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44자)

총회

육아휴직 S급 헌터 · 문채겸

아침 여덟 시⁠, 성산동 구민체육센터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나는 셔츠를 갈아입었다⁠. 대피 가방에 넣어 온 셔츠는 하나였다⁠. 회색 반팔 티셔츠⁠. 어깨가 넓어서 늘 겨드랑이부터 젖는 셔츠⁠. 물린 어깨에 하솜이 밤새 손을 대 주어 이빨 자국은 분홍 줄 넷으로 남아 있었다⁠.

혜결이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 예봄이를 안고 있었고⁠, 다른 손에 남색 아기 띠를 들고 있었다⁠.

“⁠메고 가⁠.⁠”

“⁠빈 걸로⁠?⁠”

“⁠빈 걸로⁠. 이번엔 진짜 상징이야⁠.⁠” 혜결이 아기 띠를 내 가슴에 대고 버클을 등 뒤로 돌려 채웠다⁠. 딸깍⁠. 혜결의 손은 망설이지 않았다⁠. “⁠오늘 연차 냈어⁠. 본부장이 웃음 표시 세 개 보냈어⁠. 하나 늘었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도 쓰지 마⁠.⁠” 혜결이 예봄이 손을 들어 내 이마에 대 주었다⁠. 예봄이가 내 이마에 손바닥을 철썩 붙였다⁠. 경례였다⁠. “⁠가서 이기고 와⁠. 지면 우리 놀이터는 그냥 먹힌 거래⁠. 결희 씨가 그랬다며⁠.⁠”

“⁠그 말도 들었어⁠?⁠”

“⁠체육관이 다 들었어⁠. 결희 씨 목소리가 커⁠.⁠”

혜결이 휴대전화를 흔들어 보였다⁠. 사내 메신저 팀방이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한 과장님 단지 뉴스 나왔어요 괜찮으세요⁠?⁠」 「⁠과장님 발표 자료 제가 백업해 둘까요⁠?⁠」 「⁠본부장님이 연차 결재하시면서 한숨 쉬셨대요⁠」 혜결이 마지막 줄을 손가락으로 가리고 웃었다⁠.

*

용산 협회 본부 대강당은 지하 이 층까지 뚫린 계단식 강당이었다⁠. 대의원 헌터 이백 명이 아래 좌석을 채웠고⁠, 위쪽 객석은 시민들에게 열려 있었다⁠. 객석이 가득 찼다⁠. 소리가 층층이 쌓였다⁠. 의자 삐걱이는 소리⁠, 휴대전화 진동⁠, 아기 띠 안에서 아기들이 칭얼거리는 소리⁠.

객석 맨 앞줄에 결희가 있었다⁠. 3단지 주민 스무 명쯤이 결희 옆에 앉았다⁠. 대표회장도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었다⁠. 주민들 옆으로 아기 띠를 맨 부모 헌터 열둘⁠. 교대에 손을 든 사람들이었다⁠. 맨 끝 통로 자리에 하솜이 운비를 무릎에 앉히고 있었고⁠, 하솜 옆 좌석에 목발 두 개가 기대 있었다⁠. 재련이었다⁠. 오른쪽 발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하솜이 밤새 붙인 발목이었다⁠.

빈 아기 띠를 메고 대의원석 사이로 걸어 들어가자 강당이 한 번 술렁였다⁠. 술렁임 속의 말들이 다 들렸다⁠. 또 저거 메고 왔네⁠. 연출이야⁠. 아니 진짜 애 아빠잖아⁠. 놀이터 먹혔다며⁠. 사람 구하느라⁠.

단상 옆 작전부장석에 주완이 앉아 있었다⁠. 밤을 새운 얼굴이었다⁠. 넥타이는 반듯했다⁠.

*

협회장이 개회를 선언했다⁠. 상임이사가 안건을 읽었다⁠.

“⁠안건 일⁠. S급 헌터 휴직 제한안⁠. 국가 재난 등급 균열이 열려 있는 동안 S급 헌터는 휴직할 수 없으며⁠, 이미 휴직 중인 S급은 협회의 복귀 명령에 따른다⁠. 제안 설명⁠, 작전부장⁠.⁠”

주완이 단상에 올랐다⁠. 무릎을 끄는 발소리가 마이크에 잡혀 강당을 울렸다⁠. 주완은 원고를 펼치지 않았다⁠.

“⁠어젯밤 열 시 십이 분⁠, 서교동 균열의 경계선이 망원2동으로 뛰었습니다⁠. 물빛마을 3단지 넉 동과 놀이터 하나가 경계선 안에 들어갔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대피 버스가 다 실었습니다⁠.⁠” 주완이 객석의 결희를 보았다⁠. “⁠주민 대표 한 분이 동마다 문을 두드렸다고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결희가 팔짱을 꼈다⁠. 대표회장이 자기 얘기인 줄 알고 고개를 들었다가 아닌 것을 알고 다시 숙였다⁠.

“⁠경계선이 뛰기 직전⁠, 저는 무전으로 권창해 헌터에게 나와서 경계선을 막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권 헌터가 날숨마다 경계선을 베었다면 이백 미터는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놀이터는 밖에 있었을 겁니다⁠. 권 헌터는 명령을 어기고 균열 깊이 들어갔습니다⁠. 혼자 들어간 A급 헌터 하나를 업으러⁠.⁠”

주완이 잠깐 멈췄다⁠. 마이크가 주완의 숨을 잡았다⁠. 주완은 칠 초 동안 숨을 들이쉬었다⁠.

“⁠어젯밤 권 헌터가 구한 사람은 제 딸입니다⁠.⁠”

강당이 조용해졌다⁠. 대의원석에서 누군가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객석의 재련이 목발을 쥐었다⁠.

“⁠그래서 이 안건을 올릴 자격이 저에게 없다고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제 딸을 구한 사람을 제가 묶으려 한다고요⁠. 맞습니다⁠. 그래도 올립니다⁠.⁠” 주완의 목소리는 공손했다⁠. 마이크를 타니 공손함이 강당 끝까지 갔다⁠. “⁠S급 한 사람의 마음이 정하는 일이⁠, 사백 명이 사는 동네의 경계선을 정합니다⁠. 어젯밤 권 헌터의 마음은 옳았을지 모릅니다⁠. 다음 S급의 마음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맞기를 바라는 것은 작전이 아닙니다⁠. 저는 작전부장입니다⁠.⁠”

주완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박수가 대의원석 절반에서 나왔다⁠. 나머지 절반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반대 토론⁠. 권창해 헌터⁠.⁠”

*

단상에 올랐다⁠. 빈 아기 띠가 가슴 앞에서 흔들렸다⁠. 객석에서 누가 키득거렸다⁠. 키득거림은 금방 그쳤다⁠.

“⁠놀이터는 제가 내줬습니다⁠.⁠” 내가 말했다⁠. “⁠부장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제가 경계선 앞에 있었으면 그네는 아직 밖에 있습니다⁠. 저는 그네와 사람 하나 가운데 사람을 골랐습니다⁠. 부장님은 사람 하나와 사백 명 가운데 사백 명을 고르셨습니다⁠. 둘 다 맞게 골랐고⁠, 둘 다 뭔가를 내줬습니다⁠.⁠”

객석의 대표회장이 팔짱을 풀었다⁠. 다시 꼈다⁠.

“⁠그 대가는 제가 치르겠습니다⁠. 오늘 여기서 그 대가를 걸겠습니다⁠.⁠”

나는 휴대전화를 단상 화면에 연결했다⁠. 결희의 미숫가루 당번표 사진이 강당 화면 가득 떴다⁠. 「⁠2조⁠: 쌍둥이 동생 오늘 예민함⁠. 사과 퓌레 금지⁠.⁠」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대의원석에서도 몇이 웃었다⁠. 결희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핵은 8월 26일 밤에 망원 한강공원 둔치 밑에서 멈춥니다⁠. 멈춘 핵은 밤새 가장 깊은 데로 내려갑니다⁠. 열두 시간입니다⁠. 저는 그 열두 시간을 미숫가루 당번처럼 나누겠습니다⁠. 두 시간씩 여섯 조⁠. 조마다 부모 헌터 셋⁠. 바뀌는 자리에서 앞 조가 뒤 조에게 길을 넘깁니다⁠. 핵이 내려간 길은 어젯밤 유재련 팀장이 발목을 내주고 잡아 왔습니다⁠.⁠”

재련이 목발을 짚고 일어났다⁠. 객석이 재련을 돌아보았다⁠.

“⁠북쪽으로 꺾여요⁠.⁠” 재련이 말했다⁠. 마이크가 없었는데도 강당 아래까지 들렸다⁠. 콧노래를 부르던 목이었다⁠. “⁠둔치 밑으로⁠. 제가 들어가 봤어요⁠. 귀 대신 발로⁠.⁠”

“⁠아이들은요⁠?⁠” 대의원석에서 누군가 물었다⁠. B급 아빠 헌터였다⁠. 교대에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이었다⁠.

“⁠서교동 주민센터 강당에 돌봄방을 차렸습니다⁠. 통제선 밖입니다⁠. 대구와 망원동 노인정 할머니들이 이불을 보냈고⁠, 놀이터 엄마들이 지킵니다⁠. 협회는 아직 검토 중입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한 번 더 났다⁠. 협회장이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하나를 걸겠습니다⁠.⁠” 나는 빈 아기 띠의 버클을 손으로 쥐었다⁠. “⁠26일 밤 교대가 끊기면⁠, 핵이 물 밑으로 들어가면⁠, 저는 이 안건에 찬성하겠습니다⁠. 휴직을 내려놓고 정식으로 복귀하고⁠, 마포가 끝나면 오사카로 가겠습니다⁠. 교대가 끝까지 가면⁠, 이 안건은 거둬 주십시오⁠. 그리고 서랍 속 마흔 장에 답장을 보내 주십시오⁠.⁠”

강당이 술렁였다⁠. 상임이사가 탁자를 두드렸다⁠. 들숨보다 짧은 박자였는데⁠, 오늘은 박자가 자꾸 틀렸다⁠.

대의원석 앞줄에서 A급 하나가 일어났다⁠. 마흔 중반⁠, 화염 계열이었다⁠. 손등에 불에 덴 흉터가 얼룩져 있었다⁠.

“⁠S급이 아기 띠 메고 단상에서 정치하는 겁니까⁠? 우리는 넉 달 동안 당신 자리 메우느라 밤을 샜어요⁠. 나도 애가 둘이에요⁠. 나는 휴직 신청서도 안 냈어요⁠. 내면 누가 들어갈지 아니까⁠.⁠”

“⁠압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서 내셔야 합니다⁠.⁠”

“⁠뭐요⁠?⁠”

“⁠선배님이 안 내시니까⁠, 선배님 다음 사람도 안 냅니다⁠. 선배님 애 둘은 아빠가 균열에 있는 줄만 알고 큽니다⁠. 부장님 따님처럼요⁠.⁠”

A급의 얼굴이 붉어졌다⁠. 객석의 재련이 목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주완은 작전부장석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치는 이 안건이 합니다⁠. 저는 아기 띠를 멨을 뿐입니다⁠. 아내가 채워 줬습니다⁠. 버클을 제가 못 풀어서요⁠.⁠”

객석에서 웃음이 났다⁠. 결희가 가장 크게 웃었다⁠. A급은 한참 서 있다가 앉았다⁠. 앉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다른 사람은 못 들었다⁠. “⁠우리 둘째 돌잔치도 균열에서 봤는데⁠.⁠” 나는 들었다⁠. 못 들은 척했다⁠.

*

결희가 객석에서 일어났다⁠. 쌍둥이를 체육관에 두고 혼자 온 날이었다⁠. 결희는 손을 들지도⁠, 마이크를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말했다⁠. 물류센터에서 지게차 소리를 이기던 목소리였다⁠.

“⁠3단지 주민 고결희예요⁠. 우리 놀이터 먹힌 거 맞아요⁠. 우리 단톡방 이름이 「⁠물빛놀이터 엄마들⁠」인데 이제 놀이터가 없어요⁠. 방 이름 바꿔야 돼요⁠.⁠”

객석에서 누군가 웃다가 멈췄다⁠.

“⁠그런데 어젯밤 우리 단지에서 다친 사람 하나도 없어요⁠. 버스가 다 실었어요⁠. 제가 동마다 문 두드렸어요⁠. 저 사람이 그걸 우리한테 맡기고 들어갔어요⁠. 무전기 꺼 놓고⁠.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믿고⁠.⁠” 결희가 숨을 들이쉬었다⁠. “⁠맡겨 준 거예요⁠. 협회는 우리한테 뭐 맡겨 본 적 있어요⁠? 대피하세요⁠, 실내에 계세요⁠, 그거 말고요⁠.⁠”

대의원석이 조용해졌다⁠. 결희가 자리에 앉았다⁠. 대표회장이 결희를 보았다⁠. 팔짱을 풀었다⁠. 이번에는 다시 끼지 않았다⁠.

협회장이 마이크를 당겼다⁠. 휴대전화를 한 번 보았다⁠. 영상을 보고 시범으로 하라던 사람이었다⁠. 오늘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이 안건의 표결은 8월 26일 작전 뒤로 미룹니다⁠. 작전 방식은 작전부장의 권한입니다⁠. 작전부장이 정하십시오⁠.⁠”

*

복도에 나오자 주완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 이 층 복도도 소리가 잘 울렸다⁠. 객석에서 나온 사람들이 우리 둘을 비켜 갔다⁠. 결희가 지나가다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사진을 찍지 않고 내렸다⁠.

“⁠교대로 하십시오⁠.⁠” 주완이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주완은 늘 다음 말이 있었다⁠.

“⁠조건이 둘입니다⁠. 하나⁠, 변 선생은 문 앞에 둡니다⁠. 다친 사람을 받는 자리입니다⁠. 재우는 일은 없습니다⁠. 그 부탁은 거둡니다⁠.⁠”

주완이 넥타이를 만졌다⁠. 손가락이 매듭에서 오래 머물렀다⁠.

“⁠둘⁠, 마지막 조는 권 헌터와 접니다⁠.⁠”

“⁠부장님은 무릎이⁠…⁠…⁠”

“⁠압니다⁠. 다섯 해 동안 작전 천막에서 나가지 않았습니다⁠. 무릎보다 자리가 저를 붙잡았습니다⁠.⁠” 주완이 나를 보았다⁠. 공손한 눈이었다⁠. 공손함 밑에 다른 것이 있었다⁠. “⁠마지막 두 시간에 권 헌터가 시계를 보고 나가려 하면⁠, 제가 막겠습니다⁠. 재우는 손 말고 이 손으로⁠.⁠”

주완이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방패를 열일곱 해 든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7월 16일에 내 아기 띠 버클을 망설임 없이 푼 손이었다⁠.

“⁠그리고 핵이 깨지면⁠, 시계를 보는 사람은 제가 되겠습니다⁠. 핵이 안 깨졌는데 시계가 일곱 시 반을 가리키면⁠, 그때는 놓아 드리지 않습니다⁠. 끝까지요⁠.⁠”

“⁠무슨 뜻입니까⁠?⁠”

“⁠27일 아침 아홉 시에 여의도에 계셔야 하는 분이 있지 않습니까⁠. 아내분 대신 아이를 받으셔야 하는 시각이⁠.⁠” 주완이 몸을 돌렸다⁠. 무릎을 끄는 발소리가 복도를 걸어갔다⁠. “⁠변 선생이 보낸 마지막 보고에 있었습니다⁠. 지우지 못했습니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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