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86자)

기름

전역하고 취직한 곳이 해적 잡는 회사였다 · 윤재하

강현준이 쾌속정을 본 것은 갈고리 소리가 나기 사십 초 전이었다. 야간 투시경 속 녹색 세상에서 배 꼬리의 초록빛 물결이 한 군데 끊겼다. 무언가가 그 빛을 가리고 있었다. 현준이 투시경을 고쳐 잡자 끊긴 자리가 배 모양이 되었고, 배 모양 위에 사람 모양이 여럿 생겼다.

“뒤! 바로 뒤! 백 미터!”

“양옆에도 하나씩!”

무전기에서 변서아가 동시에 소리쳤다. 왼쪽과 오른쪽 바다에서 엔진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일부러 크게 내는 소리였다. 노준후 팀장의 목소리가 그 위로 짧게 떨어졌다.

“옆은 내가. 뒤는 너희 둘.”

마르코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붉은 빛이 하늘에 걸리자 바다가 핏빛으로 드러났다. 뒤에 붙은 쾌속정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그 뱃머리에서 긴 사다리가 일어서고 있었다. 마르코가 바다 쪽 허공으로 경고를 보냈다. 쾌속정은 멈추지 않았다. 배의 꼬리 물결이 쾌속정을 들어 올렸다 내려놓았다. 두 번째로 들어 올렸을 때 사다리 끝 갈고리가 난간에 걸렸다.

쇠가 쇠를 무는 소리가 철판을 타고 현준의 무릎까지 올라왔다.

“호스!”

현준은 망루에서 뛰어내려 난간 옆에 감아 둔 소방 호스를 풀었다. 밸브를 돌리자 호스가 뱀처럼 몸을 비틀며 부풀었고, 노즐을 쥔 팔이 뒤로 밀렸다. 현준은 다리를 벌리고 버티며 물줄기를 사다리에 꽂았다. 사다리를 오르던 첫 번째 사람이 물을 정면으로 맞고 미끄러져 쾌속정으로 떨어졌다. 두 번째 사람은 사다리 옆면에 몸을 붙여 물을 피했다. 그 사람은 빨랐다. 손과 발이 사다리를 거의 디디지 않는 것처럼 올라왔다.

마르코가 갈고리를 떼어 내려고 긴 장대를 갈고리 밑에 끼웠다. 갈고리가 반쯤 들렸다. 그때 그 빠른 사람이 난간을 잡았다. 반쯤 감긴 철조망이 없는 쪽이었다. 팀장이 출항 전에 제 주머니를 털어 감은 가시철사가 딱 거기까지였다. 회사가 깎은 예산의 나머지 반쪽이 있어야 할 자리였다.

그 사람이 난간을 넘었다. 그리고 갑판에 발을 디디자마자 두 다리가 허공으로 떴다.

*

열 시 반, 안전실로 내려가기 직전에 조리장 엄달수는 뒤 갑판에 기름 한 통을 다 쏟았다. 큰 냄비로 사흘 동안 튀김을 하고 거른 기름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레이가 옛날 다른 배에서 그렇게 하는 걸 봤다고 했고, 조리장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름통을 들고 나왔다. 버리려던 거니까 상관없다고 했다. 그러다 계단을 내려가며 아쉬운 듯 덧붙였다. 사실은 내일 저녁 전 부치려고 남긴 거였다.

그 기름이 뒤 갑판 철판에 얇게 퍼져 있었다. 난간을 넘은 사람은 등으로 떨어졌고, 그대로 미끄러져 망루 기둥에 옆구리를 부딪쳤다. 현준은 호스를 놓았다. 호스가 갑판 위에서 혼자 날뛰며 물을 뿌렸다. 현준은 그 사람 위로 몸을 던졌다.

둘이 같이 기름 위에서 굴렀다. 현준의 손이 상대의 손목을 잡았다가 미끄러졌다. 상대의 손에 무언가 쥐어져 있었다. 총은 아니었다. 짧은 칼이었다. 현준은 그 칼 쥔 손목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해병대에서 두 해 동안 몸에 넣은 순서대로 무릎으로 상대의 팔꿈치를 누르고, 손목을 꺾었다. 칼이 철판 위로 미끄러져 배수구 쪽으로 사라졌다.

상대가 머리를 치켜들어 현준의 귀를 물었다. 염소에게 물렸던 바로 그 귀였다. 현준은 비명을 지르며 상대의 턱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그 순간 붉은 신호탄 빛이 상대의 얼굴을 비췄다. 어렸다. 현준보다 어렸거나 비슷했다. 수염이 듬성듬성했고, 눈이 너무 커져 있었다. 겁이 난 눈이었다. 해병대 훈련소 첫날 밤 거울 속에서 본 자기 눈과 같았다.

“가만있어! 가만있으라고!”

현준은 한국어로 소리쳤다. 상대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몸에서 힘이 빠졌다. 마르코가 미끄러지며 달려와 상대의 두 손을 등 뒤로 모아 묶었다. 쾌속정을 묶는 데 쓰던 플라스틱 끈이었다.

“현준, 귀 괜찮아?”

“모르겠습니다. 오늘만 두 번 물렸습니다.”

“너 귀가 맛있나 봐.”

현준은 웃을 수가 없었다. 숨이 목까지 차 있었다. 묶인 사람이 고개를 들어 현준을 봤다. 입술이 터져 피가 났다. 그가 무언가 말했다. 이름 같았다. 자말. 그는 자기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왜 그 순간 이름을 말했는지 현준은 끝내 알지 못했다.

*

안전실 안은 덥고 어두웠다. 비상등 하나가 천장에서 노란빛을 흘렸고, 선원 열다섯과 하산과 유수프가 그 빛 아래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김치 냄새와 땀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였다. 바깥에서 무언가 쿵쿵 울릴 때마다 다들 천장을 올려다봤다.

오하은은 유수프 다리의 붕대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었다. 붕대가 또 젖어 왔다. 계단을 업혀 내려오면서 상처가 벌어졌다. 하은은 지혈 도구 가방을 찾았다. 없었다. 병실 침대 밑에 두고 왔다. 하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제가 갔다 올게요.”

하은이 일어서자 갑판장 레이가 그 어깨를 눌러 앉혔다.

“병실은 이층 끝이야. 어두운 데서 길은 내가 더 잘 알아. 이 배만 열두 해 탔어. 눈 감고도 다녀.”

“갑판장님, 안전실 문은 열면 안 돼요.”

“열고 바로 닫아. 조리장님이 지켜.”

조리장 엄달수가 문 손잡이를 쥐었다. 그는 레이를 한참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손바닥 하나만큼 열렸고, 레이가 그 틈으로 빠져나갔고, 문이 닫혔다. 철컥 소리가 났다.

일 분이 지났다. 이 분이 지났다. 바깥에서 짧고 마른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배 옆구리 쪽이었다. 그다음에 무언가 무거운 것이 철 계단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하은은 일어섰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조리장이 문을 열었다. 하은은 지혈 도구 대신 그 어둠으로 들어갔다.

*

계단은 칠흑이었다. 하은은 손으로 벽을 짚으며 올라갔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서 발끝에 무언가 물컹한 것이 닿았다. 사람이었다. 레이가 계단참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손을 대자 왼쪽 어깨가 뜨겁고 끈적했다. 배 옆구리를 뚫고 들어온 무언가가 그 어깨를 때렸다. 레이는 지혈 도구 가방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가져왔어, 하은 씨.”

레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가벼웠다.

“근데 내 팔이 좀 죽었어. 이번엔 진짜로.”

하은은 그를 혼자 끌어 내릴 수 없었다. 무전기는 선교에 있었다. 소리를 지르면 바깥의 해적이 먼저 들을지도 몰랐다. 하은은 목에 걸린 쇠붙이를 손으로 쥐었다. 현준의 땀이 식은 지 오래였는데, 손안에서 그 쇠가 따뜻했다.

하은은 호루라기를 불었다. 한 번, 길게. 그리고 짧게 세 번.

*

뒤 갑판에서 현준은 그 소리를 들었다.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와 마르코가 무전기에 대고 외치는 소리 사이로, 그 소리 하나만 칼처럼 들어왔다. 현준은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았다. 스물세 해 동안 영도 횟집 벽에 걸려 있던 그 쇠가 내는 소리였다.

“마르코, 이 사람 좀!”

현준은 자말을 마르코에게 넘기고 선실 건물 쪽으로 뛰었다. 기름 때문에 두 번 넘어졌다. 세 번째에 일어나서 계단 문을 열었다.

계단 안은 바깥보다 더 어두웠다. 현준은 소리 나는 쪽으로 손을 더듬어 올라갔다. 호루라기가 다시 울렸다. 한 번 길게, 짧게 세 번. 바로 위였다. 현준의 손끝에 사람의 머리카락이 닿았다.

“하은 씨?”

“여기요. 갑판장님이 다쳤어요. 어깨요.”

현준은 무릎을 꿇고 레이의 겨드랑이 밑에 팔을 넣었다. 무거웠다. 레이는 문을 꽉 채우는 덩치였다. 현준은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레이를 어깨에 걸쳐 일으켰다. 오늘 밤 그가 어깨에 둘러멘 것은 염소 한 마리와 사람 하나였다. 사람이 훨씬 무거웠다. 하은이 지혈 도구 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 레이의 어깨 상처를 눌렀다. 셋은 한 칸씩 계단을 내려갔다. 레이가 내려가는 내내 필리핀 말로 성인들의 이름을 불렀다. 지난번보다 둘이 늘어 있었다.

안전실 문 앞에서 하은이 문을 세 번 두드렸다. 조리장이 문을 열었다. 그는 레이를 보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레이의 성한 손을 잡았다. 기름 냄새 밴 손이었다. 레이가 그 손을 꽉 쥐었다.

“조리장님, 나 이제 진짜 환자야. 죽 반 그릇 말고 한 그릇.”

“두 그릇 준다. 김치도 얹어서.”

“김치는 하루 한 접시라며.”

“오늘은 내가 정한다.”

조리장의 목소리가 끝에서 갈라졌다. 문이 다시 닫혔다. 현준은 닫힌 강철 문을 손바닥으로 한 번 짚고,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

선교 날개에 엎드린 노준후 팀장은 같은 시각 왼쪽 쾌속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쾌속정은 한바다호 옆구리 중간쯤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 뱃머리에 오마르가 서 있었다. 머리에 두른 하얀 천이 바람에 날렸다. 그는 위를 올려다봤다. 팀장의 총구와 오마르의 눈이 한 줄로 이어졌다. 그 사이에 이십 미터의 어둠이 있었다.

오마르가 두 손을 들었다. 손바닥을 펴서 위로 보였다. 그리고 큰 소리로 영어를 외쳤다. 노 팀장은 그 영어를 알아들었다.

“자말을 돌려 달라! 아직 어린애다!”

“가져가려면 사다리를 치워라.”

팀장이 영어로 맞받았다. 짧은 영어였다. 오마르는 고개를 저었다.

“사다리를 치우면 너희가 그 애를 해군에 넘긴다. 그 애는 감옥에서 죽는다.”

“배에 쏜 건 너희다. 우리 사람이 다쳤다.”

노 팀장은 그 말을 하면서 자기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들었다. 무전기에서 서아가 방금 알려 준 소식이었다. 갑판장이 계단에서 다쳤다고. 오마르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뒤를 돌아봤다. 쾌속정 뒤에 앉은 남자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 그 남자의 총구가 아직 뜨거워 보였다. 오마르가 그 남자에게 무언가 날카롭게 말했다. 남자가 총을 내렸다.

“그건 내가 시킨 게 아니다.”

“너희는 늘 그렇게 말하지.”

둘은 이십 미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봤다. 그때 배가 기울었다.

*

선교에서 박영진 선장은 조타수를 밀어내고 키를 직접 잡았다. 1항사 고병철이 소리쳤다. 선장님, 지금 꺾으면 화물이…… 선장은 듣지 않았다. 그는 키를 왼쪽 끝까지 돌렸다. 2만 톤의 철이 바다 위에서 몸을 틀었다. 배 꼬리가 크게 휘둘리면서 그 뒤로 산만 한 물결이 일어났다.

옆구리에 붙어 있던 쾌속정이 그 물결을 정면으로 받았다. 쾌속정은 물결 위로 들렸다가, 반쯤 옆으로 누웠다가, 그대로 뒤집혔다. 하얀 배 바닥이 별빛 아래 드러났다. 바깥 엔진 두 개가 허공에서 헛돌다가 멈췄다.

노 팀장은 난간에 매달려 아래를 봤다. 뒤집힌 배 둘레의 초록빛 물결 속에서 하얀 천 하나가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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