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92자)

노무사가 연애는 자유라고 했다

사내 연애 적발 감사팀 · 모세담

3월 22일 월요일 아침 일곱 시 사십 분⁠, 나는 19층에 제일 먼저 올라왔다⁠. 노강철 본부장이 정한 기한이 오늘이었다⁠. 사무실 불을 켜자 형광등이 한 칸씩 깜박이며 들어왔다⁠. 보고서 파일을 열어 정미옥이라는 이름이 있는 줄에 커서를 댔다⁠. 지우기 단추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가 뗐다⁠. 다시 얹었다⁠. 손가락이 단추를 누르기 전에 팀장실 불이 먼저 켜졌다⁠. 옥경 팀장은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블라인드 뒤에서 불만 끄고 앉아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팀장실 문을 두드렸다⁠.

“⁠노 본부장님이 사진을 갖고 있습니다⁠. 주차장이랑 망원동⁠. 오늘까지 정미옥 계좌를 빼지 않으면 돌린다고 했어요⁠.⁠”

옥경 팀장은 놀라지 않았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그래서⁠, 뺐어⁠?⁠”

“⁠아니요⁠.⁠”

“⁠왜⁠?⁠”

“⁠빼면 준서가 혼자 다 집니다⁠. 노 본부장님은 내년에 또 누군가한테 첫 고객을 넘겨주고요⁠.⁠” 나는 숨을 한 번 골랐다⁠. “⁠그리고 빼면⁠, 사진이 안 돌아도 제가 노 본부장님 사람이 돼요⁠. 그건 사진보다 오래 갑니다⁠.⁠”

옥경 팀장이 나를 오래 보았다⁠. 그러다 손을 내밀었다⁠. 나는 노트북을 넘겼다⁠. 옥경 팀장이 정미옥 줄을 빨간 글씨로 바꾸고 결재를 눌렀다⁠. 보고서가 감사위원회와 대표이사실로 올라갔다⁠.

“⁠사진이 돌면 채가온 씨는 이 건에서 빠져⁠.⁠”

“⁠압니다⁠.⁠”

“⁠빠지기 전까지 다 해 놔⁠.⁠”

*

사진은 돌지 않았다⁠. 대신 화요일 오후 인사팀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노사협의회 임시회의 소집 — 안건⁠: 임직원 사내 교제 관리 규정의 효력 및 감사팀 사내 메신저 열람 범위⁠」⁠. 요청한 곳은 노동조합 대륙증권 지부였다⁠. 지부장 이름 옆에 소속이 적혀 있었다⁠. 영업본부 영업3팀 과장⁠. 커피 머신과 매일 아침 여덟 시에 만난다는 신고서를 낸 사람이었다⁠.

육 차장이 공문을 읽고 분홍 형광펜 뚜껑을 닫았다⁠. “⁠장난이 공문이 됐네⁠.⁠”

“⁠노 본부장님이 사진을 안 돌린 이유가 이거예요⁠.⁠” 나는 공문을 내려놓았다⁠. “⁠사진은 한 사람을 치는데⁠, 규정은 감사팀 전체를 쳐요⁠.⁠”

옥경 팀장이 팀장실에서 나와 공문을 집었다⁠. 다 읽고 나서 나를 보았다⁠.

“⁠노사협의회에서 인사팀이 감사팀 의견을 물을 거야⁠. 규정 검토 의견서 써⁠. 채가온 씨가⁠.⁠”

“⁠제가요⁠?⁠”

“⁠법 공부는 리테일지원팀에서 제일 많이 했다며⁠. 인사팀장이 그러던데⁠.⁠”

나는 대답 대신 판례 검색창을 열었다⁠. 화면 위로 내 얼굴이 흐리게 비쳤다⁠. 규정을 어긴 사람이 규정이 살아남을지 판단하는 의견서를 쓰게 됐다⁠.

*

수요일과 목요일 밤 열한 시까지 나는 노동법을 읽었다⁠. 근로기준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직원을 해고하거나 징계하지 못하게 한다⁠. 회사가 혼자 만든 취업규칙은 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힘이 있다⁠. 사생활은 헌법이 지키는 자리다⁠. 판례와 노동위원회 판정을 몇 개씩 겹쳐 읽어도 결론은 한 방향이었다⁠. 사내 연애를 했다는 것만으로 징계나 해고를 정당하다고 본 사례는 찾기 어려웠다⁠. 예외는 있었다⁠. 채용을 맡은 사람이 연애 상대의 채용에 손을 댄 경우⁠, 연애가 끝난 뒤 둘이 업무를 거부해 일이 멈춘 경우⁠. 둘 다 연애가 업무를 망가뜨린 경우였다⁠.

반대 방향으로 쓰인 글도 있었다⁠. 사생활 소문을 회사 안에 퍼뜨려 일하기 힘들게 만들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 익명 게시판에 올라왔다 십 분 만에 지워진 사진이 떠올랐다⁠.

목요일 밤 열한 시 반⁠, 휴대전화가 울렸다⁠.

「⁠IT헬프데스크⁠: 아직 회사야⁠?⁠」

「⁠채가온⁠: 노동법이랑 데이트 중⁠.⁠」

「⁠IT헬프데스크⁠: 노동법 잘생겼어⁠?⁠」

「⁠채가온⁠: 너보다 원칙이 있어⁠.⁠」

「⁠IT헬프데스크⁠: 서킷브레이커 걸렸네요⁠. 반등은 언제쯤⁠?⁠」

나는 답을 하지 않고 의견서 마지막 문단을 썼다⁠. 금지 조항은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감사·준법 업무를 맡은 직원이 조사 대상과 가까운 관계일 때 회사에 알리고 맡은 업무에서 빠지게 하는 조항은 업무상 이유가 분명해 유지할 수 있다⁠. 마침표를 찍고 나서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내가 쓴 마지막 문장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

3월 25일 목요일 점심⁠, 육 차장이 김밥 두 줄을 사 들고 나를 여의도공원 벤치로 데려갔다⁠. 회사 식당에서는 귀가 많다고 했다⁠. 벚나무 가지 끝에 꽃망울이 콩알만 하게 맺혀 있었다⁠. 육 차장이 김밥 은박지를 반만 벗겨 내게 건넸다⁠.

“⁠의견서 어떻게 쓰고 있어⁠?⁠”

“⁠금지는 무효일 가능성이 크다고 쓰고 있어요⁠. 팀장님이 싫어하실 거예요⁠.⁠”

“⁠싫어하시겠지⁠. 그래도 그렇게 써⁠.⁠” 육 차장이 김밥 꼬다리를 먼저 집었다⁠. 꼬다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사내 연애로 결혼했어⁠.⁠”

나는 김밥을 입에 넣다 말았다⁠. “⁠차장님이요⁠?⁠”

“⁠우리 집사람 인사팀 김 과장이야⁠. 베이지 좋아하는⁠.⁠”

구내식당 제육볶음 날 등 뒤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인사팀 김 과장이 베이지 좋아하잖아⁠. 김 과장님은 결혼하셨어⁠. 그러니까 문제지⁠. 나는 김밥을 씹다가 웃음이 터져 밥알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규정이 생긴 게 2017년 6월이고⁠, 우리는 그해 봄에 결혼했어⁠. 석 달 차이로 살았지⁠.⁠” 육 차장이 은박지를 접었다⁠. “⁠그때 나는 감사팀 막내였고⁠, 팀장님은 리서치센터 사람이었어⁠. 감사팀에 오신 건 규정 만들고 나서야⁠.⁠”

“⁠리서치센터요⁠? 분석하는 데요⁠?⁠”

“⁠목표주가 쓰던 분이야⁠. 잘 썼어⁠. 팀장님 보고서 나오는 날은 영업부 전화가 불이 났지⁠.⁠” 육 차장이 벤치에서 일어나 바지를 털었다⁠. “⁠나머지는 팀장님 입으로 들어⁠. 내가 말하면 소문이고⁠, 팀장님이 말하면 사실이니까⁠.⁠”

*

3월 26일 금요일 오후 두 시⁠, 24층 노사협의회 회의실⁠. 긴 탁자 한편에 노조 지부장과 외부 노무사⁠, 노조 간부 둘이 앉았다⁠. 맞은편에 인사팀장과 옥경 팀장⁠, 나⁠. 탁자 끝에 노 본부장이 참관인으로 앉아 금색 넥타이핀을 만지작거렸다⁠. 회의실 창으로 국회의사당 초록 지붕이 보였다⁠.

노조 지부장이 먼저 서류를 들었다⁠. 커피 머신의 남자는 실물로 보니 둥근 안경을 쓴 순한 얼굴이었다⁠.

“⁠먼저 말씀드립니다⁠. 저희 본부 서른두 명이 교제 신고서를 낸 건 장난이 아닙니다⁠. 아⁠, 장난은 맞는데 항의였습니다⁠. 회사가 직원 연애를 신고받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보여 드리려고요⁠.⁠”

“⁠커피 머신하고는 잘 지내세요⁠?⁠” 인사팀장이 물었다⁠.

“⁠요즘 원두가 떨어져서 사이가 좀 멀어졌습니다⁠.⁠”

회의실에 웃음이 한 번 돌았다⁠. 옥경 팀장은 웃지 않았다⁠. 노무사가 본론을 꺼냈다⁠. 반백 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였고⁠, 말이 빨랐다⁠.

“⁠연애는 자유입니다⁠. 헌법이 사생활의 자유를 지키고⁠, 근로기준법이 정당한 이유 없는 징계를 막습니다⁠. 연애했다는 이유로 징계하면 부당징계입니다⁠. 그리고 감사팀이 연애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사내 메신저를 들여다보는 건 개인정보 문제까지 생깁니다⁠.⁠”

“⁠메신저는 동의서 받은 범위에서⁠, 위반 조사 때만 봅니다⁠.⁠” 옥경 팀장이 팔짱을 꼈다⁠. “⁠그리고 이 규정이 생긴 이유를 아십니까⁠? 십 년 전에 사내 연애로 정보가 새서 이 회사가 영업정지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건 연애가 아니라 정보 유출이죠⁠.⁠” 노무사가 바로 받았다⁠. “⁠유출을 징계하세요⁠. 유출은 연애하지 않는 사람도 합니다⁠.⁠”

옥경 팀장의 턱이 한 번 굳었다⁠. 노 본부장이 탁자 끝에서 등을 기댔다⁠. 이 장면을 보려고 참관인 자리에 앉은 사람이었다⁠.

인사팀장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감사팀 의견서 있죠⁠? 실무자가 읽어 주세요⁠.⁠”

나는 종이를 들었다⁠. 옆에서 옥경 팀장의 빨간 소매가 시야 끝에 걸쳐 있었다⁠. 읽기 전에 한 번 옥경 팀장을 보았다⁠. 옥경 팀장은 앞만 보고 있었다⁠.

“⁠사내 교제 관리 규정 검토 의견⁠. 하나⁠. 교제 금지 조항은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큽니다⁠. 교제 사실만으로 징계한 사례가 정당하다고 인정된 경우를 찾기 어렵습니다⁠.⁠”

노조 간부 하나가 볼펜으로 탁자를 톡 쳤다⁠. 이겼다는 소리였다⁠.

“⁠둘⁠. 다만 감사·준법 업무를 맡은 직원과 조사 대상⁠, 또는 같은 결재선 위아래에 있는 직원이 가까운 관계일 때 이를 회사에 알리고 해당 업무에서 빠지게 하는 조항은 업무상 이유가 분명해 유지할 수 있습니다⁠. 숨기면 연애가 아니라 이해충돌이 문제가 됩니다⁠.⁠”

이번에는 노 본부장이 나를 보았다⁠. 탁자 끝에서 웃음이 한쪽 입꼬리로만 올라갔다⁠. 나는 올라간 입꼬리를 보지 않으려고 종이만 보았다⁠.

“⁠셋⁠. 사생활 소문을 회사 안에 퍼뜨려 업무 환경을 망가뜨리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어 규정에 새로 넣을 것을 권합니다⁠. 이상입니다⁠.⁠”

회의실이 잠시 조용했다⁠. 노무사가 안경을 벗었다⁠. “⁠감사팀이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요⁠. 셋째는 저희가 쓰려던 건데요⁠.⁠”

“⁠세 번째요⁠.⁠” 나는 저도 모르게 고쳤다⁠.

“⁠네⁠?⁠”

“⁠아⁠, 아닙니다⁠.⁠”

인사팀장이 옥경 팀장을 보았다⁠. “⁠심 팀장님⁠, 실무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옥경 팀장이 팔짱을 풀었다⁠. 탁자 위에 두 손을 올려 손가락을 깍지 꼈다⁠. 십 년 동안 지킨 규정 위에 손을 얹는 사람 같았다⁠.

“⁠동의합니다⁠. 금지는 지웁니다⁠. 연애는 자유입니다⁠.⁠” 옥경 팀장이 노 본부장을 보지 않고 말했다⁠. “⁠신고하지 않은 이해충돌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건 남깁니다⁠. 개정 규정은 4월 1일부터 시행합니다⁠.⁠”

노 본부장이 박수를 두 번 쳤다⁠. 아무도 따라 치지 않았다⁠.

*

회의가 끝나고 24층 복도에서 옥경 팀장이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렀다⁠. 문이 열릴 때까지 둘 다 말이 없었다⁠. 탄 사람은 우리 둘뿐이었다⁠.

“⁠네 말이 맞아서 화가 나⁠.⁠” 옥경 팀장이 거울을 보며 말했다⁠. 처음으로 ‘⁠채가온 씨⁠’ 대신 ‘⁠너⁠’라고 불렀다⁠.

“⁠죄송합니다⁠.⁠”

“⁠사과하지 마⁠. 의견서는 그렇게 쓰는 거야⁠.⁠” 옥경 팀장이 숫자판을 보았다⁠. 24⁠, 23⁠, 22⁠. “⁠4월 1일부터 채가온 씨가 신고 안 하면 이해충돌 위반이야⁠. 금지가 아니니까 이제 변명도 없어⁠. 금지일 때는 규정이 나빠서 숨겼다고 할 수 있었지⁠.⁠”

“⁠알고 있습니다⁠.⁠”

“⁠그 전에 끝내⁠.⁠”

19층에서 문이 열렸다⁠. 옥경 팀장이 먼저 내리다 말고 돌아보았다⁠.

“⁠아까 세 번째라고 고친 거⁠. 그건 잘했어⁠.⁠”

*

저녁 여섯 시⁠, 감사팀 공용 메일함에 공문 하나가 들어왔다⁠. 보낸 곳은 금융감독원이었다⁠. 육 차장이 견과류 봉지를 내려놓고 모니터 앞으로 의자를 끌었다⁠.

「⁠대륙증권 수시검사 실시 사전 통지 — 검사 기간 2027년 4월 12일부터 4월 23일까지 — 검사 범위 임직원 금융투자상품 매매⁠, 불건전 영업행위⁠, 정보교류 차단⁠, 내부통제 운영 실태⁠」

수시검사는 정해진 주기에 오는 정기검사와 달리⁠, 무언가 터졌을 때 터진 일을 보러 오는 검사다⁠. 육 차장이 공문 아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금융사고 보고(⁠2027⁠. 3⁠. 24⁠.⁠)에 따름⁠」⁠.

“⁠준법감시인 상무가 보고했네⁠. 비서실장 말 안 듣고⁠.⁠” 육 차장이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저 양반 회색 넥타이 오늘부로 빨강으로 바꿔야겠어⁠.⁠”

공문에 첨부된 자료 요구 목록은 열네 장이었다⁠. 나는 한 줄씩 내려 읽었다⁠. 염명숙 계좌 원장⁠, 정미옥 계좌 원장⁠, 녹취⁠, 접속 기록⁠, 감사팀 보고서⁠, 문답서⁠. 마지막 장 맨 아래 줄에서 스크롤이 멈췄다⁠.

「⁠감사 담당자 이해충돌 없음 확인서 — 담당자 전원 자필 서명⁠」

옥경 팀장이 팀장실에서 나와 내 모니터를 보았다⁠. 둘 다 맨 아래 줄을 읽었다⁠. 옥경 팀장은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끼고 내 책상 옆에 서 있었다⁠. 창밖으로 여의도에 해가 지면서 국회의사당 초록 지붕이 회색으로 바뀌었다⁠. 확인서 서식의 서명란 밑줄이 화면에서 깜박이는 커서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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