁠, 또 한입 씹고 손수건을 보았다⁠. 밥알 하나가 떨어졌다⁠. 손수건 위로 떨어졌다⁠. 정학이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구슬은 열 걸음을 다섯 걸음으로 줄였다⁠. 김밥이 꽁다리까지 정학의 입으로 들어갔다⁠. 정학은 손수건을 네 번 접어 일어서더니⁠, 화단 옆 쓰레기통에 대고 털었다⁠. 손수건에 붙어 있던 깨 몇 알이 쓰레기통 안으로 떨어졌다⁠. 뚜껑이 닫혔다⁠.

구슬은 목털을 부풀렸다⁠. 광장에서 나고 자라며 별별 동물을 다 보았다⁠. 개는 먹이를 뺏고 고양이는 새를 노리지만⁠, 먹이를 먹으면서 하나도 안 흘리는 동물은 처음이었다⁠. 지독한 동물이었다⁠.

*

의원회관 계단 아래에 커다란 비둘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구슬보다 열 배는 컸다⁠. 잿빛 몸에 날개가 축 처져 있었고⁠, 목에 초록 천이 둘려 있었다⁠. 커다란 비둘기는 두 발로 서서 앞날개에 판자를 들고 있었다⁠. 구슬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고개를 까딱였다⁠. 같이 가자는 인사였다⁠. 커다란 비둘기는 고개를 까딱이지 않았다⁠. 대신 판자를 높이 들고 사람 목소리로 외쳤다⁠.

“⁠피정학 의원님⁠! 잡은 비둘기는 어디로 갑니까⁠!⁠”

정학이 우산을 쥔 채 멈췄다⁠. 커다란 비둘기 앞에서도 정학의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구슬은 움츠러드는 어깨를 보았다⁠. 이 큰 동물은 비둘기 모양이면 크든 작든 무서워했다⁠.

“⁠동물단체에서 오셨어요⁠?⁠”

“⁠업체 계약서 공개하세요⁠. 포획한 다음에 어떻게 하는지 법안에 한 줄도 없잖아요⁠.⁠”

“⁠계약은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법도 아직 안 됐고요⁠.⁠”

“⁠법 되면 누가 잡는데요⁠? 벌써 방역 업체 사람이 회관에 들락거린다던데요⁠.⁠”

“⁠시장 차양 위에 한 번 올라가 보셨어요⁠? 상인분들이 그 위를 맨손으로 닦습니다⁠. 일흔 넘은 분들이요⁠.⁠”

“⁠그럼 차양을 지원하세요⁠. 새를 잡지 말고요⁠.⁠”

“⁠둘 다 할 겁니다⁠.⁠”

“⁠둘 다 하면 업체만 웃어요⁠!⁠”

정학은 대답하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세 칸쯤 오르다 돌아서서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커다란 비둘기가 판자를 내리고 제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아 위로 뽑았다⁠. 머리가 쑥 빠지더니 안에서 땀에 젖은 사람 얼굴이 나왔다⁠. 젊은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화단에 내려놓았다⁠.

구슬은 뒤로 펄쩍 물러났다⁠. 큰 비둘기 안에 사람이 들어 있었다⁠. 구슬은 화단에 놓인 빈 머리로 다가가 부리로 눈알을 세게 쪼았다⁠. 눈알은 단추였다⁠. 젊은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까지 왜 그래⁠. 나 네 편이야⁠.⁠”

*

수요일에 구슬은 정학의 창을 찾아냈다⁠. 의원회관에는 똑같은 창이 수백 개 있었지만⁠, 오후 두 시쯤 6층의 창 하나에 갈색 구두를 신은 그림자가 비쳤다⁠. 창은 비뚤게 뒤틀려 손바닥 하나 너비만큼 열려 있었다⁠. 구슬은 창틀에 내려앉았다⁠. 창틀은 햇볕에 데워져 발바닥이 따뜻했다⁠.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났다⁠. 보좌관이었다⁠.

“⁠의원님⁠, 또 창문 여셨어요⁠? 에어컨 틀어 놨는데요⁠.⁠”

“⁠찬바람 쐬면 머리가 아파⁠. 조금만 열어 둬⁠.⁠”

“⁠다음 주 목요일 상임위 소위원회 잡혔어요⁠. 어제 엉덩방아 영상이 조회수 삼백만 넘어서 위원장실에서 먼저 전화 왔어요⁠.⁠”

“⁠엉덩방아가 법안을 밀어 주네⁠.⁠”

보좌관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정학이 창 앞으로 걸어왔다⁠. 구슬은 날아갈 준비를 했지만 정학은 구슬을 보지 않았다⁠. 유리에 비친 제 얼굴을 보았다⁠. 넥타이를 고쳐 매고⁠, 헛기침을 하고⁠, 유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의장님⁠, 그리고 동료 의원 여러분⁠.⁠”

유리 속 정학도 같은 입 모양을 했다⁠. 정학은 유리 속 정학에게 한 손을 펴 보이고⁠, 주먹을 쥐어 보이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구슬도 유리를 보았다⁠. 유리 속에 목털이 초록으로 번들거리는 암비둘기가 한 마리 있었다⁠. 남의 창틀에 앉아 있는 건방진 비둘기였다⁠. 구슬은 목털을 부풀리고 유리를 쪼았다⁠. 유리 속 비둘기도 쪼았다⁠. 둘은 동시에 부딪혔다⁠.

딱⁠, 딱⁠, 딱⁠. 정학이 연설을 멈췄다⁠. 유리 너머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제 얼굴을 쪼고 있었다⁠.

“⁠으어어⁠!⁠”

정학이 의자를 넘어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정학은 창으로 달려와 창틀을 밀었다⁠. 뒤틀린 창은 손바닥 하나만큼에서 꿈쩍도 안 했다⁠. 정학이 두 손으로 밀고⁠, 어깨로 밀었다⁠. 창은 그대로였다⁠. 정학과 구슬은 손바닥 하나 너비의 틈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둘 다 숨이 찼다⁠. 문이 열리고 보좌관이 들어오다 재채기를 했다⁠.

“⁠의원님⁠, 왜 그러세요⁠?⁠”

“⁠시설과에 전화해⁠. 창문 고쳐 달라고⁠. 오늘⁠.⁠”

*

목요일 저녁⁠, 정학의 검은 차는 큰 물을 건넜다⁠. 구슬은 다리 난간을 따라 낮게 날았다⁠. 광장 무리 가운데 다리를 건너 본 새는 외발밖에 없었다⁠. 물 위에서는 바람이 옆에서 밀었고⁠, 날개 아래로 비린내가 올라왔다⁠. 구슬은 차 지붕을 놓치지 않으려고 날갯짓을 두 배로 했다⁠.

차가 멈춘 곳은 지붕이 끝없이 이어진 골목이었다⁠. 지붕은 기와도 돌도 아닌 천이었다⁠. 누렇고 푸른 천이 가게마다 덧대어져 하늘을 덮고 있었고⁠, 천 위에는 비둘기가 빽빽했다⁠. 구슬은 차양 끝에 내려앉았다⁠.

시장 무리는 광장 무리와 생김새부터 달랐다⁠. 하나같이 몸이 둥글었다⁠. 날아오를 때마다 날개가 무겁게 퍼덕였고 앉을 때 차양이 출렁였다⁠. 차양 가장자리 홈통에 노랗고 동그란 알갱이가 소복이 고여 있었다⁠. 쌀보다 작고 둥글었다⁠. 구슬은 하나를 쪼아 삼켰다⁠. 고소했다⁠. 씹을 것도 없이 목으로 굴러 내려갔다⁠. 하나를 더 쪼았다⁠. 또 하나를⁠.

아래에서 수증기와 함께 국수 삶는 냄새가 올라왔다⁠. 구슬은 차양 틈으로 내려다보았다⁠. 국숫집 앞 평상에 정학이 앉아 있었고⁠, 앞치마 두른 할머니가 정학 앞에 국수 그릇을 탁 내려놓았다⁠. 정학의 어머니였다⁠. 정학이 모르는 사람에게 허리를 접던 것과 반대로⁠, 어머니 앞에서는 정학의 허리가 처음부터 굽어 있었다⁠.

“⁠너 텔레비전에 엉덩방아 찧는 거 나오더라⁠. 동네 창피해서 원⁠.⁠”

“⁠엄마⁠, 그게 다 그림이야⁠. 그 덕에 법안이 빨라져⁠.⁠”

“⁠그림 말고 차양이나 갈아⁠. 차양 빚은 내가 갚는다니까⁠.⁠”

가게 안 텔레비전에서 먼 나라 광장이 나왔다⁠. 사람 팔뚝에 앉은 매가 날아오르자 광장의 비둘기 떼가 한꺼번에 흩어졌다⁠. 정학이 젓가락을 든 채 화면을 보았다⁠.

고무 장화가 철벅거리며 평상 앞으로 왔다⁠. 상인회장이 젖은 앞치마에 손을 닦고 정학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장화 코에 오늘 새로 앉은 하얀 얼룩이 있었다⁠.

“⁠의원님⁠, 소위원회 언제요⁠?⁠”

“⁠다음 주 목요일요⁠.⁠”

“⁠목요일 넘기면 안 돼요⁠. 칠월 초에 위생 점검이 또 나와요⁠. 벌점 한 번 더 받으면 생선 가게 두 집이 영업정지예요⁠. 그러면 다음 선거 때 우리 시장에서 표 없어요⁠. 내가 집집마다 말리고 다닐 거야⁠.⁠”

“⁠회장님⁠, 지금 협박하시는 거예요⁠?⁠”

“⁠부탁이지⁠. 큰 소리로 하는 부탁⁠.⁠”

상인회장은 장화를 탁탁 구르며 생선 가게로 돌아갔다⁠. 구르는 소리에 차양 위의 시장 무리가 잠깐 들썩였다가 도로 앉았다⁠.

옆 평상의 손님이 국수를 한 젓가락 들어 올리다 멈췄다⁠. 차양 틈에서 하얀 것이 떨어져 손님의 그릇 가장자리에 맞았다⁠. 손님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어머니가 따라 나가며 다시 끓여 드린다고 했지만 손님은 돈도 안 내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어머니는 그릇을 들고 한참 서 있다가 국물을 하수구에 부었다⁠.

정학은 국수를 먹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차양을 보았다⁠. 구슬과 눈이 마주쳤다⁠. 정학이 젓가락을 쥔 손을 천천히 내렸다⁠.

구슬은 정학의 눈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등 뒤에서 차양이 크게 출렁였다⁠. 시장 무리에서 가장 둥근 수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달려들었다⁠. 목털을 공처럼 부풀린 채 구우우⁠, 내 자리라는 소리를 길게 끌며 구슬을 몰았다⁠. 구슬은 홈통 끝까지 밀려나다 차양 밖으로 떨어지듯 날아올랐다⁠. 등에 부리가 한 번 꽂혔다⁠. 깃털 하나가 차양 위로 흩날렸다⁠.

*

금요일 아침⁠, 할아버지의 벤치 등받이에 하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초록 조끼를 입은 사람이 종이를 붙이고 큰 소리로 읽었다⁠.

“⁠광장 안에서 비둘기 먹이 주기를 삼가 주십시오⁠. 구청장⁠. 어르신⁠, 보셨죠⁠?⁠”

초록 조끼가 떠나자 할아버지는 종이를 떼어 네 번 접더니⁠, 접은 종이 위에 쌀을 부었다⁠. 종이는 쌀 그릇이 되었다⁠. 무리가 종이 둘레로 모여들었다⁠.

구슬은 쌀 몇 알만 먹고 다시 길을 건넜다⁠. 의원회관 계단 아래에서 갈색 구두를 기다렸다⁠. 갈색 구두가 보좌관의 운동화와 나란히 왔다⁠. 오늘도 왼쪽 끈이 풀려 있었다⁠. 구슬은 계단 두 번째 칸에서 끈 끝을 물고 당겼다⁠.

정학이 멈췄다⁠. 이번에는 엉덩방아를 찧지 않았다⁠. 우산을 앞으로 내밀어 구슬과 제 발 사이를 막고⁠,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너⁠. 월요일부터 계속 내 구두 끈만 쪼지⁠.⁠”

“⁠의원님⁠, 비둘기는 다 똑같이 생겼어요⁠.⁠”

“⁠아니야⁠. 이놈이야⁠. 광장에도 있었고 회관 창틀에도 있었고 어제 시장 차양에도 있었어⁠. 목털이 자줏빛으로 번쩍하는 놈⁠.⁠”

“⁠광장 비둘기 목털은 다 번쩍해요⁠.⁠”

정학이 우산을 내려놓고 쪼그려 앉았다⁠. 구슬은 물러서지 않았다⁠. 정학은 구슬의 주황 눈을 노려보면서 손으로 더듬어 구두 끈을 묶었다⁠. 매듭을 두 번 지었다⁠. 구슬도 정학의 눈을 노려보았다⁠. 큰 동물의 눈은 검고 축축했고⁠, 눈 밑이 거뭇했다⁠. 어젯밤 국수 그릇을 들고 서 있던 할머니의 눈과 같은 모양이었다⁠.

“⁠업체 사장님한테 연락해⁠. 다음 주 화요일에 사무실로 오시라고⁠. 장비 사진 다 들고⁠.⁠”

“⁠소위원회 전에요⁠?⁠”

“⁠전에⁠. 그물로 이놈부터 잡는다⁠.⁠”

정학이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 구슬은 한 칸씩 뛰어 따라 올랐다⁠. 뒤에서 날개 소리가 나더니 짝이 내려앉았다⁠. 짝은 구슬 옆에서 목을 부풀리고⁠, 구슬이 고개를 까딱이자 같이 까딱였다⁠. 비둘기 두 마리가 계단을 한 칸씩 뛰어 갈색 구두를 따라갔다⁠. 유리문이 닫히기 직전⁠, 정학이 뒤돌아보았다⁠. 하나였던 것이 둘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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