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743자)
뚜껑 없는 찻주전자
황궁의 늙은 내관이 천하제일 고수였다 · 마필제
판구는 빗자루를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
“예? 잎을 쓸었습지요, 마마님. 해 지기 전에 다 쓸었는데, 밤에 또 떨어지길래…….”
“버드나무는 잎을 다 떨궜네.”
“그러니까 말씀입니다요. 다 떨군 나무에서 뭐가 자꾸 떨어지니 늙은이가 무서워서…….” 판구가 얼음 구멍 쪽으로 고개를 빼며 걸음을 옮겼다. “저게 뭡니까요? 무슨 소매 같은…….”
세 걸음째에 판구의 발이 연못가 바위를 지나 얼음 위로 올라갔다. 네 걸음째에 미끄러졌다. 늙은 몸이 뒤로 넘어가며 엉덩방아를 찧었고, 그대로 얼음 위를 한 바퀴 반 돌아 구멍 바로 앞에서 멈췄다. 빗자루는 손에서 떨어져 혼자 얼음 위를 미끄러져 갔다. 판구는 구멍 속 검은 소매를 코앞에서 보더니 목청을 찢었다.
“물귀신이오! 마마님, 물귀신이 소매를 내밀었소!”
얼음이 쩍 소리를 냈다. 판구가 네 발로 기어 뭍으로 돌아오는 동안 고충겸은 등불을 든 채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늙은 내관이 바위를 붙잡고 올라와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자, 고충겸이 월동문 쪽으로 손짓했다. 동창 졸개 넷이 갈고리 장대를 들고 들어왔다.
시신은 금방 올라왔다. 검은 옷, 검은 두건, 발에는 바닥을 솜으로 덧댄 신. 얼음물에 잠겼다 나온 얼굴이 희었고, 왼쪽 관자놀이가 손가락 두 마디만큼 꺼져 있었다.
고충겸이 이 꺼진 자리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담을 넘은 도둑이군. 얼음에 미끄러져 바위에 머리를 깼어.” 고충겸이 당두에게 말했다. “동창으로 옮겨. 금의위에는 알릴 것 없다.”
“제독 마마, 그런데 이자의 신이…….”
“도둑은 원래 조용한 신을 신네.” 고충겸이 판구를 돌아보았다. 늙은 내관은 여전히 바위에 기대 앉아 헐떡이고 있었다. “자네는 내일부터 해가 지면 방에서 나오지 말게. 물귀신이 또 소매를 내밀면 곤란하니.”
“예, 예. 안 나옵지요. 죽어도 안 나옵니다요.”
*
금의위 지휘사 유가휘는 밤 순라를 돌다가 이 얼음 소리를 들었다. 황제의 친위이자 도성 안 큰 옥사를 맡는 금의위의 우두머리가 궁 안을 직접 도는 일은 드물었는데, 선황이 죽은 뒤로 밤마다 직접 돌았다. 동창이 무엇을 하는지 남의 입으로 듣기 싫었다.
이 사람은 날이 밝자 동창 아문 마당에 섰다. 거적을 덮은 시신이 처마 밑에 누워 있었다. 동창 당두가 이 앞을 막았다.
“제독 마마께서 도둑 일이라 하셨소. 금의위가 볼 일이 아니오.”
“궁 담을 넘은 도둑이면 금의위 일이오. 그게 법이오.” 유가휘가 정중하게 말했다. 유가휘는 마흔이었고, 비꼴 때 목소리가 가장 공손해졌다. “당두가 법을 바꾸셨다면 내가 몰랐구려. 언제 바꾸셨소? 축하를 드려야겠는데.”
당두가 대답을 못 하는 사이에 유가휘는 거적을 걷었다. 쭈그려 앉아 시신의 손부터 보았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 안쪽에 굳은살이 일자로 박여 있었다. 칼을 던지는 손이었다. 도둑의 손이 아니었다. 다음 관자놀이를 보았다. 꺼진 자리는 둥글지 않았다. 반달 모양으로 깊이 파였고, 이 안쪽 머리카락 사이에 흙빛 유약이 묻은 사기 조각 하나가 박혀 있었다. 손톱만 했다.
바위에 머리를 깬 자리에는 사기가 박히지 않는다.
유가휘는 손가락으로 이 조각을 뽑아 손수건에 쌌다. 당두가 무어라 하기 전에 일어섰다.
“도둑이 맞구려. 동창 말이 늘 맞지.” 유가휘가 손수건을 소매에 넣었다. “다음에는 도둑이 바위에 머리를 깨기 전에 잡으시오. 그러라고 밤에 정원을 닫으신 것 아니오?”
동창 아문을 나서면서 유가휘는 청류원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정원 입구에서 연못까지의 걸음을 셌다. 연못에서 담 밑까지, 담 밑에서 청음정까지. 청음정 화로 위에 흙빛 찻주전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뚜껑이 없었다.
*
수인전의 아침은 기름 냄새로 찼다. 침전 안에 등불이 열두 개, 밤새 켜 둔 기름이 다 타 들어가며 그을음을 천장에 올렸다. 새 황제 주연성은 이 등불들 가운데 담비 털 이불을 어깨에 두르고 앉아 있었다. 스무 살, 눈 밑이 거뭇했고, 무릎 위에서 두 손을 쉬지 않고 비볐다.
“얼음 깨지는 소리 들었어. 삼경이었지? 내가 셌어. 딱따기 세 번 울리고, 한참 있다가 쩍.” 연성이 말을 빨리 했다. 겁날수록 빨라지는 말이었다. “무슨 일이었어? 할아범이 정원 내관이지? 거기 있었지?”
판구는 문턱 안쪽에 엎드려 있었다. 판구 곁에 궁녀 하나가 서 있었다. 새봄, 스물둘, 황제 곁을 지키는 수인전 궁녀였다. 판구를 이 방으로 데려온 사람도 새봄이었다.
“예? 늙은이가 귀가 어두워서…….”
“폐하께서 얼음 소리를 물으셨어요, 할아버지.” 새봄이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고는 황제 쪽을 보며 덧붙였다. “이분 귀 하나도 안 어두우세요. 어제 제가 월동문 밖에서 할아버지를 작게 불렀는데, 정원 끝에서 돌아보셨어요.”
판구가 엎드린 채로 눈만 들어 새봄을 보았다. 새봄이 이 눈을 마주 보았다.
“도둑이 들었다가 얼음에 빠졌사옵니다.”
“도둑.” 연성이 이 말을 되받았다. “동창도 도둑이라고 하더라. 근데 할아범, 하나만 물어볼게. 어제 정원 잎을 왜 다 쓸었어?”
“제독 마마께서 폐하 주무시는 데 소리가 나면 안 된다고…….”
“그거야.” 연성이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키가 컸고, 일어서니 판구가 고개를 한참 들어야 했다. “나 소리가 나야 자. 조용하면 못 자. 아바마마도 그러셨어. 새벽에 정원에서 비 쓰는 소리가 들려야 오늘도 궁이 무사한 거라고. 그 소리 듣고서야 다시 눈을 붙이셨대. 나 어릴 때 그 말 듣고 잠든 척하면서 그 소리 기다린 적도 있어.”
판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엎드린 등이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원 잎은 밤에 쓸지 마. 그리고 할아범이 매일 새벽에 이 마당도 쓸어. 내가 들리게.” 연성이 침전 문을 열어젖혔다. 마당에 눈이 깔려 있었다. “아니, 잠깐. 나도 쓸어 볼래. 빗자루 줘 봐.”
“폐하, 그건…….”
“황제가 빗자루 쥐면 안 된다는 법 있어? 새봄아, 있어?”
“없어요. 아무도 그런 법을 안 만들어서요.”
연성은 판구의 싸리비를 받아 들었다. 창을 쥐듯 자루 끝을 쥐고 마당으로 내려가 힘껏 휘둘렀다. 눈과 잎이 한꺼번에 솟아 새봄의 치맛자락에 쏟아졌다. 새봄이 한 걸음 물러나 치마를 털었다. 연성은 다시 휘둘렀다. 이번에는 눈이 제 얼굴로 날아왔다.
“이게 왜 이래?”
판구가 마당으로 내려와 황제의 손을 자루 가운데로 옮겨 쥐여 주었다. 왼손은 위에, 오른손은 이 아래 한 뼘. 그리고 황제의 팔꿈치를 몸 쪽으로 밀어 붙였다.
“비는 팔로 쓸지 않사옵니다. 허리로 쓸고, 팔은 따라만 가옵니다. 소리가 한쪽으로만 나게.”
연성이 다시 쓸었다. 싸리가 눈을 긁는 소리가 사락, 한쪽으로 났다. 황제가 이 소리를 듣고 판구를 돌아보았다. 입이 반쯤 열려 있었다.
*
고충겸이 수인전 마당에 들어선 것은 이때였다. 담비 털 망토에 눈이 없었다. 황제가 빗자루를 쥔 모습을 보고 섬돌 아래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폐하. 지난밤 도둑이 정원 담을 넘었다가 연못에 빠져 죽었사옵니다. 신이 놀라시게 해 드려 죄를 청하옵니다.”
“알아. 들었어.”
“하여 오늘부터 수인전 호위를 동창이 맡겠사옵니다. 금의위는 궁 밖 일이 많아 밤에 빈틈이 생기옵니다. 그리고 폐하 수라와 탕약을 먼저 맛볼 궁녀를 하나 들였사옵니다.” 고충겸이 뒤를 돌아보았다. 갸름한 얼굴의 궁녀 하나가 앞으로 나와 엎드렸다. “보늬라 하옵니다. 손이 정갈하옵니다.”
연성이 빗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마디가 하얘졌다.
“호위는 금의위가 하던 대로 해.”
“폐하, 지난밤 도둑은 금의위가 지키던 담을 넘어왔사옵니다.” 고충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신이 선황 폐하를 지켜 드리지 못했사옵니다. 폐하마저 그리 되시면 신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옵니다.”
마당이 조용했다. 판구는 섬돌 끝에 엎드려 고충겸의 신발 끝만 보았다. 눈 위에 서 있는데 신발 주위의 눈이 녹지 않고, 오히려 가장자리가 조금 더 하얗게 굳어 있었다.
연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새봄을 한 번, 판구를 한 번 보았다.
“그럼 호위는 동창이 해. 대신 정원이랑 이 마당 잎은 밤에 쓸지 마. 해 지면 정원 닫는 것도 하지 마. 정원 내관은 이제 내 마당 내관이야. 매일 새벽에 여기 쓸러 와.”
고충겸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황제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
“잎이 바스락거리면 폐하 잠을…….”
“짐이 그 소리를 들어야 잔다고 했어.” 연성이 처음으로 짐이라는 말을 썼다. 말끝이 떨렸다. “그것도 동창이 정해?”
고충겸이 다시 허리를 숙였다. 아주 천천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 사람이 나가면서 섬돌 끝에 엎드린 늙은 내관을 내려다보았다. 판구는 이마를 섬돌에 붙인 채였다. 보늬라는 궁녀가 남아 침전 안으로 들어갔다. 보늬가 지나갈 때 분 냄새 밑으로 쓴 약재 냄새가 났다.
*
새봄이 판구를 월동문까지 바래다주었다. 수인전에서 정원까지는 회랑 하나였는데, 이 회랑을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회랑 바닥 널이 새봄의 발밑에서만 삐걱거렸다. 판구의 발밑에서는 울지 않았다.
“할아버지, 어젯밤에 정말 방에 계셨어요?”
“늙은이가 밤에 어딜 가겠소.”
“폐하는 삼경에 얼음 소리를 들으셨어요. 저는 그 전에 다른 소리를 들었어요. 사락, 하고 잎 밟는 소리요. 수인전 담 밑에서요. 그 담 밑은 동창 당두가 저녁에 다 쓸린 걸 보고 갔대요.” 새봄이 걸음을 멈췄다. “잎이 혼자 걸어서 담 밑에 깔렸을까요?”
판구가 새봄을 올려다보았다. 새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 태후전 궁녀였어요. 선황 폐하 돌아가신 다음 날, 태후 마마께서 저를 수인전으로 보내셨어요. 새 폐하 곁에 있으라고, 누가 무엇을 들고 들어오는지 보라고요.” 새봄이 목소리를 낮췄다. “저는 할아버지가 무엇을 하시는지 묻지 않을게요. 대신 폐하 곁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할아버지께 먼저 말씀드릴게요.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다음에 잎을 까실 때는 제게 먼저 말씀해 주세요. 놀라서 소리 지를 뻔했어요.”
“소리를 질렀으면 어쩔 뻔했소?”
“폐하가 깨셨겠죠. 그럼 등불을 열세 개 켜셨을 거예요.”
판구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이 사람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월동문을 지났다. 새봄은 회랑에 서서 이 뒷모습이 연못을 돌아 사라질 때까지 보았다. 늙은 내관이 깔린 잎을 밟고 가는데, 이 걸음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이 밤, 판구는 청음정 뒤 제 방에서 화로에 손을 쬐고 있었다. 정원에는 잎이 다시 깔려 있었다. 황제의 명이었다. 연못 얼음 구멍은 저녁 무렵 다시 얼어붙었다.
정원 쪽에서 눈 밟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숨기지 않는 발소리였다. 잎을 밟는 소리까지 그대로 냈다. 무게는 백오십 근, 왼쪽 허리에 쇠가 매달려 걸을 때마다 짤랑거렸다.
방문이 열렸다. 유가휘가 문턱에 섰다. 금의위의 붉은 비단옷 위로 눈이 앉아 있었다. 들어오라는 말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와 화로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내 펼쳤다.
흙빛 사기 조각 하나가 화롯불을 받았다. 손톱만 한 조각, 안쪽에 굳은 피가 거뭇했다.
“청음정 찻주전자에 뚜껑이 없더이다. 뚜껑 조각 하나가 죽은 자의 관자놀이 뼛속에 박혀 있었고.” 유가휘가 정중하게 말했다. “청음정 화로에서 담 밑까지 열두 걸음이오. 내가 세어 봤소. 영감, 앉은 자리에서 열두 걸음 밖 사람의 뼈를 깨는 찻주전자 뚜껑은 이 궁에 하나뿐이오.”
판구는 화로에 손을 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예? 늙은이가 귀가…….”
“귀가 밝은 것은 새봄이라는 궁녀가 이미 폐하께 아뢰었소.” 유가휘가 사기 조각을 화로 가장자리에 올려놓았다. “나는 이 조각을 동창에 줄 수도 있고, 금의위 옥사 함에 넣어 둘 수도 있소. 어느 쪽인지는 영감 대답에 달렸소. 마흔 해 전에 영감은 어디 있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