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53자)

불을 끈 배

전역하고 취직한 곳이 해적 잡는 회사였다 · 윤재하

누르의 갑판은 오마르가 기억하는 것보다 많이 기울어 있었다. 하산이 밤새 몰고 도망치느라 엔진을 너무 돌렸고, 뱃바닥 이음새 하나가 벌어져 물이 스몄다. 오마르의 부하 둘이 깡통으로 물을 퍼내고 있었다. 깡통이 물을 긁는 소리가 해 질 녘 내내 이어졌다.

오마르는 돛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대추야자 봉지를 열었다. 대추야자는 사막 쪽 사람들이 말려 두고 먹는 열매로, 달고 끈적했다. 이틀은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런데 봉지 안에 씨만 열한 개 들어 있었다.

“누가 먹었냐?”

부하들이 서로를 봤다. 엔진 담당 아브디가 손가락을 핥다가 멈췄다. 오마르는 봉지를 뒤집어 씨를 바다에 털었다.

“아브디, 오늘 밤 네 엔진이 서면 너를 저 한국 배 염소랑 바꾼다.”

“염소가 저보다 무겁습니다.”

“그래서 바꾸자는 거다.”

부하 몇이 웃었다. 오마르는 웃지 않았다. 그는 농담을 할 때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웃지 않아야 사람들이 웃었다.

*

자말은 뱃머리에 혼자 앉아 있었다. 스물하나였고, 오마르의 마을에서 가장 어린 축이었다. 하산의 아들 유수프를 쏜 사람이 그였다. 그날 밤 하산이 누르를 몰고 도망치려 하자 자말이 뒤에서 쐈다. 오마르는 그때 쾌속정 위에 있었고, 총소리를 듣고 돌아왔을 때는 누르가 이미 어둠 속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오마르는 뱃머리로 가서 자말 옆에 앉았다. 자말의 총이 무릎 위에 있었다. 오마르는 그 총을 손으로 눌러 갑판에 내려놓게 했다.

“오늘 밤에 너는 총을 안 든다.”

자말이 고개를 홱 돌렸다.

“왜요? 저 배에 보안 요원은 넷뿐입니다. 넷만 없애면 스물넷이 다 우리 겁니다.”

“없앤다는 게 무슨 말이냐?”

자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 오마르는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바다를 봤다.

“우리는 사람을 안 죽인다. 열다섯 해 동안 한 번도 안 죽였다. 왜인지 아냐?”

“착해서요?”

“죽은 사람은 돈을 안 낸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면 회사가 돈을 안 낸다. 해군이 온다. 해군이 오면 마을이 끝난다. 네 동생도, 내 딸도.”

“그럼 유수프는요? 그 녀석은 우리 돈 받고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네가 쐈지. 그래서 오늘 우리가 배 하나를 다시 찾느라 하루를 버렸다. 그래서 한국 배가 섰다. 우리가 쏘지 않았으면 그 배는 서지 않았을 거다.”

자말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오마르를 노려보다가 시선을 떨어뜨렸다. 오마르는 일어서면서 자말의 총을 집어 들었다.

“오늘 밤 너는 사다리만 잡는다. 사다리 잡는 손에 총은 필요 없다.”

자말이 등 뒤에서 무언가 중얼거렸다. 오마르는 들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열다섯 해 동안 그는 그런 중얼거림을 여러 번 들었다. 대개는 다음 날 아침이면 사라졌다. 사라지지 않은 사람은 마을을 떠났다.

*

해가 진 뒤 위성전화가 울렸다. 회색 남자였다. 언제나처럼 이름을 대지 않았고, 언제나처럼 종이 넘기는 소리가 먼저 났다.

“오늘 밤이다. 해군은 동쪽에 있다. 내일 아침까지는 안 온다.”

“동쪽 배는 누가 잡았지?”

“너희 옆 마을이다.”

“옆 마을은 이번 철에 배를 안 내기로 했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종이 소리가 멈췄다. 아주 짧게.

“사정이 바뀌었다. 엔진을 새로 받았다.”

오마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옆 마을에는 이번 철에 엔진을 살 돈이 없었다. 누군가 빌려준 것이다. 해군을 동쪽으로 끌어내려고, 그래서 오늘 밤 이 바다를 비우려고. 회색 남자는 체스를 두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 체스판 위에서 오마르의 마을과 옆 마을은 둘 다 졸이었다.

“의사 배를 오늘 밤 못 잡으면 쾌속정 넷은 거둬 간다. 알지?”

“안다.”

“한국 사람들 다치게 하지 마라. 다치면 값이 떨어진다.”

전화가 끊겼다. 오마르는 전화기를 한참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깡통이 물을 긁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

밤 열 시, 한바다호 선교에는 천장 등이 하나도 켜져 있지 않았다. 계기판의 붉은 숫자들이 사람들의 턱과 콧날만 따로 떼어 내 허공에 띄워 놓은 것 같았다. 박영진 선장과 1항사 고병철이 해도 양쪽에 서 있었다. 둘 사이는 해도 한 장만큼 떨어져 있었다.

“지금 내려보내시오. 선원들.”

선장이 말했다. 안전실 이야기였다.

“아직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지금 내려보내면 기관부가 엔진을 못 봅니다. 밤새 전속력으로 가려면 기관장이 엔진 옆에 있어야 합니다.”

“기관장하고 기관사 하나만 엔진실에 두시오. 엔진실은 안전실 바로 옆이오. 나머지는 지금.”

“선장님, 지금은 제 지휘입니다.”

고병철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조타수가 키를 쥔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노준후 팀장이 선교 날개에서 들어와 문 옆에 섰다. 그는 끼어들지 않고 듣기만 했다.

“1항사. 오늘 밤 저 사람들이 와서 사다리를 걸면, 갑판에 선원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사람이 인질이 되오. 인질 하나면 이 배 전체가 끝나오. 해군이 와도 손을 못 써.”

“그건 압니다. 근데 아무것도 없는데 밤새 저 강철 방에 사람을 가둬 두면, 내일 아침에 누가 배를 몹니까? 다들 피곤해서 실수합니다. 선장님은 늘 최악만 생각하십니다.”

“최악을 생각하라고 선장이 있는 거요.”

“그 최악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끌려왔잖습니까. 어선 하나 때문에.”

선교 안이 조용해졌다. 고병철이 자기 말을 들었다. 그 말이 무엇을 건드렸는지 그도 알았다. 그러나 주워 담지 않았다.

노 팀장이 문 옆에서 입을 열었다.

“1항사님. 보안팀장으로서 말씀드립니다. 안전실 대피는 지금이 맞습니다. 오늘 밤 해군 없습니다. 이 바다에 우리뿐입니다.”

고병철은 노 팀장을 노려보다가, 손목시계를 봤다. 열 시 칠 분이었다. 그는 해도를 손바닥으로 한 번 짚었다.

“열한 시. 열한 시까지 아무것도 없으면 그때.”

“열한 시면 늦소.”

“제 지휘입니다.”

선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선교 창가로 가서 어둠을 봤다. 노 팀장이 그 옆으로 갔다. 두 사람은 한동안 나란히 서 있었다. 선장이 아주 작게 말했다. 팀장, 열 시 반에 벨이 울리면 그건 내가 누른 거요. 노 팀장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열 시 삼십 분, 비상벨이 울렸다. 고병철이 선장을 돌아봤다. 선장은 벨 단추 덮개를 손가락으로 덮고 있었다. 1항사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복도에서 쏟아지는 발소리를 듣고 입을 다물었다.

선원들은 이번에는 사 분도 이 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틀 사이에 다들 계단 몇 칸에 발을 디뎌야 하는지 몸으로 외웠다. 기관장이 맨 먼저 내려갔고, 조리장 엄달수가 생수와 김치 봉지를 들고 뒤따랐다. 갑판장 레이 카스트로는 병실에서 유수프를 등에 업고 내려왔다. 하산이 아들의 다친 다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그 옆에 붙었다.

계단참에서 레이가 멈췄다.

“염소는?”

“염소는 안전실에 안 들어가.”

조리장이 계단 아래에서 소리쳤다. 하산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위를 봤다. 레이가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 염소는 괜찮아. 해적도 염소는 안 잡아 가. 염소는 몸값이 없어.”

마르코가 계단 위에서 그 말을 영어로 옮겼다. 하산은 잠깐 생각하더니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 마르코가 다시 옮겼다.

“우리 동네에선 염소 몸값이 사람보다 비싸대.”

계단에서 누가 웃었다. 레이도 웃었다. 웃다가 업은 유수프가 미끄러질 뻔해서 조리장이 그 엉덩이를 받쳤다. 줄이 다시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하은이 내려갔다. 목에 호루라기가 걸려 있었다. 안전실 강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배 바닥을 타고 뒤 갑판까지 울렸다.

뒤 갑판 망루에는 강현준과 마르코가 엎드려 있었다. 노 팀장은 선교 날개에, 변서아는 선교 안 무전기 앞에 있었다. 넷이 배의 앞뒤와 위를 나눠 맡았다. 망루 철판은 낮 동안 머금은 열기를 아직 다 뱉어 내지 못해서, 엎드린 배와 가슴이 뜨뜻했다.

“현준, 이번 항해 끝나면 연봉 받아서 뭐 해?”

“아버지 횟집 빚 갚습니다. 수족관 새로 들인 거.”

“다 갚으면?”

“모르겠습니다. 마르코는요?”

“노래방 기계 산다. 집에. 우리 엄마가 노래를 진짜 못해. 근데 진짜 좋아해. 기계가 점수 주면 엄마가 화낼 거야. 그게 보고 싶어.”

현준이 소리 죽여 웃었다. 마르코도 웃었다. 그러고는 둘 다 입을 다물었다. 배 꼬리 쪽 물결이 초록빛으로 길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을 처음 본 현준은 한참 동안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

새벽 한 시 삼십 분, 오마르는 쾌속정 뱃머리에 엎드려 있었다. 엔진은 가장 낮게 돌렸다. 바깥 엔진 두 개가 물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배 바닥을 타고 가슴으로 올라왔다. 왼쪽 오백 미터 밖에 둘째 쾌속정이, 오른쪽에 셋째 쾌속정이 같은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다. 셋 다 불이 없었다.

한바다호도 불이 없었다. 큰 배가 불을 다 끄면 바다 위에 산 하나가 누워 있는 것 같았다. 그 산은 별을 가렸다. 별이 없는 모양으로 배의 모양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배는 자기를 다 감추지 못했다. 큰 배가 지나간 뒤에 물이 갈라지는 자리마다 초록빛이 일었다. 이 바다에 사는 아주 작은 생물들이 물에 휘저어지면 빛을 낸다. 오마르의 아버지는 그 빛을 바다의 눈이라고 불렀다. 큰 배 뒤로 그 빛의 길이 길게 뻗어 있었다. 오마르는 그 길을 따라갔다.

“뒤로 간다. 아브디, 엔진 서면 염소다.”

그는 무전기에 속삭였다. 셋째 쾌속정에서 아브디가 숨죽여 웃는 소리가 무전기로 넘어왔다가 끊겼다. 큰 배의 뒤쪽은 앞쪽보다 갑판이 낮았다.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물결이 거칠었지만, 그 물결만 넘으면 사다리가 닿는 높이였다. 오마르는 그 바다에서 그런 것들을 열다섯 해 동안 배웠다.

자말이 사다리를 끌어안고 엎드려 있었다. 오마르가 총을 거둬 간 뒤로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다리 끝 쇠갈고리가 별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배의 꼬리가 가까워졌다. 초록빛 물결이 쾌속정 뱃머리를 때렸고, 바닷물이 오마르의 얼굴로 쏟아졌다. 짰다. 아버지 배에서 맞던 물과 맛이 같았다. 그 위로 철판 냄새가 섞였다. 큰 배의 냄새였다.

오마르는 손을 들었다. 엔진이 한 번 크게 울었다. 쾌속정이 물결을 타고 솟았다. 자말이 일어서서 사다리를 들어 올렸다.

쇠갈고리가 한바다호 뒤 갑판 난간에 걸리는 소리가 났다. 짧고, 높고, 맑은 소리였다. 반쯤 감긴 철조망이 그 소리에 흔들렸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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