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52자)
경계선
육아휴직 S급 헌터 · 문채겸
열 시 십이 분, 균열이 다시 들이쉬기 시작했다. 이십 초, 이십오 초. 공기가 서쪽으로 쓸려 갔다. 무전기가 지지직거리다 주완의 목소리를 뱉었다.
「문 앞이다. 경계선 서쪽 이상 징후. 망원2동 대피 버스 출발했다. 권 헌터, 열 시 반까지 나오십시오.」
주완의 목소리는 무전기에서도 공손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균열 안에서 전화가 터지는 것은 문 근처 몇 걸음뿐이었다. 문 방향으로 열 걸음을 뛰어 혜결에게 걸었다. 두 번 울리고 받았다.
“대피 가방 메고 예봄이 데리고 나가. 지금.”
“방송 나오고 있어. 성산동 체육센터래. 유수지 체육관은 빠졌대.” 혜결의 목소리 뒤로 아파트 안내 방송이 울렸고, 방송 너머로 예봄이가 울었다. 자다 깬 울음이었다. “당신은?”
“나는 열 시 반에 나가서 경계선 앞으로 갈게.”
“USB 챙겼어.” 혜결이 말했다. 웃으려는 목소리였다. “분유도.”
전화가 끊겼다. 끊긴 화면을 보는데 등 뒤에서 재련의 목소리가 들렸다.
“S급님.”
재련이 서쪽을 보고 있었다. 핵이 뛰는 방향이었다. 들숨에 머리카락이 앞으로 쓸려 있었다.
“이 숨, 핵이 내려갈 길이 지금 열리는 거죠?”
“열리는 중입니다. 멈추려면 아직 이레 남았는데……”
“지금 길이 보이면 지금 잡아 두면 되잖아요. 26일 밤에 처음부터 찾지 않아도 되게.” 재련이 검을 고쳐 쥐었다. “S급님은 나가세요. 놀이터 지키세요. 길은 제가 잡을게요. 교대 연습한다고 왔잖아요. 이게 교대예요.”
“혼자 가시면 안 됩니다.”
“아빠는 늘 혼자 갔대요. 무릎 나가기 전까지.”
재련이 뛰었다. 하솜이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B급이 따라가려다 들숨에 밀려 넘어졌다. 재련의 발소리가 접힌 골목 너머로 사라지고, 콧노래가 남았다. 콧노래가 멀어졌다. 백 미터, 이백 미터. 들숨이 끝나고 날숨이 터졌다. 날숨 끝에 골목이 하나 접혔다. 콧노래가 벽 너머로 넘어갔다. 소리가 둔해졌다. 길이 닫혔다.
*
“권 헌터, 상황 보고하십시오.” 무전기였다.
“유 팀장이 핵 방향으로 혼자 들어갔습니다. 접힌 골목 너머에 갇혔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무전기가 삼 초 동안 조용했다. 균열 안에서 삼 초는 길었다.
「안 됩니다. 나오십시오. 경계선 터지기 직전입니다. 권 헌터가 경계선 앞에서 날숨마다 베어 주면 이백 미터는 붙잡을 수 있습니다. 유 팀장은 구조 팀을 보내겠습니다.」
“구조 팀은 길을 모릅니다.”
「압니다.」
“따님입니다.”
「압니다.」 주완의 목소리는 끝까지 공손했다. 「경계선 밖에 3단지 주민 사백 명이 있습니다. 대피 버스가 아직 반밖에 못 실었습니다. 권 헌터 아내와 따님도 그 안에 있습니다. 나오십시오. 명령입니다.」
귀를 서쪽으로 돌렸다. 두 소리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나는 접힌 벽 너머의 콧노래였다. 소절이 자꾸 끊겼다. 숨을 깊이 못 쉬는 콧노래였다. 하솜이 붙여 놓은 갈비뼈가 다시 어딘가에 부딪친 숨이었다. 다른 하나는 경계선 너머의 그네 소리였다. 바람에 쇠사슬이 삐걱였다. 넉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던 소리. 예봄이가 처음으로 그네에 앉았던 날도 저 소리가 났다.
둘 다 지킬 수는 없었다. 경계선 앞에서 날숨마다 칼을 휘두르는 동안 재련은 접힌 골목 안에서 숨이 줄어들 것이다. 재련에게 가는 동안 경계선은 나 없이 뛸 것이다. 사람은 버스가 싣는다. 버스는 놀이터를 싣지 못한다.
하솜이 내 팔을 잡았다. 짧게 말했다.
“가세요.”
“경계선은요?”
“사람은 버스가 실어요. 결희 씨가 실어요. 그 사람 지금 단톡방으로 동마다 확인하고 있을 거예요.” 하솜이 B급을 일으켜 세웠다. “저는 이 사람이랑 나가서 문 앞에서 다친 사람 받을게요. 재련 씨는 선생님 귀밖에 못 찾아요.”
무전기를 껐다.
*
접힌 골목은 들숨마다 좁아졌다. 날숨에 열린 틈으로 몸을 밀어 넣고, 들숨에 벽에 등을 붙여 버텼다. 괴수들이 들숨을 타고 달려들었다. 나는 날숨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재련이 하던 대로 들숨 한가운데서 베었다. 처음 해 보는 박자였다. 팔이 박자를 따라오지 못해 왼쪽 어깨를 한 번 물렸다. 하솜이 없었다. 물린 자리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뛰었다.
열한 시 이십 분, 서쪽에서 소리가 터졌다.
들숨 끝에 쌓였던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 나가는 소리였다. 균열의 벽 너머로, 경계선 바깥으로. 터지는 소리 뒤로 바깥의 소리들이 차례로 바뀌었다. 매미가 그쳤다. 자동차 경적이 멀어졌다. 개 한 마리가 짖다가 멈췄다. 그리고 그네 쇠사슬 소리가 삐걱이다가, 한 번 길게 늘어지더니, 균열 안의 소리로 바뀌었다. 미지근하고 둔한 소리. 벽 안쪽의 소리.
물빛 놀이터가 경계선 안으로 들어왔다.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듣게 된다. 등나무 벤치와 코끼리 미끄럼틀과 모래밭이 하나씩 벽 안쪽 소리로 바뀌는 것을. 나는 콧노래에만 귀를 묶었다.
열한 시 오십 분,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에서 재련을 찾았다. 접힌 벽 두 장 사이에 오른쪽 다리가 끼어 있었다. 재련은 벽에 기대 앉아 콧노래를 부르다가 나를 보고 멈췄다.
“왜 왔어요.”
“길 잡으셨습니까?”
“잡았어요. 핵 내려가는 길. 여기서 북쪽으로 꺾여요. 둔치 밑으로.” 재련의 숨이 짧았다. 갈비뼈가 다시 어디에 부딪친 숨이었다. “놀이터는요?”
대답하지 않았다. 재련은 내 얼굴을 보고 알았다. 귀가 나쁜 사람도 그런 건 알았다.
“바보예요?” 재련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떨렸다. “나 하나 때문에 놀이터를……”
“놀이터는 다시 지을 수 있습니다.” 나는 벽 틈에 칼을 넣어 날숨에 맞춰 비틀었다. 벽이 한 뼘 벌어졌다. 재련의 다리가 빠졌다. 발목이 이상한 각도였다. “다리는 다시 못 짓습니다. 업히세요.”
“또 업어요?”
“팀장님이 우리 팀 애기입니다. 오늘도.”
재련이 내 목에 팔을 둘렀다. 콧노래를 부르려다 말았다. 대신 내 어깨에 이마를 댔다. 이마가 뜨거웠다. 등에 업힌 재련의 숨을 들으며 걸었다. 예봄이를 재울 때의 걸음으로. 들숨에 멈추고 날숨에 걸었다.
*
문을 빠져나온 것은 새벽 한 시 십 분이었다.
열 시 반에서 두 시간 사십 분이 지나 있었다. 문 앞에 하솜이 서 있었다. 들것이 달려왔다. 재련을 내려놓자 하솜이 재련의 발목에 손바닥을 댔다. “가만.” 재련이 가만히 있었다.
주완이 문 앞 의자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소리를 냈다. 주완은 들것 위의 재련을 보았다. 한 번 보았다. 손이 움찔했다. 다가가지 않았다.
“유 팀장은 의무 천막으로.”
들것이 멀어졌다. 재련이 들것 위에서 고개를 돌려 주완을 보았다. 주완은 재련을 보지 않고 나를 보았다.
“열 시 반을 두 시간 사십 분 넘기셨습니다.” 주완이 말했다. “반일 시범은 끝났습니다. 오늘부터 정식 복귀입니다.”
“압니다.”
“명령을 어기셨습니다.”
“압니다.”
“경계선이 망원2동까지 뛰었습니다. 3단지 101동부터 104동까지 경계선 안입니다. 놀이터도요.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대피 버스가 다 실었습니다. 방장이라는 분이 동마다 문을 두드렸답니다.” 주완이 숨을 한 번 쉬었다. “권 헌터가 경계선 앞에 있었으면 놀이터는 밖에 있었을 겁니다.”
“부장님은 왜 저를 경계선으로 부르셨습니까? 따님이 안에 있었습니다.”
주완이 나를 보았다. 공손한 얼굴이 처음으로 흐트러졌다. 눈 밑이 떨렸다.
“경계선 밖에 남의 딸이 사백 명 있었습니다.” 주완이 말했다. “제 딸 하나 때문에 남의 딸 사백 명을 걸 수는 없습니다. 그게 제 자리입니다. 권 헌터는 반대로 고르셨습니다. 놀이터를 내주고 제 딸을 데려오셨습니다. 저는 고맙다는 말을 못 합니다. 고맙다고 하면, 오늘 밤 제가 한 명령이 틀린 게 됩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주완도 더 말하지 않았다. 주완이 시계를 보았다. 새벽 한 시 십삼 분.
“총회는 오늘 아침 열 시입니다. 권 헌터 집이 경계선 안에 들어간 채로요.”
*
새벽 두 시, 망원2동 골목 끝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제까지 3단지 정문으로 이어지던 길이었다. 길 한가운데에 검은 막이 일렁이고 있었다. 새 경계선이었다. 막 너머로 101동의 불 꺼진 창들이 물속처럼 흔들려 보였다. 경찰 통제선이 막 앞 이십 미터에 쳐져 있었고, 통제선 앞에 주민 몇이 서 있었다. 대피 버스에 타지 않고 버틴 사람들이었다.
입주자대표회장이 휴대전화를 들고 막을 찍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휴대전화를 내 얼굴로 돌렸다.
“여기 S급 오셨네. 다들 보세요. 우리 단지 먹힐 때 어디 계셨는지 물어봅시다.”
“균열 안에 있었습니다.”
“안에서 뭐 하셨는데요? 애 보셨어요?”
“사람을 업고 나왔습니다.”
대표회장이 무슨 말을 더 하려다 멈췄다. 화면 속 내 어깨의 피를 보았다. 휴대전화가 조금 내려갔다. 다른 주민 하나가 대표회장의 팔을 잡아끌었다. 대표회장은 끌려가면서도 한마디를 남겼다. “호가 다 끝났어. 다 끝났다고.”
나는 막 앞에 서서 귀를 댔다. 막 안쪽에서 그네 소리가 났다. 바람이 없는데도 쇠사슬이 삐걱였다. 균열이 숨 쉴 때마다 그네가 조금씩 흔들렸다. 들숨에 앞으로, 날숨에 뒤로. 아무도 앉지 않은 그네가 균열의 박자로 흔들리고 있었다.
*
새벽 세 시, 성산동 구민체육센터 바닥에 매트가 줄지어 깔려 있었다. 형광등은 반만 켜져 있었다. 사백 명이 한 체육관에서 자는 소리는 바다 소리 같았다. 코 고는 소리, 뒤척이는 소리, 아이가 잠결에 우는 소리, 엄마가 쉬, 쉬, 하는 소리.
혜결은 체육관 구석 매트에 앉아 있었다. 예봄이가 혜결 무릎을 베고 자고 있었다. 대피 가방이 매트 옆에 있었다. 지퍼가 반쯤 열려 USB가 보였다.
“재련 씨는?” 혜결이 물었다.
“발목. 하솜 씨가 붙이고 있어.”
“놀이터는?”
“들어갔어.”
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내 왼쪽 어깨의 물린 자리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피가 말라 셔츠에 붙어 있었다. 혜결이 대피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셔츠 위로 피를 꾹꾹 눌러 닦았다. 예봄이 엉덩이를 닦을 때와 같은 손놀림이었다.
옆 매트에서 결희가 일어났다. 쌍둥이가 양쪽에서 결희 팔을 하나씩 베고 자고 있었다. 결희는 팔을 조심스럽게 빼고 내게 걸어왔다. 쌍둥이 머리가 매트에 닿을 때 둘 다 동시에 입을 쩝쩝거렸다.
결희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사진이었다. 어제 해 질 무렵의 물빛 놀이터. 등나무 벤치에 하솜과 결희가 앉아 있었고, 모래밭에 운비와 쌍둥이가 있었다. 그네가 비어 있었다. 빈 그네가 바람에 조금 기울어 있었다.
“그네 넘어가는 소리, 들으셨어요?”
“들었습니다.”
결희가 휴대전화를 거두었다. 나를 오래 보았다. 화를 내지도, 울지도 않았다. 공지문 말투도 아니었다.
“다들 아시죠, 라고 말할 사람이 없어요. 우리 방이 놀이터였는데.” 결희가 쌍둥이 매트로 돌아가다가 멈췄다.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총회 열 시라면서요. 가세요. 가서 이기세요. 지면 우리 놀이터는 그냥 먹힌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