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16자)

다음 항로

전역하고 취직한 곳이 해적 잡는 회사였다 · 윤재하

5월 27일 오전 열 시, 해군 순찰함 워리어 셋은 생각보다 작았다. 강현준은 그 배가 회색 산처럼 클 줄 알았다. 다가오는 배는 한바다호의 반도 안 되는 길이였고, 뱃머리가 칼처럼 좁았다. 그 배 꽁무니에서 헬기가 떴다. 프로펠러 바람이 한바다호 갑판의 기름 웅덩이에 잔물결을 일으켰다. 조리장이 밤새 걸레로 문질렀는데도 기름은 다 지워지지 않았다.

헬기가 내려보낸 들것에 갑판장 레이 카스트로가 먼저 실렸다. 왼쪽 어깨에 붕대가 두껍게 감겨 있었고, 얼굴은 핏기가 없었는데 입은 쉬지 않았다.

“위험 수당! 위험 수당 받아야 돼! 선장님, 들으셨죠? 일지에 적어 주세요! 레이 카스트로, 해적하고 싸움!”

“해적하고 안 싸웠잖아. 계단에서 굴렀지.”

조리장 엄달수가 들것 옆에 붙어 걸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들것 발치에 비닐로 꽁꽁 싼 통 하나를 끈으로 묶어 주었다.

“그게 뭐야?”

“김치. 병원 밥 맛없을 거다. 한 통이다. 열여섯 접시. 하루에 한 접시씩만 먹어.”

레이가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성한 손을 뻗어 조리장의 앞치마 끈을 잡았다. 놓지 않았다. 들것이 헬기 쪽으로 들려 올라가기 시작하자 조리장이 그 손을 한 손가락씩 떼어 냈다. 레이가 들것 위에서 외쳤다. 염소 잘 봐! 내 염소야, 이제!

그 염소는 하산이 두고 갔다. 하산과 유수프는 레이 다음 들것으로 헬기에 올랐다. 하산은 오르기 전에 염소 줄을 조리장 손에 쥐여 주었다. 무엇이라고 길게 말했는데, 마르코가 옮겼다. 고맙다는 말은 자기네 동네에서 염소로 한다고. 조리장은 염소 줄을 쥐고 한참 서 있다가 말했다. 이걸 어떻게 국을 끓여. 그러고는 염소를 데리고 주방 쪽으로 갔다. 그날 저녁 식당 구석에 양동이 하나와 배추 겉잎 한 무더기가 놓였다.

*

헬기가 떠나고 해군 보트가 한바다호 옆구리에 붙었다. 해군 장교 하나와 수병 넷이 사다리로 올라왔다. 장교는 서른 남짓한 여자였고, 영어가 빨랐다. 노준후 팀장과 마르코가 그녀를 창고 쪽으로 안내했다. 현준은 그 뒤를 따랐다.

오마르와 자말이 수병들 손에 이끌려 갑판으로 나왔다. 자말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터진 입술에 딱지가 앉아 있었다. 그는 현준을 지나칠 때 한 번 눈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오마르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마르코의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렸다.

장교가 노 팀장을 난간 쪽으로 따로 불렀다. 마르코가 옆에서 들었고, 나중에 현준에게 옮겨 주었다.

“저 두 사람, 아마 풀려날 거래.”

“예?”

“이 바다에서 잡힌 해적을 재판해 줄 나라가 거의 없대. 자기 나라 배가 당한 게 아니면 자기 나라 법정에 안 세운대. 그래서 무기 뺏고, 물하고 먹을 거 주고, 해안 가까이 내려 준대. 그게 제일 흔한 끝이래.”

현준은 장교를 봤다. 장교는 그 말을 하면서 미안해하는 얼굴도, 화난 얼굴도 아니었다. 날씨를 말하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현준은 더 무서웠다.

수병 하나가 오마르의 팔을 잡고 사다리 쪽으로 이끌었다. 오마르가 사다리 앞에서 멈췄다. 그는 고개를 돌려 현준을 찾았다. 찾았다. 그리고 영어로 말했다. 이번에는 짧고 느린 말이어서, 현준은 마르코가 옮기기 전에 대부분 알아들었다.

“케스트렐을 조심해라. 그들은 바다에 없다. 사무실에 있다. 나는 그들의 쾌속정 넷이었다. 너희 회사는 그들의 무엇이냐?”

“무슨 말입니까?”

현준이 한국어로 물었다. 오마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사다리를 한 칸 내려갔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다음에 만나면 나는 여전히 해적이다.”

현준은 영어 단어를 찾았다. 이번에는 금방 찾았다. 이 배에 오른 뒤로 그는 그 단어를 수백 번 들었다.

“Next time… I stop again.”

오마르는 웃지 않았다. 현준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알았다.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사다리를 끝까지 내려갔다. 보트가 엔진을 울리며 떨어져 나갔다. 순찰함이 그 보트를 거둬 올리고,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렸다. 해안 쪽이었다.

*

그날 오후, 오하은은 선교 노트북 앞에 현준을 불렀다. 회사 홍보 지도의 위치는 여전히 스물네 시간 늦게 돌고 있었다. 지도 밑 댓글 칸에 새 영상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올린 사람은 백신을 받기로 한 내륙 병원 세 곳 가운데 한 곳의 간호사였다. 이름 칸에 아미나라고 적혀 있었다.

영상은 일 분이 조금 넘었다. 흙벽에 함석지붕을 얹은 병원 마당이었다. 나무 그늘 아래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맨발인 아이도 있었고 엄마 등에 업힌 아이도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화면 앞에 쪼그려 앉아 영어로 천천히 말했다. 하은이 그 말을 옮겼다. 하은의 영어는 현준보다 훨씬 나았다.

“지금 저희 냉장고는 비어 있어요. 지난달에 이 마을에서 홍역으로 아이 넷을 잃었어요. 한바다호가 바다를 건너고 있다는 걸 지도로 매일 봐요. 아이들도 같이 봐요. 배 그림이 움직이면 아이들이 박수를 쳐요.”

화면 속에서 아이들이 정말로 박수를 쳤다. 누군가 신호를 준 것 같았다. 박수가 엇박자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맨 앞줄의 작은 아이 하나가 박수 대신 두 손을 머리 위로 엇갈려 흔들었다. 누르의 갑판에서 하산이 한바다호를 부를 때 하던 몸짓과 같았다.

현준은 영상을 끝까지 봤다. 한 번 더 봤다. 하은은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교 창가에서 박영진 선장이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선장은 그 영상의 소리를 다 들었을 것이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는 오래 바다를 봤다. 현준은 그 등이 처음 부두에서 본 것보다 조금 작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냉장 컨테이너 여섯 칸의 온도계는 그 시각에도 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

그날 밤, 보안팀 넷은 뒤 갑판 망루 밑에 둘러앉았다. 배는 이제 불을 반쯤 켜고 달렸다. 해적 바다의 끝이 가까웠다. 노 팀장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서아가 그 손을 봤다. 팀장은 담뱃갑을 열어 보고, 한 개비도 꺼내지 않고 도로 닫았다.

“스물엿새째다.”

“뭐가요?”

“끊은 지.”

마르코가 박수를 쳤다. 서아는 박수를 치지 않고 주머니에서 손톱만 한 저장 장치를 꺼내 현준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기념품이요. 출항 날부터 어젯밤까지. 아이엠 파인부터 트웬티포까지 다 들어 있어요.”

“이거 진짜 다 녹음하셨습니까?”

“현준 씨 영어는 다 했어요. 하나도 안 빼고. 들어 보시면 아실 거예요. 갈수록 늘었어요. 아주 조금.”

서아가 처음으로 존댓말 끝에 욕을 붙이지 않았다. 현준은 그 저장 장치를 쥐었다. 아무것도 아닌 무게였다. 노 팀장이 바다를 보면서 말했다.

“해지돼도 너는 다음 배 탄다. 내가 다른 회사에 말해 둔다.”

“팀장님은요?”

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담뱃갑을 손안에서 한 바퀴 돌렸다. 마르코가 그 침묵 위로 트로트 한 소절을 불렀다. 가사가 또 틀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고쳐 주지 않았다.

*

5월 28일 새벽 다섯 시, 한바다호는 홍해 들머리에 닿았다.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가 서로를 향해 손을 뻗어 바다를 가장 좁게 조이는 목이었다. 이 해협을 바브엘만데브라고 부른다. 그 지역 말로 눈물의 문이라는 뜻이라고 마르코가 말했다. 선원들이 이 문을 지나면서 운 일이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진짜요?”

“몰라. 내 사촌이 그랬어.”

“마리스 스텔라 조리장 사촌이요?”

“아니, 다른 사촌.”

양옆으로 땅이 보였다.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갈색 산이 바다에서 바로 솟아 있었다. 두 주 만에 처음 보는 땅이었다. 현준은 땅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여섯 시 반, 선장실 노트북에 윤기석이 떴다. 이번에는 선장과 노 팀장 말고도 한 사람을 더 불러 달라고 했다. 강현준 씨. 현준은 기름 얼룩이 다 안 빠진 작업복 차림으로 화면 앞에 앉았다. 변서아가 그 뒤에 섰다.

“강현준 씨, 오랜만입니다. 부두에서 같이 사진 찍었던 거 기억하시죠? 이번에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현장 이야기 다 들었습니다.”

본부장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 부드러움이 현준은 이제 무엇인지 알았다.

“그래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협찬사 쪽에서 현장 보안 요원 인터뷰를 원해요. 짧게. 백신을 지켜서 자랑스럽다, 아덴만을 무사히 건넜다. 그 정도면 됩니다. 젊은 얼굴이 좋잖아요. 해든가드와 다음 계약도 그 인터뷰로 정하려고 합니다.”

“무사히 안 건넜습니다.”

현준이 말했다. 말이 자기 입에서 나오는 속도를 스스로도 못 따라갔다.

“갑판장님 어깨에 쇳조각이 박혔습니다. 하산 아저씨는 배를 잃었습니다. 저희 팀장님은 계약 해지당했습니다. 그거 다 빼고 무사히라고는 말 못 합니다.”

화면 속에서 윤기석의 손가락이 탁자를 세 번 두드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할 수 없죠. 해든가드와의 계약은 이번 항해까지로 하겠습니다. 강현준 씨 연봉은 해든가드가 알아서 하시겠죠.”

노 팀장이 현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누르지 않고 그냥 얹었다. 윤기석은 그 손을 못 본 척하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항로 얘기입니다. 하역지가 바뀌었습니다. 원래 하역항의 현지 협력 단체가 지난주에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거기서 이백 해리 북쪽 항구에 내립니다. 거기서부터 병원까지는 현지 대리 회사가 트럭으로 옮깁니다. 보험사가 추천한 회사고, 운송료도 삼 할 쌉니다. 저는 모레 비행기로 그 항구에 갑니다. 하역은 제가 직접 보겠습니다.”

선교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서아가 송화기를 들고 몇 마디 주고받다가 얼굴을 굳혔다. 항로가 바뀌었고, 홍해 들머리 항구에서 짐을 내릴 현지 대리인이 직접 인사를 하겠다는 연락이었다. 서아는 무전기를 스피커로 돌려 현준 앞에 내려놓았다.

“한바다호, 여기는 케스트렐 해양 대리입니다. 남은 항로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영어였고, 끝에 붙은 한국어 인사는 서툴렀다. 현준은 대답하지 않고 송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현준은 그 목소리를 알았다. 어제 아침 창고에서 들은 목소리였다. 종이 넘기는 소리, 그리고 송화기를 막지 않은 채 옆 사람에게 하던 말. 한국 배 건은 다음 단계로 넘긴다. 사다리 앞에서 오마르가 물었던 말도 떠올랐다. 너희 회사는 그들의 무엇이냐?

화면 속에서 윤기석이 웃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아니면 다 아는 얼굴이었다. 현준은 아직 그 둘을 구별할 줄 몰랐다.

창밖으로 눈물의 문이 천천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앞에는 홍해가 길게 열려 있었다. 냉장 컨테이너 여섯 칸이 그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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