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461자)

왕만두의 손

황궁의 늙은 내관이 천하제일 고수였다 · 마필제

판구는 새봄을 내려놓았다⁠. 새봄의 발이 눈에 닿자 무릎이 꺾였다⁠. 판구가 새봄의 팔을 잡아 세웠다⁠.

유가휘가 칼자루에서 손을 뗐다⁠. 곁의 무관에게 턱짓했다⁠. 무관 둘이 빈터 한쪽에 세워 둔 금의위 수레의 거적을 걷었다⁠. 죄인을 실어 나르는 수레였다⁠. 바닥에 짚이 깔려 있었다⁠.

“⁠궁녀님은 저기 누우시오⁠. 거적 밑에⁠. 방화범을 동창에 넘기러 왔다가 도로 싣고 가는 수레요⁠. 금의위 수레는 동창이 뒤지지 못하오⁠. 법이 그렇소⁠.⁠” 유가휘가 판구를 보았다⁠. “⁠영감은 등을 보이지 마시오⁠. 피가 다 보이오⁠. 그리고 여기 있지 마시오⁠.⁠”

“⁠만두 냄새 나는 데로 가야 하오⁠.⁠”

“⁠그게 무슨 소리요⁠?⁠”

판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빈터 끝 궁 담 쪽으로 걸었다⁠. 담은 사람 키 두 배였다⁠. 이 사람은 담 밑에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올라갔다⁠. 손이 담 기와를 한 번 짚었을 뿐이었다⁠. 유가휘의 무관 하나가 횃불을 떨어뜨렸다⁠.

새봄이 수레에 오르기 전에 유가휘를 보았다⁠.

“⁠폐하께는⁠…⁠…⁠.⁠”

“⁠폐하께는 금의위가 증인을 데려갔다고 아뢰겠소⁠. 동창이 증인을 옥에 가둬 두고 고문했으니 금의위가 대신 맡는다고⁠. 금의위 옥사는 궁 밖이오⁠. 거긴 동창 열쇠가 안 맞소⁠.⁠” 유가휘가 거적을 새봄 위로 덮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폐하 얼굴은 한동안 못 보시오⁠. 그건 내가 어쩔 수 없소⁠.⁠”

거적 밑에서 대답이 없었다⁠. 짚이 한 번 바스락거렸다⁠.

아문 뒷문이 벌컥 열렸다⁠. 동창 졸개 여섯이 칼을 빼 들고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횃불을 든 금의위 열둘과 무릎 꿇은 방화범⁠, 그리고 거적 덮인 수레를 보고 멈춰 섰다⁠.

“⁠금의위가 여기서 무얼 하오⁠!⁠”

“⁠염초 골목 방화범을 인도하러 왔소⁠. 동창 당두께서 그날 밤 불난 골목에 계셨으니 이자를 잘 아실 것 같아서⁠. 그런데 종이 울리길래 무슨 일인가 기다렸지⁠.⁠” 유가휘가 정중하게 웃었다⁠. “⁠당두는 어디 계시오⁠? 꼭 직접 넘겨 드리고 싶은데⁠.⁠”

졸개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하나가 수레 쪽으로 걸음을 뗐다⁠. 유가휘가 칼집 끝으로 이 앞의 눈을 한 번 찍었다⁠.

“⁠금의위 수레요⁠. 동창이 이 거적을 걷으려면 지휘사 목부터 걷어야 하오⁠. 걷어 보시겠소⁠?⁠”

아무도 걷지 않았다⁠.

*

고충겸은 서쪽 쪽문에서 종소리를 들었다⁠. 열쇠 꾸러미를 쥔 채 서두르지 않고 동창으로 돌아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서른두 칸을 한 칸씩 밟았다⁠. 발소리는 나지 않았다⁠.

옥졸 둘이 계단 아래 바닥에 누워 고르게 숨을 쉬고 있었다⁠. 목덜미 옆에 손가락 자국 둘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일곱 번째 칸의 창살 하나가 빠져 벽에 반듯하게 세워져 있었다⁠. 부러진 데가 없었다⁠. 위아래 홈에서 그대로 들어 올려 뺀 것이었다⁠. 벽 고리에 매달린 쇠고랑은 이음매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벌어져 있었다⁠. 망치 자국이 없었다⁠.

통로 안쪽에서 백면이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분칠한 얼굴이 땀에 젖어 얼룩졌고⁠, 오른 팔목이 이상한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 사람은 고충겸을 보고 일어서려다 주저앉았다⁠.

“⁠늙은이가 팔을 꺾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던 쪽으로 조금 더 보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됐습니다⁠.⁠”

고충겸이 이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무릎을 굽혀 백면의 꺾인 팔목에 장갑 낀 손을 얹었다⁠. 백면이 이를 악물었다⁠. 고충겸은 이 팔목을 한참 쥐고 있었다⁠. 무언가를 기억해 내려는 사람처럼⁠.

“⁠힘을 안 쓰고 남의 힘을 보내는 손⁠.⁠” 고충겸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런 손을 오래전에 한 번 들은 적이 있네⁠. 들은 것이지 본 것은 아니야⁠.⁠”

이 사람은 일어났다⁠. 통로 끝 열린 뒷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빈터에는 금의위 수레 바퀴 자국만 남아 있었다⁠.

“⁠당두는 어선방으로 갔나⁠?⁠”

“⁠예⁠. 종이 울리면 그리로 가라 하셨습니다⁠.⁠”

고충겸은 대답 대신 턱을 한 번 당겼다⁠. 뒷문 밖 눈 위에 찍힌 발자국들을 보았다⁠. 금의위 무관들의 발자국 사이에 맨버선 발자국 하나가 담 밑까지 가 있었다⁠. 담 밑에서 끊겼다⁠. 담을 오른 자국이 없었다⁠.

“⁠태후 마마는 대보름 아침에 황제가 서 있으면 섭정은 없다고 하셨지⁠. 그럼 그 아침에 서 있지 못하게 하면 되네⁠.⁠” 고충겸이 장갑을 고쳐 끼었다⁠. “⁠그 전날 밤이야⁠. 백면⁠, 팔이 붙으려면 얼마나 걸리나⁠?⁠”

“⁠한 달이면⁠…⁠…⁠.⁠”

“⁠대보름 전날까지 붙이게⁠. 그날 밤엔 남은 사람이 다 지붕에 올라가야 하니⁠.⁠”

*

왕복길은 어선방 부뚜막 앞에 꿇어앉아 있었다⁠. 양팔이 뒤로 꺾여 동창 졸개 둘에게 붙잡혀 있었다⁠. 해솜은 기둥에 묶여 입에 행주가 물려 있었다⁠. 어선방 안에는 이 밖에 넷이 더 있었다⁠. 당두와⁠, 무게 없는 걸음의 사내 셋⁠. 셋 가운데 하나는 오른쪽 다리를 끌었다⁠.

당두는 종소리를 듣고 동창에서 뛰어온 참이었다⁠. 숨이 아직 가빴다⁠. 큰 찜통 뚜껑을 열었다⁠. 김이 천장까지 치솟았다⁠. 복길의 오른손을 끌어다 이 김 위에 눌렀다⁠.

“⁠궁녀 어디로 갔어⁠? 늙은이는 어디 있어⁠?⁠”

복길의 손바닥이 김 속에서 붉어졌다⁠. 복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입은 닫히지 않았다⁠.

“⁠아이고⁠, 아이고⁠. 당두 나리⁠, 김에 손을 대는 건 말이오⁠, 만두피 익었나 볼 때나 하는 거요⁠. 김이 손바닥에 닿아서 끈적하면 덜 익은 거고⁠, 보송하면 다 익은 거요⁠. 지금 내 손은 끈적하오⁠. 덜 익었소⁠. 아니⁠, 익는 중이오⁠, 아이고⁠!⁠”

“⁠궁녀 어디 있냐고⁠!⁠”

“⁠궁녀는 몰라요⁠. 근데 이 찜통은 알아⁠. 이건 구리가 두꺼워서 김이 사흘을 가오⁠. 금의위 지휘사도 이걸 지고 다녔⁠…⁠… 아⁠, 아니⁠, 지휘사는 몰라요⁠. 아무도 몰라⁠.⁠” 복길이 숨을 몰아쉬었다⁠. 손등에 물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두 나리⁠, 내 손 다 익으면 만두 누가 빚소⁠? 당두 나리 어머니가 빚어 주오⁠? 당두 나리 어머니 만두 맛있소⁠?⁠”

당두가 복길의 손을 더 깊이 눌렀다⁠. 복길이 소리를 질렀다⁠. 지르면서도 말했다⁠.

“⁠부추는⁠…⁠… 손가락 한 마디⁠…⁠… 돼지고기는 칼등으로⁠…⁠…⁠.⁠”

해솜이 기둥에 묶인 채 몸부림쳤다⁠. 행주 사이로 막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때 어선방 천장 연기 구멍에서 하얀 것이 쏟아졌다⁠.

밀가루였다⁠. 연기 구멍 곁 선반에 얹어 둔 밀가루 자루가 통째로 뒤집혀 쏟아졌다⁠. 하얀 가루가 찜통 김과 섞여 어선방 안을 순식간에 뿌옇게 채웠다⁠. 졸개 하나가 기침을 하며 복길의 팔을 놓쳤다⁠.

이 뿌연 속에서 판구가 바닥에 내려섰다⁠. 발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소리가 필요 없었다⁠. 밀가루가 바닥에 고르게 깔렸고⁠, 이 위로 발자국이 찍혔다⁠. 무게 없는 걸음도 발자국은 남겼다⁠. 하얀 바닥 위에 셋의 발자국이 어디로 가는지 그대로 보였다⁠. 그리고 공중에 떠도는 가루가 사람 몸을 감싸 흰 윤곽을 만들었다⁠. 소리 없이 움직이던 셋이 이제 눈에 보였다⁠.

판구의 손에는 밀대가 쥐여 있었다⁠. 부뚜막 위에서 집어 든 박달나무 밀대였다⁠. 팔뚝 길이⁠.

첫째 살수가 오른쪽에서 왔다⁠. 판구는 이 발자국이 디딜 자리를 먼저 보았다⁠. 밀대가 이 자리 바로 위⁠, 정강이 높이를 가로로 쳤다⁠. 뼈가 박달나무에 부딪는 소리⁠. 살수가 앞으로 꼬꾸라지며 끓는 솥 쪽으로 쓰러졌다⁠. 판구는 이 뒷덜미를 잡아 솥 가장자리에서 돌려 바닥에 눕혔다⁠. 살수는 일어나지 못했다⁠.

두 번째와 다리를 끄는 세 번째가 함께 왔다⁠. 앞뒤로⁠. 판구는 몸을 반 바퀴 돌리며 찜통 뚜껑 하나를 집어 뒤로 날렸다⁠. 구리 뚜껑이 다리 끄는 사내의 얼굴을 정면으로 쳤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뒤로 넘어갔다⁠. 앞에서 오던 두 번째의 칼이 판구의 어깨를 노렸다⁠. 판구는 밀대를 세워 이 칼날을 받았다⁠. 칼이 박달나무에 반쯤 박혔다⁠. 판구가 밀대를 비틀었다⁠. 칼이 사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밀대 끝이 사내의 명치를 짧게 찔렀다⁠. 사내가 허리를 꺾고 뒷걸음질 쳤다⁠. 가루 속에서 동료의 팔을 붙잡고 뒷문으로 달아났다⁠. 다리 끄는 사내도 기어서 따라갔다⁠.

당두가 남았다⁠. 칼을 뽑아 들고 가루 속에서 판구를 보았다⁠. 처음으로 똑바로⁠. 허리가 펴진 늙은 내관이 밀대를 쥐고 서 있었다⁠. 하얀 가루가 당두의 회색 내관복과 눈썹과 수염에 앉았다⁠. 등 쪽 옷자락이 피로 검게 젖어 있었다⁠.

“⁠너⁠…⁠… 너⁠, 정원 늙은이⁠…⁠…⁠.⁠”

당두가 칼을 내리쳤다⁠. 판구는 피하지 않았다⁠. 반 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칼을 쥔 당두의 손목이 판구의 손바닥에 걸렸다⁠. 칼날은 판구의 어깨 너머 허공을 갈랐다⁠. 판구가 이 손목을 쥔 채 당두의 팔꿈치 안쪽을 엄지로 짚었다⁠. 세탁방에서 살수에게 남긴 것과 같은 자리였다⁠. 당두의 팔이 제 무게로 꺾였다⁠. 칼이 바닥에 떨어져 가루를 튀겼다⁠. 판구가 무릎으로 당두의 다리 뒤를 받쳤고⁠, 당두는 바닥에 엎어졌다⁠. 판구가 이 등에 무릎을 얹었다⁠. 당두가 버둥거렸으나 일어나지 못했다⁠. 늙은이의 무릎이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판구는 해솜의 밧줄을 끊고 이 밧줄로 당두의 손목을 묶었다⁠. 졸개 둘은 이미 어선방 밖으로 달아나고 없었다⁠.

*

가루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어선방 안의 모든 것이 하얗게 덮였다⁠. 솥도⁠, 도마도⁠, 쓰러진 살수도⁠, 엎드린 당두도⁠.

복길은 부뚜막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복길의 오른손은 손바닥부터 손등까지 붉게 부풀어 있었고⁠, 물집 여러 개가 터져 진물이 흘렀다⁠. 해솜이 찬물을 떠 와 이 손을 담갔다⁠. 복길이 이를 악물었다⁠.

판구가 복길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해솜에게서 무명천을 받아 복길의 손을 감기 시작했다⁠. 천천히⁠, 손가락 하나씩⁠.

복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판구의 하얗게 가루를 뒤집어쓴 얼굴을 한참 보았다⁠. 펴진 허리를⁠, 피에 젖은 등을⁠, 밀대에 박힌 칼을⁠. 그러다 입을 열었다⁠.

“⁠형님⁠.⁠”

“⁠말하지 마시오⁠. 아플 거요⁠.⁠”

“⁠아니⁠, 해야겠소⁠.⁠” 복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다 갑자기 높아졌다⁠. “⁠형님 그 손으로 이십 년 동안 내 만두를 그렇게 천천히 먹었소⁠? 손가락으로 굴려 가면서⁠? 뜨겁다고⁠? 그 손으로⁠?⁠”

판구의 손이 멈췄다⁠. 해솜이 고개를 돌렸다⁠. 어깨가 떨렸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형님은 뜨거운 걸 못 먹는 줄 알았소⁠. 그래서 내가 이십 년 동안 형님 거는 조금 식혀서 가져갔단 말이오⁠. 식히느라고 바구니 덮개를 일부러 덜 덮고⁠. 그거 알아요⁠? 덮개를 덜 덮으면 다른 만두까지 식어서 어선방 상궁한테 혼났어⁠. 이십 년 동안⁠.⁠”

“⁠미안하오⁠.⁠”

“⁠미안하면 오래 사슈⁠.⁠” 복길이 감긴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형님⁠. 나도 하나 말 안 한 게 있소⁠. 형님이 안 물어서⁠. 아니⁠, 나도 그게 뭔 뜻인지 몰라서⁠.⁠”

판구가 무명천 끝을 묶었다⁠.

“⁠선황 폐하 돌아가시던 밤⁠. 구월 그믐⁠. 그날 삼경에 동창에서 어선방으로 사람이 왔소⁠. 만두 두 접시를 청류원 청음정으로 내오라고⁠. 제독 마마 명이라고⁠. 밤참이라고⁠.⁠” 복길이 침을 삼켰다⁠. “⁠그 밤에 형님은 정원에 없었지요⁠? 청음정 불도 꺼져 있었고 형님 방도 비어 있었소⁠. 그래서 나는 형님이 시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내가 그 두 접시를 들고 갔소⁠. 내가 직접⁠.⁠”

판구는 묶던 손을 놓았다⁠.

“⁠청음정에 누가 있었는 줄 아오⁠? 불도 없이⁠, 화로도 없이⁠.⁠” 복길이 판구를 보았다⁠. “⁠제독 마마가 혼자 앉아 있었소⁠. 내가 접시를 내려놓으니까 두고 가라고만 했소⁠. 근데 형님⁠, 그 정자 마루가 그렇게 차가운 건 처음이었소⁠. 내가 맨손으로 접시를 내려놓는데 마루 널에 서리가 앉아 있었소⁠. 구월 그믐에⁠.⁠”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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