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214자)

지나쳐라

전역하고 취직한 곳이 해적 잡는 회사였다 · 윤재하

신호음이 네 번째 울릴 때 윤기석이 전화를 받았다. 서울 집 침실이었을 것이다. 목소리에 잠이 반쯤 묻어 있었는데, 박영진 선장이 두 문장을 말하는 사이에 잠이 다 빠져나갔다.

“통항로 남쪽 십팔 해리라고요?”

“그렇소. 어선이고, 사람이 피를 흘린다고 하오. 해군 함정은 칠십 해리 밖에 있소. 헬기는 연료 넣는 중이라 새벽 네 시가 넘어야 뜬다고 하고. 우리가 가장 가깝소.”

수화기 저편에서 무언가 넘기는 소리가 났다. 본부장은 잠옷 바람으로도 서류를 찾는 사람이었다.

“선장님, 그 해역은 통항로 밖입니다. 보험 약관에 통항로를 벗어나면 전쟁 위험 보험 적용이 안 된다고 돼 있어요. 그리고 그거, 미끼일 수 있습니다. 해적이 어선으로 조난 신고를 하고 다가온 배를 잡는 수법, 선장님도 아시잖아요.”

“아오. 그래서 묻는 거요.”

“묻지 마세요. 지나치세요. 해군에 위치 넘기시고, 선단 그대로 가세요. 지금 이메일로 지시서 보내겠습니다. 정식으로.”

“본부장, 저쪽에 사람이…….”

“선장님. 저희 배에도 사람이 스물넷 있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일 분 뒤 선교 프린터가 종이 한 장을 뱉어 냈다. 하은이 그 종이를 집어 선장에게 건넸다. 맨 위 굵은 글씨가 「구조 항로 이탈 금지 지시」였다. 선장은 그 종이를 반으로 접어 해도 위에 올려놓았다. 접힌 종이가 해도 위 연필 점 하나를 가렸다.

*

강현준은 뒤 갑판으로 내려가는 노준후 팀장을 쫓아갔다. 배는 불을 다 꺼서 계단 손잡이도 손으로 더듬어 잡아야 했다. 바다 쪽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올라왔다. 앞서가는 두 배의 꼬리 물결이 별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팀장님, 가야 됩니다.”

노 팀장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뒤 갑판 망루에 올라서서 야간 투시경을 들고 남쪽 바다를 봤다. 십팔 해리 밖은 투시경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그쪽을 봤다.

“안 된다.”

“사람이 피 흘린다잖습니까.”

“미끼일 수 있다. 우리가 남쪽으로 돌면 마리스 스텔라랑 노던 윈드 뒤가 빈다. 저 두 배 사람 서른넷이 맨몸이 돼. 우리 배 사람 스물넷도 통항로 밖으로 끌려가고. 우리 넷이 그걸 다 막을 수 있냐?”

“그럼 저 사람들은요?”

“해군이 간다.”

“네 시간 뒤에요.”

“어.”

현준은 망루 철판을 손바닥으로 쳤다. 손바닥이 아팠다. 그 소리에 마르코가 아래에서 고개를 들었다. 변서아도 무전기를 귀에 댄 채 계단 위로 올라왔다. 서아의 무전기에서는 아직 그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영어가 아닌 말로 같은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짧고 높은, 어린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유수프래요.”

서아가 말했다. 아무도 그 이름을 몰랐다. 그래도 서아는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말했다.

“팀장님은 그 소리가 안 들리십니까?”

현준이 소리쳤다. 노 팀장이 투시경을 내렸다. 어둠 속에서 팀장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만 들렸다. 평소보다 문장이 길었다.

“여섯 해 전에 들었다. 이 바다에서. 다른 배였고 다른 회사였어. 어선 하나가 똑같이 불렀다. 회사가 지나치라고 했고 나는 지나쳤다. 선장한테 가자고 안 했어. 계약서에 그렇게 돼 있었으니까. 다음 날 아침에 해군이 그 어선을 찾았다. 뒤집혀 있었다. 안에 아무도 없었다.”

현준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마르코가 아래에서 올라와 현준 옆에 섰다. 서아는 무전기 볼륨을 줄였다.

“그래서 후회하냐고 물으면 한다. 근데 오늘 다시 그 자리에 서도 나는 지나칠 수 있어. 그게 이 일이야. 넷이 스물넷하고 서른넷을 지키는 일. 하나를 고르면 하나를 버리는 일.”

팀장은 투시경을 현준 가슴에 밀어 줬다.

“너는 군대 아니야. 이제 여기선 아무도 너한테 명령 안 해. 그러니까 네가 고르면 네가 지는 거다. 알지?”

현준은 투시경을 받아 들었다. 무겁지 않았는데 손이 내려갔다.

*

선교 문은 열려 있었다. 현준은 문턱 앞에 섰다. 말라카 해협의 밤 이후로 그 문턱을 넘은 적이 없었다. 안에서는 선장이 해도 앞에 서 있었고, 1항사 고병철이 그 옆에서 접힌 지시서를 다시 펴 놓고 있었다. 하은과 2항사는 창가에 붙어 있었다.

현준은 문턱을 넘었다.

“선장님.”

고병철이 먼저 돌아봤다.

“자네 여기 출입 금지야. 나가.”

선장은 돌아보지 않았다. 현준은 나가지 않았다. 셔츠 안에서 호루라기를 꺼냈다. 끈이 땀에 젖어 목덜미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나가겠습니다.”

“나가라니까.”

“들어 보지.”

선장이 말했다. 고병철이 입을 다물었다. 현준은 해도 옆 탁자 위에 호루라기를 올려놓았다. 쇠가 나무에 닿는 소리가 작게 났다.

“저희 아버지가 스물아홉에 원양어선을 타다가 인도양에서 배가 가라앉았습니다. 이틀을 물에 떠 있었습니다. 둘째 날 밤에 화물선 한 척이 지나갔는데, 아버지가 이걸 불었습니다. 그 배 견시가 소리를 듣고 배를 돌렸답니다. 아버지는 그 얘기를 술 먹어도 끝까지 안 합니다. 거기까지만 합니다. 그 배가 돌아서 왔다고. 그게 다입니다.”

선교 안이 조용했다. 레이더가 도는 낮은 소리만 났다. 무전기에서는 그 아버지의 목소리가 여전히 같은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저는 그 배가 안 돌았으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배가 되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연봉 보고 왔습니다. 근데 지금은, 저 소리가 우리 아버지 목소리 같습니다.”

선장은 호루라기를 내려다봤다. 오래 봤다. 그러다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 엄지로 둥글게 닳은 모서리를 쓸었다. 그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 화물선 이름이 뭐였나?”

“모릅니다. 아버지가 말을 안 합니다.”

선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호루라기를 현준 손바닥에 다시 올려놓고 해도 쪽으로 돌아섰다. 접힌 지시서를 손가락으로 집어 해도 밖으로 밀어냈다. 연필 점이 다시 드러났다.

“조타수, 키 왼쪽 이십. 남쪽으로.”

“선장님!”

고병철이 소리쳤다. 선장은 그를 보지 않았다.

“1항사, 일지 펴. 스물세 시 오십이 분, 조난 어선 구조를 위해 선장 판단으로 통항로를 벗어남. 그대로 적어.”

“저는 못 적습니다. 회사 지시서가 있습니다.”

“그럼 내가 적지.”

선장이 볼펜을 집어 들었다. 그 손은 떨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무전기를 들어 앞서가는 두 배와 해군에게 차례로 알렸다. 한바다호는 선단을 떠나 남쪽으로 간다. 마리스 스텔라와 노던 윈드는 그대로 통항로를 따라 해군 함정 쪽으로 붙어라. 노던 윈드의 보안 요원 둘이 마리스 스텔라 쪽을 봐 달라.

무전기에서 마리스 스텔라 선장이 영어로 대답했다. 마르코가 문 밖에서 옮겨 줬다. 신의 가호를, 그리고 김치는 꼭 남겨 두라고.

노 팀장이 선교 문턱에 서 있었다. 언제 올라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는 선장 뒤에 서서 한마디만 했다.

“선장님 배입니다.”

그리고 위성전화를 집어 들었다. 서울을 눌렀다. 이번에는 본부장이 신호음 한 번에 받았다. 노 팀장은 짧게 말했다. 보안팀장으로서 구조 항로 이탈에 동의한다, 책임은 해든가드가 진다. 수화기 저편에서 목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팀장은 끝까지 들었다. 마지막에 대답했다.

“예. 이번 항해 끝나고 해지하십시오.”

그는 전화를 내려놓았다. 서아가 그를 봤다. 팀장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등록금 고지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배에서 서아와 현준 둘뿐이었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새벽 세 시, 선실 건물 이층 끝의 병실에 불이 켜졌다. 침대 하나, 약장 하나, 벽에 붙은 응급 처치 그림표가 전부인 방이었다. 배에는 의사가 없었다. 선원 가운데 응급 처치 교육을 제일 최근에 받은 사람이 실습 항해사 오하은이었다. 하은은 해양대에서 받은 교재를 펴 놓고, 갑판장 레이 카스트로의 팔에 지혈대를 감았다.

“아파, 아파, 아파!”

“아직 안 조였어요.”

“감는 것만 봐도 아파!”

레이는 쉰이었고 이 배의 갑판장이었다. 덩치는 문을 꽉 채웠는데 주사 바늘은 보기만 해도 고개를 돌렸다. 하은이 지혈대를 한 칸 조이자 그는 필리핀 말로 성인 셋의 이름을 불렀다.

문이 열리고 조리장 엄달수가 큰 냄비를 들고 들어왔다. 뚜껑 틈으로 김이 올라왔고, 참기름 냄새가 병실 소독약 냄새를 한 번에 덮었다.

“그건 뭡니까?”

“죽이다. 쌀죽.”

“조리장님, 오는 사람은 총 맞은 사람이에요.”

“총 맞으면 피 나고, 피 나면 배고프다. 내가 서른다섯 해 배 타면서 다친 놈 다 먹여 봤다. 안 먹으면 못 일어나.”

하은은 반박할 말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레이가 지혈대를 찬 팔을 들어 냄비 쪽으로 손을 뻗었다. 조리장이 국자로 그 손등을 쳤다.

“환자 거다.”

“나도 환자야. 방금 하은이가 내 팔 죽였어.”

“그럼 너는 반 그릇.”

하은이 교재 위에 엎드려 웃었다. 세 시간 뒤 남쪽 바다에 무엇이 떠 있을지 그 방 안의 누구도 몰랐다. 그래도 냄비는 계속 김을 올렸다.

*

새벽 다섯 시 십 분, 수평선이 회색으로 갈라졌다. 변서아는 뒤 갑판에서 손바닥만 한 드론을 날렸다. 드론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금방 바람에 묻혔다. 그녀의 무릎 위 화면에 바다가 펼쳐졌다. 남쪽으로 이 해리, 물결 위에 나무로 짠 배 한 척이 비스듬히 떠 있었다.

다우였다. 아라비아 바다 쪽 사람들이 오래 써 온 나무 돛배인데, 요즘은 돛 대신 엔진을 달고 고기를 잡는다. 그 배는 돛대만 서 있고 돛은 없었다. 뱃머리에 노란 페인트로 쓴 글자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갑판 위에 늙은 남자 하나가 서서 두 팔을 머리 위로 엇갈려 흔들고 있었다. 그 발치에 젊은 남자 하나가 누워 있었다. 누운 남자 옆 갑판 널이 검게 젖어 있었다.

“찾았습니다.”

서아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그러고는 드론을 조금 더 남쪽으로 띄웠다. 화면 끝에서 하얀 물보라 두 줄이 보였다. 아직 멀었다. 그러나 그 물보라는 다우 쪽을 향해 일직선이었다.

한바다호가 엔진을 낮추며 다우 곁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현준은 뒤 갑판 난간에서 밧줄 사다리를 내릴 준비를 했다. 늙은 남자가 한바다호를 올려다보며 영어로 소리쳤다. 마르코가 그 말을 받아서 옮기다가, 중간에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들었다. 다시 옮겼다.

“이름은 하산. 저 배는 누르. 아들이 총에 맞았대.”

“누가 쐈는데요?”

하산이 다시 소리쳤다. 바람이 말끝을 반쯤 가져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현준도 그 이름 하나는 알아들었다.

“오마르.”

마르코가 나머지를 옮겼다.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오마르가 쫓아온대. 이 배는 오마르의 어미배였대. 쾌속정을 싣고 먼바다까지 데려다주는 배. 하산이 밤에 아들이랑 이걸 몰고 도망쳤대.”

현준은 남쪽 수평선을 봤다. 물보라 두 줄이 이제는 눈으로도 보였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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