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35자)

영업본부 서른두 명이 교제 신고서를 냈다

사내 연애 적발 감사팀 · 모세담

3월 9일 화요일 아침 아홉 시⁠, 3층 영업본부 대회의실에 의자 마흔 개가 찼다⁠. 앞줄 가운데 노강철 본부장이 다리를 꼬고 앉았고⁠, 뒷줄 끝에 준서가 앉았다⁠. 나는 노트북을 안고 벽 앞에 자리를 잡았다⁠. 옥경 팀장이 연단 대신 탁자 앞에 서서 팔짱을 꼈다⁠. 빨간 정장이 회색 의자 마흔 개 앞에서 경고등처럼 보였다⁠.

“⁠오늘부터 3주 동안 영업본부 전 직원의 자기매매를 점검합니다⁠. 분기마다 내신 매매 명세와 실제 계좌를 대조하고⁠, 법인영업부와 리테일 사이 정보교류 차단이 지켜졌는지 봅니다⁠. 휴대전화 주문 접수도 봅니다⁠.⁠”

뒷줄에서 누가 작게 「⁠아⁠」 했다⁠. 노 본부장이 다리를 풀었다⁠.

“⁠팀장님⁠. 저번 주에 감사팀 대상은 방준서 하나라고 들었는데요⁠.⁠”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노 본부장은 웃으며 넘겼다⁠.

“⁠소문이 빠르죠⁠, 이 층은⁠. 하여튼 지금 3월입니다⁠. 1분기 마감이 삼 주 남았어요⁠. 마흔 명이 서류 대조하느라 전화를 못 받으면 고객이 다른 회사로 갑니다⁠. 감사팀이 사내 연애 사진 하나 들고 본부 전체를 털겠다는 겁니까⁠? 그 사진⁠, 다들 봤죠⁠?⁠”

몇 사람이 웃었다⁠. 준서는 웃지 않았다⁠. 나는 벽에 등을 붙였다⁠.

“⁠사진은 감사 대상이 아닙니다⁠.⁠” 옥경 팀장이 말했다⁠.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는 대상이에요⁠.⁠”

“⁠그럼 연애 규정은요⁠? 감사팀이 만든 규정이잖아요⁠. 사진 속 여자부터 찾으셔야죠⁠. 그게 감사팀 일 아닙니까⁠?⁠”

노 본부장이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마흔 개의 얼굴이 노 본부장의 눈길을 따라 움직였다⁠. 옥경 팀장은 대답 대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점검 일정표를 건넸다⁠. 옥경 팀장이 일정표를 탁자 위에 탁 내려놓았다⁠.

“⁠여자는 내가 찾습니다⁠. 본부장님은 3월 22일까지 본인 계좌 명세를 내세요⁠. 본부장님이 첫 번째입니다⁠.⁠”

*

수요일부터 신고서가 들어왔다⁠. 사내 교제 신고서는 원래 인사팀으로 가는 서류지만⁠, 규정을 만든 감사팀에 사본이 온다⁠. 1년에 많아야 서너 장 오던 사본이 사흘 동안 서른두 장 왔다⁠. 전부 영업본부였다⁠.

육 차장이 서류 뭉치를 넘기며 형광펜을 골랐다⁠. 빨강도 노랑도 초록도 아닌 분홍을 집었다⁠.

“⁠분홍은 처음 보는데요⁠.⁠”

“⁠분홍은 장난이야⁠. 십오 년 만에 처음 꺼낸다⁠.⁠” 육 차장이 한 장을 들어 읽었다⁠. “⁠영업1팀 대리⁠. 교제 상대⁠, 모니터 두 대⁠. 교제 시작일⁠, 입사일⁠. 비고⁠, 하루 열 시간 마주 봄⁠.⁠”

다음 장⁠. “⁠영업3팀 과장⁠. 교제 상대⁠, 3층 커피 머신⁠. 매일 아침 여덟 시 정기 만남⁠. 비고⁠, 원두 회전율 높음⁠.⁠”

나는 웃음을 참다가 기침이 나왔다⁠. 탕비실에서 내가 한 말이 벌써 3층에 돌았다⁠.

“⁠영업2팀 주임⁠. 교제 상대⁠, 코스피⁠. 일방적 관계⁠. 상대가 자주 떠남⁠.⁠” 육 차장이 분홍으로 줄을 그었다⁠. “⁠이건 좀 슬프네⁠.⁠”

“⁠차장님⁠, 마지막 장은요⁠?⁠”

“⁠영업2팀 사원⁠. 교제 상대⁠, 노강철 본부장님⁠. 존경으로 시작해 존경으로 끝나는 관계⁠. 신고 사유⁠, 혹시 몰라서⁠.⁠”

옥경 팀장이 팀장실 유리문을 열고 나왔다⁠. 서른두 장을 받아 한 장씩 넘겼다⁠. 웃지 않았다⁠. 다 넘기고 나서 뭉치를 내 책상에 내려놓았다⁠.

“⁠인사팀에서 전화 왔지⁠?⁠”

“⁠세 번 왔습니다⁠. 규정 개정하든지 신고서 받지 말든지 하라고요⁠.⁠”

“⁠장난이 아니야⁠, 이거⁠.⁠” 옥경 팀장이 뭉치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서른두 명이 한 날 같은 장난을 치려면 누가 서식을 돌려야 해⁠. 웃게 만들어서 규정을 낡은 걸로 만들고⁠, 규정이 낡으면 규정 만든 팀이 낡아⁠. 낡은 팀이 낸 보고서는 아무도 안 읽어⁠.⁠”

나는 신고서 서른두 장의 아래쪽 귀퉁이를 보았다⁠. 전부 같은 파일에서 출력되어 쪽 번호 자리에 똑같은 회색 점이 찍혀 있었다⁠. 서식을 돌린 사람이 있었다⁠. 나는 장난 서른두 장 가운데 하나에 진짜로 적어야 할 이름을 아는 사람이었다⁠. 웃음이 목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

3월 15일 월요일부터 나는 영업본부 마흔 명의 매매 명세를 대조했다⁠. 증권사 직원은 자기 이름으로 된 회사 계좌 하나로만 주식을 사고⁠, 분기마다 회사에 매매 명세를 낸다⁠. 마흔 명 가운데 서른일곱 명의 명세가 계좌와 맞았다⁠. 두 명은 공모주 청약 기록을 빠뜨렸다⁠. 한 명은 이상했다⁠.

노강철 본부장의 신고 계좌는 이 년 동안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잔고 이백만 원⁠. 매매 0건⁠. 영업본부 약정 1위를 십 년 지킨 사람이 자기 돈으로는 주식을 한 주도 사지 않았다⁠.

“⁠스님인가 보지⁠.⁠” 육 차장이 견과류를 씹었다⁠. “⁠아니면 다른 데서 사시든가⁠.⁠”

나는 정미옥 계좌를 다시 열었다⁠. 일 년 반 동안 매매 사백 건⁠. 수익률 플러스 사십일⁠. 세 번만 사지 않았다⁠. 사백 번 샀다⁠. 연기금 주문과 겹치는 날을 표로 뽑아 보니 열아홉 번이었다⁠. 열아홉 번 다 큰 주문보다 몇 분 먼저였다⁠.

옥경 팀장이 표를 보고 한참 말이 없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준법감시인 연결해 주세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나를 보았다⁠. “⁠차명이 확인되면 회사는 금감원에 알려야 해⁠. 금융사고 보고⁠. 덮으면 덮은 사람이 위반이야⁠.⁠”

*

3월 17일 수요일 밤 아홉 시⁠, 망원동 내 원룸 앞 골목에서 준서를 만났다⁠. 회사에서 2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만 만난다는 우리 규칙은 삼 년 동안 잘 지켜졌다⁠. 이번 주 들어 처음으로 준서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 준서는 편의점 비닐봉지에 딸기 우유 두 개를 넣어 왔다⁠. 화해의 뜻으로 사 오는 음료였다⁠. 반등⁠.

“⁠본부장님이 오늘 나 불렀어⁠.⁠”

“⁠뭐래⁠?⁠”

“⁠일임만 인정하래⁠. 세 건은 내가 혼자 감으로 산 거라고 하래⁠. 그러면 휴대전화 건이랑 묶어서 경고로 끝내 주고⁠, 하반기에 여의도 남게 해 준대⁠.⁠” 준서가 빨대를 꽂지 않은 우유를 손에서 굴렸다⁠. “⁠안 그러면 지방 지점이고⁠.⁠”

“⁠네 감으로 산 거라고 하면⁠, 처제 계좌는⁠?⁠”

“⁠처제 계좌가 뭔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준서는 정미옥을 몰랐다⁠. 노 본부장이 준서에게 시킨 일과 자기가 한 일을 따로 두었다는 뜻이었다⁠. 준서는 담는 손이었고⁠, 노 본부장은 준서보다 먼저 담는 손이었다⁠. 앞의 손이 뒤의 손을 방패로 쓰고 있었다⁠.

“⁠준서야⁠. 본부장님 말대로 하면⁠, 너 혼자 다 지고 가는 거야⁠.⁠”

“⁠알아⁠.⁠” 준서가 우유를 뜯어 반을 한 번에 마셨다⁠. “⁠근데 아니라고 하면⁠, 내가 본부장님을 팔아야 해⁠. 신입 때부터 날 키운 사람이야⁠. 첫 고객도 본부장님이 넘겨줬어⁠. 염명숙 고객님도⁠.⁠”

나는 준서의 빨간 넥타이를 잡아 한 번 바로 했다⁠. 넥타이는 삐뚤지 않았다⁠. 손이 할 일이 필요했다⁠.

“⁠내가 감사팀이라서 이 말 하는 거 아니야⁠. 네가 다 지면⁠, 노 본부장은 내년에 또 누굴 키울 거야⁠. 그 사람한테도 첫 고객을 넘겨줄 거고⁠.⁠”

준서가 대답하지 않고 남은 우유를 다 마셨다⁠. 빈 팩을 비닐봉지에 넣고⁠, 봉지를 두 번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준서는 생각이 많을 때 쓰레기를 작게 접는다⁠.

*

3월 18일 목요일 점심⁠, 1층 로비 안내 데스크에서 전화가 왔다⁠. 감사팀 채가온 씨를 찾는 고객이 왔다고 했다⁠. 내려가 보니 연한 회색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할머니가 보온 가방을 안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자주색 카디건에 악보 무늬 스카프를 둘렀다⁠.

“⁠감사팀 아가씨지⁠? 목소리 듣고 알았어⁠. 전화로 들은 목소리랑 똑같네⁠.⁠”

염명숙 고객이었다⁠. 보온 가방을 열자 식혜 병 두 개가 나왔다⁠. 하나는 방 선생 것⁠, 하나는 내 것이라고 했다⁠.

“⁠고객님⁠, 감사팀은 고객님께 뭘 받으면 안 됩니다⁠.⁠”

“⁠식혜는 뇌물이 아니야⁠. 밥이지⁠. 나 사십 년 동안 교무실에서 식혜 돌렸어⁠. 교감 선생님도 받았어⁠.⁠”

나는 병을 받지도 거절하지도 못하고 들고만 있었다⁠. 고객이 내 옆에 앉아 목소리를 낮췄다⁠.

“⁠방 선생 혼내지 마⁠. 내가 노 본부장한테 처음 계좌 맡겼을 때는 본부장이 직접 해 줬어⁠. 이 년쯤 하다가 바쁘다고 방 선생을 붙여 줬지⁠. 착한 애라고⁠. 착하긴 착해⁠.⁠”

“⁠노 본부장님이 고객님 계좌를 직접 하셨어요⁠?⁠”

“⁠그럼⁠. 그때도 알아서 해 줬어⁠. 그때는 전화도 잘 안 했어⁠. 방 선생은 매일 하고⁠.⁠” 고객이 내 손에 식혜 병을 꼭 쥐여 주었다⁠. “⁠아가씨⁠, 밥 먹고 다녀⁠. 커피만 마시지 말고⁠.⁠”

고객이 회전문으로 나간 뒤 나는 로비 소파에 앉아 식혜 병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병이 차가웠다⁠. 일임은 준서가 시작한 게 아니었다⁠. 노 본부장이 하던 방식이 계좌와 함께 준서에게 넘어갔다⁠. 계좌를 넘긴 사람은 방식도 넘겼고⁠, 방식과 함께 위험도 넘겼다⁠. 식혜 병 하나는 감사팀 공용 냉장고에 넣고 「⁠고객 반환 예정⁠」이라고 써 붙였다⁠. 다른 하나는 준서 자리에 놓아 달라고 영업본부 막내에게 부탁했다⁠. 메모는 붙이지 않았다⁠.

목요일 오후⁠, 준법감시인 상무가 19층에 올라왔다⁠. 마른 체구에 회색 넥타이를 맨 사람이었다⁠. 팀장실 유리문이 닫혔지만 목소리는 문틈으로 다 나왔다⁠.

“⁠금감원 보고는 대표님께 먼저 보고드린 다음에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누구 지시요⁠?⁠”

“⁠비서실장이요⁠. 확인이 덜 된 걸 밖에 먼저 알리면 회사가 다친다고⁠.⁠”

“⁠확인은 끝났어요⁠. 일 년 반⁠, 사백 건⁠, 열아홉 번⁠.⁠” 옥경 팀장의 목소리가 한 칸 낮아졌다⁠. “⁠상무님⁠, 덮으면 덮은 사람이 위반이에요⁠. 그 사람이 대표님이어도요⁠.⁠”

유리문이 열리고 준법감시인 상무가 나왔다⁠. 내 책상 옆을 지나가며 넥타이를 한 번 끌어내렸다⁠. 표정은 대답하지 않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

3월 19일 금요일 저녁 일곱 시⁠, 나는 3층 탕비실에서 노 본부장과 마주쳤다⁠. 마주친 게 아니었다⁠. 노 본부장이 문 옆에 기대 있다가 내가 들어오자 문을 닫았다⁠. 커피 머신이 원두를 갈았다⁠.

“⁠채가온 씨⁠, 처제 계좌 봤다면서⁠?⁠”

“⁠점검 중인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처제 계좌는 처제 거야⁠. 처제가 바빠서 내가 3층에서 대신 눌러 준 거고⁠. 가족끼리 그 정도는 해⁠.⁠”

“⁠대신 눌러 주시면 그게 차명입니다⁠.⁠”

노 본부장이 웃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사진이었다⁠. 지하 4층 주차장 D-17 기둥 옆⁠, 흰 경차 조수석에 내가 타고 있었고⁠, 운전석에서 준서가 두 손을 들고 있었다⁠. 다음 사진은 망원동 골목⁠, 편의점 불빛 아래서 내가 준서의 넥타이를 잡고 있었다⁠.

“⁠망원동까지 이만 원이면 싸게 갔네⁠.⁠”

나는 휴대전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진 속 나는 반묶음한 머리에 베이지 정장⁠, 목에 「⁠감사팀⁠」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돋보기가 없어도 다 보였다⁠.

“⁠감사팀 직원이 조사 대상하고 삼 년 사귀면서 조사를 했어⁠. 그 보고서를 누가 믿어⁠? 금감원이 믿을까⁠? 인사팀이 믿을까⁠?⁠” 노 본부장이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처제 계좌 줄을 보고서에서 빼⁠. 그럼 이 사진은 내 휴대전화에서 안 나가⁠. 준서는 경고 먹고 여의도에 남고⁠, 채가온 씨는 감사팀에 남고⁠. 둘이 망원동에서 우유 마시고⁠.⁠”

커피 머신이 다 갈았다는 신호음을 냈다⁠. 노 본부장이 컵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고 문을 열었다⁠.

“⁠아⁠, 그리고⁠. 사내 교제 신고서는 인사팀으로 내면 돼⁠. 서식은 우리 본부에 많아⁠.⁠”

문이 닫혔다⁠. 나는 커피 머신 앞에 혼자 남았다⁠. 머신 화면에 「⁠원두를 보충해 주세요⁠」가 떴다⁠. 나는 화면 글자를 오래 보았다⁠. 보충할 원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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