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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검사반은 커피를 안 마셨다

사내 연애 적발 감사팀 · 모세담

4월 12일 월요일 아침 아홉 시 정각⁠, 대륙증권 20층 대회의실 문 앞에 운동화 다섯 켤레가 나란히 멈췄다⁠. 금융감독원 검사반이었다⁠. 맨 앞 사람은 짧은 커트 머리에 회색 바람막이를 입었고⁠, 손에 은색 텀블러를 들었다⁠. 공태림 수석검사역⁠, 이번 검사반장이었다⁠. 운동화 밑창이 하얬다⁠. 2주 동안 이 건물 계단을 오르내릴 사람의 신발이었다⁠.

총무팀이 준비한 커피와 다과 접시가 탁자 위에 있었다⁠. 공태림 반장이 접시를 보더니 총무팀 대리에게 정중하게 밀어 돌려주었다⁠.

“⁠치워 주세요⁠. 물은 마셔도 됩니다⁠. 물은 수돗물로요⁠.⁠”

“⁠정수기 물은요⁠?⁠”

“⁠정수기는 회사 거잖아요⁠.⁠” 공태림 반장이 텀블러를 흔들었다⁠. “⁠집에서 끓여 왔어요⁠. 보리차⁠.⁠”

총무팀 대리가 다과 접시를 들고 나가며 나를 보았다⁠. 다 먹으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감사팀도 받으면 안 됐다⁠.

나는 자료 제출 창구였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옥경 팀장이 검사 대응 명단을 다시 짰다⁠. 감사 담당자는 심옥경⁠, 육창식 둘⁠. 채가온은 「⁠기록 보조 및 자료 제출⁠」⁠. 이해충돌 없음 확인서는 감사 담당자만 낸다⁠.

“⁠팀장님⁠, 이건 숨기는 거예요⁠.⁠” 금요일 밤 팀장실에서 나는 명단을 들고 말했다⁠.

“⁠열흘만이야⁠. 검사 끝나면 신고해⁠. 지금 빠지면 자료를 아는 사람이 없어⁠.⁠”

“⁠팀장님이 만든 규정을 팀장님이 또 비틀고 계세요⁠.⁠”

“⁠알아⁠. 두 번째야⁠.⁠” 옥경 팀장은 명단을 돌려받지 않았다⁠. “⁠세 번째는 없어⁠.⁠”

*

자료 요구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왔다⁠. 쪽지 한 장에 목록이 적혀 오면 나는 19층으로 내려가 출력하고⁠, 20층으로 올라가 상자에 담아 넘겼다⁠. 오전에만 계단을 열네 번 오르내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보다 계단이 빨랐다⁠. 공태림 반장은 상자를 받을 때마다 「⁠확인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상자 옆면에 시각을 적었다⁠. 볼펜이 아니라 네임펜이었다⁠.

열한 시에 온 쪽지에는 「⁠사내 교제 관리 규정 개정 전후 대비표 및 최근 신고서 사본 일체⁠」가 적혀 있었다⁠. 나는 서른두 장을 그대로 상자에 넣었다⁠. 십 분 뒤 공태림 반장이 상자에서 한 장을 꺼내 들고 19층까지 내려왔다⁠.

“⁠이거 왜 자료에 있어요⁠? 교제 상대⁠, 3층 커피 머신⁠.⁠”

“⁠신고서 사본 일체라고 하셔서요⁠.⁠”

“⁠일체는 맞네요⁠.⁠” 공태림 반장이 신고서를 한참 보았다⁠. “⁠커피 머신도 동의했대요⁠?⁠”

“⁠원두가 떨어져서 요즘은 소원하답니다⁠.⁠”

공태림 반장은 웃지 않고 신고서를 상자에 도로 넣었다⁠. 계단으로 올라가다 말고 층계참에서 한 번 웃는 소리가 났다⁠. 계단은 소리가 잘 울렸다⁠.

오후 두 시⁠, 공태림 반장이 옥경 팀장을 먼저 불렀다⁠. 나는 회의실 구석에서 노트북을 열고 문답 내용을 받아 적었다⁠. 기록 보조였다⁠.

“⁠감사팀이 이번 분기 첫 대상으로 방준서 대리를 고른 이유가 뭡니까⁠?⁠”

“⁠이상 거래 감시 시스템 경보입니다⁠. 회전율 1⁠,200퍼센트⁠.⁠”

“⁠그런데 감사 보고서는 결국 노강철 본부장 처제 명의 계좌까지 갔어요⁠. 출발은 대리⁠, 도착은 본부장⁠. 누가 길을 바꿨어요⁠?⁠”

“⁠자료가 바꿨습니다⁠.⁠”

공태림 반장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음이 짧았다⁠. “⁠책무구조도 봅시다⁠. 정보교류 차단 책임 임원이 누구죠⁠?⁠”

책무구조도는 회사가 임원마다 어떤 내부통제를 책임지는지 미리 나눠 적어 금융당국에 내는 지도다⁠. 대륙증권은 2025년 여름에 냈다⁠. 무슨 일이 터지면 이 지도를 펴고 책임진 사람을 찾는다⁠.

“⁠영업 부문 정보교류 차단은 영업본부장입니다⁠. 회사 전체 내부통제를 총괄 관리할 의무는 대표이사에게 있고요⁠.⁠”

“⁠그럼 영업본부장이 직접 차단벽을 넘었다면⁠, 총괄 관리하는 분은 그걸 언제 아셨을까요⁠?⁠”

옥경 팀장이 대답하지 않았다⁠. 공태림 반장이 노트북을 덮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나는 「⁠대답 없음⁠」이라고 적었다⁠.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적는 일에는 침묵도 들어갔다⁠.

*

화요일과 수요일⁠, 노강철 본부장의 문답이 이틀 동안 이어졌다⁠. 금감원 문답에는 감사팀이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문 밖 복도 의자에서 자료 상자를 지켰다⁠. 두꺼운 문 너머로 노 본부장의 웃음소리가 몇 번 들렸다⁠. 문답 중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요일 저녁 일곱 시⁠, 문이 열리고 노 본부장이 나왔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금색 핀이 비뚤어져 있었다⁠.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처제 계좌는 가족 부탁이었다고 했어⁠. 처제가 사인한 위임장도 냈고⁠. 세 건은 방준서가 혼자 감으로 산 거고⁠. 걔가 원래 감이 좋아⁠.⁠” 노 본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하나 더 말했어⁠. 이 감사를 한 사람 중에 방준서 여자친구가 있다고⁠. 금감원은 그런 거 좋아하더라⁠. 받아 적던데⁠.⁠”

나는 자료 상자 손잡이를 쥐었다⁠. 상자 모서리가 손바닥에 박혔다⁠.

“⁠사진도 드렸어요⁠?⁠”

“⁠사진은 아직⁠. 아껴 둬야지⁠.⁠” 노 본부장이 엘리베이터를 불렀다⁠. “⁠채가온 씨⁠, 지금이라도 신고서 내⁠. 그러면 연애 때문에 빠진 사람이 되고⁠, 보고서는 감사팀장 혼자 쓴 게 돼⁠. 감사팀장 보고서는 십 년 전부터 다들 안 믿어⁠. 그건 팀장님한테 물어봐⁠.⁠”

*

수요일 밤 열 시⁠, 여의나루역 2번 출구 계단 밑에서 준서를 만났다⁠. 강바람이 계단을 타고 내려와 내 반묶음 머리를 다 풀어 놓았다⁠. 준서는 남색 정장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빨간 넥타이를 풀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있었다⁠. 넥타이 끝이 주머니 밖으로 혀처럼 나와 있었다⁠.

“⁠본부장님이 금감원에 우리 얘기했대⁠.⁠”

“⁠알아⁠. 나한테 직접 자랑하셨어⁠.⁠”

“⁠다음 주 목요일에 내 문답이야⁠.⁠” 준서가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사내 교제 신고서였다⁠. 교제 상대 칸에 준서 글씨로 「⁠감사팀 채가온⁠」⁠, 비고 칸에 「⁠회전율 높음⁠, 장기 보유 희망⁠」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먼저 낼게⁠. 내가 내면 너는 신고받은 사람이 되잖아⁠. 숨긴 사람이 아니라⁠.⁠”

“⁠장기 보유 희망은 빼⁠.⁠”

“⁠그건 못 빼⁠. 사실이야⁠.⁠”

나는 종이를 받아 다시 접었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강바람이 막아 주었다⁠.

“⁠네가 이걸 내면 네 문답이 연애 얘기로 끝나⁠. 금감원은 세 건을 묻고 싶은데⁠, 회사는 연애를 말하고 싶어 해⁠. 노 본부장님이 원하는 게 그거야⁠.⁠” 나는 종이를 준서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빨간 넥타이 옆이었다⁠. “⁠내 건 내가 내⁠. 넌 문답에서 세 건만 생각해⁠.⁠”

“⁠세 건을 말하면 본부장님이 끝나⁠.⁠”

“⁠말 안 하면 네가 끝나⁠.⁠”

준서가 계단 난간을 잡았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바람이 아래에서 올라왔다⁠. 우리는 둘 다 대답을 미룬 채⁠, 서로 다른 칸에 타고 같은 방향으로 갔다⁠.

*

목요일 점심⁠, 지하 구내식당에서 웃음이 났다⁠. 금감원 검사역 다섯 명이 식판을 들고 계산대 앞으로 줄지어 갔다⁠. 구내식당은 사원증을 찍어야 밥값이 월급에서 빠진다⁠. 사원증이 없는 사람은 계산할 방법이 없었다⁠.

“⁠현금 받으세요⁠?⁠” 공태림 반장이 지갑을 꺼냈다⁠.

“⁠여기는 현금이 없어요⁠. 사원증만 돼요⁠.⁠” 계산대 아주머니가 손을 저었다⁠. “⁠그냥 드세요⁠. 손님인데⁠.⁠”

“⁠그냥 먹으면 안 돼요⁠.⁠”

“⁠그럼 뭘로 내요⁠?⁠”

공태림 반장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 다섯 장을 꺼내 계산대에 올렸다⁠. 아주머니는 돈을 쳐다보기만 했다⁠. 금고가 없었다⁠. 결국 총무팀 대리가 달려와 영수증 대신 「⁠금융감독원 식대 현금 수령⁠」이라고 손으로 쓴 종이를 써 주고⁠, 만 원짜리 다섯 장을 봉투에 넣어 총무팀 금고에 넣기로 했다⁠. 검사역 다섯 명은 다 식은 제육볶음을 구석에 앉아 먹었다⁠. 아무도 커피를 사지 않았다⁠.

육 차장이 내 옆에서 숟가락을 들고 속삭였다⁠. “⁠저분들 밥 한 끼 먹는 데 결재가 두 장이야⁠.⁠”

“⁠우리 회사는 연애 한 번 하는 데 신고서가 한 장이고요⁠.⁠”

육 차장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

목요일 오후 네 시⁠, 공태림 반장이 나를 불렀다⁠. 회의실 문이 닫혔다⁠. 이번에는 기록 보조가 없었다⁠. 나 혼자였다⁠.

“⁠채가온 씨⁠. 문답서 작성자 칸에 채가온 씨 이름이 있어요⁠. 3월 4일 방준서 대리 문답⁠. 기록 보조라고 들었는데⁠, 감사 보고서 초안 작성자도 채가온 씨네요⁠. 녹취 분석도⁠, 정미옥 계좌 추적도⁠.⁠”

“⁠네⁠.⁠”

“⁠그럼 담당자죠⁠. 담당자인데 확인서가 없어요⁠.⁠” 공태림 반장이 텀블러 뚜껑을 열고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김이 오르지 않았다⁠. 아침에 끓인 차가 식어 있었다⁠. “⁠방준서 대리와 어떤 관계입니까⁠?⁠”

나는 탁자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손가락을 깍지 끼지 않았다⁠. 깍지는 다른 자리에서 하던 버릇이었다⁠.

“⁠그 질문은 문답서로 받으셔야 하는 거죠⁠?⁠”

“⁠네⁠. 문답서로 받을 겁니다⁠.⁠” 공태림 반장이 펜을 내려놓았다⁠. “⁠그 전에 하나만 말할게요⁠. 노 본부장이 그 얘기를 한 이유는 채가온 씨 보고서를 못 믿게 하려는 거예요⁠. 나도 알아요⁠. 그런데 알면서도 확인은 해야 해요⁠. 숨긴 채로 남으면 노 본부장 말이 이겨요⁠. 내일 금요일 여섯 시까지 확인서 내세요⁠. 있으면 있다고⁠, 없으면 없다고⁠.⁠”

회의실을 나오며 나는 문손잡이를 오래 쥐었다⁠. 손잡이가 차가웠다가 내 손 온도가 되었다⁠.

*

4월 16일 금요일 저녁 다섯 시 오십 분⁠, 나는 확인서를 썼다⁠. 이해충돌 「⁠있음⁠」에 표시하고⁠, 관계 칸에 볼펜으로 또박또박 적었다⁠. 「⁠영업본부 영업2팀 방준서 대리와 2024년 4월부터 교제 중⁠」⁠. 서명했다⁠. 펜을 내려놓는 손이 가벼웠다⁠. 삼 년 동안 들고 다닌 것을 종이 위에 내려놓은 무게였다⁠.

육 차장은 다섯 시 반에 퇴근하면서 내 책상에 초코과자 하나를 놓고 갔다⁠. 「⁠금요일엔 당이 두 배로 떨어짐⁠」이라고 쓴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사무실에 남은 사람은 나와 팀장실 블라인드 뒤의 누군가였다⁠. 나는 과자를 주머니에 넣고 확인서를 들고 팀장실로 갔다⁠. 공태림 반장에게 내기 전에 옥경 팀장에게 먼저 보여야 했다⁠. 팀장실 유리문이 한 뼘 열려 있었고⁠, 블라인드가 내려가 있었다⁠. 안에서 남자 목소리가 났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사내 방송에서 신년사를 읽던 목소리였다⁠.

“⁠옥경아⁠. 십 년 전처럼 하자⁠.⁠”

나는 문 앞에서 멈췄다⁠. 블라인드 틈으로 회색 정장의 등이 보였다⁠. 은빛으로 센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남자였다⁠. 위상진 대표이사⁠. 대표가 19층에 내려오는 일은 일 년에 한 번⁠, 감사위원회 보고 날뿐이었다⁠.

“⁠방준서 하나로 닫자⁠. 일임하고 휴대전화 주문⁠, 그 정도면 금감원도 받아⁠. 노강철은 내가 하반기에 조용히 정리할게⁠. 처제 계좌가 나가면 정보교류 차단이 나가고⁠, 차단이 나가면 책무구조도가 나가⁠. 그러면 다음은 내 이름이야⁠. 내 이름이 나가면 회사가 신규 업무를 못 해⁠. 삼천 명이 일하는 회사야⁠.⁠”

“⁠그래서 이번에도 젊은 애 하나를 내보내자고⁠?⁠”

“⁠이번엔 내가 너 지켜 줄게⁠.⁠”

옥경 팀장의 목소리가 한참 뒤에 나왔다⁠. 팔짱을 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십 년 전에도 그렇게 말했어⁠, 상진 씨⁠.⁠”

내 손에서 돋보기가 미끄러졌다⁠. 확인서와 같이 들고 온 놋쇠 돋보기였다⁠. 돋보기가 바닥에 떨어지며 쨍 하고 울렸다⁠. 블라인드 너머 두 사람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대표의 손이 옥경 팀장의 빨간 소매 위에 얹혀 있었다⁠. 옥경 팀장이 대표의 손을 치우지 않은 채로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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