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72자)

옥상 정원에서 들은 칠 분 먼저 산 주식

사내 연애 적발 감사팀 · 모세담

4월 16일 금요일 저녁 여섯 시⁠, 팀장실 바닥에 놋쇠 돋보기가 엎어져 있었다⁠. 내가 줍기 전에 위상진 대표가 먼저 허리를 굽혔다⁠. 돋보기를 집어 손잡이에 새겨진 「⁠대륙증권 감사팀⁠」을 엄지로 한 번 쓸고 내게 내밀었다⁠.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고맙다고 말할 뻔했다⁠.

대표의 눈이 내 다른 손으로 갔다⁠. 확인서가 들려 있었다⁠. 「⁠이해충돌 있음⁠」에 체크가 되어 있고⁠, 관계 칸에 내 글씨로 준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표는 종이를 뺏지 않았다⁠. 읽기만 했다⁠.

“⁠채가온 씨⁠. 이건 금감원에 내기 전에 나하고 한 번 얘기하지⁠. 월요일 아침 여덟 시⁠, 24층⁠.⁠” 목소리가 회의실에서 신년사를 읽을 때와 같았다⁠. 높낮이가 없었다⁠. “⁠심 팀장⁠, 주말 잘 보내⁠.⁠”

대표가 나간 뒤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렸다⁠. 옥경 팀장은 책상 앞에 선 채로 빨간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대표의 손이 얹혔던 자리였다⁠. 손바닥으로 소매를 한 번 털었다⁠.

“⁠옥상 가자⁠. 여기는 벽이 얇아⁠.⁠”

*

본사 25층 위 옥상 정원은 밤에 문을 잠그지 않았다⁠. 흡연 구역이 있어서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없었다⁠. 회양목 화분 사이로 바람이 불었고⁠, 난간 너머로 여의도 빌딩들이 창마다 불을 켜고 있었다⁠. 한강 건너 마포 쪽 아파트 불빛이 물에 길게 늘어졌다⁠. 옥경 팀장은 난간에 팔짱을 얹었다⁠. 처음 보는 팔짱이었다⁠. 팔을 가슴에 끼지 않고 난간 위에 내려놓았다⁠.

“⁠2017년 3월이었어⁠. 나는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이었고⁠, 서른여덟이었고⁠, 동양정공이라는 반도체 장비 회사를 삼 년째 보고 있었어⁠. 목표주가를 크게 올리는 보고서를 썼지⁠.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반에 나가기로 돼 있었어⁠.⁠”

“⁠위상진 대표님은요⁠?⁠”

“⁠영업본부장⁠. 마흔여섯⁠. 그 사람 집에서 저녁을 먹었어⁠. 내가 말했어⁠. 내일 아침 우리 보고서 나가면 동양정공 오를 거야⁠. 자랑이었어⁠. 삼 년 본 회사를 처음으로 크게 사라고 쓴 날이었으니까⁠.⁠” 옥경 팀장이 난간 아래를 보았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이십삼 분⁠, 보고서 나가기 칠 분 전에 영업부 계좌 다섯 개가 동양정공을 샀어⁠. 남의 이름으로 된 계좌들⁠. 주문 넣은 사람은 영업부 차장이었고⁠.⁠”

“⁠노강철⁠.⁠”

“⁠마흔둘이었지⁠.⁠”

나는 3월 8일 팀장실을 떠올렸다⁠. 십 년 전에도 칠 분이었어⁠. 혼잣말처럼 흘린 말이 이제야 문장이 되었다⁠.

“⁠금감원이 왔어⁠. 회사가 영업 일부 정지 직전까지 갔고⁠. 그 사람이 범인을 찾았어⁠. 영업부 대리 하나⁠, 리서치센터 보조연구원 하나⁠. 둘이 사귀고 있었어⁠. 보조연구원은 내 보고서 초안을 정리하던 애였고⁠. 석주희⁠. 스물여섯이었어⁠.⁠” 옥경 팀장의 목소리가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게 하는 데 힘을 다 쓰고 있었다⁠. “⁠사내 커플이 보고서를 흘렸다⁠. 그게 회사가 금감원에 낸 이야기였어⁠. 둘은 해고됐고⁠, 형사 고발은 증거가 없어서 안 갔어⁠. 대신 업계에 다 돌았지⁠. 둘 다 다시는 증권사에 못 들어왔어⁠.⁠”

“⁠팀장님은 알고 계셨어요⁠.⁠”

“⁠알았어⁠. 내 입에서 나갔다는 거⁠. 그 사람이 나한테 말했어⁠. 이번엔 내가 너 지켜 줄게⁠. 그래서 가만히 있었어⁠. 연구위원 자리가 아까웠고⁠, 그 사람이 아까웠고⁠, 나는 내가 아까웠어⁠.⁠” 옥경 팀장이 처음으로 나를 보았다⁠. “⁠그해 6월에 내가 규정을 만들었어⁠. 사내 연애 금지⁠. 감사팀으로 자원했고⁠. 그 사람하고는 그해 여름에 끝냈어⁠.⁠”

바람이 세게 불어 옥경 팀장의 짧은 웨이브 머리가 한쪽으로 쏠렸다⁠. 진주 목걸이가 목에서 달각거렸다⁠.

나는 오래 참았던 말을 꺼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그럼 팀장님 규정은 팀장님이 받을 벌이었네요⁠. 그걸 왜 남한테 줬어요⁠? 열한 명한테요⁠. 그 열한 명 중에 정보 흘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어요⁠?⁠”

옥경 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 난간 위에 얹은 손가락이 쇠 난간을 한 번 꽉 쥐었다 풀었다⁠.

“⁠없었어⁠.⁠”

“⁠저도 열두 번째가 될 뻔했고요⁠.⁠”

“⁠알아⁠.⁠” 옥경 팀장이 난간에서 손을 뗐다⁠. “⁠나는 연애가 정보를 흘린다고 믿었어⁠. 사실은 내가 흘렸지⁠. 연애를 미워하는 게 나를 미워하는 것보다 쉬웠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말하면 위로가 되고⁠, 위로는 아직 줄 수 없었다⁠.

“⁠대표님 말대로 하실 거예요⁠? 십 년 전처럼⁠?⁠”

“⁠안 해⁠.⁠” 옥경 팀장의 대답이 빨랐다⁠. “⁠근데 채가온 씨⁠, 들어⁠. 내가 2017년을 말하면 이 감사 보고서는 십 년 전에 정보 흘린 사람이 쓴 보고서가 돼⁠. 채가온 씨가 확인서를 내면 조사 대상 여자친구가 쓴 보고서가 되고⁠. 둘 다 나가면 보고서는 아무것도 아니야⁠. 노강철은 그걸 알아⁠. 대표도 알고⁠. 그래서 월요일 아침 여덟 시야⁠.⁠”

나는 확인서를 내려다보았다⁠. 주머니에서 초코과자가 바스락거렸다⁠. 육 차장이 금요일엔 당이 두 배로 떨어진다고 했다⁠. 나는 과자를 꺼내 반으로 쪼개 옥경 팀장에게 내밀었다⁠. 옥경 팀장이 받아 들고 한참 보다가 입에 넣었다⁠.

“⁠달다⁠.⁠” 옥경 팀장이 말했다⁠. “⁠십 년 동안 단 거 안 먹었어⁠.⁠”

“⁠왜요⁠?⁠”

“⁠그 사람이 단 걸 좋아했거든⁠.⁠”

*

주말 동안 나는 접속 기록 원본을 외장 하드에 한 번 더 옮겼다⁠. 정미옥 계좌 사백 건⁠, 본사 3층 무선망 접속 시각⁠, 1월부터 3월까지의 단말기 번호⁠. 회사 서버에 있는 기록은 회사 사람이 지울 수 있었다⁠. 외장 하드를 지갑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지갑이 두꺼워져 닫히지 않았다⁠. 엄마가 전화했다⁠.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일이 많아⁠.⁠”

“⁠준서랑 싸웠어⁠?⁠”

“⁠아니⁠. 회사랑 싸워⁠.⁠”

“⁠회사랑 싸우면 회사가 이겨⁠. 밥 먹고 싸워⁠.⁠”

일요일 밤⁠, 휴대전화가 울렸다⁠.

「⁠IT헬프데스크⁠: 주말 휴장⁠. 그래도 시세 확인 부탁드립니다⁠.⁠」

「⁠채가온⁠: 시세 보합⁠. 월요일 여덟 시에 큰 거 들어옴⁠.⁠」

「⁠IT헬프데스크⁠: 큰 거가 뭔데⁠?⁠」

「⁠채가온⁠: 묻지 마⁠. 물으면 알게 돼⁠.⁠」

한참 뒤에 한 줄이 더 왔다⁠. 「⁠IT헬프데스크⁠: 그 말 내가 한 거잖아⁠. 반사⁠.⁠」 나는 휴대전화를 가슴에 얹고 천장을 보았다⁠. 웃음이 났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

4월 19일 월요일 아침 여덟 시⁠, 24층 대표이사실⁠. 창이 동쪽과 남쪽으로 두 면이었다⁠. 아침 해가 카펫 위로 길게 들어왔다⁠. 위상진 대표는 책상 대신 창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나를 앉혔다⁠. 탁자 위에 녹차 두 잔이 있었다⁠. 나는 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감사팀이라 안 마시는 거지⁠? 좋아⁠.⁠” 대표가 자기 잔을 들었다⁠. “⁠심 팀장한테 2017년 얘기 들었지⁠?⁠”

“⁠네⁠.⁠”

“⁠그럼 내가 할 말은 반으로 줄었네⁠.⁠” 대표가 잔을 내려놓았다⁠. 은빛 머리가 아침 해에 하얗게 빛났다⁠. “⁠나는 2017년에 회사를 살렸어⁠. 그때 영업 정지가 나왔으면 이 회사는 다른 데 팔렸고⁠, 그때 일하던 천팔백 명 중에 절반은 나갔어⁠. 나는 둘을 내보내고 천팔백 명을 남겼어⁠. 그 계산을 지금도 후회 안 해⁠. 지금은 삼천 명이야⁠.⁠”

“⁠계산에 석주희 씨 이름은 있었어요⁠?⁠”

“⁠있었어⁠. 그래서 기억해⁠.⁠” 대표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반 박자 늦었다⁠. “⁠채가온 씨⁠, 지금 상황 그대로 말할게⁠. 정미옥 계좌가 차명으로 확정되면 정보교류 차단 실패야⁠. 책무구조도에 차단 책임은 노강철이고⁠, 총괄 관리는 나야⁠. 내 이름이 금감원 제재에 올라가면 회사는 몇 년 동안 새 업무 인가를 못 받아⁠. 경쟁사들은 그동안 다 가져가⁠. 그 계산 끝에 누가 나가는지 알아⁠? 대표 하나가 아니야⁠. 영업점 막내들부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표의 말 중에 틀린 숫자가 없었다⁠.

“⁠제안할게⁠. 확인서는 내⁠. 정직하게⁠. 그건 채가온 씨 몫이야⁠. 대신 감사 보고서 작성자에서 채가온 씨 이름은 빠지고⁠, 정미옥 계좌는 「⁠추가 확인 필요⁠」로 낮춰서 금감원에 내자⁠. 확정이 아니라 확인 필요⁠. 노강철은 하반기에 내가 조용히 내보낼게⁠. 방준서는 일임하고 휴대전화 건으로 경고⁠, 여의도 잔류⁠. 채가온 씨는 감사팀 잔류⁠. 심 팀장은 정년까지⁠. 아무도 안 잘려⁠.⁠”

“⁠노 본부장님 사진은요⁠?⁠”

“⁠노강철 휴대전화는 내가 맡을게⁠.⁠”

모두가 남는 길이었다⁠. 듣는 동안 나도 대표가 내민 길 위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준서는 여의도에⁠, 나는 19층에⁠, 옥경 팀장은 팔짱을 끼고 정년까지⁠. 「⁠우리 집⁠」 통장도 남았다⁠.

“⁠안 받으면요⁠?⁠”

“⁠노강철이 사진을 금감원에 내겠지⁠. 심 팀장의 2017년도 누군가 문답서에서 꺼낼 거고⁠. 그럼 보고서 두 개가 다 죽어⁠. 남는 건 방준서 일임 하나야⁠. 방준서는 혼자 다 지고 나가고⁠, 노강철은 증거 부족으로 남아⁠. 내가 제안하는 길보다 나빠⁠. 모두한테⁠.⁠”

대표는 나를 협박하지 않았다⁠. 계산을 보여 주었을 뿐이다⁠. 계산이 협박보다 무서웠다⁠. 나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깍지 꼈다가 풀었다⁠. 깍지는 다른 자리에서 하던 버릇이었다⁠.

“⁠대표님⁠, 십 년 전에 남은 사람이 천팔백 명이었죠⁠.⁠”

“⁠그래⁠.⁠”

“⁠나간 사람은 둘이었고요⁠. 젊은 사람 둘⁠.⁠”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도 대표님 길로 가면 남는 사람은 삼천 명이고⁠, 나가는 사람은 노 본부장님이 아니에요⁠. 노 본부장님은 하반기에 조용히 나가서 다른 회사 본부장이 되겠죠⁠. 처제 이름으로요⁠. 그리고 그 회사에서 또 누군가한테 첫 고객을 넘겨줄 거예요⁠.⁠”

“⁠채가온 씨⁠.⁠”

“⁠녹차 감사합니다⁠. 안 마셨지만요⁠.⁠”

나는 대표이사실 문을 닫고 나왔다⁠. 손이 떨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24층에서 20층까지 네 층을 내려가는 동안 숨이 가빴다⁠. 계단은 소리가 잘 울렸다⁠.

*

오전 아홉 시⁠, 20층 검사장⁠. 공태림 반장이 보리차 텀블러를 열고 있었다⁠. 나는 확인서와 외장 하드를 탁자 위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확인서입니다⁠. 그리고 정미옥 계좌 접속 기록 원본이에요⁠. 회사 서버에도 있지만⁠, 회사 서버는 회사 사람이 지울 수 있어서요⁠.⁠”

공태림 반장이 확인서를 읽었다⁠. 「⁠이해충돌 있음⁠」⁠, 관계 칸⁠, 서명⁠. 다 읽고 나서 외장 하드를 들어 무게를 가늠했다⁠. 네임펜으로 하드 옆면에 시각을 적었다⁠. 「⁠09⁠:04 수령⁠」⁠.

“⁠알겠습니다⁠.⁠” 공태림 반장이 말했다⁠. “⁠이제 채가온 씨는 담당자가 아니에요⁠. 참고인이에요⁠. 목요일 방준서 대리 문답에는 못 들어옵니다⁠. 그리고 하나 더⁠.⁠” 공태림 반장이 하드를 증거 봉투에 넣었다⁠. “⁠확인서 낸 거⁠, 잘했어요⁠. 이걸로 노 본부장 카드 하나가 없어졌어요⁠.⁠”

오후 두 시⁠, 사내 메일로 인사 발령이 왔다⁠. 「⁠감사팀 채가온 — 대기 발령(⁠이해충돌 조사⁠)⁠, 2027년 4월 19일부⁠」⁠. 대기 발령은 징계가 아니라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일에서 빼 두는 조치다⁠. 메일을 다 읽기도 전에 내 컴퓨터의 감사 시스템 접속 권한이 꺼졌다⁠. 화면에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가 떴다⁠.

육 차장이 건너편에서 일어났다⁠. 형광펜 열두 자루가 든 필통을 내 책상 위에 놓았다⁠.

“⁠가져가⁠. 대기 발령실에는 형광펜이 없어⁠.⁠”

“⁠차장님⁠, 이거 뚜껑⁠…⁠…⁠.⁠”

“⁠닫아서 돌려줘⁠. 꼭⁠.⁠”

나는 상자에 놋쇠 돋보기와 필통과 귤 하나를 담았다⁠. 팀장실 유리문 너머로 옥경 팀장이 서 있었다⁠. 팔짱을 끼지 않고⁠, 두 손을 책상 위에 짚은 채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19층 출입 게이트로 갔다⁠. 사원증을 댔다⁠. 삑⁠, 하고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사원증이 바뀐 게 아니었다⁠. 내 얼굴이 그대로 찍힌 내 사원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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