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72자)
보급
육아휴직 S급 헌터 · 문채겸
아침 아홉 시, 택시 문이 열리자마자 카시트 고정 고리가 딸깍 맞물렸다. 손주가 셋이라는 기사님이었다. 나흘째 같은 택시가 왔다. 기사님은 아침마다 단지 정문에 차를 대 놓고 기다렸고, 미터기를 켜기 전에 예봄이에게 먼저 인사했다.
“출근하자, 꼬맹이.”
예봄이가 이마에 손바닥을 철썩 붙였다. 경례였다. 전진기지에서 배운 것을 기사님에게 써먹었다. 기사님이 한 손으로 경례를 받았고, 택시가 신호를 놓쳤다.
반일 시범 나흘째, 7월 19일 아침이었다. 보급 천막 한구석에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보급반장 할아버지가 주말 동안 집에서 들고 나온 것이었다. 돗자리 위에 아기 매트, 매트 위에 모기장 텐트. 헌터들이 하나씩 두고 간 기저귀가 천막 기둥 옆에 산을 이루었다. 상표가 제각각이었다. 사이즈도 제각각이었다. 화염 계열 C급이 두고 간 것은 신생아용이었다. 돌 지난 아기 엉덩이에는 반도 안 덮였다.
“마음이 중요한 거야.” 보급반장이 말했다.
“마음이 새면 어떡합니까?”
“새면 갈아.”
예봄이는 전진기지에서 낮잠을 잘 잤다. 집에서는 냉장고 소리에도 깨는 아이가 발전기 소리 옆에서는 두 시간을 내리 잤다. 균열이 숨을 들이쉬면 천막 자락이 부풀었다 가라앉았고, 숨의 박자가 요람을 흔드는 박자와 비슷했다. 나는 매트 옆에 앉아 생수 상자를 뜯으며 숨을 셌다. 들숨 십일 초, 날숨 십일 초. 첫날보다 들숨이 길어져 있었다. 균열이 자라고 있었다.
허리에 파스를 두 장 붙였다. 아기 띠를 하루 열 시간씩 메면 S급 허리도 버티지 못했다. 이 얘기를 단톡방에 했더니 결희가 공지를 올렸다. 「예봄이 아빠 허리 보호대 추천 받아요.」 오 분 만에 추천이 열두 개 달렸다. 그중 아홉 개가 같은 상품이었다.
*
점심 무렵, 천막 자락이 걷히고 재련이 들어왔다. 오른팔을 삼각건으로 걸어 목에 매달았고, 옆구리 붕대가 티셔츠 밖으로 비죽 보였다. 사흘 전 내 등에 업혀 나간 사람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퇴원하셨습니까?”
“퇴원 비슷한 거요.” 재련이 생수를 한 병 집어 이로 뚜껑을 땄다. “오늘부터 밤에 같이 들어가요. 부장님 명령이에요. 놀이터 S급님 파트너.”
“갈비뼈가 아직……”
“감시하라고 붙인 거죠. 열 시 반 넘기는지 안 넘기는지.” 재련이 물을 반쯤 마시고 내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하나만 말해 둘게요. 업어 준 거 고맙다는 말은 안 해요.”
“안 하셔도 됩니다.”
“넉 달 쉬시는 동안 내 갈비뼈 두 대 나갔어요. 이번에 한 대 더. 세 대째예요. 셋 다 S급 자리였어요.” 재련이 모기장 텐트 안에서 잠든 예봄이를 내려다보았다. 목소리를 낮췄다. 아기 앞이라 낮춘 것이었다. “애기 앞에서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핵 앞에서 시계 보는 사람이랑은 들어가기 싫어요. 핵 앞에서 시계 보면 팀이 죽어요.”
“핵 앞에서 시계를 안 보면 집이 죽습니다.”
“집은 안 죽어요. 사람이 죽지.”
“집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재련이 입을 다물었다. 콧노래를 짧게 한 소절 불렀다. 아플 때만이 아니라 화가 날 때도 부르는 노래였다. 재련은 생수병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한 번에 들어갔다.
“여덟 시 반에 문 앞에서 봬요.”
*
7월 20일 밤, 여덟 시 반에 문을 넘었다.
재련과 B급 둘이 뒤를 따랐다. 균열 안의 거리는 사흘 사이에 더 넓어져 있었다. 녹아내린 간판들 사이로 새 골목이 생겼고, 하늘의 검붉은 빛이 한 겹 짙어졌다. 나는 눈을 감고 서쪽으로 걸었다. 핵의 박동은 서쪽 깊은 데서 왔다. 날숨이 끝날 때마다 한 번, 쿵.
한 시간 동안 괴수 일곱을 베었다. 재련은 왼손 하나로 검을 썼다. 오른팔을 걸고도 B급 둘보다 빨랐다. 들숨에 맞춰 뛰는 괴수를 재련은 날숨까지 기다리지 않고 들숨 한가운데서 베었다. 내 귀로 듣고 박자를 맞추는 사람이 아니었다. 몸으로 박자를 아는 사람이었다.
아홉 시 오십 분, 박동이 가까워졌다.
열 시 오 분, 날숨 끝에 박동이 바로 앞에서 울렸다. 삼백 미터. 접힌 고가도로 밑에서 검붉은 빛이 한 번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핵이 떠올랐다. 재련이 숨을 들이켰다. 옆구리가 아파서 끝까지 못 들이켰다.
“저기예요.”
“압니다.”
“가요.”
시계를 보았다. 열 시 십 분. 삼백 미터를 가서 핵 앞에 서면 열 시 십오 분, 핵을 깨는 데 얼마가 들지 몰랐다. 5등급 핵은 한 번에 깨지지 않는다. 깨다 만 핵은 다시 깊이 숨는다. 돌아 나오는 데 이십 분.
“나갑니다.”
“뭐라고요?”
“나갑니다. 지금 가면 열 시 반 못 맞춥니다.”
재련이 내 앞을 막았다. 왼손에 검을 든 채였다. B급 둘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핵이 삼백 미터 앞에 있어요. 오늘 깨면 내일부터 아무도 안 다쳐요. 삼백 미터예요, 삼백.”
“오늘 못 깹니다. 깨다 말면 핵이 더 깊이 숨습니다. 그러면 내일은 오백 미터가 됩니다.”
“그거 핑계죠? 열 시 반 넘기면 휴직 끝나니까.”
“핑계 맞습니다.” 나는 재련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합니다.”
재련은 한참 나를 노려보았다. 콧노래가 나오려다 말았다. 날숨이 끝나고 박동이 한 번 더 울렸다. 핵이 가라앉는 소리였다. 고가도로 밑의 빛이 꺼졌다.
“가라앉았어요.” 재련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방금, 가라앉았죠?”
“네.”
재련이 몸을 돌렸다. 나오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문을 빠져나왔을 때 시계는 열 시 이십칠 분이었다. 주완이 문 앞 의자에 앉아 있다가 시계를 보고 일어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련이 주완을 지나쳐 가면서 고개만 까딱했다. 주완도 고개만 까딱했다. 두 사람의 목례가 이상할 만큼 똑같은 각도였다.
*
7월 21일 아침 일곱 시, 재난문자가 왔다.
「[마포구청] 서교동 균열 경계선 서쪽으로 300m 확대. 합정동·망원1동 일부 주민은 외출을 삼가 주십시오.」
망원1동 일부. 물빛마을 3단지는 망원2동이었다. 아직은. 혜결이 출근 준비를 하다 문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 건너뛰어 채웠다. 나는 말없이 단추를 풀어 다시 채워 주었다.
“어젯밤 핵 봤다며.” 혜결이 말했다.
“봤어.”
“근데 시계 보고 나왔고.”
“열 시 이십칠 분.”
혜결이 내 셔츠 깃을 바로잡았다. 손이 오래 머물렀다. “잘했어. 근데 잘했다고 말하기가 무섭다.”
혜결은 출근하기 전에 현관 신발장 위에 배낭 하나를 꾸렸다. 대피 가방이었다. 기저귀 열 장, 분유 한 통, 물티슈, 예봄이 여벌 옷 두 벌, 상비약. 맨 위에 혜결이 작은 USB를 하나 넣었다.
“그건 뭐야?”
“발표 자료. 집이 균열에 먹혀도 이건 살려야 돼.”
“분유보다 위에?”
“분유는 편의점에도 있어. 내 발표 자료는 어디에도 없어.” 혜결이 배낭 지퍼를 닫았다. “농담이야. 반만.”
열 시, 등나무 벤치에 엄마들이 모였다. 결희가 긴급 모임을 공지했고, 유모차가 열 대 넘게 벤치를 둘러쌌다. 아이들은 모래밭에 풀어 놓았다. 엄마들은 벤치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다들 아시죠. 삼백 미터예요. 한 번에 삼백 미터면 일주일이면 여기까지 와요.”
결희의 말에 엄마 하나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 다른 엄마는 휴대전화로 대구행 기차표를 찾았다. 친정이 대구라고 했다. 대구에서 우리 장모님도 무릎에 얼음찜질을 하고 계실 것이다. 다들 갈 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봄이 아빠, 어젯밤에 핵 봤다면서요. 왜 안 깼어요?” 결희가 물었다. 재련의 대체 팀 B급 하나가 협회 단톡방에 투덜거린 글이 캡처되어 단지 단톡방까지 넘어와 있었다.
“깨다 말면 더 깊이 숨습니다.”
“그럼 언제 깨요?”
“핵이 숨는 길을 다 들어야 깹니다. 며칠 더 걸립니다.”
“며칠 동안 우리는요?”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들이 서로를 보았다. 결희가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가, 유모차 손잡이를 탁 쳤다.
“좋아요. 그럼 그 며칠을 줄여요.” 결희가 말했다. “예봄이 아빠가 낮에 보급 하느라 귀를 못 쓰잖아요. 보급은 우리가 할게요. 아빠는 귀만 쓰세요.”
“전진기지에 민간인은……”
“저 물류센터 팀장 칠 년 했어요. 생수 상자 쌓는 거 보니까 엉망이던데. 동선이 다 꼬였어요.” 결희가 공지문 얼굴로 돌아왔다. “다들 아시죠. 내일 아침 아홉 시, 정문 집합. 유모차 끌고 오세요. 아이스박스 있는 사람 손.”
손이 일곱 개 올라갔다. 하솜은 손을 들지 않고 모래밭의 운비를 보고 있었다.
*
7월 22일 아침 아홉 시 반, 서교동 통제선 앞에 유모차 여섯 대가 줄지어 멈췄다. 유모차마다 아이스박스와 미숫가루 통과 아이가 하나씩 실려 있었다. 경찰 둘이 팔을 벌렸다. 결희가 내 아기 띠를 가리켰다.
“저분도 애 데리고 들어가잖아요.”
“저분은 S급이시고……”
“저희는 엄마예요.”
경찰이 무전을 쳤고, 무전이 작전 천막으로 갔고, 작전 천막에서 주완이 걸어 나왔다. 왼쪽 무릎을 끄는 발소리가 유모차 행렬 앞에서 멈췄다. 결희가 주완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검은 양복 아저씨.”
“석주완입니다. 작전부장입니다.”
“압니다. 단톡방에 사진 있어요.” 결희가 방금 찍은 사진을 단톡방에 올렸다. 「나타났음.」
주완이 결희의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나타났음」 아래로 놀란 얼굴 이모티콘이 줄줄이 달리는 중이었다. 주완은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민간인은 통제선 안으로 못 들어옵니다.”
“보급 천막은 통제선 바로 안쪽이잖아요. 문에서 삼백 미터. 우리 단지는 문에서 이 킬로미터인데 경계선은 벌써 삼백 미터 왔어요. 어디가 더 위험해요?”
“규정상……”
“규정 말고요. 보급 천막 생수 상자, 문 쪽부터 쌓으셨죠? 헌터들이 나올 때 제일 먼저 집는 게 물인데, 물이 천막 맨 안쪽에 있어요. 나오는 사람이 천막 안까지 들어가서 물 꺼내고 다시 나가요. 그러다 들것이랑 부딪쳐요. 어제 영상 보니까 두 번 부딪쳤어요.”
주완이 입을 다물었다. 나도 다물었다. 두 번 부딪친 것은 사실이었다. 한 번은 내가 부딪쳤다.
“우리가 다시 쌓을게요. 한 시간이면 돼요. 그리고 낮잠 시간엔 애들 돗자리에서 재우고, 엄마들이 번갈아 붕대 말고, 미숫가루 타고. 예봄이 아빠는 귀만 쓰면 돼요.” 결희가 주완을 올려다보았다. “다들 아시죠?”
마지막 말은 주완에게 한 말이었다. 주완은 다들 아시죠라는 말을 처음 들어 보는 얼굴이었다. 처음 들었는데 이미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의 얼굴이기도 했다.
주완이 경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통제선이 올라갔다. 유모차 여섯 대가 보급 천막으로 굴러 들어갔다. 보급반장 할아버지가 박수를 쳤다. 결희가 생수 상자를 문 방향으로 옮기라고 첫 명령을 내렸고, B급 헌터 둘이 영문도 모른 채 상자를 들었다.
주완이 내 옆으로 왔다. 유모차 행렬을 보면서 말했다.
“권 헌터.”
“네.”
“당신은 이제 엄마 여섯과 아이 여섯을 데리고 들어온 겁니다. 오늘부터 이 천막에서 한 사람이라도 다치면, 그건 당신 책임입니다.”
모기장 텐트 안에서 예봄이가 다른 아이 다섯과 나란히 누워 잠들기 시작했다. 균열이 숨을 들이쉬었고, 천막 자락이 부풀었다. 나는 아이들 숨을 하나씩 셌다. 여섯이었다. 어제보다 지킬 숨이 다섯 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