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47자)
고깃배였다
전역하고 취직한 곳이 해적 잡는 회사였다 · 윤재하
5월 11일 밤 열두 시 사십 분, 한바다호는 말라카 해협 한가운데를 14노트로 지나고 있었다. 노트는 배의 빠르기를 재는 단위로, 14노트면 자전거쯤 되는 속도다. 말라카 해협은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섬 사이에 난 좁고 긴 바닷길이다. 세상 바닷짐의 큰 몫이 이 길 하나로 지나간다고 실습 항해사 오하은은 해양대 수업에서 배웠다. 직접 와 보니 그 말이 숫자가 아니라 풍경이었다. 선교 창밖에 앞뒤로 불 켠 배들이 고속도로 차들처럼 줄지어 있었고, 레이더 화면에는 초록 점이 쌀알처럼 흩어져 있었다.
하은은 스물둘이었다. 이번이 첫 원양 실습이었고, 그래서 밤 열두 시부터 네 시까지 2항사 문재혁 옆에 서서 레이더를 보는 일을 맡았다. 졸음을 쫓느라 볼 안쪽을 살짝 깨물고 있던 하은이 화면 한쪽에서 점 하나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을 봤다.
“2항사님, 오른쪽 이십 도, 이 해리. 불이 없어요.”
문재혁이 쌍안경을 들었다. 바다는 까맸다. 까만 바다 위에 더 까만 덩어리 하나가 있었다.
“작은 배네. 가까이 오나?”
“네. 우리 쪽으로 꺾었어요.”
선교 오른쪽 날개, 밖으로 튀어나온 좁은 발코니에서는 보안팀 강현준과 마르코 레예스가 야간 투시경을 번갈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은이 문을 열고 말을 전하자 현준이 투시경을 받아 들었다. 녹색 세상 속에 길쭉한 배 하나가 엔진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오고 있었다. 사람이 둘 보였다. 하나가 무언가 긴 것을 들고 있었다.
“마르코, 저거 총 아이가?”
“몰라. 노 같은데.”
“노를 왜 저렇게 들고 있는데?”
“현준, 노는 원래 그렇게 들어.”
현준은 마르코의 말을 다 듣지 않았다. 선교 안으로 들어가 무전기 송화기를 들었다. 보안팀 규정 첫 줄이 「수상한 접근은 먼저 무전으로 부른다」였다. 그는 그걸 외우고 있었다.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하는지는 외우지 못했다.
“Unknown boat, unknown boat. This is 한바다. Stop.”
대답이 없었다. 하은이 현준 옆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을 참는 건지 겁을 참는 건지 현준은 알 수 없었다.
“Stop, please?”
역시 대답이 없었다. 레이더 화면의 점이 일 해리 안으로 들어왔다.
“Thank you?”
“현준 씨, 그건 멈춘 다음에 하는 말이에요.”
하은이 마침내 말했다. 현준의 귀가 달아올랐고, 달아오른 귀가 판단을 대신했다. 선교 벽에 붉은 덮개를 씌운 단추가 있었다. 현준은 덮개를 젖히고 단추를 눌렀다.
*
박영진 선장은 비상벨 소리에 침대에서 굴러떨어지지 않았다. 서른 해 동안 그런 소리에 몸이 먼저 일어나도록 길이 들어 있었다. 그는 바지 한쪽에 다리를 넣으면서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이미 난리였다. 기관장이 러닝셔츠 차림으로 계단을 뛰어내렸고, 필리핀 갑판원 셋이 맨발로 그 뒤를 따랐고, 조리장 엄달수는 웬일인지 국자를 쥐고 있었다. 선원들은 훈련받은 대로 맨 아래 안전실로 내려가고 있었다. 엔진실 곁에 있는 그 방은 안에서 문을 잠그면 밖에서 열 수 없게 만든 강철 방이었다.
선장은 내려가지 않고 올라갔다. 선교 문을 열자 보안팀 넷이 다 와 있었다. 노준후 팀장은 소방 호스 노즐을 쥐고 있었고, 변서아는 선교 탐조등을 바다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아직 무기가 없었다. 무기는 닷새 뒤 스리랑카 남쪽 바다에서 받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보안팀이 가진 것은 물대포와 손전등과 목소리뿐이었다.
“불 켜.”
선장이 말했다. 서아가 탐조등을 켰다. 하얀 빛기둥이 바다를 갈랐고, 그 끝에 나무로 짠 작은 배 하나가 걸렸다. 뱃전에 그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늙은 남자 하나와 젊은 남자 하나가 눈을 찌푸리며 손을 들었다. 늙은 남자가 든 긴 것은 노였다. 젊은 남자는 비닐봉지에 든 생선을 높이 들고 흔들고 있었다.
마르코가 날개로 나가 말레이어와 영어를 섞어 소리쳤다. 젊은 어부가 대답했다. 몇 마디가 오갔다.
“물 달래요. 엔진이 안 좋아서 불을 아끼느라 껐대. 생선 줄 테니까 물 좀.”
선교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아가 그 침묵을 깨뜨렸다.
“고깃배였네요.”
*
물은 생수 두 상자가 내려갔고, 생선은 비닐봉지째로 올라왔다. 하은이 밧줄 끝에 상자를 묶었고, 현준이 그 줄을 내렸다. 어선은 한바다호 옆구리에 바짝 붙어 따라오면서 상자를 받았다. 젊은 어부가 생선 봉지를 줄에 매달아 올려 보내고는, 손바닥을 펴서 현준 쪽으로 흔들었다. 그 손바닥이 탐조등 빛에 하얗게 보였다. 굳은살이 두꺼워서 손금이 안 보였다.
봉지 안 생선은 아직 살아서 꼬리로 비닐을 쳤다. 현준은 그 소리를 알았다. 영도 횟집 수족관에서 뜰채로 건진 생선이 도마에 오르기 전에 내는 소리였다. 어선이 탐조등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현준은 그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
선장은 그 봉지를 보지 않았다. 그는 비상벨 단추의 덮개를 손가락으로 덮고, 선교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봤다. 마지막에 현준을 봤다.
“누가 눌렀나?”
“접니다.”
“누가 누르라고 했나?”
“수상한 접근이라서, 규정에…….”
“규정에 뭐라고 돼 있나?”
현준은 입을 다물었다. 규정 둘째 줄은 「선장에게 보고하고 선장 지시를 따른다」였다. 그는 첫째 줄만 외웠다.
“지금 안전실에 내 선원 열일곱이 들어가 있소. 기관장은 열 시에 엔진 붙들고 있다가 이제 겨우 누웠던 사람이오. 저 사람들 내일 아침 여섯 시에 또 일어나야 하오. 자네 영어 때문에.”
선장은 존댓말을 썼는데, 그 존댓말이 반말보다 무거웠다. 현준은 대꾸를 하나 찾아냈다. 찾지 말았어야 했다.
“해적이었으면 어쩌실 뻔했습니까?”
“해적이었으면 내가 눌렀소. 내 배요. 이 단추도 내 거고.”
선장이 노 팀장을 봤다.
“팀장, 이 사람 내 선교에 들이지 마시오. 아덴만 지날 때까지.”
현준은 노 팀장을 봤다. 팀장이 편들어 주기를 반쯤 기대했다. 노 팀장은 소방 호스를 둘둘 말아 걸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선장님 말 맞다.”
그걸로 끝이었다. 선원들이 안전실에서 올라오는 발소리가 계단을 타고 들려왔다. 기관장이 선교 앞을 지나가며 들으라는 듯 말했다. 국자 들고 해적 잡을 뻔했네. 조리장이 그 뒤에서 국자로 기관장의 등을 쳤다.
*
새벽 한 시 반, 식당 불은 꺼져 있었고 주방 형광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현준은 비닐봉지를 개수대에 쏟았다. 손바닥만 한 전갱이 비슷한 것이 여섯 마리, 이름 모를 붉은 생선이 두 마리였다. 그는 조리장의 칼꽂이에서 제일 얇은 칼을 골라 숫돌에 몇 번 대 보고, 생선 아가미 뒤에 칼끝을 넣었다.
“누가 내 칼 만지래?”
조리장 엄달수가 러닝셔츠 차림으로 주방 문에 기대 있었다. 안전실에서 올라와 잠이 깨 버린 얼굴이었다. 현준은 칼을 멈추지 않았다. 손이 기억하는 순서가 있었다. 비늘을 등 쪽에서 배 쪽으로 긁고, 머리를 떼고, 배를 갈라 내장을 한 번에 들어내고, 뼈를 따라 칼을 눕혀서 살을 뜬다. 영도 횟집에서 중학교 때부터 하던 일이었다. 생선 한 마리에 일 분이 안 걸렸다.
“아버지가 횟집 합니다.”
“그러니까 그 칼질이 나오지.”
조리장이 다가와 도마 위에 뜬 살을 손가락으로 눌러 봤다. 살이 손가락을 밀어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냉장고에서 초고추장 통을 꺼내 도마 옆에 놓았다. 현준은 회를 접시 셋에 나눠 담았다. 하나는 기관부 선실 쪽으로, 하나는 갑판부 쪽으로, 하나는 선교로.
“선교는 제가 못 들어갑니다.”
“내가 갖다 놓으마.”
조리장은 접시를 들고 나가다가 문 앞에서 돌아봤다.
“김치 한 접시 더 쳐준다. 오늘 거는 노래도 설거지도 아니고 칼질 값이다.”
선교에서 그 접시가 어떻게 됐는지 현준은 몰랐다. 다음 날 아침 하은이 지나가며 귓속말로 알려 줬다. 선장님이 다 드셨어요, 말은 한마디도 안 하시고.
*
새벽 두 시, 변서아는 선실 책상에 노트북을 펴고 위성 인터넷이 느리게 한 칸씩 그림을 받아 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무전기 주파수를 다시 맞추다가 해운사 쪽 연락망을 확인하려고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간 참이었다. 첫 화면을 열던 서아의 손가락이 멈췄다.
화면 한가운데에 큰 지도가 떠 있었다. 지도 위에 파란 선이 부산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내려와 말라카 해협 안에서 끝났고, 그 끝에 작은 배 그림이 깜빡였다. 그림 위 말풍선에 「백신 실은 한바다호, 지금 여기」라고 적혀 있었다. 밑에는 「생명의 항로 실시간 보기 — 십 분마다 새로 고칩니다」, 그 밑에는 「아덴만 진입 예정 5월 23일」.
서아는 새로 고침을 눌렀다. 배 그림이 한 칸 앞으로 움직였다. 지금 이 배가 있는 자리였다. 속도와 방향까지 나와 있었다.
배에는 원래 자동 위치 송신기라는 장치가 있다. 배가 자기 이름과 위치를 주변 배들에게 무전으로 알려 부딪치지 않게 하는 장치다. 해적 바다에 들어가면 선장들은 그 송신기가 보내는 내용을 줄이거나 아예 끄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지도는 그 장치와 상관없이 회사가 직접 띄우고 있었다. 화물 이름과 도착 날짜까지 붙여서.
지도 밑에는 댓글 칸이 있었다. 서아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렸다. 한바다호 화이팅, 아이들 꼭 살려 주세요, 우리 아빠 배다, 같은 글이 백 개 넘게 달려 있었다. 맨 아래 어제 날짜로 영어 한 줄이 있었다. 배가 멋지다, 곧 보자. 이름 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사진 칸에는 회색 동그라미 하나만 있었다. 서아는 그 글을 오래 봤다.
서아는 옆 칸에서 코를 고는 마르코를 깨우지 않았다. 대신 노 팀장 선실 문을 두드렸다. 노 팀장은 자지 않고 있었다. 책상 위에 딸 사진과 대학 등록금 고지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서아가 노트북을 돌려 화면을 보여 줬다. 팀장의 눈이 지도 위 배 그림에 한참 머물렀다. 서아가 맨 아래 회색 동그라미 댓글까지 내려 보이자, 팀장은 등록금 고지서를 뒤집어 엎어 놓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거 언제부터?”
“출항 날부터요. 보도 자료 나간 날.”
복도 끝에서 현준이 잠옷 바람으로 나왔다. 주방에서 비린내 밴 손을 씻고 돌아오다가 불빛을 보고 온 얼굴이었다. 그는 노트북 화면을 넘겨다보고 반가워했다.
“어, 우리 배다. 엄마도 이거 보면 좋겠네요. 아들 어디 있는지 다 보이고.”
서아가 현준을 봤다. 그 눈빛에 욕이 세 마디쯤 들어 있었는데, 입으로 나온 것은 한 문장이었다.
“이거 해적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