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87자)
금감원 검사반은 커피를 안 마셨다
사내 연애 적발 감사팀 · 모세담
4월 12일 월요일 아침 아홉 시 정각, 대륙증권 20층 대회의실 문 앞에 운동화 다섯 켤레가 나란히 멈췄다. 금융감독원 검사반이었다. 맨 앞 사람은 짧은 커트 머리에 회색 바람막이를 입었고, 손에 은색 텀블러를 들었다. 공태림 수석검사역, 이번 검사반장이었다. 운동화 밑창이 하얬다. 2주 동안 이 건물 계단을 오르내릴 사람의 신발이었다.
총무팀이 준비한 커피와 다과 접시가 탁자 위에 있었다. 공태림 반장이 접시를 보더니 총무팀 대리에게 정중하게 밀어 돌려주었다.
“치워 주세요. 물은 마셔도 됩니다. 물은 수돗물로요.”
“정수기 물은요?”
“정수기는 회사 거잖아요.” 공태림 반장이 텀블러를 흔들었다. “집에서 끓여 왔어요. 보리차.”
총무팀 대리가 다과 접시를 들고 나가며 나를 보았다. 다 먹으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감사팀도 받으면 안 됐다.
나는 자료 제출 창구였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옥경 팀장이 검사 대응 명단을 다시 짰다. 감사 담당자는 심옥경, 육창식 둘. 채가온은 「기록 보조 및 자료 제출」. 이해충돌 없음 확인서는 감사 담당자만 낸다.
“팀장님, 이건 숨기는 거예요.” 금요일 밤 팀장실에서 나는 명단을 들고 말했다.
“열흘만이야. 검사 끝나면 신고해. 지금 빠지면 자료를 아는 사람이 없어.”
“팀장님이 만든 규정을 팀장님이 또 비틀고 계세요.”
“알아. 두 번째야.” 옥경 팀장은 명단을 돌려받지 않았다. “세 번째는 없어.”
*
자료 요구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왔다. 쪽지 한 장에 목록이 적혀 오면 나는 19층으로 내려가 출력하고, 20층으로 올라가 상자에 담아 넘겼다. 오전에만 계단을 열네 번 오르내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보다 계단이 빨랐다. 공태림 반장은 상자를 받을 때마다 「확인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상자 옆면에 시각을 적었다. 볼펜이 아니라 네임펜이었다.
열한 시에 온 쪽지에는 「사내 교제 관리 규정 개정 전후 대비표 및 최근 신고서 사본 일체」가 적혀 있었다. 나는 서른두 장을 그대로 상자에 넣었다. 십 분 뒤 공태림 반장이 상자에서 한 장을 꺼내 들고 19층까지 내려왔다.
“이거 왜 자료에 있어요? 교제 상대, 3층 커피 머신.”
“신고서 사본 일체라고 하셔서요.”
“일체는 맞네요.” 공태림 반장이 신고서를 한참 보았다. “커피 머신도 동의했대요?”
“원두가 떨어져서 요즘은 소원하답니다.”
공태림 반장은 웃지 않고 신고서를 상자에 도로 넣었다. 계단으로 올라가다 말고 층계참에서 한 번 웃는 소리가 났다. 계단은 소리가 잘 울렸다.
오후 두 시, 공태림 반장이 옥경 팀장을 먼저 불렀다. 나는 회의실 구석에서 노트북을 열고 문답 내용을 받아 적었다. 기록 보조였다.
“감사팀이 이번 분기 첫 대상으로 방준서 대리를 고른 이유가 뭡니까?”
“이상 거래 감시 시스템 경보입니다. 회전율 1,200퍼센트.”
“그런데 감사 보고서는 결국 노강철 본부장 처제 명의 계좌까지 갔어요. 출발은 대리, 도착은 본부장. 누가 길을 바꿨어요?”
“자료가 바꿨습니다.”
공태림 반장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음이 짧았다. “책무구조도 봅시다. 정보교류 차단 책임 임원이 누구죠?”
책무구조도는 회사가 임원마다 어떤 내부통제를 책임지는지 미리 나눠 적어 금융당국에 내는 지도다. 대륙증권은 2025년 여름에 냈다. 무슨 일이 터지면 이 지도를 펴고 책임진 사람을 찾는다.
“영업 부문 정보교류 차단은 영업본부장입니다. 회사 전체 내부통제를 총괄 관리할 의무는 대표이사에게 있고요.”
“그럼 영업본부장이 직접 차단벽을 넘었다면, 총괄 관리하는 분은 그걸 언제 아셨을까요?”
옥경 팀장이 대답하지 않았다. 공태림 반장이 노트북을 덮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나는 「대답 없음」이라고 적었다.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적는 일에는 침묵도 들어갔다.
*
화요일과 수요일, 노강철 본부장의 문답이 이틀 동안 이어졌다. 금감원 문답에는 감사팀이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문 밖 복도 의자에서 자료 상자를 지켰다. 두꺼운 문 너머로 노 본부장의 웃음소리가 몇 번 들렸다. 문답 중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요일 저녁 일곱 시, 문이 열리고 노 본부장이 나왔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금색 핀이 비뚤어져 있었다.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처제 계좌는 가족 부탁이었다고 했어. 처제가 사인한 위임장도 냈고. 세 건은 방준서가 혼자 감으로 산 거고. 걔가 원래 감이 좋아.” 노 본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하나 더 말했어. 이 감사를 한 사람 중에 방준서 여자친구가 있다고. 금감원은 그런 거 좋아하더라. 받아 적던데.”
나는 자료 상자 손잡이를 쥐었다. 상자 모서리가 손바닥에 박혔다.
“사진도 드렸어요?”
“사진은 아직. 아껴 둬야지.” 노 본부장이 엘리베이터를 불렀다. “채가온 씨, 지금이라도 신고서 내. 그러면 연애 때문에 빠진 사람이 되고, 보고서는 감사팀장 혼자 쓴 게 돼. 감사팀장 보고서는 십 년 전부터 다들 안 믿어. 그건 팀장님한테 물어봐.”
*
수요일 밤 열 시, 여의나루역 2번 출구 계단 밑에서 준서를 만났다. 강바람이 계단을 타고 내려와 내 반묶음 머리를 다 풀어 놓았다. 준서는 남색 정장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빨간 넥타이를 풀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있었다. 넥타이 끝이 주머니 밖으로 혀처럼 나와 있었다.
“본부장님이 금감원에 우리 얘기했대.”
“알아. 나한테 직접 자랑하셨어.”
“다음 주 목요일에 내 문답이야.” 준서가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사내 교제 신고서였다. 교제 상대 칸에 준서 글씨로 「감사팀 채가온」, 비고 칸에 「회전율 높음, 장기 보유 희망」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먼저 낼게. 내가 내면 너는 신고받은 사람이 되잖아. 숨긴 사람이 아니라.”
“장기 보유 희망은 빼.”
“그건 못 빼. 사실이야.”
나는 종이를 받아 다시 접었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강바람이 막아 주었다.
“네가 이걸 내면 네 문답이 연애 얘기로 끝나. 금감원은 세 건을 묻고 싶은데, 회사는 연애를 말하고 싶어 해. 노 본부장님이 원하는 게 그거야.” 나는 종이를 준서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빨간 넥타이 옆이었다. “내 건 내가 내. 넌 문답에서 세 건만 생각해.”
“세 건을 말하면 본부장님이 끝나.”
“말 안 하면 네가 끝나.”
준서가 계단 난간을 잡았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바람이 아래에서 올라왔다. 우리는 둘 다 대답을 미룬 채, 서로 다른 칸에 타고 같은 방향으로 갔다.
*
목요일 점심, 지하 구내식당에서 웃음이 났다. 금감원 검사역 다섯 명이 식판을 들고 계산대 앞으로 줄지어 갔다. 구내식당은 사원증을 찍어야 밥값이 월급에서 빠진다. 사원증이 없는 사람은 계산할 방법이 없었다.
“현금 받으세요?” 공태림 반장이 지갑을 꺼냈다.
“여기는 현금이 없어요. 사원증만 돼요.” 계산대 아주머니가 손을 저었다. “그냥 드세요. 손님인데.”
“그냥 먹으면 안 돼요.”
“그럼 뭘로 내요?”
공태림 반장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 다섯 장을 꺼내 계산대에 올렸다. 아주머니는 돈을 쳐다보기만 했다. 금고가 없었다. 결국 총무팀 대리가 달려와 영수증 대신 「금융감독원 식대 현금 수령」이라고 손으로 쓴 종이를 써 주고, 만 원짜리 다섯 장을 봉투에 넣어 총무팀 금고에 넣기로 했다. 검사역 다섯 명은 다 식은 제육볶음을 구석에 앉아 먹었다. 아무도 커피를 사지 않았다.
육 차장이 내 옆에서 숟가락을 들고 속삭였다. “저분들 밥 한 끼 먹는 데 결재가 두 장이야.”
“우리 회사는 연애 한 번 하는 데 신고서가 한 장이고요.”
육 차장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
목요일 오후 네 시, 공태림 반장이 나를 불렀다. 회의실 문이 닫혔다. 이번에는 기록 보조가 없었다. 나 혼자였다.
“채가온 씨. 문답서 작성자 칸에 채가온 씨 이름이 있어요. 3월 4일 방준서 대리 문답. 기록 보조라고 들었는데, 감사 보고서 초안 작성자도 채가온 씨네요. 녹취 분석도, 정미옥 계좌 추적도.”
“네.”
“그럼 담당자죠. 담당자인데 확인서가 없어요.” 공태림 반장이 텀블러 뚜껑을 열고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김이 오르지 않았다. 아침에 끓인 차가 식어 있었다. “방준서 대리와 어떤 관계입니까?”
나는 탁자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손가락을 깍지 끼지 않았다. 깍지는 다른 자리에서 하던 버릇이었다.
“그 질문은 문답서로 받으셔야 하는 거죠?”
“네. 문답서로 받을 겁니다.” 공태림 반장이 펜을 내려놓았다. “그 전에 하나만 말할게요. 노 본부장이 그 얘기를 한 이유는 채가온 씨 보고서를 못 믿게 하려는 거예요. 나도 알아요. 그런데 알면서도 확인은 해야 해요. 숨긴 채로 남으면 노 본부장 말이 이겨요. 내일 금요일 여섯 시까지 확인서 내세요. 있으면 있다고, 없으면 없다고.”
회의실을 나오며 나는 문손잡이를 오래 쥐었다. 손잡이가 차가웠다가 내 손 온도가 되었다.
*
4월 16일 금요일 저녁 다섯 시 오십 분, 나는 확인서를 썼다. 이해충돌 「있음」에 표시하고, 관계 칸에 볼펜으로 또박또박 적었다. 「영업본부 영업2팀 방준서 대리와 2024년 4월부터 교제 중」. 서명했다. 펜을 내려놓는 손이 가벼웠다. 삼 년 동안 들고 다닌 것을 종이 위에 내려놓은 무게였다.
육 차장은 다섯 시 반에 퇴근하면서 내 책상에 초코과자 하나를 놓고 갔다. 「금요일엔 당이 두 배로 떨어짐」이라고 쓴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사무실에 남은 사람은 나와 팀장실 블라인드 뒤의 누군가였다. 나는 과자를 주머니에 넣고 확인서를 들고 팀장실로 갔다. 공태림 반장에게 내기 전에 옥경 팀장에게 먼저 보여야 했다. 팀장실 유리문이 한 뼘 열려 있었고, 블라인드가 내려가 있었다. 안에서 남자 목소리가 났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사내 방송에서 신년사를 읽던 목소리였다.
“옥경아. 십 년 전처럼 하자.”
나는 문 앞에서 멈췄다. 블라인드 틈으로 회색 정장의 등이 보였다. 은빛으로 센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남자였다. 위상진 대표이사. 대표가 19층에 내려오는 일은 일 년에 한 번, 감사위원회 보고 날뿐이었다.
“방준서 하나로 닫자. 일임하고 휴대전화 주문, 그 정도면 금감원도 받아. 노강철은 내가 하반기에 조용히 정리할게. 처제 계좌가 나가면 정보교류 차단이 나가고, 차단이 나가면 책무구조도가 나가. 그러면 다음은 내 이름이야. 내 이름이 나가면 회사가 신규 업무를 못 해. 삼천 명이 일하는 회사야.”
“그래서 이번에도 젊은 애 하나를 내보내자고?”
“이번엔 내가 너 지켜 줄게.”
옥경 팀장의 목소리가 한참 뒤에 나왔다. 팔짱을 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십 년 전에도 그렇게 말했어, 상진 씨.”
내 손에서 돋보기가 미끄러졌다. 확인서와 같이 들고 온 놋쇠 돋보기였다. 돋보기가 바닥에 떨어지며 쨍 하고 울렸다. 블라인드 너머 두 사람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대표의 손이 옥경 팀장의 빨간 소매 위에 얹혀 있었다. 옥경 팀장이 대표의 손을 치우지 않은 채로 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