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11자)

셋이서 가면

전역하고 취직한 곳이 해적 잡는 회사였다 · 윤재하

5월 25일 새벽 다섯 시 오십 분, 박영진 선장은 선교 왼쪽 날개에 나가 쌍안경을 눈에 댔다. 아덴만의 새벽은 붉은색보다 회색이 먼저 왔다. 하늘과 바다가 한 장의 젖은 천처럼 붙어 있다가, 천천히 가운데가 갈라지며 수평선이 생겼다. 그 수평선 위에 배 두 척의 윤곽이 떠 있었다.

하나는 몸통이 넓고 낮았다. 마리스 스텔라, 곡물이나 광석을 칸칸이 쏟아 싣는 산적화물선이었다. 배 이름을 쓴 흰 페인트가 반쯤 벗겨졌고, 굴뚝에서 나는 연기가 유난히 검었다. 선장은 그 연기만 보고도 배 나이를 맞힐 수 있었다. 스무 살은 넘었다. 다른 하나는 작고 날렵한 소형 유조선 노던 윈드였는데, 뒤 갑판에 사람 둘이 서 있었다. 보안 요원이었다.

“마리스 스텔라에는 총이 없소.”

선장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옆에서 쌍안경을 받아 든 노준후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원 열여덟, 보안 요원 없음. 최고 속도 11노트.”

“우리가 17이고.”

“예.”

두 사람은 그 숫자를 더 말하지 않았다. 둘 다 그 차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해적은 느리고 낮은 배를 고른다. 갑판이 물에서 가까울수록 사다리가 짧아도 되고, 느릴수록 따라잡기 쉽다. 마리스 스텔라는 이 바다에서 제일 좋은 표적이었다.

여섯 시 정각, 무전기에서 해군 순찰함 워리어 셋의 목소리가 나왔다. 선단은 셋이 한 줄로 간다. 속도는 가장 느린 배에 맞춘다. 마리스 스텔라가 앞, 노던 윈드가 가운데, 한바다호가 맨 뒤. 순찰함은 이 통항로 앞쪽 오십 해리를 오가며 다른 선단도 봐야 하니, 이 셋 위에는 헬기가 하루 두 번 지나간다.

“하루 두 번이면 나머지 시간은?”

하은이 물었다. 선장이 대답했다.

“우리끼리지.”

*

여덟 시 반, 선교 무전실 위성전화가 울렸다. 1항사 고병철이 먼저 받았다. 마흔하나, 회사가 내년에 선장으로 올려 줄 사람 명단 맨 위에 그 이름이 있다는 것을 배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송화기를 손으로 막고 선장을 불렀다.

“본부장님이십니다. 스피커로 돌리랍니다.”

윤기석의 목소리가 선교 천장 스피커에서 쏟아졌다. 서울은 오후 두 시 반이었다. 그 목소리 뒤로 회의실 에어컨 소리가 났다.

“선장님, 선단 얘기 들었습니다. 11노트로 가신다고요?”

“그렇소.”

“그럼 아덴만 빠지는 데 하루가 더 걸립니다. 선장님 배는 17노트 나오잖아요. 보험사 자료 보니까 15노트 넘게 달리는 배는 해적이 거의 못 붙는답니다. 혼자 빨리 빠지시는 게 더 안전합니다. 비용도 하루 이천 아끼고요.”

고병철이 옆에서 거들었다.

“선장님, 본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배는 어제 한 번 당했잖습니까. 빨리 빠지는 게 선원들한테도 좋습니다.”

선장은 고병철을 보지 않았다. 창밖 맨 앞에서 검은 연기를 뿜고 있는 마리스 스텔라를 봤다.

“우리가 빠지면 저 배는 어떻게 되오?”

스피커가 잠깐 조용했다. 윤기석이 다시 말할 때는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선장님, 저 배는 저희 배가 아닙니다. 저희가 보안팀에 돈을 드리는 건 저희 화물 지키라고 드리는 거고요. 남의 배 지키라고 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 보안팀이 맨 뒤에 있으면 해적은 뒤쪽 두 배를 못 건드리오. 앞 배까지 다 보이니까. 우리가 빠지면 저 배엔 물대포 하나 없소.”

“그건 저 배 회사가 정할 일이죠.”

“그럼 이 배는 내가 정할 일이오.”

선교 안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조타수가 키를 쥔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노 팀장은 레이더 앞에 서 있다가 선장 쪽으로 몸을 반쯤 돌렸다. 윤기석이 웃었다. 출항 날 부두에서 웃던 그 웃음이 스피커를 타고 오니 쇳소리가 섞였다.

“선장님, 이번이 마지막 항해시죠. 은퇴하실 때 회사가 드릴 공로금이 있습니다. 이사회에서 그걸 정할 때 이번 항해 기록이 올라갑니다. 일정 지연, 비용 초과, 지시 불이행. 제가 그걸 막아 드리고 싶은데요.”

선장은 대답하기 전에 선교 시계를 봤다. 여덟 시 사십일 분이었다. 그는 그 시각을 소리 내어 읽었다.

“여덟 시 사십일 분, 본부장 지시 받았고 선장이 거부했소. 1항사, 항해 일지에 그대로 적어.”

고병철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일지를 펴지 않았다.

“선장님…….”

“적으라고 했소.”

1항사가 볼펜을 들었다. 볼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선교 안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스피커 너머에서 윤기석이 짧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끊긴 다음에도 스피커에서 잡음이 몇 초 더 났다.

노 팀장이 레이더 화면에 손가락을 짚었다. 마리스 스텔라 뒤로 한바다호까지 이어지는 점 세 개가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었다. 팀장은 그 점들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셋이었다. 지킬 것이 하나에서 셋이 되었다.

*

열 시가 조금 넘어서 헬기가 왔다. 해군 순찰함에서 뜬 회색 헬기가 선단 위를 낮게 한 바퀴 돌았고, 프로펠러 바람이 갑판의 먼지를 한꺼번에 쓸어 갔다. 강현준은 뒤 갑판에서 손을 흔들었다. 헬기 문에 앉은 사람이 손을 흔들어 답했다. 헬기는 삼 분 만에 북쪽으로 사라졌다. 프로펠러 소리가 귀에서 빠져나가자 바다가 갑자기 더 넓어졌다.

“다음은 오후 네 시래요.”

무전기에서 서아가 말했다. 현준은 손목시계를 봤다. 여섯 시간이었다.

그 여섯 시간 중 첫 한 시간에 1항사 고병철이 뒤 갑판으로 내려왔다. 그는 그늘에 기대 담배를 꺼냈다가, 노 팀장이 끊었다는 말을 들었는지 도로 넣었다. 그리고 현준 옆에 나란히 서서 바다를 봤다.

“강현준 씨, 부두에서 본부장님이랑 사진 찍었지?”

“예.”

“본부장님이 자네 얘기 하시더라. 현장을 아는 젊은 친구라고. 해든가드랑 다음 계약할 때 자네 이름을 넣고 싶다고.”

현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1항사는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선장님은 이번이 마지막이야. 은퇴하시면 끝이지. 근데 자네랑 나는 이 바닥에서 계속 밥 먹어야 하잖아. 노 팀장한테 한마디만 해 줘. 혼자 빨리 빠지는 게 낫다고. 팀장이 선장님한테 그 말 하면 선장님도 듣는다.”

“그게 맞는 말이면 1항사님이 직접 하시면 안 됩니까?”

고병철이 현준을 봤다. 웃는 얼굴이었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현준은 그 눈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났다. 부두에서 본부장이 선장을 볼 때 그 눈이었다.

“자네, 선교 출입 금지지?”

“예.”

“그거 내가 풀어 줄 수도 있어.”

“괜찮습니다.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

1항사는 난간을 손바닥으로 두 번 치고 올라갔다. 뜨거운 철판을 맨손으로 쳤는지 계단을 오르며 손을 털었다. 현준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목에 건 호루라기를 셔츠 안으로 밀어 넣었다. 땀에 젖은 쇠가 가슴에 차갑게 붙었다.

*

11노트는 지루했다. 한낮의 아덴만은 바람이 죽었고, 햇빛이 갑판 철판을 데워서 맨손으로 난간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강현준은 뒤 갑판 그늘에서 장갑을 낀 채 망을 봤다. 마르코는 그 옆에서 무전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무전기에서는 앞서가는 마리스 스텔라의 선원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이따금 새어 나왔다.

“저 배 조리장이 내 사촌이야.”

“진짜요?”

“필리핀 배 타는 사람 다 사촌이야. 사촌 아니면 사촌의 사촌.”

무전기에서 그 사촌이 마르코를 불렀다. 타갈로그어로 한참 떠들다가 마지막에 한국어 한 단어를 또박또박 말했다. 김치.

“뭐랍니까?”

“한국 배 김치가 맛있다고 소문났대. 아덴 빠지고 항구에서 만나면 한 통만 달래. 대신 망고 한 상자 준대.”

저녁 식당에서 그 거래가 조리장 엄달수 앞에 올라갔다. 조리장은 국자를 식탁에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김치 한 통이면 열여섯 접시다. 망고 한 상자로는 안 되지.”

“두 상자.”

마르코가 말했다.

“노래 한 곡 붙이고.”

조리장이 눈썹을 올렸다. 마르코가 의자 위에 올라가 한국 트로트를 불렀다. 가사가 반은 틀렸는데 꺾는 데는 다 맞았다. 기관장이 숟가락으로 박자를 쳤다. 조리장은 끝까지 듣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모자라다. 하나 더.”

모두의 눈이 현준에게 갔다. 노래도 칼질도 이미 써먹은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현준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비밀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해 봐.”

“해병대 수료식 때 엄마보다 제가 더 많이 울었습니다. 엄마는 안 울었습니다. 저만 울었습니다. 엄마가 제 얼굴 닦아 줬습니다.”

식당이 잠깐 조용했다가 무너졌다. 기관장이 식탁을 치며 웃었고, 레이가 의자에서 미끄러졌다. 조리장은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웃었다.

“좋다. 한 통 준다. 망고는 내 거다.”

변서아가 식탁 끝에서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화면에 녹음 중이라는 붉은 점이 떠 있었다.

*

밤 열한 시 이십 분, 서아는 선교 무전기 앞에 앉아 있었다. 배는 불을 다 끈 채였다. 레이더 화면의 초록빛만 그녀의 얼굴을 아래에서 비췄다. 2항사 문재혁과 하은은 창가에서 쌍안경으로 앞서가는 두 배의 희미한 꼬리 물결을 보고 있었다. 이번 당직에는 선장도 와 있었다. 그는 낮에 1항사가 쓴 일지를 한 번 펴 봤다가 덮었다.

16번 채널은 밤새 잡음이 많았다. 먼 데서 누가 기침하는 것 같은 잡음, 물 끓는 것 같은 잡음. 서아는 그 잡음들의 결을 알았다. 그런데 열한 시 이십일 분, 그 결 사이에 다른 것이 섞였다. 사람 목소리였다. 숨이 차서 끊기는 영어였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어선 누르. 엔진, 끝났다. 아들이, 피가, 많다. 그들이, 온다.”

서아는 등을 세우고 헤드폰을 귀에 눌렀다. 목소리가 위치를 불렀다. 숫자를 두 번 틀리고 세 번째에 제대로 불렀다. 그녀는 그 숫자를 받아 적어 하은에게 내밀었다. 하은이 해도 위에 연필로 점을 찍었다. 통항로에서 남쪽으로 십팔 해리, 쾌속정이 오는 해안 쪽이었다.

“선장님.”

서아가 불렀다. 선장은 이미 해도 앞에 와 있었다. 그는 연필 점과 레이더의 세 점을 번갈아 봤다. 무전기에서 그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영어가 아니었다. 서아가 모르는 말이었는데, 한 단어가 계속 되풀이되었다. 이름 같았다. 어린 사람을 부르는 것 같은, 짧고 높은 이름이었다.

선교 문이 열리고 노 팀장이 들어섰다. 그 뒤에 현준이 따라 들어오다가 문턱에서 멈췄다. 선장의 선교 출입 금지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현준은 문턱 바깥에 선 채로 무전기 소리를 들었다.

선장이 노 팀장을 보지 않고 위성전화를 집어 들었다. 서울은 새벽 다섯 시 이십 분이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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