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313자)
출장이 좀 잦다고 하셨잖아요
전역하고 취직한 곳이 해적 잡는 회사였다 · 윤재하
2026년 5월 4일 아침 여섯 시 반, 부산 신항 부두에는 바닷바람보다 기름 냄새가 먼저 왔다. 강현준은 새로 산 운동화 끝으로 부두 바닥의 녹슨 쇠고리를 툭 차 보고,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굳었다. 눈앞에 건물이 한 채 떠 있었다. 붉은 배 밑동에서 시작한 철판이 하늘까지 올라갔고, 맨 위 흰 선교 창문에 아침 해가 비쳐서 눈이 시었다. 뱃머리에 흰 글씨로 「한바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사무실입니까?”
현준이 묻자 옆에서 담배 없는 손가락을 입에 댔다 떼던 남자가 대답했다.
“어.”
해든가드 보안팀장 노준후였다. 마흔넷, 해군 특수전 상사 출신이라고 면접 날 회사 벽에 걸린 사진 밑에 적혀 있었다. 사진보다 얼굴이 검었고 말이 짧았다.
면접은 석 달 전이었다. 해병대를 만기 전역하고 영도 집 횟집에서 수족관 물을 갈던 현준에게 해병대 동기가 공고를 보내 줬다. 해양 경비 회사, 신입 연봉이 대기업 초봉보다 높았다. 면접관은 현준의 이력서를 넘기다가 「영어 중급」 칸에서 손을 멈췄고, 출장이 좀 잦은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현준은 괜찮다고 했다. 출장이 사십 일짜리 배일 줄은 몰랐다.
“출장이 좀 잦다고 하셨잖아요.”
“잦지. 일 년에 다섯 번.”
“한 번에 얼마나 됩니까?”
“사십 일.”
현준은 속으로 오 곱하기 사십을 해 보다가 그만뒀다. 계산이 끝나면 집에 못 있는 날이 나올 것 같았다.
사다리 밑에 둘이 더 서 있었다. 하나는 키가 작고 머리를 뒤로 단단히 묶은 여자였는데, 무전기 두 대를 양손에 들고 주파수 다이얼을 엄지로 돌리고 있었다. 변서아, 스물아홉, 해군 통신 부사관 출신. 다른 하나는 어깨가 넓고 웃는 얼굴이 먼저 오는 남자였다. 그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Hi. Nice to meet you. I‘m Marco.”
“아, 예. I’m fine, thank you. And you?”
서아가 다이얼 돌리던 손을 멈췄다. 마르코가 내민 손을 거두지 않은 채 노 팀장을 봤다. 노 팀장은 바다를 봤다.
“이력서에 영어 중급이라고 썼다며?”
서아가 존댓말로 물었는데 존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현준은 목덜미가 더워졌다.
“중급은, 그, 마음이 중급이라는…….”
“알겠습니다. 마음이 중급이신 분.”
마르코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다가 한국어로 말했다.
“괜찮아, 현준. 내가 통역. 대신 너 나한테 소주 빚진다.”
필리핀 해병대 출신 마르코 레예스는 서른하나였고, 한국 배를 다섯 해 탔다. 한국어 욕은 다 알아듣고 존댓말은 반만 알았다.
*
여덟 시가 되자 부두에 천막이 쳐졌다. 천막 위에 「생명을 싣는 배 — 아프리카 병원 세 곳에 백신과 의료 장비를」이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사진사 둘이 사다리 각도를 재고 있었다. 박영진 선장은 사다리 끝에 서서 그 현수막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쉰여덟, 이 항해를 마치면 은퇴였다. 서른 해 넘게 배를 몰면서 그는 현수막이 걸린 출항이 좋게 끝나는 걸 별로 못 봤다.
검은 차 한 대가 천막 앞에 섰다. 해운사 대양한빛해운 운영본부장 윤기석이 내렸다. 쉰둘, 회색 양복에 구두가 부두 바닥의 기름을 피해 정확히 마른 자리만 밟았다.
“선장님, 날씨 좋네요.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으시죠. 협찬사 쪽에서 오늘 오후에 보도 자료 냅니다.”
“사진은 됐고, 항로 얘기부터 합시다.”
윤기석의 웃음이 얼굴에 그대로 남은 채 눈만 식었다.
“그 얘기는 지난주에 끝났잖습니까.”
“안 끝났소. 아덴만 말고 희망봉으로 돕시다.”
아프리카 남쪽 끝을 도는 항로였다. 해적 바다를 피할 수 있었지만 열흘이 더 걸렸다. 윤기석이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열흘이면 연료비만 사억이 더 듭니다. 용선 계약 위약금이 하루에 이천이고요. 선장님, 회사 지금 사정 아시잖습니까. 이 백신 계약 따려고 저희가 입찰가를 원가 밑으로 냈어요.”
“그럼 보안 요원은 왜 넷이오? 해든가드 정원이 여섯인데.”
노 팀장이 처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결재가 나던 날 그는 담배를 끊었다. 사흘째였다. 윤기석이 노 팀장 쪽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넷이면 충분하다는 게 보험사 판단입니다. 둘 더 태우면 일당에 보험료에 비행기 값까지 육천이 넘어요.”
“사람 목숨을 육천으로 세는 거요?”
“선장님, 저는 회사 목숨을 세는 겁니다. 사백 명이 이 회사에서 월급 받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 현수막이 펄럭이며 철골에 부딪는 소리가 났다. 사진사가 셔터를 누를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현준이 입을 열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 순간 그를 움직인 건 정의감이 아니라 조용한 걸 못 참는 성격이었다.
“저, 그래도 백신은 빨리 가야 안 됩니까? 아픈 애들이 기다리는 건데.”
윤기석이 처음으로 현준을 봤다. 얼굴 전체로 반가워했다.
“그렇죠! 이분 누구시죠?”
“해든가드 신입, 강현준입니다.”
“바로 이겁니다. 현장이 아는 거예요. 강현준 씨, 이쪽으로 와 보세요. 사진 한 장 같이.”
정신을 차려 보니 현준은 현수막 앞에서 본부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사진사가 웃으라고 했다. 현준은 웃었다. 사다리 끝에서 박영진 선장이 그 사진을 내려다봤다. 선장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선교로 올라갔다. 노 팀장이 현준 곁을 지나가며 한마디만 했다.
“잘했다.”
칭찬이 아니라는 건 현준도 알았다. 서아가 덧붙였다.
“축하드려요. 이 배에서 선장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방금 두 명이 됐네요.”
*
출항은 열한 시였다. 현준의 아버지는 열 시 사십 분에 왔다. 영도에서 택시를 타고 온 아버지는 왼쪽 무릎이 안 굽어서 내릴 때 문틀을 두 손으로 잡았다. 횟집 앞치마를 벗을 생각도 못 하고 와서 고무 앞치마에 비늘이 붙어 있었다.
“엄마는 가게 본다. 이거.”
아버지가 비닐봉지 두 개를 내밀었다. 하나는 신문지로 싼 김치 통이었고 하나는 작고 무거웠다. 현준이 봉지를 열자 손가락 길이만 한 쇠 호루라기가 나왔다. 오래 만져서 모서리가 다 둥글었다. 현준이 어릴 때 아버지가 횟집 벽에 걸어 두고 아무도 못 만지게 하던 그 호루라기였다.
“이걸 왜 주십니까?”
“인도양 간다며.”
아버지는 더 말하지 않았다. 현준은 그 이야기를 대충 알았다. 아버지가 원양어선을 타던 스물아홉에 배가 가라앉았고, 아버지는 이틀을 물에 떠 있었다. 지나가던 화물선 한 척이 그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배를 돌렸다. 그 이상은 아버지가 술을 마셔도 말하지 않았다.
“이거 불면 배가 선다.”
아버지가 호루라기 끈을 현준 목에 걸어 주고, 무릎 때문에 비스듬히 선 채로 아들의 가슴을 두 번 쳤다. 손에서 비린내가 났다. 현준은 그 냄새가 싫어서 열여덟에 집을 나가 해병대에 갔는데, 부두 바람 속에서 맡으니 이상하게 코가 매웠다.
*
뱃멀미는 출항 세 시간 만에 왔다. 오륙도를 지나 먼바다로 나가자 배가 앞뒤로 천천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현준의 위장이 그 숨을 반 박자씩 늦게 따라갔다. 해병대에서 상륙 장갑차를 탈 때도 안 하던 멀미였다.
“바다 쪽으로.”
노 팀장이 갑판 난간에 기대 토하는 현준의 등을 툭 쳐서 방향을 고쳐 줬다. 바람이 뒤에서 불고 있었다. 현준이 바람을 안고 토했으면 팀장의 신발로 갔을 것이다.
“팀장님은 처음에 안 하셨습니까?”
“했지.”
“얼마나요?”
“여덟 해.”
팀장은 그게 농담인지 아닌지 끝내 말하지 않았다.
저녁 식당은 엔진 냄새와 된장 냄새가 반반이었다. 조리장 엄달수는 예순하나, 배에서만 서른다섯 해를 살았다. 그는 국자로 현준의 김치 통을 툭 쳤다.
“이건 내가 맡는다. 배에 들어온 김치는 다 내 거다. 하루 한 사람 한 접시.”
“제 엄마가 싸 준 건데요.”
“그러니까 더 아껴야지. 사십 일이다. 김치가 떨어지면 한국 놈들은 사흘 안에 다 시무룩해진다. 더 먹고 싶으면 설거지를 하든지, 노래를 하든지, 비밀을 하나 털든지.”
마르코가 벌떡 일어나 노래를 시작했다. 조리장이 한 접시를 더 내줬다. 현준은 노래를 못해서 설거지를 했다.
밤 열 시, 보안팀 선실 넷은 좁은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붙어 있었고, 문은 다 열어 둔 채였다. 엔진 진동이 철판 바닥을 타고 침대 다리로 올라와서, 누워 있으면 등뼈 하나하나가 따로 떨리는 것 같았다. 현준이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데 맞은편 칸에서 서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녹음된 목소리였다. 아이엠 파인, 땡큐, 앤드 유. 마르코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그거 언제 녹음하셨습니까?”
“무전기 켜 두고 있었거든요. 앞으로 현준 씨가 영어 하실 때마다 다 남깁니다. 내릴 때 모아서 드릴게요. 기념품으로.”
“지워 주시면 안 됩니까?”
“설거지 몇 번 하실래요?”
노 팀장이 어둠 속에서 한마디 했다. 자. 세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
같은 날 해 질 녘, 부산에서 바닷길로 만 킬로미터쯤 떨어진 아덴만 남쪽 바닷가에서 오마르는 바깥 엔진 하나를 모래 위에 엎어 놓고 고치고 있었다. 아덴만은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 뿔 사이에 끼인 좁은 바다다. 그 바다의 남쪽 기슭을 따라 흙벽 집 서른 채가 엎드린 마을이었다. 엔진은 고무 냄새를 풍겼고, 손톱 밑에는 검은 기름이 박혀 있었다.
오마르는 서른아홉이었다. 열네 살까지는 아버지와 같이 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다. 그 무렵 수평선에 처음 보는 큰 배들이 떼로 나타나 그물을 바닥까지 끌고 갔고, 다음 해부터 고기가 안 잡혔다. 아버지는 그래도 바다에 나갔다. 어느 밤 폭풍 속에서 아버지의 배가 기울었을 때, 불을 다 켠 큰 배 한 척이 멀리서 지나갔다. 오마르는 그 불빛이 수평선 끝으로 넘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큰 배는 서지 않았다.
주머니 속 위성전화가 울렸다. 오마르는 기름 묻은 손을 바지에 닦고 받았다. 상대는 영어를 썼고, 언제나처럼 이름을 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회색 남자라고 불렀다.
“한국 배다. 이름은 한바다. 부산에서 오늘 떠났다. 5월 말에 너희 앞을 지난다. 의료 화물을 실었고, 그 배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다 보여 주고 다닌다.”
“의료 화물이면 병원 거다.”
“병원 거라서 몸값이 높다. 신문에 나니까 회사가 빨리 낸다.”
오마르는 엎어 놓은 엔진의 날개를 손가락으로 돌려 봤다. 날개 하나에 이가 빠져 있었다. 빚으로 얻은 엔진이었다. 이번 철에 배 한 척을 못 잡으면 회색 남자는 쾌속정 넷을 다 거둬 갈 터였다. 그러면 마을 남자 열여섯은 다시 빈 바다를 보며 앉아 있어야 했다.
“그 배에 총은 몇이냐?”
수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회색 남자는 이런 걸 늘 종이로 갖고 있었다.
“보안 요원 넷. 원래 여섯이었는데 회사가 깎았다.”
오마르는 엔진에서 손을 뗐다. 해가 바다에 반쯤 잠겨 물이 붉었다. 마을 아이 둘이 맨발로 물가를 뛰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그 아이들 쪽을 보며 천천히 대답했다.
“넷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