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24자)
서는 배
전역하고 취직한 곳이 해적 잡는 회사였다 · 윤재하
뒤집힌 쾌속정 둘레에 사람 머리가 셋 떠올랐다. 노준후 팀장은 선교 날개 난간에 매달린 채 그 머리들을 셌다. 셋 중 둘은 금방 다른 쾌속정이 건져 올렸다. 오른쪽에 있던 쾌속정이 엔진을 울리며 다가와 두 사람의 팔을 잡아 끌어 올렸고, 그러고는 그대로 남쪽으로 꺾었다. 뒤쪽 쾌속정도 사다리를 버려둔 채 따라갔다. 엔진 소리가 멀어졌다.
세 번째 머리는 남았다. 하얀 천이 풀려서 물 위에 길게 떠 있었다. 그 옆에서 사람이 한 손으로 뒤집힌 배 바닥을 붙잡으려다 미끄러지고 있었다. 배 꼬리의 큰 물결이 그 사람과 뒤집힌 배를 떼어 놓았다. 물결이 한 번 칠 때마다 둘 사이가 일 미터씩 벌어졌다.
“팀장님!”
강현준이 계단을 뛰어 올라와 날개 끝에 섰다. 숨이 목까지 차 있었고, 셔츠가 기름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노 팀장 옆에 엎드려 아래를 봤다. 그리고 그 하얀 천을 봤다.
“오마르입니다.”
“어.”
“동료들이 버리고 갔습니다.”
“어.”
노 팀장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현준도 더 말하지 않았다. 둘 다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둘 다 그것을 먼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선교 안에서 1항사 고병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속도 올리면 빠져나갑니다, 선장님. 놈들 다시 오기 전에.
박영진 선장이 날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물에 뜬 사람은 이제 팔을 거의 휘젓지 못하고 있었다. 바닷물은 따뜻했지만, 밤바다에서 한 시간을 버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선장은 그것을 알았다.
“엔진 멈춰.”
“선장님!”
고병철이 문 앞까지 따라 나왔다.
“해적입니다! 방금 우리 배에 총을 쏜 놈들 두목이라고요! 갑판장이 다쳤습니다!”
“알고 있소.”
“근데 왜…….”
선장은 대답 대신 현준을 봤다. 현준은 목에 손을 댔다가, 거기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호루라기는 하은에게 있었다. 그래도 그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구명 튜브 던져.”
선장이 말했다. 노 팀장이 이미 날개 벽에 걸린 주황색 튜브를 벗기고 있었다. 튜브에는 물에 닿으면 저절로 켜지는 작은 불이 달려 있었다. 현준이 그 튜브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힘껏 던졌다. 튜브가 밧줄을 끌며 날아가 물 위에 떨어졌다. 불이 켜졌다. 깜빡이는 하얀 불빛이 그 사람에게서 삼 미터 떨어진 곳에 떠 있었다.
물에 뜬 사람이 그 불빛을 봤다. 고개를 들었다. 위를 올려다봤다. 높은 선교 날개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그 사람들을 한참 봤다. 그러고는 마지막 힘을 짜내서 불빛 쪽으로 헤엄쳤다.
*
밧줄 사다리 끝에서 마르코와 현준이 그를 끌어 올렸다. 물을 먹은 사람은 무거웠다. 갑판에 눕히자 그는 옆으로 돌아누워 바닷물을 토했다. 한참을 토했다. 그러고 나서 처음 한 말은 영어였다. 현준도 그 말은 알아들었다.
“자말은?”
“살았어. 묶여 있어.”
마르코가 대답했다. 오마르는 눈을 감았다. 그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 기름 바른 갑판 위로 바닷물이 흘러내려 그의 몸 아래 무지갯빛 웅덩이를 만들었다.
조리장이 안전실에서 올라와 수건 두 장을 던져 줬다. 하나는 현준에게, 하나는 오마르에게. 조리장은 오마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해적도 감기 걸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조리장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내려갔다. 그리고 십 분 뒤에 쌀죽 냄비를 들고 올라왔다.
*
아침 여덟 시, 선장실 노트북 화면에 윤기석이 떴다. 서울은 오후 두 시였다. 본부장은 넥타이를 반쯤 풀고 있었다. 밤사이 상황 보고를 다 받은 얼굴이었다.
“선장님, 먼저 수고 많으셨습니다. 갑판장님은 좀 어떠십니까?”
“어깨에 쇳조각이 박혔소. 하은이가 피는 멈췄는데 빼내지는 못했소. 오늘 해군 헬기가 오면 육지 병원으로 가야 하오.”
“산재 처리 바로 해 드리겠습니다. 치료비 전액, 위로금도 따로요. 그리고 선장님, 그건 그거고, 보도 자료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윤기석이 화면 옆으로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제목은 「생명을 싣는 배, 아덴만 무사 통과」였다.
“협찬사 쪽이 너무 좋아합니다. 백신이 아덴만을 무사히 건넜다. 이거면 됩니다. 해적 얘기는 빼고요. 갑판장님 다친 것도 빼고요. 그 얘기 들어가면 협찬사가 겁먹습니다. 다음 계약이 없어요.”
“무사가 아니었소.”
“백신은 무사합니다. 냉장 컨테이너 온도 기록 봤습니다. 밤새 5도에서 안 움직였어요. 선장님 덕분입니다.”
선장은 화면 속 종이를 봤다. 그러고는 화면 속 본부장의 얼굴을 봤다.
“해적 하나를 건졌소. 지금 우리 배 창고에 있소. 그것도 빼시오?”
“그건 해군에 조용히 넘기시면 됩니다. 선장님, 그 사람 건진 거 잘하신 겁니다. 정말로요. 근데 기사가 그걸 어떻게 쓸지 모릅니다. 해적한테 밥 먹인 배, 이렇게 쓰면 어떡합니까?”
“그럼 내가 쓰겠소.”
“예?”
“보도 자료. 내가 쓰겠소. 갑판장 레이 카스트로, 쉰 살, 왼쪽 어깨. 실습 항해사 오하은, 스물둘, 어둠 속에서 호루라기로 위치를 알림. 조리장 엄달수, 기름 한 통. 보안팀 넷, 정원은 여섯. 그리고 바다에 빠진 사람 하나, 건짐. 그대로 쓰겠소. 내가 이 배 선장으로 쓰는 마지막 글이 될 거요.”
윤기석은 한참 말이 없었다. 손가락이 탁자를 두드리다가 멈췄다. 화면 너머에서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계산하지 않는 얼굴이 되었다가, 다시 계산하는 얼굴로 돌아왔다.
“선장님, 그 얘기는 홍해 들어가서 다시 하시죠. 지금은 일단 배를 끝까지 모는 게 먼저잖습니까.”
화면이 꺼졌다. 선장은 꺼진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줄 쳐진 종이를 한 장 꺼내 맨 위에 날짜를 적었다.
*
창고는 선실 건물 일층 뒤편에 있었다. 페인트 통과 밧줄 더미 사이에 의자 둘을 놓고, 문은 밖에서 잠갔다. 자말은 맞은편 다른 창고에 있었다. 오마르는 젖은 옷을 벗고 마르코가 준 작업복을 입었는데, 소매가 손등을 다 덮었다. 머리에 두르던 천은 바다에 두고 왔다. 맨머리가 짧게 깎여 있었고, 관자놀이 옆에 흰머리가 섞여 있었다. 무전기 속 목소리로 들을 때보다 열 살은 늙어 보였다.
현준은 문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노 팀장이 두 시간씩 돌아가며 지키라고 했다. 첫 순번이 현준이었다. 조리장이 쌀죽 두 그릇과 김치 한 접시를 쟁반에 들고 왔다가 오마르 앞에 내려놓고 갔다. 오마르는 쌀죽을 먼저 먹었다. 그러고는 김치를 손가락으로 집어 냄새를 맡았다.
“썩은 배추.”
그가 영어로 말했다. 현준도 그 정도는 알아들었다. 오마르는 그 썩은 배추를 입에 넣었다. 씹었다.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한 조각을 더 집었다.
“맛있다는 겁니까, 맛없다는 겁니까?”
현준이 한국어로 물었다. 오마르는 알아듣지 못했을 텐데 대답했다. 손가락으로 빈 접시를 가리키며. 한 접시 더.
현준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하루 한 접시라는 조리장의 규칙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 규칙을 해적 두목이 첫날에 깨려 하고 있었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창고 안에서는 페인트 냄새와 쌀죽의 참기름 냄새가 섞였다. 오마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느린 영어였다. 현준은 절반을 알아들었다. 나머지 절반은 오마르가 손으로 설명했다. 손바닥으로 파도를 만들고, 주먹으로 배를 만들고, 그 배를 엎었다.
“내 아버지. 바다에. 큰 배, 불, 지나갔다. 서지 않았다.”
“압니다. 그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배는 섰다. 두 번.”
오마르가 손가락 둘을 펴 보였다. 하나는 하산의 누르였고, 하나는 자기였다.
“왜?”
현준은 그 질문에 대답할 영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손으로 했다. 자기 가슴을 가리키고, 그다음에 손바닥을 펴서 바다처럼 눕혔다. 그 위에 사람 하나가 떠 있는 것처럼 엄지를 세웠다. 그리고 입술을 오므려 호루라기 부는 시늉을 했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My father.”
현준이 말했다. 그거면 됐다. 오마르는 오래 현준을 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창고 문이 조금 열리고 하산이 들어왔다. 염소가 그 뒤를 졸졸 따라왔다. 하산은 손에 물 한 컵을 들고 있었다. 그는 오마르 앞에 서서 오래 내려다봤다. 오마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산이 자기네 말로 무언가 말했다. 길지 않았다. 마르코도 그 말은 몰랐다. 현준도 몰랐다. 하산은 물컵을 오마르 발치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나갔다. 염소는 잠깐 오마르의 소매를 씹다가 하산을 따라 나갔다.
오마르는 그 물컵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두 손으로 들어 마셨다. 다 마시고 나서도 컵을 내려놓지 않았다. 현준은 하산이 무슨 말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오마르도 말해 주지 않았다.
조금 뒤 하은이 문 앞에 와서 현준에게 호루라기를 내밀었다. 끈에 레이의 피가 말라 검게 굳어 있었다. 현준은 받지 않았다.
“갑판장님 헬기 탈 때까지 하은 씨가 갖고 계세요.”
“왜요?”
“갑판장님이 그거 소리 나는 쪽으로 오라고 하셨답니다. 아까 안전실에서. 계속 그 얘기만 하신답니다.”
하은은 호루라기를 다시 목에 걸고 병실 쪽으로 뛰어갔다. 오마르가 그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때 문 밖에서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노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 비닐 지퍼 봉투에 싸인 위성전화가 들려 있었다. 오마르를 건질 때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왔다. 액정에 번호 없이 「알 수 없음」만 떠 있었다.
오마르의 얼굴이 굳었다. 노 팀장이 마르코를 불렀다. 마르코가 들어오자 팀장은 전화를 스피커로 돌려서 오마르 앞에 내밀었다. 오마르는 받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먼저 났다. 그러고는 영어가 흘러나왔다. 마르코가 작은 소리로 옮겼다.
“실패했구나. 쾌속정 넷은 오늘 거둬 간다. 네 마을은 이제 끝이다. 다음 철은 다른 사람한테 맡긴다.”
오마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편의 목소리가 조금 짜증 섞인 투로 이어졌다. 누군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반쯤 섞여 들어왔다. 송화기를 손으로 막지 않은 채였다. 마르코가 그 말을 옮기다가 멈칫했다.
“케스트렐 쪽에 연락해. 한국 배 건은 다음 단계로 넘긴다고.”
전화가 끊겼다. 창고 안이 조용했다. 현준은 그 이름을 입속으로 되뇌었다. 케스트렐. 낯선 이름이었다. 그런데 오마르의 얼굴은 그 이름을 처음 듣는 얼굴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