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292자)

탕약 한 사발

황궁의 늙은 내관이 천하제일 고수였다 · 마필제

태의는 청음정 마루 끝에 앉았다⁠. 앉으라는 말이 있기 전이었다⁠. 다리가 먼저 꺾였다⁠.

“⁠돌아가신 그날 새벽⁠, 수인전에서 사람이 왔네⁠. 폐하께서 숨을 쉬지 않으신다고⁠. 내가 갔을 때 고충겸이 이미 침상 곁에 서 있었어⁠.⁠” 태의가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개 쥐었다⁠. 손등의 검버섯이 떨림을 따라 움직였다⁠. “⁠겉옷과 속옷은 벗겨져 있었고⁠, 동창 사람이 그 속옷을 들고 나가는 중이었네⁠. 나는 폐하의 가슴을 보았어⁠.⁠”

판구는 화로에 숯을 넣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왼쪽 가슴에 손바닥 하나가 찍혀 있었네⁠. 멍이 아니었어⁠. 살이 얼어 있었지⁠. 희푸르게⁠, 손가락 다섯이 그대로⁠. 방 안에 화로가 셋이나 있었는데 그 자리만 손을 대면 얼음장 같았어⁠. 사십 년 의원 노릇에 그런 몸은 처음이었네⁠.⁠” 태의가 침을 삼켰다⁠. “⁠고충겸이 내 곁에 와서 서더니 이렇게 말했어⁠. 선황께서는 오래 앓으신 가슴 병으로 가셨다고⁠. 태의가 그리 아뢰면 태의 집안이 편안할 거라고⁠.⁠”

“⁠그래서 그리 아뢰셨소⁠?⁠”

“⁠그리 아뢰었지⁠.⁠” 태의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는데⁠, 이번엔 새 폐하의 탕약을 지으라더군⁠. 맥이 약하다고 아뢰고⁠, 백 일 동안 눕게 하라고⁠. 탕약은 내가 짓네⁠. 기운을 돋우는 약이야⁠. 그런데 보늬라는 궁녀가 그걸 들고 나가기 전에 무언가를 더 넣어⁠. 동창에서 받은 조롱박 병에서⁠. 그게 뭔지 나는 몰라⁠. 몰라야 한다고 했어⁠.⁠” 태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냄새는 알지⁠. 달고 비린 냄새⁠. 그걸 백 일 드시면 봄에 일어나지 못하셔⁠.⁠”

화로에서 숯이 타닥 소리를 냈다⁠. 판구가 부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제 폐하께서 약을 엎으셨을 때 태의께서는 눈을 감으셨소⁠.⁠”

“⁠그 약을 엎는 손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네⁠.⁠” 태의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내 손자가 올해 스물이야⁠. 폐하와 동갑이지⁠. 그 아이가 약 사발을 엎는 걸 상상했어⁠. 그러고 나니 이 늙은 손이 무엇을 지었는지 알겠더군⁠.⁠”

“⁠무엇을 원하시오⁠?⁠”

“⁠도성 남쪽 염초 골목에 내 집이 있네⁠. 아내와 아들 내외⁠, 손자⁠. 넷이야⁠. 그 넷이 무사하면 나는 조정에서 백관 앞에 서서 말하겠네⁠. 선황의 가슴에 무엇이 있었는지⁠. 내가 무엇을 거짓으로 아뢰었는지⁠.⁠” 태의가 판구를 보았다⁠. “⁠자네는 정원 내관이지⁠. 자네가 그 넷을 지킬 수 있나⁠?⁠”

판구는 궁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흔 해 동안 한 번도 궁문 문턱을 넘지 않았다⁠. 태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일어나 청음정 기둥에 기대 세워 둔 비를 집었다⁠.

“⁠해 지기 전에 사람을 하나 데려오겠소⁠. 태의께서는 오늘 낮에 수인전 탕약을 평소처럼 지으시오⁠. 아무것도 바꾸지 마시오⁠.⁠”

*

수인전 뒤채 부엌은 좁았다⁠. 화덕 하나에 약탕관 둘이 올라가면 사람 둘이 비켜서기도 어려웠다⁠. 새봄은 이 부엌 문 앞에 서 있었다⁠. 판구가 새벽에 일러 준 대로였다⁠. 보늬가 약을 들고 나가기 전에 부엌 안을 보라고⁠.

정오가 지나자 태의의 약방에서 약탕관이 올라왔다⁠. 보늬가 이것을 화덕에 올렸다⁠. 김이 오르고⁠, 쓴 냄새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보늬는 부엌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문 앞의 새봄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 보늬가 소매 안에서 손가락 길이만 한 조롱박 병을 꺼냈다⁠. 마개를 뽑았다⁠. 달고 비린 냄새가 쓴 냄새 밑으로 깔렸다⁠.

새봄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거 뭐예요⁠?⁠”

보늬의 손이 멈췄다⁠. 조롱박 병 끝이 사발 위에서 기울어 있었다⁠. 이 사람은 놀란 얼굴을 짓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새봄을 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감초 물이에요⁠. 탕약이 너무 써서 폐하께서 못 드시잖아요⁠. 언니도 어제 보셨죠⁠? 다 엎으신 거⁠.⁠”

“⁠감초는 저 바구니에 있어요⁠. 말린 거요⁠. 감초 물을 조롱박 병에 담아서 소매에 넣고 다니는 사람은 없어요⁠.⁠”

“⁠언니⁠.⁠” 보늬가 병을 든 손을 내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언니도 살고 싶잖아요⁠. 못 본 척해요⁠. 언니는 태후전에서 왔고 나는 동창에서 왔어요⁠. 둘 다 시킨 대로 하는 거예요⁠. 시킨 대로 하는 사람은 안 죽어요⁠.⁠”

새봄이 한 걸음에 다가가 보늬의 손목을 쥐었다⁠. 조롱박 병이 기울어 몇 방울이 화덕 위로 떨어졌다⁠. 치익 소리와 함께 비린 김이 올라왔다⁠. 보늬가 다른 손으로 새봄의 뺨을 쳤다⁠. 손바닥 소리가 부엌에 크게 울렸다⁠. 새봄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돌린 그대로 보늬의 뺨을 쳤다⁠. 더 크게⁠.

“⁠나는 태후전에서 시킨 대로 하는 거예요⁠.⁠” 새봄이 숨을 몰아쉬었다⁠. “⁠폐하 곁에 무엇이 들어오는지 보라고 하셨거든요⁠. 이게 들어왔네요⁠.⁠”

새봄이 보늬의 손에서 조롱박 병을 비틀어 뺏었다⁠. 이때 부엌 문이 걷어차이듯 열렸다⁠. 수인전 호위를 맡은 동창 졸개 둘이었다⁠.

“⁠무슨 소란이냐⁠!⁠”

“⁠이 궁녀가 폐하 탕약에⁠…⁠…⁠.⁠”

“⁠궁녀끼리 머리채를 잡았구먼⁠.⁠” 졸개 하나가 새봄의 팔을 붙잡아 뒤로 꺾었다⁠. 다른 하나가 보늬를 문밖으로 데려 나갔다⁠. 보늬는 볼이 붉게 부은 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회랑 끝으로 사라졌다⁠. “⁠수인전에서 소란을 피운 죄는 제독 마마께 아뢰겠다⁠. 너는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졸개들이 나갔다⁠. 새봄은 꺾였던 팔을 주무르며 손을 폈다⁠. 조롱박 병이 손바닥 안에 있었다⁠. 졸개는 새봄의 팔만 꺾었지 손을 펴 보지는 않았다⁠. 마개가 빠진 병 입구에서 달고 비린 냄새가 났다⁠. 병을 손수건으로 싸서 가슴께에 넣었다⁠. 뺨이 화끈거렸다⁠.

*

저녁 수라상이 물러난 뒤 연성이 새봄의 얼굴을 보았다⁠. 등불 열 개 사이에서 새봄의 왼뺨만 붉게 부어 있었다⁠. 손가락 자국 넷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거 뭐야⁠?⁠”

“⁠부엌 문에 부딪혔어요⁠.⁠”

“⁠문에 손가락이 넷 있어⁠?⁠” 연성이 일어났다⁠. “⁠누구야⁠? 동창이야⁠? 보늬야⁠? 보늬 어디 갔어⁠?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

“⁠폐하⁠.⁠” 새봄이 무릎을 꿇은 채 황제의 소매를 잡았다⁠. 새봄이 황제의 소매를 먼저 잡은 일은 처음이었다⁠. “⁠지금 폐하께서 화를 내시고 보늬를 찾으시면⁠, 동창이 오늘 부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게 돼요⁠. 그럼 제가 뺏어 온 게 무엇인지도 알아요⁠. 지금은 모르는 척해 주세요⁠. 제 뺨은 내일이면 가라앉아요⁠.⁠”

연성은 서서 새봄을 내려다보았다⁠. 숨이 거칠었다⁠. 그러다 다시 앉았다⁠. 아주 천천히⁠, 새봄과 눈높이가 맞는 데까지⁠. 손을 뻗어 새봄의 부은 뺨에 손등을 댔다⁠. 황제의 손이 찼다⁠. 부은 자리가 이 찬 손등에 조금 식었다⁠.

“⁠나도 한 대 맞았어⁠. 오늘 아침에 비질하다가 비 자루에 이마를 찧었거든⁠.⁠” 연성이 다른 손으로 제 이마를 가리켰다⁠. 거기에도 붉은 자국이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둘 다 부딪힌 거야⁠. 너는 문에⁠, 나는 비에⁠.⁠”

새봄이 웃었다⁠. 웃다가 뺨이 아파 얼굴을 찡그렸다⁠. 연성은 손등을 떼지 않았다⁠. 등불 하나가 심지를 태우며 지지직 소리를 냈다⁠. 둘 다 그쪽을 보지 않았다⁠.

*

해 질 녘⁠, 어선방 짐 수레 하나가 서쪽 쪽문으로 들어왔다⁠. 궁 밖 시장에서 돼지고기와 밀가루를 들여오는 수레였다⁠. 왕복길이 수레 앞에서 손을 휘저으며 동창 문지기에게 떠들었다⁠.

“⁠이 찜통은 새로 맞춘 거요⁠! 구리가 두꺼워서 김이 사흘을 간다니까⁠. 이 사람은 찜통 장수인데 들고 와서 직접 써 보여 준대서⁠. 문지기 양반도 만두 하나 드시오⁠. 아⁠, 고기가 두 배요⁠. 백 개는 아직 못 보냈지만 이건 덤이오⁠.⁠”

찜통 장수는 수레 뒤에서 큰 구리 찜통을 등에 지고 있었다⁠. 털모자를 눌러쓰고 앞치마를 둘렀다⁠. 이 사람은 문지기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문지기가 만두를 입에 물고 손짓했다⁠. 수레가 들어갔다⁠.

청음정에 닿자 찜통 장수가 찜통을 내려놓고 털모자를 벗었다⁠. 유가휘였다⁠. 유가휘는 앞치마를 끌러 복길에게 던졌다⁠.

“⁠다음에는 왕 내관이 지시오⁠. 이 찜통은 사람이 질 물건이 아니오⁠.⁠”

“⁠지휘사 나리가 내 찜통을 졌다고 어선방에 소문내도 되오⁠?⁠”

“⁠그러면 내가 왕 내관 만두에 무엇이 들었는지 소문내지⁠.⁠”

“⁠고기 두 배 들었소⁠.⁠”

복길이 앞치마를 끌어안고 물러갔다⁠. 판구가 화로 곁에서 일어났다⁠. 유가휘는 화로 앞에 앉지 않고 선 채로 판구가 하는 말을 들었다⁠. 태의의 이야기⁠, 염초 골목의 넷⁠, 새봄이 받아 온 조롱박 병⁠. 판구가 손수건에 싼 병을 내밀었다⁠. 유가휘가 마개 자리에 코를 대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동창이 이걸 폐하 탕약에 넣었다는 걸 백관 앞에서 말할 사람이 태의 하나요⁠. 그 태의는 처자 넷을 내놓아야 입을 여오⁠. 그리고 그 넷은 궁 밖에 있소⁠.⁠” 유가휘가 병을 손수건에 다시 쌌다⁠. “⁠금의위는 내궁에서 물러났지만 도성은 금의위 땅이오⁠. 넷을 지킬 수는 있소⁠. 다만 영감⁠, 금의위가 그 넷을 숨기는 순간 나는 동창과 등을 지게 되오⁠. 동창과 등을 지면 이 궁에서 내 자리는 영감 빗자루보다 짧아지오⁠.⁠”

“⁠무엇을 원하시오⁠?⁠”

“⁠빚을 갚으시오⁠. 열두 걸음⁠, 스무 걸음⁠, 그리고 지붕 위의 줄 타는 놈까지⁠. 이자가 쌓였소⁠.⁠” 유가휘가 판구를 똑바로 보았다⁠. “⁠나는 이길 쪽에 서는 사람이오⁠. 이길 쪽을 고르려면 내가 누구 편에 서는지 알아야 하오⁠. 영감이 누구요⁠?⁠”

판구는 화로 불빛을 내려다보았다⁠. 바람 한 점이 청음정 처마를 돌아 나갔다⁠. 마른 잎 몇 장이 돌길 위를 굴렀다⁠. 이 소리가 그쳤을 때 말했다⁠.

“⁠마흔 해 전에는 추풍이라 불렸소⁠.⁠”

유가휘의 손이 저절로 칼자루로 갔다⁠. 유가휘는 이 손을 거두지 못했다⁠. 마흔 해 전 한겨울에 북쪽 산의 한 문파를 혼자 올라가 끝내고⁠, 강호의 모든 문파가 유가휘를 쫓다가 끝내 놓쳤다는 사람⁠. 금의위의 옛 현상 방에 아직도 이 이름이 붙어 있었다⁠. 얼굴 그림은 없었다⁠. 아무도 이 얼굴을 가까이서 보고 살아남지 못했다⁠. 유가휘는 스무 살 신참 무관 시절 금의위 옥사 벽에서 이 누렇게 바랜 방을 처음 보았다⁠. 선배 무관들은 이 방 앞을 지날 때 농담처럼 말했다⁠. 이 사람이 살아 있으면 지금쯤 어느 산꼭대기에서 신선이 되었을 거라고⁠.

“⁠추풍객⁠.⁠” 유가휘가 이 이름을 입에 올렸다⁠. 목소리에 정중함이 없었다⁠. “⁠그 이름에 걸린 값이면⁠, 태의 처자 넷이 아니라 도성 남쪽 골목 하나를 통째로 살 수 있소⁠.⁠”

판구는 비 자루를 놓지 않았다⁠. 유가휘의 손은 칼자루 위에 그대로 있었다⁠.

*

같은 시각⁠, 동익문 곁 동창 아문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보늬였다⁠. 볼이 아직 붉게 부어 있었다⁠. 이 사람은 당두의 안내를 받아 화로 없는 방에 들어가 고충겸 앞에 엎드렸다⁠.

“⁠제독 마마⁠. 병을 빼앗겼습니다⁠. 새봄이라는 궁녀에게⁠.⁠”

고충겸은 이 말에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보늬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오늘 새벽⁠, 태의 영감이 등불도 없이 청류원으로 가는 것을 수인전 회랑에서 보았습니다⁠. 한 시간 넘게 있다가 나왔습니다⁠.⁠”

고충겸이 장갑을 벗었다⁠. 손가락 끝으로 탁자 모서리를 한 번 쓸었다⁠.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에 얇은 서리가 앉았다⁠.

“⁠당두⁠. 염초 골목에 불을 놓게⁠. 오늘 밤에⁠.⁠”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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