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78자)

십 미터

전역하고 취직한 곳이 해적 잡는 회사였다 · 윤재하

나무배는 쇠배와 흔들리는 법이 달랐다. 강현준이 밧줄 사다리 마지막 칸에서 누르의 갑판으로 발을 내리는 순간, 발밑 널빤지가 한 번 가라앉았다가 옆으로 비틀리며 올라왔다. 현준은 무릎을 굽혀 그 흔들림을 받았다. 해병대에서 고무보트를 탈 때 배운 몸이 먼저 기억했다. 뒤따라 내려온 마르코는 그걸 기억하지 못했는지 돛대를 끌어안았다.

갑판에서는 생선 썩은 냄새와 경유 냄새가 반반 섞여 올라왔고, 그 사이에 쇠 냄새가 끼어 있었다. 쇠 냄새가 피 냄새라는 걸 현준은 누운 남자 곁에 무릎을 꿇고 나서야 알았다. 젊은 남자였다. 스물너덧쯤으로 보였다. 오른쪽 허벅지에 천이 세 겹 감겨 있었는데, 맨 바깥 천까지 검게 젖어 있었다. 얼굴은 잿빛이었고 입술이 갈라져 있었다. 그래도 눈을 떴다. 현준을 보더니 뭐라고 중얼거렸다.

“유수프. 이름이 유수프래.”

마르코가 옮겼다. 아버지 하산이 아들 머리맡에 앉아 아들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고 있었다. 예순 가까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손등에 소금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다.

“위로 올려야 돼. 사다리로는 안 된다.”

무전기에서 노준후 팀장의 목소리가 났다. 팀장은 한바다호 뒤 갑판 난간에 서서 남쪽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갑판장 레이가 갑판 크레인을 돌리고 있었다. 크레인 끝에 짐 싣는 그물 대신 쇠로 짠 들것 바구니가 매달려 내려왔다. 하은이 새벽에 병실 창고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현준과 마르코는 유수프를 들것에 눕혔다. 하산이 아들의 다리를 받쳤다. 유수프가 이를 악물고 소리를 삼켰다. 현준은 끈을 가슴과 무릎에 둘러 묶고, 머리 쪽 고리를 크레인 갈고리에 걸었다.

“올려요!”

들것이 떠올랐다. 누르의 갑판에서 한바다호 갑판까지는 아파트 이층 높이였다. 들것이 그 높이를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바람에 바구니가 조금씩 돌았다. 하산이 아래에서 두 손을 모으고 그 바구니를 올려다봤다.

그때 하산이 현준의 팔을 잡았다. 그러고는 배 앞쪽 돛대 밑을 가리키며 빠르게 말했다. 현준이 그쪽을 봤다. 돛대 밑 그물 더미 속에서 흰 염소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뭐라는데요?”

“염소도 데려가야 된대.”

“지금요?”

“저 염소 젖으로 유수프를 키웠대. 저 염소 아니면 자기도 안 올라간대.”

무전기에서 변서아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현준 씨, 남쪽 물보라 두 줄, 사 킬로미터. 빨라요.

현준은 그물 더미로 뛰어갔다. 염소는 현준을 보자 뒷걸음질 쳤다. 현준은 염소의 앞다리 둘을 한 손에, 뒷다리 둘을 다른 손에 쥐고 어깨에 둘러멨다. 영도 시장에서 염소 잡는 아저씨가 하던 대로였다. 염소가 귓가에서 울었다. 냄새가 지독했다. 현준은 그 냄새를 어깨에 얹은 채 밧줄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현준, 너 지금 진짜 멋있어. 사진 찍고 싶어.”

“마르코, 하산 아저씨 먼저 올려요!”

“알았어. 근데 염소가 너 귀 먹는다.”

염소가 정말로 현준의 귓바퀴를 물었다. 현준은 비명을 반만 지르고 계속 올라갔다. 난간 위에서 조리장 엄달수가 두 팔을 내밀어 염소를 받았다. 조리장은 염소 얼굴을 한참 보더니 말했다. 이건 국 끓이면 안 되겠네, 눈이 너무 착해.

*

쾌속정 두 척은 한바다호에서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엔진 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천천히, 사람이 걸어오는 속도로 누르 쪽으로 다가왔다. 한바다호와 누르와 쾌속정이 삼각형을 이뤘다. 누르의 갑판에는 아직 현준 혼자 남아 있었다. 마르코는 하산을 사다리 위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현준, 올라와. 지금.”

노 팀장의 목소리였다. 현준은 사다리 쪽으로 한 걸음 옮기다가 멈췄다. 앞선 쾌속정의 뱃머리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말랐다. 머리에 하얀 천을 둘렀고, 낡은 군복 바지에 맨발이었다. 그는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총은 뒤에 앉은 젊은 남자들이 들고 있었다. 그들의 총구가 한바다호 난간을 향했다. 한바다호 난간 위에서는 노 팀장과 마르코의 총구가 쾌속정을 향했다. 그 사이에 현준이 있었다.

쾌속정이 누르와 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앞에 선 남자가 입을 열었다. 느리고 정확한 영어였다. 무전기에서 듣던 그 목소리였다. 현준은 그 문장들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위에서 마르코가 무전기로 옮겨 줬다.

“그 배는 내 거다. 그 두 사람은 나한테 빚이 있다.”

“무슨 빚입니까?”

현준이 한국어로 물었다. 마르코가 영어로 옮겼다. 오마르가 대답했다.

“그 배로 내 사람들을 바다에 데려다주기로 했다. 돈을 받았다. 밤에 도망쳤다. 그리고 내 사람 하나가 화가 나서 쐈다. 그건 내가 시킨 게 아니다. 그래도 내 사람이다.”

오마르가 현준을 봤다. 눈동자가 이상하게 차분했다. 화가 나 있지 않았다. 지쳐 있었다.

“너구나. 무전기에서 집에 가라고 한 애.”

마르코가 옮기다가 웃음을 참았다. 현준은 귀가 달아올랐다. 염소에게 물린 귀였다.

“사람은 데려갑니다.”

현준이 말했다. 오마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데려가라. 다친 사람은 의사 배가 데려가는 게 맞다. 배는 두고 가라.”

“배는 하산 아저씨 겁니다.”

“그 배에 내 엔진이 달려 있다. 내 기름이 들어 있다. 하산은 그걸 알고 팔았다.”

현준은 할 말이 없었다. 위에서 노 팀장의 목소리가 무전기로 짧게 왔다. 배는 두고 와. 현준은 사다리를 잡았다. 그때 오마르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마르코가 옮기기 전에 한참 뜸을 들였다.

“너희 배들은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 아버지 배가 가라앉을 때도 큰 배가 지나갔다. 불을 다 켜고. 서지 않았다.”

오마르는 한바다호의 높은 선교를 올려다봤다. 금 간 유리창 위로 햇빛이 부서졌다.

“오늘은 섰군.”

“예. 섰습니다.”

현준이 말했다. 그러고는 영어로 한 문장을 더 붙였다. 생각나는 단어를 다 끌어모았다.

“We are four. But we are… twenty-four.”

오마르가 처음으로 웃었다. 소리 내어 웃었다. 뒤에 앉은 젊은 남자들도 따라 웃었다. 그 웃음은 길지 않았다.

“알았다, 스물넷. 밤에 다시 온다. 그때는 배를 가지러 오는 게 아니다.”

*

누르는 쾌속정에 묶여 남쪽으로 끌려갔다. 하산은 한바다호 난간에 서서 그 배가 수평선의 점이 될 때까지 봤다. 그는 울지 않았다. 손등의 소금을 손톱으로 긁어 내기만 했다. 열 번, 스무 번. 염소가 그의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현준은 하산 옆에 서 있다가,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서 있었다.

“저 배 서른 해 탔대.”

마르코가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 배였대. 아버지의 아버지 배였고.”

병실에서는 유수프가 하은과 조리장 사이에 누워 있었다. 하은은 교재를 펴 놓고 상처를 다시 감았다. 탄알은 허벅지 바깥쪽을 뚫고 지나갔고, 큰 혈관은 비켜 간 것 같았다. 하은은 그 이상을 말할 수 없었다. 배에는 의사가 없었다. 조리장은 쌀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식혀 유수프 입에 넣었다. 유수프가 한 숟가락을 삼키고 나서 처음으로 웃었다. 조리장이 하은에게 말했다. 봐라, 먹으니까 웃잖아.

염소는 병실 문 앞 난간에 묶였다. 갑판장 레이가 지나가다 염소와 눈이 마주쳤고, 염소가 레이의 작업복 소매를 씹기 시작했다. 레이는 소매를 빼내려다 포기하고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하은 씨가 내 팔 죽이고, 이제 염소가 내 옷 먹고, 오늘 나 진짜 운 없어. 그러면서도 그는 주머니에서 말린 망고 한 조각을 꺼내 염소 입에 넣어 주었다.

*

열한 시 사십 분, 박영진 선장의 이메일 함에 서울에서 보낸 편지가 들어왔다. 받는 사람은 선장과 1항사 둘이었다. 1항사 고병철이 선교 노트북으로 먼저 열었다. 그는 그 편지를 소리 내어 읽었다.

“본 항해 중 선장의 연속된 지시 불이행으로 선박 안전과 화물 운송에 중대한 위험이 생겼다고 판단함. 이 시각부터 운항 지휘를 1항사 고병철에게 맡김. 선장은 1항사의 판단을 존중할 것.”

선교 안 사람들이 고병철을 봤다. 고병철은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귀가 조금 붉었다.

“선장님, 들으셨죠.”

박영진 선장은 해도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선교 창밖을 봤다. 바다는 평평했고, 쾌속정이 사라진 남쪽 수평선에는 아지랑이가 끓었다.

“회사가 선장을 바꿀 수는 있소. 항구에서. 바다 한가운데서 선장을 내리는 건 회사 편지가 아니오.”

“그건 법 얘기고요. 저는 회사 얘기 하는 겁니다. 선장님 은퇴하시면 끝이지만 저는 이 회사에서 십오 년을 더 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1항사는 지금 뭘 하고 싶소?”

“통항로로 복귀합니다. 전속력으로. 해군 쪽으로 붙고, 다친 사람은 해군에 넘깁니다. 그리고 홍해 들머리까지 쉬지 않고 갑니다.”

선장은 한참 1항사를 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항로 복귀는 나도 하려던 거요. 조타수, 북쪽으로. 속도 올려.”

조타수가 키를 돌렸다. 배가 몸을 틀었다. 고병철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선장이 자기 지시와 같은 말을 먼저 했기 때문에, 그 지시가 누구의 것인지 아무도 정할 수 없게 되었다. 하은은 그 장면을 창가에서 보면서 숨을 참았다. 선교에 선장이 둘이었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지만 그 둘이 다른 데를 볼 날이 올 것 같았다.

*

오후 세 시 반, 변서아가 선교 문 앞에서 노 팀장을 불렀다. 해군 순찰함 워리어 셋에서 무전이 왔다. 노 팀장이 받았다. 통항로 동쪽 육십 해리에서 다른 상선 한 척이 해적에게 붙잡혔다고 했다. 해군 함정과 헬기가 그쪽으로 돌았다. 한바다호의 다친 사람을 데리러 오는 헬기는 내일 아침이 되어야 뜰 수 있다고 했다.

“내일 아침.”

노 팀장이 되뇌었다. 그사이에 밤이 하나 있었다.

해가 기울자 현준은 뒤 갑판 망루에 올라섰다. 셔츠 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다가, 하은이 망루 밑에서 올라오는 것을 봤다. 하은은 오늘 밤 처음으로 혼자 뒤쪽 견시를 맡게 되었다. 견시는 배 둘레를 눈과 귀로 지키는 일이었다. 하은은 쌍안경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하고 있었다.

현준은 목에서 호루라기를 벗어 하은에게 내밀었다.

“뭐 보이면 이거 부세요. 무전기보다 빨라요.”

“이거 아버님 거잖아요.”

“예. 그래서 잘 들립니다.”

하은은 호루라기를 목에 걸었다. 쇠가 가슴에 닿자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현준의 땀이 아직 덜 식어 있었다.

해가 바다에 반쯤 잠겼다. 물이 붉었다. 그 붉은 물 끝, 남쪽 수평선에서 한 줄기 하얀 물보라가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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