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52자)
해 지기 전에 쓸어라
황궁의 늙은 내관이 천하제일 고수였다 · 마필제
청류원의 첫눈은 소리부터 왔다. 밤새 떨어진 은행잎과 단풍잎이 연못가 돌길을 덮고 있었는데, 이 위로 눈송이가 하나씩 내려앉을 때마다 마른 잎이 아주 작게 사락거렸다. 노판구는 이 소리를 들으며 비질을 했다. 싸리비가 돌길을 한 번 긁고 지나가면 잎은 한쪽으로 모였고, 눈은 이 자리에 다시 쌓였다.
판구는 일흔이었다. 허리가 굽어 빗자루 끝보다 머리가 먼저 앞으로 나갔고, 회색 내관복 무릎께는 마흔 해 동안 꿇은 자리마다 천이 얇아져 있었다. 대나무 자루는 손이 닿는 두 군데만 검게 반들거렸다. 싸리는 해마다 새로 묶었지만 자루는 처음 쥔 그대로였다.
정원 끝 월동문, 둥근 돌문 쪽에서 눈 밟는 소리가 났다. 뽀득, 뽀득, 그리고 무언가 덜그럭거리는 소리. 판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발소리만으로 누구인지 알았다. 한 걸음마다 오른쪽이 조금 무겁고, 걸음 사이에 숨을 두 번 쉬는 사람은 궁 안에 하나뿐이었다.
“형님! 형님, 첫눈이오. 첫눈엔 만두요.”
황제의 수라를 짓는 어선방에서 만두만 이십 년을 빚은 내관 왕복길이 대바구니를 안고 뛰어왔다. 쉰 살, 얼굴이 만두처럼 둥글어서 궁 안 사람들은 복길을 왕만두라 불렀다. 바구니 덮개 틈으로 김이 올라왔다. 판구 옆 돌난간에 바구니를 올려놓고 덮개를 걷기도 전에 말부터 쏟았다.
“들으셨소? 폐하께서 어젯밤에도 등불을 열두 개 다 켜 놓고 주무셨답디다. 아니, 못 주무셨지. 수인전 궁녀들이 기름을 사흘에 한 번 타 간대요. 선황 폐하 가신 지 두 달인데 새 폐하는 아직 그 침전이 무서우신 거요. 스무 살이면 장가를 가도 갈 나이인데.”
“만두가 식소.”
“아, 식으면 안 되지.” 복길이 덮개를 걷었다. 김이 확 올라와 눈송이를 녹였다. “그리고 또 있소. 동창에서 연희패를 들였답디다. 즉위 축하 연희를 한다고. 줄 타는 놈, 칼 던지는 놈, 불 먹는 놈, 열둘이래. 근데 그놈들을 어디 재우는지 아시오? 동창 아문이오. 광대를 동창에서 재우는 거 봤소? 나는 오십 평생 처음이오.”
판구는 만두 하나를 집었다. 뜨거워서 손가락 끝으로 굴렸다. 돼지고기와 부추 냄새가 차가운 공기 속으로 퍼졌다.
“광대들 발소리는 들어 봤소?”
“발소리요? 형님, 광대 발소리를 내가 왜 듣소. 나는 입소리만 들어요.” 복길이 만두를 하나 더 집어 판구 손에 쥐여 주었다. “근데 그러고 보니 그놈들, 어선방 앞을 지나가는데 조용하긴 조용합디다. 열둘이 지나가는데 하나가 지나가는 것 같았소.”
판구는 두 번째 만두를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
해가 높이 뜨기 전에 동창 사람들이 정원에 들어왔다. 황제 직속으로 관리와 궁인을 몰래 살피고 잡아 가둘 수 있는 기관이 동창이었고, 이 우두머리가 제독 태감 고충겸이었다. 환관 가운데 가장 높은 벼슬이 태감이었으니, 궁 안에서 그보다 높은 내관은 없었다.
고충겸은 쉰여덟이었다. 키가 크고, 붉은 비단 관복 위에 검은 담비 털 망토를 둘렀다. 얼굴은 희고 매끈해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앞장서 걷고 동창의 당두,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하나와 졸개 여섯이 한 걸음 뒤에서 따랐다. 일곱의 발소리가 눈을 밟았는데, 고충겸의 발소리만 들리지 않았다.
판구는 빗자루를 세우고 허리를 굽혔다. 복길은 바구니를 끌어안고 난간 뒤로 반 걸음 물러났다.
고충겸이 이 앞에서 멈췄다. 고충겸의 눈이 판구의 얼굴이 아니라 돌길 위를 보았다. 한쪽으로 쓸려 모인 잎 더미, 이 반대편의 맨 돌, 비질 자국이 남지 않은 눈.
“자네가 이 정원 내관인가?”
“예, 예. 소인이옵니다.”
“얼마나 되었나?”
“예?”
“이 정원을 쓴 지 얼마나 되었느냐 물었네.”
“아, 예. 마흔 해 되었사옵니다. 늙은이가 귀가 어두워서.”
“마흔 해.” 고충겸이 이 말을 입속에서 한 번 굴렸다.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잎을 쓸어 모으는데 비 소리가 안 나는군. 마흔 해면 그렇게도 되나?”
“눈이 와서 그렇사옵니다. 눈이 소리를 먹습지요.”
고충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장갑을 벗었다. 희고 긴 손가락이 드러났다. 벗은 장갑 한 짝을 잎 더미 위로 툭 떨어뜨렸다.
“주워 주게.”
판구가 허리를 더 굽혀 장갑을 집었다. 검은 사슴 가죽이었다. 손이 닿는 순간 손끝이 저렸다. 해가 비치는 아침인데 장갑 안쪽이 겨울 우물 돌처럼 찼다. 사람이 방금까지 끼고 있던 장갑이 그랬다. 판구는 두 손으로 장갑을 받쳐 올렸다. 손가락이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
고충겸이 장갑을 받아 다시 끼었다.
“오늘부터 청류원 낙엽은 해 지기 전에 남김없이 쓸게. 해가 지면 이 정원은 닫는다. 동창이 지킨다.”
“예, 예. 그런데 마마님, 밤에 잎이 또 떨어지면…….”
“밤에 바스락 소리가 나면 폐하의 잠을 깨우네. 즉위하신 지 두 달인데 아직 한 번도 깊이 못 주무셨어. 수인전이 이 정원 담 너머야.” 고충겸이 수인전 쪽 담을 턱으로 가리켰다. 담 위로 황제 침전의 푸른 기와가 눈을 이고 있었다. “소리가 없어야 하네. 알겠나?”
“예, 예. 소리가 없어야…….”
“앞장서게. 청음정까지 길을 보고 가겠네.”
판구는 빗자루를 끌어안고 앞서 걸었다. 열 걸음쯤 갔을 때 판구의 발이 빗자루 자루에 걸렸다. 몸이 앞으로 꺾였고, 늙은 내관은 눈 덮인 잎 더미에 얼굴부터 처박혔다. 잎이 사방으로 튀었다. 싸리비가 판구의 등 위로 떨어져 한 번 퉁겼다.
뒤에서 동창 졸개 하나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두 번째가 따라 웃었다. 복길이 난간 뒤에서 “아이고, 형님!” 하고 소리쳤다.
판구는 한참 만에 엉금엉금 일어나 앉았다. 눈썹에 은행잎이 하나 붙어 있었다.
“늙으면 제 빗자루에도 걸립니다요, 마마님.”
고충겸은 웃지 않았다. 판구가 처박힌 자리를 보았다. 잎 더미가 무너져 흩어진 모양이 고르게 둥글었다. 한동안 이것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청음정은 됐네. 해 지기 전이야.”
동창 사람들이 월동문 밖으로 나갔다. 일곱 사람이 걸어 나갔고, 들리는 발소리는 여섯이었다.
복길이 달려와 판구의 등에서 눈을 털었다.
“형님, 일부러 넘어졌지요? 내가 형님 넘어지는 거 마흔 해…… 아니, 스무 해 봤는데, 형님은 넘어질 때마다 꼭 잎 더미에만 넘어지더라.”
“늙으면 푹신한 데로 넘어지는 거요.”
“그 장갑, 왜 그렇게 오래 들고 있었소?”
판구는 대답 대신 손을 폈다 쥐었다. 손끝이 아직 찼다.
*
청음정은 연못 북쪽 끝에 있는 작은 찻집이었다. 기둥 넷에 지붕 하나, 바닥에 화로 하나. 판구는 이 화로 곁에 서서 흙빛 찻주전자를 내려다보았다. 손바닥만 한 뚜껑에 금이 한 줄 가 있었다. 선황이 쓰던 주전자였다.
두 달 전, 구월 그믐 밤이었다. 선황이 등불도 없이 혼자 정원에 들어와 이 화로 앞에 앉았다. 기침을 오래 했고, 판구가 끓인 차를 반 잔 마셨다. 잔을 내려놓고 선황이 말했다.
“판구, 이번 겨울만 넘기게 해 주게. 연성이를.”
판구가 무슨 말씀이냐고 묻기 전에 선황은 일어나 수인전 쪽으로 걸어갔다. 이튿날 아침 종이 울렸다. 선황이 침전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오래 앓던 가슴 병이라고 했다. 선황이 남긴 찻잔은 판구가 씻지 않고 청음정 마루 밑에 넣어 두었다.
판구는 화로를 지나 수인전 쪽 담까지 걸었다. 정원 서쪽 담에서 연못을 돌아 이 담 밑까지, 지붕을 타고 서쪽 담을 넘은 사람이 황제의 침전에 닿으려면 반드시 지나는 길이었다. 마흔 해 동안 판구는 이 길의 잎을 늘 조금씩 남겨 두었다. 밤에 누가 지나가면 소리가 나게.
선황은 이것을 알았다. 그래서 침전 창을 조금 열어 두고 잤다.
*
해 질 녘, 판구는 정원의 잎을 다 쓸었다. 돌길이 맨바닥을 드러냈고, 잎 더미는 마대 열두 자루에 담겼고, 동창 졸개들이 이것을 세어 서쪽 담 밖으로 내갔다. 동창 당두가 등불을 들고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돌길을 발로 쓸어 보고, 연못가 바위 틈까지 들여다보고, 수인전 담 밑에서 오래 서 있다가 나갔다. 월동문에 쇠가 걸렸다.
판구는 정원 안에 남아 있었다. 정원 내관의 방은 청음정 뒤 헛간 옆에 붙은 한 칸이었고, 동창은 이 한 칸을 정원 밖으로 치지 않았다.
어두워지자 판구는 헛간에서 마대 한 자루를 끌어냈다. 졸개들이 열둘을 세는 동안 판구가 헛간 그늘로 밀어 둔 열세 번째 자루였다. 수인전 담 밑에 잎을 한 줄로 깔았다. 폭은 한 자, 길이는 담을 따라 스무 걸음. 손으로 하나하나 펴서 깔았다. 이 위로 저녁 눈이 다시 얇게 덮였다.
해 진 뒤 밤의 첫 시각을 알리는 초경 북이 울렸다. 이어 이경 북이 울렸다. 판구는 청음정 화로에 숯을 넣고 찻주전자를 올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주전자 뚜껑이 아주 작게 달그락거렸다. 이 소리가 날 때마다 주전자를 화로 가장자리로 조금씩 밀어 소리를 죽였다.
삼경 딱따기가 멀리서 세 번 울리고 그쳤다.
이후로 정원에 소리가 없었다. 바람도 멎었다. 연못은 초겨울 첫 얼음이 손가락 두 마디 두께로 얼어 있었고, 이 위에 눈이 얇게 깔려 달빛을 받았다.
서쪽 담 위의 기와 한 장이 다른 기와 위로 손톱만큼 밀렸다.
판구는 화로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귀만 그쪽으로 갔다. 기와가 다시 울지 않았다. 다음 소리는 담 안쪽, 정원 돌길 위에서 났다. 사람이 발을 디디는 소리가 아니라, 발이 디딘 자리의 눈이 아주 조금 꺼지는 소리였다. 한 번, 그리고 아홉 걸음 떨어진 곳에서 또 한 번. 담에서 연못가 바위까지, 바위에서 버드나무 밑까지, 맨돌 위를 고르게 건너뛰는 걸음이었다. 무게는 백이십 근 안팎. 숨은 내쉬지 않고 들이쉬기만 했다.
이 걸음이 수인전 담 밑에 닿았다.
사락.
잎이 밟혔다. 소리는 작았다. 침전 안에서 등불을 켜 두고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들을 수 있을 만큼.
검은 그림자가 이 자리에 멈췄다.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판구는 이 짧은 틈에 찻주전자 뚜껑을 집었다. 끓는 김을 머금은 뚜껑이 손가락 끝에서 뜨거웠다. 열두 걸음. 앉은 채로 손목만 튕겼다.
뚜껑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둔탁한 소리 하나가 담 밑에서 났다. 사기가 뼈에 닿는 소리였다.
그림자가 옆으로 기울었다. 담에 기대려다 놓치고, 두 걸음 비틀거리고, 연못가 바위에 발이 걸렸다. 그대로 연못 쪽으로 넘어갔다. 얼음이 이 사람의 무게를 한 번은 받았다. 두 번째에 쩍, 하고 길게 갈라졌다. 검은 옷이 얼음 구멍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물이 한 번 출렁이고, 얼음 조각들이 구멍 가장자리에서 서로 부딪쳐 짤그락거렸다.
다음은 조용했다.
판구는 화로 곁에서 일어났다. 빗자루를 들고 담 밑으로 걸어가 깨진 뚜껑 조각 두 개를 주워 소매에 넣었다. 그러고는 밟힌 잎 자리를 빗자루로 한 번 쓸어 고르게 폈다.
이때 월동문 쪽에서 쇠 빗장이 벗겨지는 소리가 났다.
등불 하나가 들어왔다. 등불을 든 사람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등불만 눈 위를 미끄러지듯 다가와 연못가에 멈췄다. 불빛이 깨진 얼음 구멍을 비췄다. 검은 물 위에 검은 소매 한 자락이 떠서 천천히 돌고 있었다.
고충겸이었다. 담비 털 망토 위에 눈이 앉아 있었다. 이 사람은 얼음 구멍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등불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불빛이 연못가를 지나, 담 밑을 지나, 빗자루를 쥐고 선 늙은 내관의 얼굴에서 멈췄다.
“얼음 깨지는 소리가 났는데.” 고충겸의 목소리는 낮보다 더 부드러웠다. “해가 지면 정원을 닫으라 했지. 이 밤에 자네는 무엇을 쓸고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