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55자) · 건우 · 1월 21일

상가 이 층

결재선에 없는 사람 · 윤재하

남건우는 시화 방조제 길을 달리는 동안 조수석을 세 번 봤다. 세 번 다 서지환은 창밖 바다를 보고 있었다. 1월 21일 수요일 아침 아홉 시, 방조제 왼쪽은 시화호였고 오른쪽은 서해였는데, 둘 다 같은 잿빛이라 어느 쪽이 호수고 어느 쪽이 바다인지는 바람 냄새로만 갈렸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소금기와 갯벌 비린내가 섞여 있었고, 멀리 산단 굴뚝 연기가 바람을 따라 한쪽으로 누워 있었다. 법인 차 히터는 발밑만 뜨겁고 무릎 위는 차가웠다. 오 년 전에도 이 차였다. 그때도 건우가 운전했고 지환이 조수석에서 바다를 봤다.

“저 사실 차 타면 멀미합니다.”

뒷자리에서 채린이 말했다. 무릎 위에 실사 체크리스트와 카메라와 과자 봉지가 같이 놓여 있었다.

“그럼 과자를 드시지 마십시오.”

“이건 멀미약 대신이에요. 입에 뭐가 있어야 덜해요.”

채린은 과자를 하나 입에 넣고, 목적지까지 몇 분 남았는지 물었다. 건우가 십이 분이라고 하자 과자를 두 개 더 꺼냈다. 조수석에서 지환이 작게 웃었다. 소리는 거의 안 났는데 어깨가 한 번 흔들렸다. 건우는 그 어깨를 사이드미러를 보는 척하면서 봤다. 오 년 동안 부산에서 가끔 이 어깨를 떠올렸다. 웃을 때만 흔들리는 어깨였다.

*

정왕동 상가는 삼 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1층에 분식집과 휴대폰 가게와 문 닫은 부동산이 있었고, 계단 입구 벽에는 대출 전단과 헬스장 전단이 겹겹이 붙었다가 반쯤 찢겨 있었다. 이 층 복도는 형광등 두 개 중 하나가 나가 있었다. 201, 202, 203. 문 세 개가 나란히 있었고, 문마다 회사 이름 스티커가 여러 장 붙어 있었다. 201호에 넷, 202호에 넷, 203호에 셋. 스티커 글씨체가 전부 같았다. 채린이 한 장씩 사진을 찍으며 이름을 불렀다. 대광산업, 대광테크, 에스알정밀, 성원금속. 부를수록 이름이 서로 닮아 갔다.

“열아홉 중에 열한 곳이 여기 있습니다.”

문은 다 잠겨 있었다. 우편함 세 개는 전단과 봉투가 넘쳐서 뚜껑이 안 닫혔다. 채린이 손을 대지 않고 삐져나온 봉투 모서리만 사진으로 찍었다. 남의 우편물은 꺼내면 안 된다고 연수 때 배웠다고 했다. 대신 봉투 창 너머로 보이는 글씨를 확대해 읽었다. 시흥세무서, 대광산업 대표이사 방동식 귀하. 그 아래 봉투에는 에스알정밀 대표이사 방동식 귀하. 같은 이름이 두 번 나오자 채린은 카메라를 내리고 수첩에 그 이름을 적었는데, 볼펜이 종이를 세게 눌러 뒷장까지 자국이 났다. 지환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복도 끝 벽에 붙은 회색 철함 앞으로 가서 걸쇠를 올리자 계량기함이 열렸다. 안에 전기 계량기 세 개가 나란히 달려 있었다. 201, 202, 203. 셋 다 원판이 멈춰 있었다. 숫자 창의 마지막 자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남 회계사, 사진.”

건우는 카메라를 들다가 손을 멈췄다. 오 년 전 3월, 세운정밀 첫 실사 때 이 사람이 똑같이 말했다. 그때 건우는 스물여덟이었고, 남의 회사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것이 무서워 계단참에서 서성였다. 지환이 그 옆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계량기부터 봐라,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전기는 안 쓴 만큼 안 돈다. 건우는 그 말을 부산에서 오 년 동안 썼다. 실사를 나갈 때마다 문보다 계량기를 먼저 찾았고,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누가 가르쳐 준 거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않았다.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조금 떨렸다. 건우는 두 장을 더 찍었다. 지환은 계량기함 문을 닫으면서 건우를 한 번 봤는데, 그 눈이 기억하고 있다는 뜻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

1층 분식집 사장은 예순쯤 된 여자였다. 떡볶이 판을 나무 주걱으로 휘저으면서 셋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 층 사람들 찾아왔냐고 먼저 물었다.

“이 층 사장님들은 떡볶이를 한 번도 안 드셨어. 내가 여기서 팔 년인데, 열한 개 회사 사장이 떡볶이를 한 번도 안 먹는 건물이 어디 있어?”

채린이 떡볶이 삼 인분을 시켰다. 실사 중에 뭘 먹어도 되냐고 건우가 눈으로 묻자, 채린은 이건 탐문이라고 작게 대답했다. 사장은 떡볶이를 담으면서 말을 이었다. 택배가 오면 이 층에 아무도 없으니까 기사들이 자기 가게에 맡기고 간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흰색 차가 와서 그걸 다 가져간다고 했다. 여자 하나가 내리는데, 늘 같은 베이지색 코트에 말을 아주 빨리 한다고 했다. 고맙다는 말도 빨리 해서 고맙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채린과 건우가 동시에 서로를 봤다. 시흥 킥오프 날 일정표를 빠르게 읽던 목소리가 둘 다 떠올랐다. 지환은 떡볶이를 한 개 집어 먹고 맵다고 했다. 그게 그날 지환이 한 말 중에 제일 사람 같은 말이었다. 사장은 그 말을 칭찬으로 들었는지 어묵 국물을 한 국자씩 더 부어 주면서, 이 층 사장님들한테 전해 달라고 했다. 가게 앞 계단 좀 한 번씩 쓸고 다니라고.

*

검은 세단이 상가 앞에 선 것은 열한 시 조금 넘어서였다. 건우는 떡볶이 그릇을 내려놓기 전에 번호판부터 봤는데, 형의 차였다. 누가 알렸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 실사 일정은 어제 오후 세운정밀 재무팀에 통보됐다.

남건혁은 분식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단 입구에 서서 손가락 하나로 건우를 불렀다. 건우가 나가자 형은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까지 앞서 걸었다. 반쯤 나간 형광등이 형의 얼굴 위에서 깜박였다. 형은 계단 난간에 팔꿈치를 걸치고, 불이 들어올 때마다 웃는 얼굴이 됐다가 꺼질 때마다 무표정이 됐다. 좁은 계단참에 형의 향수 냄새가 먼지 냄새를 밀어내며 퍼졌다. 삼나무 같기도 하고 가죽 같기도 한, 비싼 냄새였다. 아버지 병실에서도 형이 다녀간 날이면 그 냄새가 소독약 위에 한동안 떠 있었다.

“막내야, 여기까지 와서 떡볶이는 왜 먹어?”

“실사 중입니다, 대표님.”

“대표님이라, 그렇게 부르니까 말이 편하네. 그러니까 빠져. 부산 지점장한테 내가 전화 한 통 하면 파견 취소야. 이번 주 안에 끝나. 그리고 재무이사 자리 하나 비워 뒀다. 네 연봉 세 배는 될 거다. 아버지 지분도 네 몫 정리해 주마. 네 어머니 사시는 집, 아직 아버지 명의인 거 알지?”

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난간을 쥔 손바닥에 계단 먼지가 까슬하게 묻어났다. 형은 대답이 없는 걸 좋아했다. 오 년 전 병원 복도에서도 그랬다.

“너희 매니저님, 오 년 전엔 이름만 뺐지. 이번엔 자리까지 빼 줄까? 나 도담 대표님이랑 골프 친다.”

그 순간 건우는 그 말을 들었다. 형의 말이 아니라 오 년 전 제 머릿속에서 울리던 말이었다. 대답 안 하면 뺀다는 뜻이다. 그걸 몰랐던 스물여덟의 아침이 난간 먼지처럼 손바닥에 묻어 있었다. 목구멍 안쪽이 부풀어 올라 숨이 한 번 걸렸다.

“안 빠집니다.”

형광등이 다시 켜지자 형이 웃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했니?”

“안 빠집니다, 형. 재무이사 자리는 형이 앉으세요. 대표랑 겸직도 되잖아요.”

남건혁은 웃는 얼굴 그대로 난간에서 팔꿈치를 뗐다. 그리고 건우의 셔츠 깃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 반듯하게 펴 주었다. 오래된 형처럼, 아주 다정하게.

“아버지가 너 참 좋아하셨지. 그 이름 쓸 데가 아직 많다.”

형은 계단을 내려갔고, 세단 문이 닫히는 소리가 계단참까지 올라왔다. 건우는 셔츠 깃을 도로 구겼다.

*

돌아오는 방조제에서 건우는 속도를 줄였다. 바다 쪽 하늘이 조금 개어서 물 위에 빛이 가늘게 깔려 있었다. 뒷자리의 채린은 멀미를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다. 무릎 위 카메라에 계량기 사진 열두 장이 들어 있었다.

“형이 재무이사 자리를 준답니다.”

“재무이사면 연봉이 얼마랍니까?”

“매니저님 연봉 세 배랍니다.”

“그러면 저는 안 되겠네요. 세 배를 받으면 매일 떡볶이를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건우는 웃지 않으려다가 결국 웃었다. 웃음이 끝날 때쯤 거치대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부산 지점장이었다. 운전 중이라 스피커로 받았다. 본사 쪽에서 파견 조기 종료 이야기가 나왔다고,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2월 말 복귀를 검토하라고. 지점장은 미안하다는 말을 두 번 하고 끊었다.

차 안이 조용해졌다. 바퀴가 방조제 이음새를 넘을 때마다 툭, 툭 하고 일정하게 울렸다.

“매니저님, 열아홉 중에 열한 곳입니다.”

“압니다, 이제 여덟 곳 남았습니다.”

“2월 말까지 여덟입니다.”

지환이 창밖에서 눈을 떼고 건우를 봤다. 이번에는 사이드미러를 보는 척할 필요가 없었다. 건우는 앞만 보고 운전했고, 조수석의 시선이 제 옆얼굴에 오래 머무는 것을 귀 끝으로 느꼈다. 귀 끝이 조금 뜨거웠다.

*

그날 밤 열한 시, 건우는 이십팔 층 비상계단에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상계단은 난방이 안 들어와서 콘크리트 벽에서 냉기가 스며 나왔고, 한 층 아래 어디선가 누군가 피우다 만 담배 냄새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건우는 계단 셋째 단에 앉아 무릎에 팔을 얹었다. 어머니는 신호가 두 번 가기도 전에 받았다.

“건우야, 오늘 형이 다녀갔다.”

“엄마 집에요?”

“과일 바구니를 들고 왔더라. 아버지 병원비 얘기를 하다가, 이 집 명의 얘기를 하다가, 너 요즘 바쁘냐고 묻더라. 내가 바쁘다고 했는데 잘했지?”

건우는 대답 대신 이마를 무릎에 댔다. 어머니가 사는 안산 집은 아버지가 재혼하던 해에 산 집이었고, 등기부에는 아직 남정호라는 이름 하나만 올라 있었다. 형은 그걸 안다. 그리고 그걸 안다는 걸 어머니한테 과일 바구니로 알려 주고 갔다.

“엄마, 형이 뭐라고 하든 아무것도 사인하지 마세요.”

“내가 뭘 사인을 해. 나는 네 아버지 이름 옆에 내 이름 한 번 써 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수화기 너머에서 웃었다. 건우는 따라 웃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도 한참 계단에 앉아 있었는데, 위층 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두 칸 내려오다 멈췄다. 내려다보는 사람은 지환이었고, 손에 편의점 봉지를 들고 있었다. 봉지 안에 캔커피 두 개가 부딪치는 소리가 계단에 울렸다. 지환은 더 내려오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계단 두 칸이 비어 있었다. 지환이 캔 하나를 아래로 굴렸고, 캔은 한 칸을 굴러 건우의 신발 앞에서 멈췄다.

“떡볶이 값은 오 수습이 법인 카드로 긁었습니다, 탐문비로요.”

“그게 비용 처리가 됩니까?”

“내일 경리팀이 알려 주겠죠.”

건우가 캔을 따자 손바닥에 온기가 번졌다. 둘은 계단 두 칸을 사이에 두고 캔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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