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39자)

동창 아문의 얼음물

황궁의 늙은 내관이 천하제일 고수였다 · 마필제

고충겸이 섬돌 위에서 내려왔다⁠. 판구와 복길을 번갈아 보았다⁠.

“⁠쏟은 사람이 둘이군⁠.⁠”

“⁠제가 쏟았습니다요⁠.⁠”

“⁠아니오⁠, 내가 쏟았소⁠. 이 늙은이는 망령이 나서⁠…⁠…⁠.⁠”

“⁠둘 다 데려가게⁠.⁠” 고충겸이 당두에게 말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는 물이 가려 주겠지⁠.⁠”

*

동창 아문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서른두 칸이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축축해졌고⁠, 벽돌 틈에서 배어 나온 물이 얼어 고드름이 되어 있었다⁠. 옥은 통로 양쪽으로 여덟 칸씩⁠, 굵은 나무 창살로 막혀 있었다⁠. 판구는 왼쪽 세 번째 칸에⁠, 복길은 이 옆 네 번째 칸에 들어갔다⁠.

판구가 들어간 칸 한가운데에 돌 구유 하나가 놓여 있었다⁠. 말에게 물을 먹이는 구유처럼 길쭉했고⁠, 이 안에 물이 반쯤 차 있었다⁠. 물 위에 얼음이 얇게 떠 있었다⁠.

졸개 둘이 판구의 내관복을 벗기고 홑옷만 남겼다⁠. 그리고 판구의 양 어깨를 눌러 구유 안에 꿇렸다⁠. 얼음이 깨지며 물이 허리까지 올라왔다⁠. 늙은 몸이 한 번 크게 떨렸다⁠. 이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옥 안에 울렸다⁠.

고충겸이 옥문 안으로 들어왔다⁠. 담비 털 망토를 벗지 않았고⁠, 장갑을 벗었다⁠. 구유 곁에 무릎 하나를 굽히고 앉아 판구의 왼손 손목을 쥐었다⁠. 손가락 셋이 맥 자리에 얹혔다⁠.

손이 찼다⁠. 얼음물보다 찼다⁠. 판구의 손목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사람의 맥은 거짓말을 못 하네⁠.⁠” 고충겸이 부드럽게 말했다⁠. “⁠무공을 익힌 몸은 찬물에 들어가면 맥이 깊어져⁠. 안에서 기운이 돌아 몸을 데우려 하니까⁠. 늙고 아무것도 모르는 몸은 맥이 얕아지고 빨라지지⁠. 그냥 얼어 가는 거야⁠.⁠”

판구는 구유 안에서 떨었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배꼽 아래 깊은 자리에서 저절로 올라오려는 더운 기운을 누르고 있었다⁠. 마흔 해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돌린 기운이었다⁠. 이것을 누르는 동안 추위는 그대로 뼈로 들어왔다⁠. 발가락 끝이 먼저 감각을 잃었고⁠, 다음 무릎이었다⁠.

“⁠빠르고 얕군⁠.⁠” 고충겸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너무 고르게 빠르고 고르게 얕아⁠. 일흔 먹은 몸이 얼어 가면서 이렇게 박자를 맞추나⁠?⁠”

“⁠마⁠, 마마님⁠…⁠… 늙은이가⁠…⁠… 춥습니다요⁠…⁠…⁠.⁠”

“⁠추울 거야⁠.⁠” 고충겸이 손을 거두었다⁠. 고충겸은 일어나 장갑을 다시 끼었다⁠. “⁠자네 고향이 어딘가⁠?⁠”

“⁠나⁠, 남쪽⁠…⁠… 바닷가 소금밭이옵니다요⁠.⁠”

“⁠소금밭⁠.⁠” 고충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북쪽 산에서 왔네⁠. 겨울이 길고 눈이 사람 허리까지 쌓이는 곳이지⁠. 거기서는 이 정도 물은 여름 물이야⁠.⁠” 고충겸이 옥문 쪽으로 걸어가다 멈췄다⁠. “⁠한 시간 뒤에 다시 오겠네⁠. 그때도 맥이 고르면⁠, 그 소금밭이 어디인지 물에 다시 묻지⁠.⁠”

옥문이 닫혔다⁠.

*

옆 칸에서 복길의 목소리가 창살 틈으로 새어 나왔다⁠.

“⁠옥졸 양반⁠. 거기 옥졸 양반⁠. 밥은 먹었소⁠?⁠”

“⁠닥쳐⁠.⁠”

“⁠닥칠게⁠. 근데 하나만 묻소⁠. 동창 옥졸 밥은 누가 짓소⁠? 어선방은 아닐 테고⁠, 아문 부엌이겠지⁠. 거기 만두 나오오⁠?⁠”

“⁠…⁠…⁠.⁠”

“⁠안 나오는구먼⁠. 내가 그럴 줄 알았소⁠. 동창 사람들 얼굴이 다 시퍼런 게 만두를 못 먹어서 그래요⁠. 만두는 말이오⁠, 돼지고기를 칼로 다지면 안 되고 칼등으로 두드려야 해⁠. 그래야 고기 결이 살아⁠. 거기에 부추를 손가락 한 마디 길이로 썰어서⁠…⁠…⁠.⁠”

옥졸이 의자를 고쳐 앉는 소리가 났다⁠. 복길은 쉬지 않았다⁠. 만두피를 미는 밀대의 굵기⁠, 찜통에 까는 솔잎⁠, 김이 오르고 나서 뚜껑을 열기까지 기다리는 숨의 수⁠. 이 숨을 하나하나 소리 내어 셌다⁠. 옥졸 둘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판구에게까지 들렸다⁠.

“⁠…⁠… 그래서 열둘을 세고 뚜껑을 열면⁠, 김이 이렇게 확 올라오면서 냄새가⁠…⁠…⁠. 아이고⁠, 근데 내 옆 칸 늙은이가 얼어 죽으면 나는 이 비법을 누구한테 물려주나⁠? 그 늙은이가 내 만두를 제일 많이 먹었는데⁠. 옥졸 양반⁠, 혹시 이불 한 장 있으면 저 칸에 넣어 주오⁠. 나 나가면 아문 부엌에 만두 백 개 보내리다⁠. 고기 두 배로⁠.⁠”

한참 조용했다⁠. 그러다 옥문 쇠가 덜그럭거렸다⁠. 판구의 칸 창살 틈으로 낡은 솜이불 한 장이 밀려 들어왔다⁠. 옥졸은 판구를 구유에서 꺼내 주지는 않았다⁠. 이불만 구유 가장자리에 걸쳐 놓고 나갔다⁠.

“⁠형님⁠, 받았소⁠?⁠”

“⁠받았소⁠.⁠”

“⁠백 개요⁠. 형님 몫은 없소⁠.⁠”

판구는 구유 가장자리에 걸린 이불 끝을 젖은 어깨에 끌어 올렸다⁠. 그리고 천장을 보았다⁠.

옥 천장 위는 동창 아문 안채의 마루였다⁠. 거기서 발소리가 났다⁠. 판구는 떨면서 이 소리를 셌다⁠. 하나⁠, 둘⁠, 셋⁠. 무게를 바닥에 싣지 않는 걸음이 일곱이었다⁠. 줄 타는 사내의 걸음⁠, 불 먹는 사내의 걸음이 이 안에 있었다⁠. 그리고 끌리는 발이 하나 있었다⁠. 곤장 서른을 맞은 칼잡이였다⁠. 궁 밖으로 냈다던 칼잡이가 아직 아문 안에 있었다⁠.

*

해가 기울 무렵 수인전에서 새봄이 황제 앞에 엎드렸다⁠.

“⁠폐하⁠, 두 사람이 동창 지하 옥에 있습니다⁠. 정원 할아버지는 얼음물에 꿇려 계시답니다⁠. 어선방에서 들었어요⁠. 어선방 사람들은 동창 부엌 사람들하고 숯을 나눠 쓰거든요⁠.⁠”

연성은 침전 안을 오락가락했다⁠. 등불은 아직 켜지 않았다⁠. 멈춰 섰다⁠.

“⁠사람 보내서 데려와⁠. 아니⁠, 사람을 보내면 고충겸이 법을 말할 거야⁠. 의식을 그르친 죄인이라고⁠.⁠” 연성이 다시 걸었다⁠. “⁠그럼 내가 가⁠.⁠”

“⁠폐하께서 동창 아문에 직접 가신 일은 없어요⁠. 선황 폐하도 안 가셨어요⁠.⁠”

“⁠그러니까 가는 거야⁠. 아무도 안 간 데니까 고충겸도 내가 올 줄 모를 거야⁠.⁠” 연성이 담비 털 외투를 걸쳤다⁠. 손이 떨려서 고름을 두 번 놓쳤다⁠. 새봄이 대신 매 주었다⁠. “⁠새봄아⁠, 너 같이 가⁠. 혼자 가면 무서워서 되돌아올 것 같아⁠.⁠”

동창 아문은 동익문 곁이었다⁠. 수인전에서 걸어서 일각이 넘었다⁠. 황제는 가마를 타지 않았다⁠. 눈 쌓인 회랑을 새봄과 둘이 걸었다⁠. 지나가는 궁인들이 이것을 보고 엎드렸다가⁠, 황제가 지나간 뒤에 고개를 들어 서로를 보았다⁠.

*

한 시간이 지나자 고충겸이 지하 옥으로 다시 내려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졸개 둘이 사내 하나를 양쪽에서 끼고 끌고 왔다⁠. 연희 날의 칼잡이였다⁠. 곤장 서른을 맞은 엉덩이와 허벅지가 바지 위로 검붉게 배어 있었고⁠, 두 발이 계단 칸마다 끌렸다⁠.

고충겸이 칼잡이를 구유 앞에 세웠다⁠.

“⁠잘 보게⁠. 섬돌에서 넘어진 늙은이가 이자인가⁠?⁠”

칼잡이가 구유 속의 판구를 내려다보았다⁠. 판구는 이불 끝을 어깨에 걸친 채 떨고 있었다⁠. 입술이 파랬고⁠, 턱이 쉬지 않고 덜덜거렸다⁠. 콧물이 얼어 윗입술에 붙어 있었다⁠.

“⁠이자입니다⁠.⁠”

“⁠자네 디딤발 밑으로 찻물이 왔을 때⁠, 그게 흘러온 물이었나⁠, 던진 물이었나⁠?⁠”

칼잡이가 한참 대답을 못 했다⁠. 그러다 말했다⁠. “⁠…⁠…디딤발 밑에만 왔습니다⁠. 오른발 쪽은 말라 있었습니다⁠.⁠”

고충겸이 판구를 보았다⁠. 판구는 이 말을 못 알아들은 얼굴로 칼잡이를 올려다보았다⁠.

“⁠마⁠, 마마님⁠, 소인 소금밭에서는⁠…⁠… 바닷물을 이렇게 퍼서 염전에 뿌릴 때⁠…⁠… 한쪽만 젖게 뿌리면 소금이 한쪽만 나서⁠…⁠… 늙은이 손이 그 버릇이⁠…⁠…⁠.⁠”

“⁠소금밭에서는 바닷물을 무엇으로 뿌리나⁠?⁠”

“⁠고무래⁠…⁠… 아니⁠, 물바가지옵니다요⁠. 고무래는 소금을 긁어모을 때 쓰고⁠…⁠…⁠. 바닷물은 해 뜨기 전에 뿌려야 하옵니다⁠. 해 뜬 다음에 뿌리면 소금이 쓰옵니다요⁠.⁠”

고충겸은 대답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판구의 대답은 틀린 데가 없었다⁠. 마흔 해 전⁠, 정원에 오기 전 한 철을 판구는 정말로 남쪽 소금밭에서 숨어 지냈다⁠.

이때 계단 위에서 졸개 하나가 뛰어 내려왔다⁠. 숨이 가빴다⁠.

“⁠제독 마마⁠! 폐하께서⁠, 폐하께서 걸어서 동익문 회랑을 지나고 계십니다⁠. 가마도 없이⁠, 궁녀 하나만 데리고 이리로 오십니다⁠!⁠”

고충겸의 얼굴이 처음으로 조금 움직였다⁠. 이 사람은 칼잡이를 끌고 가라 손짓하고 계단을 올랐다⁠. 판구는 이 발소리를 들었다⁠. 고충겸의 발소리는 여전히 나지 않았지만⁠, 계단 서른두 칸을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이 내려올 때보다 짧았다⁠.

*

고충겸은 아문 문턱 안쪽에 서서 황제를 맞았다⁠. 문턱은 무릎 높이의 나무였다⁠.

“⁠폐하⁠. 이 누추한 곳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정원 내관 내놔⁠. 어선방 내관도⁠.⁠”

“⁠두 사람은 오늘 큰 의식을 그르친 죄인이옵니다⁠. 폐하께서 친히 죄인을 거두어 가시면 궁의 법이 서지 않사옵니다⁠.⁠”

“⁠그 법 누가 정했어⁠?⁠”

“⁠선대부터 내려온 법이옵니다⁠.⁠”

“⁠선대면 아바마마도 정하신 거지⁠?⁠” 연성이 문턱 바로 앞까지 다가섰다⁠. 고충겸과 문턱 하나를 사이에 두었다⁠. 황제가 그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아바마마는 정원 할아범이 쓰는 비 소리를 들어야 주무셨어⁠. 그 할아범을 얼음물에 꿇리는 법을 아바마마가 정하셨을 리 없어⁠. 내놔⁠.⁠”

고충겸이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고충겸의 눈이 황제의 얼굴에서 뒤의 새봄에게로⁠, 다시 황제의 떨리는 손끝으로 옮겨 갔다⁠.

“⁠폐하의 뜻이 그토록 간절하시면 신이 어찌 거역하겠사옵니까⁠?⁠” 고충겸이 허리를 숙였다⁠. “⁠다만 신이 오늘 일을 살펴보니⁠, 금의위가 내궁 회랑을 돌면서 동창과 길이 겹쳐 빈틈이 생기옵니다⁠. 오늘부터 금의위는 내궁에서 물리고⁠, 내궁은 동창이 홀로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신이 두 사람을 지금 바로 올려 보내겠사옵니다⁠.⁠”

새봄이 황제의 소매를 아주 살짝 당겼다⁠. 연성은 돌아보지 않았다⁠. 연성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그렇게 해⁠. 빨리 올려 보내⁠.⁠”

*

판구는 졸개 둘의 팔에 들려 계단 서른두 칸을 올라왔다⁠. 홑옷이 얼어서 몸에 붙어 있었다⁠. 발은 맨발이었고⁠, 발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복길이 뒤따라 올라오며 소리쳤다⁠.

“⁠살살 들어⁠! 늙은이 뼈는 만두피보다 얇아⁠!⁠”

문턱 밖 눈 위에 황제가 서 있었다⁠. 연성은 판구를 보자 아무 말 없이 담비 털 외투를 벗었다⁠. 이 외투로 늙은 내관의 젖은 어깨를 덮었다⁠. 졸개들이 놀라 손을 놓았고⁠, 판구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연성이 이 몸을 받았다⁠. 황제의 팔이 늙은 내관의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갔다⁠.

“⁠폐하⁠…⁠… 옷이⁠…⁠…⁠.⁠”

“⁠옷은 많아⁠.⁠” 연성이 판구를 부축해 섰다⁠. 연성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리지 않았다⁠. “⁠할아범은 하나야⁠.⁠”

고충겸이 문턱 안에서 이 둘을 보고 있었다⁠. 황제가 외투를 벗어 내관에게 덮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아문 안으로 들어갔다⁠.

*

이 밤 수인전 곁방에 화로 둘이 놓였다⁠. 판구는 황제의 명으로 이 방에 누웠다⁠. 새봄이 판구의 발을 더운물에 담갔다가 마른 천으로 감쌌다⁠. 발가락 끝에 감각이 돌아오면서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판구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연성이 곁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새봄에게 눈짓을 했고⁠, 새봄이 나갔다⁠. 황제는 화로 곁에 쪼그려 앉았다⁠.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화로 속 숯이 타는 소리만 났다⁠.

“⁠할아범⁠. 오늘 고충겸이 할아범 손목을 쥐었지⁠? 새봄이가 옥졸한테 들었대⁠. 맥을 짚었다고⁠.⁠” 연성이 숯을 보며 말했다⁠. “⁠고충겸이 왜 정원 내관 맥을 짚어⁠? 그리고 왜 아바마마 마지막 옷을 찾아⁠? 그것도 새봄이가 들었어⁠.⁠”

판구는 누운 채 천장을 보았다⁠.

황제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붉었다⁠. 말을 빨리 하지 않았다⁠.

“⁠아바마마는 가슴 병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지⁠?⁠”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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