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83자)

놀이터 회의

육아휴직 S급 헌터 · 문채겸

7월 29일 아침⁠, 재난문자가 단지의 모든 집에서 한꺼번에 울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위층과 아래층과 옆집의 경보음이 겹쳐서⁠, 아파트 한 동이 통째로 우는 소리가 났다⁠.

「⁠[마포구청] 망원2동 물빛마을 일대 대피 준비 권고⁠. 귀중품과 상비약을 챙겨 두시고 안내 방송에 따라 주십시오⁠.⁠」

혜결은 문자를 보고 아무 말 없이 현관의 대피 가방을 열어 USB를 꺼냈다⁠. 그러고는 다시 넣었다⁠. 꺼냈다 넣는 동안 혜결의 숨이 한 번 길어졌다⁠. 나는 아내의 숨을 들었고⁠, 혜결은 내가 들은 것을 알았다⁠.

“⁠오늘 밤에도 여덟 시 반이야⁠?⁠” 혜결이 물었다⁠.

“⁠여덟 시 반⁠.⁠”

“⁠주민들은 당신이 밤새 들어가길 바랄 거야⁠.⁠”

“⁠알아⁠.⁠”

“⁠나도 조금은 바라⁠.⁠” 혜결이 구두를 신었다⁠. “⁠조금은⁠. 그래서 내가 싫어⁠.⁠”

*

7월 30일 저녁 일곱 시⁠, 놀이터에 사람이 꽉 찼다⁠. 관리사무소 회의실에 마흔 명이 들어가지 않아 회의 장소가 놀이터로 바뀌었다⁠. 등나무 벤치가 단상이 되었고⁠, 모래밭 둘레에 접이식 의자가 놓였다⁠. 아이들은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어른들을 내려다보았다⁠. 아이를 맡길 데가 없는 사람들의 회의라 아이까지 다 나왔다⁠.

입주자대표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예순 가까운 남자였다⁠. 반팔 셔츠 주머니에 볼펜 세 자루를 꽂았고⁠, 마이크를 잡은 손에 아파트 시세 앱이 켜진 휴대전화를 같이 쥐고 있었다⁠.

“⁠에⁠, 다들 아시다시피⁠. 대피 준비 권고 이틀 만에 우리 단지 호가가 칠천 떨어졌습니다⁠. 칠천⁠.⁠”

“⁠아이 안전 얘기부터 하세요⁠!⁠” 뒤에서 누가 외쳤다⁠.

“⁠안전도 하고 호가도 하고⁠. 둘 다 중요해요⁠.⁠” 대표회장이 마이크를 고쳐 쥐고 나를 보았다⁠. “⁠그리고 우리 단지에는 S급 헌터가 살아요⁠. 국내 7위⁠. 그런데 그 S급이 밤에 두 시간만 들어간대요⁠. 나머지 시간엔 집에서 애를 본대요⁠.⁠”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왔다⁠. 아기 띠 안에서 예봄이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마흔 명이 넘는 어른이 저를 보니 신이 났는지 손바닥을 이마에 철썩 붙였다⁠. 경례였다⁠. 몇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고 대표회장은 웃지 않았다⁠.

“⁠권 헌터님⁠, 솔직히 말해 봐요⁠. 밤새 들어가면 균열 금방 닫히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핵이 하루에 이백 미터씩 움직입니다⁠. 제가 밤새 들어가면 이백 미터를 더 쫓아갈 뿐입니다⁠. 쫓아가는 동안 핵은 계속 물러납니다⁠. 핵을 깨려면 핵이 멈추는 날을 들어야 합니다⁠.⁠”

“⁠그날이 언젠데요⁠?⁠”

“⁠아직 안 들립니다⁠.⁠”

웅성거림이 놀이터를 한 바퀴 돌았다⁠. 내 귀에는 웅성거림 속의 낱말들이 하나하나 들렸다⁠. 핑계⁠. 휴직⁠. 집값⁠. 애 핑계⁠. 남자가 무슨⁠. 그리고 아주 작게⁠, 그래도 고생하잖아⁠.

맨 뒤 의자에 앉은 젊은 부부 가운데 남편이 손을 들었다⁠. 서른 초반쯤이었다⁠.

“⁠근데요⁠, 아기 띠 헌터 영상 보면 좀 영포티 감성 아니에요⁠? 남색 아기 띠에 카고 바지⁠. 회사 부장님들 주말 패션이랑 똑같던데⁠.⁠”

“⁠서른여덟입니다⁠. 아직 포티 아닙니다⁠.⁠”

“⁠그럼 영서른여덟⁠.⁠”

놀이터에 웃음이 퍼졌다⁠. 대표회장까지 웃다가 헛기침을 했다⁠. 혜결이 들었으면 사흘은 놀렸을 말이었다⁠. 웃음이 가라앉자 공기는 아까보다 조금 덜 딱딱해졌고⁠, 그만큼 다시 무거워졌다⁠.

결희가 일어났다⁠. 쌍둥이 하나를 허리에 끼고 있었다⁠. 결희는 대표회장에게서 마이크를 받지 않고 그냥 말했다⁠. 물류센터에서 지게차 소리를 이기던 목소리였다⁠.

“⁠다들 아시죠⁠. 예봄이 아빠가 낮에 보급 천막에서 뭐 하는지 저 매일 봐요⁠. 허리에 파스 두 장 붙이고 생수 상자 날라요⁠. 밤에는 들어가고요⁠.⁠” 결희가 숨을 들이쉬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할게요⁠. 저도 예봄이 아빠가 밤새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우리 쌍둥이 방 창문에서 균열 빛이 보여요⁠. 밤마다 애들이 저게 뭐냐고 물어요⁠. 저도 무서워요⁠.⁠”

결희가 나를 보았다⁠. 미안한 얼굴이었고⁠, 물러서지 않는 얼굴이었다⁠. 내 편을 들러 일어났다가 제 마음까지 같이 꺼낸 사람이었다⁠.

일곱 시 이십 분⁠, 단지 정문으로 검은 승용차가 들어왔다⁠. 문 닫는 소리⁠, 무릎을 끄는 발소리⁠. 결희가 휴대전화를 들어 단톡방에 올렸다⁠. 「⁠나타났음⁠.⁠」 주완은 이번에는 엄마들 사이를 가로지르지 않고 모래밭 가장자리를 돌아 등나무 앞에 멈췄다⁠. 대표회장이 반가운 얼굴로 마이크를 넘겼다⁠.

“⁠한국헌터협회 작전부장 석주완입니다⁠. 주민 여러분께 계획을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주완이 마이크를 쥐고 고개를 숙였다⁠. “⁠경계선이 이 단지에 닿기 전에 대피 버스 열두 대를 대 놓겠습니다⁠. 망원 유수지 체육관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협회는 권창해 헌터가 정식으로 복귀하면 핵을 더 빨리 쫓을 수 있다고 봅니다⁠.⁠”

“⁠거 봐요⁠!⁠” 대표회장이 손뼉을 쳤다⁠.

“⁠부장님이 방금 하신 말씀은 협회의 판단입니다⁠.⁠” 내가 말했다⁠. “⁠제 귀의 판단은 다릅니다⁠.⁠”

“⁠귀요⁠?⁠” 대표회장이 코웃음을 쳤다⁠. “⁠귀로 균열 닫아요⁠?⁠”

주완이 마이크를 내렸다⁠. 공손한 목소리가 마이크 없이도 놀이터 끝까지 갔다⁠.

“⁠권 헌터의 귀는 국내에서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하루 두 시간이 아깝습니다⁠. 주민 여러분 가운데 권 헌터의 정식 복귀를 원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협회에 전하겠습니다⁠.⁠”

손이 올라갔다⁠. 하나⁠, 둘⁠, 다섯⁠, 열⁠. 접이식 의자에서⁠, 모래밭 가에서⁠, 미끄럼틀 밑에서⁠. 대표회장이 제일 높이 들었다⁠. 결희는 들지 않았다⁠. 대신 쌍둥이를 허리에 낀 손에 힘을 주었다⁠. 미끄럼틀 위의 아이들이 어른들을 따라 손을 들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들었다⁠. 예봄이도 손을 들었다⁠. 아기 띠 안에서 내 턱을 향해⁠.

“⁠예봄아⁠, 너는 내리자⁠.⁠”

예봄이가 손을 더 높이 들었다⁠. 몇 사람이 다시 웃었다⁠. 웃는 동안에도 손은 내려가지 않았다⁠.

나는 예봄이 손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마이크 없이 말했다⁠.

“⁠여기서 아이들 숨소리가 다 들립니다⁠. 미끄럼틀 위에 일곱⁠, 모래밭에 넷⁠, 유모차에 셋⁠. 저 위에 빨간 모자 쓴 아이는 아까부터 콧물 때문에 숨이 막힙니다⁠.⁠” 빨간 모자 아이의 엄마가 황급히 휴지를 꺼냈다⁠. “⁠균열 안에서는 핵 소리가 이렇게 들립니다⁠. 저는 두 시간 동안 그 소리를 쫓고⁠, 열 시 반에 나와서 제 딸 숨소리를 다시 듣습니다⁠. 그걸 그만두면 저는 핵 소리만 듣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마포를 더 잘 지킬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손은 그대로 올라가 있었다⁠. 몇 개는 조금 낮아졌다⁠.

모래밭 구석에서 하솜이 일어났다⁠. 운비를 안고 있었다⁠. 하솜은 마이크를 받지 않았고 목소리도 작았다⁠. 그래도 놀이터가 조용해졌다⁠. 넉 달 동안 한 번도 일어나서 말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제가 밤에 같이 들어갈게요⁠.⁠”

주완의 얼굴이 굳었다⁠.

“⁠저 힐러였어요⁠. A급⁠. 넉 해 전에 그만뒀어요⁠.⁠” 하솜이 운비 등을 토닥였다⁠. “⁠힐러가 붙으면 다친 사람이 바로 다시 걸어요⁠. 그러면 두 시간이 세 시간만큼 돼요⁠. 예봄이 아빠가 시계 보고 나오는 대신⁠, 그 안에서 덜 멈추게 할게요⁠.⁠”

“⁠변 선생⁠.⁠” 주완이 말했다⁠. 아주 공손했다⁠. “⁠복귀하실 거면 서류부터 쓰시죠⁠. 수석 자리는 그대로 있습니다⁠.⁠”

“⁠서류는 아직요⁠.⁠” 하솜이 주완을 보았다⁠. 운비가 하솜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오늘은 운비 엄마로 들어가요⁠.⁠”

놀이터의 손들이 하나둘 내려갔다⁠. 대표회장만 끝까지 들고 있다가⁠, 혼자 들고 있는 것을 깨닫고 머리를 긁는 척하며 내렸다⁠. 결희가 단톡방에 공지를 올렸다⁠. 「⁠오늘 밤 운비는 방장네서 잡니다⁠. 쌍둥이랑 셋이서 난리 날 예정⁠. 응원 부탁⁠.⁠」

*

밤 여덟 시 반⁠, 문을 넘었다⁠. 재련⁠, 하솜⁠, 그리고 나⁠.

재련은 하솜을 보더니 이마를 찌푸렸다⁠. “⁠놀이터 회의에서 힐러까지 데려오셨어요⁠? 엄마들끼리 계 모임 해요⁠?⁠”

하솜은 대답 대신 재련의 옆구리에 손바닥을 댔다⁠. “⁠가만⁠.⁠”

“⁠필요 없⁠…⁠…⁠”

“⁠가만⁠.⁠”

재련이 입을 다물었다⁠. 하솜의 숨이 느려졌고 손바닥에서 미지근한 물소리가 났다⁠. 재련의 숨이 처음으로 끝까지 들어갔다⁠. 갈비뼈 밑까지⁠. 재련은 놀란 얼굴로 숨을 한 번 더 들이켰다⁠. 이번에도 끝까지 들어갔다⁠. 재련은 고맙다는 말 대신 콧노래를 불렀다⁠. 곡조가 처음으로 맞았다⁠.

핵의 박동은 어제보다 이백 미터 북서쪽에서 울렸다⁠. 물소리가 가까웠다⁠. 셋이서 걷는 동안 괴수는 덜 나왔고⁠, 나온 것도 재련이 오른팔로 베었다⁠. 오른팔이 올라갔다⁠. 접힌 담벼락에서 괴수 하나가 내 왼팔을 물고 늘어졌을 때⁠, 하솜은 괴수가 떨어지기도 전에 내 팔뚝을 붙잡았다⁠. 이빨 자국 넷이 하솜의 손바닥 밑에서 오므라들었다⁠. 하솜이 짧게 말했다⁠. “⁠물림⁠.⁠” 보급 천막 바구니 이름이었다⁠. 재련이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고⁠, 나는 웃음을 참았다⁠.

아홉 시 사십 분⁠, 접힌 골목에서 숨을 고를 때 재련이 물었다⁠.

“⁠하나 물어봐도 돼요⁠? 진짜 궁금해서요⁠. 열여섯 해 동안 휴가도 안 쓰던 S급이 왜 갑자기 아기 띠를 하고 와요⁠?⁠”

하솜이 고개를 돌렸다⁠. 하솜도 궁금했던 얼굴이었다⁠.

고백하자면⁠, 아내에게도 끝까지 말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지난가을⁠, 부산 4등급에 열하루 들어가 있었습니다⁠. 엿새째 밤에 휴대전화가 잠깐 터졌는데⁠, 아내가 영상을 하나 보냈습니다⁠. 예봄이가 처음 뒤집는 영상이었습니다⁠. 이불 위에서 끙끙거리다가 뒤집더니 자기도 놀라서 우는 영상⁠. 십오 초짜리였습니다⁠.⁠”

괴수 피가 묻은 손으로 화면을 닦고⁠, 열 번 넘게 돌려 보았다⁠. 같은 균열 바닥에 앉아 있던 B급 둘이 내가 우는 것을 보고 못 본 척했다⁠.

“⁠다음에 처음 걷는 건 화면으로 안 보려고요⁠. 그게 다입니다⁠.⁠”

재련은 한참 말이 없었다⁠. 하솜이 운비 생각을 하는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재련이 검 끝으로 바닥을 긁으며 말했다⁠.

“⁠우리 아빠는 내가 뒤집는 거 못 봤대요⁠.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재련이 웃었다⁠. 콧노래는 없었다⁠. “⁠균열에 있었대요⁠. 그래서 나도 헌터 했어요⁠. 균열에 있으면 아빠 얼굴은 보니까⁠.⁠”

“⁠아버님도 헌터셨습니까⁠?⁠”

“⁠아직도요⁠.⁠” 재련이 일어났다⁠. “⁠가요⁠. 시계 봐야죠⁠, 놀이터 S급님⁠.⁠”

*

열 시 이십육 분⁠, 문을 빠져나왔다⁠. 문 앞 의자에 주완이 앉아 있었다⁠. 오늘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완 옆에 협회 본부 직원 하나가 누런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직원이 봉투를 내밀었다⁠.

「⁠징계위원회 출석 통지⁠. 8월 5일 오전 열 시⁠, 용산 협회 본부⁠. 사유⁠: 7월 20일 작전 중 핵 추적을 중단하고 철수함(⁠작전 이탈⁠)⁠.⁠」

“⁠징계는 거두신다면서요⁠.⁠”

“⁠제가 올린 것 아닙니다⁠.⁠” 주완이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무릎이 소리를 냈다⁠. “⁠이사회에서 올렸습니다⁠. 대체 팀 보고서가 이사회로 바로 올라갔습니다⁠. 핵을 삼백 미터 앞에 두고 S급이 시계를 보고 돌아섰다고⁠.⁠”

“⁠보고서는 누가 썼습니까⁠?⁠”

주완은 대답하지 않고 내 뒤를 보았다⁠. 내 뒤에는 재련이 서 있었다⁠. 재련이 주완의 눈길을 받았다가 피했다⁠. 하솜이 재련과 주완을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이 목례를 했다⁠. 지난주와 똑같은 각도였다⁠.

“⁠팀장이 썼습니다⁠.⁠” 주완이 말했다⁠. “⁠팀장이 쓰는 게 규정입니다⁠.⁠”

재련이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콧노래도 나오지 않았다⁠. 재련은 검을 등에 멘 채 주차장 끝의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갈비뼈는 다 붙었는데⁠, 발소리는 다친 사람의 발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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