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18자) · 3663일차

창 다섯

관측자 K의 일지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3663일차. 오월 이십육일 화요일. 맑음. 실내 23도.

A창: 06:48 열림 B창: 06:40 열림 C창: 닫힘(병원)

그날 밤 두 시에 불이 켜져 있었던 창을 세는 법을 나는 모른다. 내 창은 나동 사 층만 본다. 그래서 오늘은 창 대신 사람을 보러 나가기로 했다. 창은 방향이 하나지만 사람은 돌아볼 수 있다.

09:00. 계단. 셋째 외출. 서른두 단. 오늘은 세지 않았다. 세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것이 스물몇째 단이었다. 몇째였는지는 모른다. 모르는 채로 내려갔다. 공동 현관 유리문은 이번에 한 번에 밀었다. 밖은 여전히 테두리가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어디를 봐야 할지 알았다. 사람을 본다.

한수연이 공동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손에 수첩. 첫 장에 연필로 표가 그려져 있었다. 가로에 가동과 나동, 세로에 층. 칸마다 호수. 스물네 칸. 그 가운데 가동 삼 층 가운데에 동그라미 하나, 나동 사 층 가운데에 동그라미 하나.

“아저씨 창하고 제 창이요. 둘. 나머지를 채울 거예요.”

“십 년 전에 살던 사람이 지금도 사는 집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찾아야죠. 이사 가기 전에.”

첫 집은 A창이었다. 나동 사 층 왼쪽. 권 영감님.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한수연이 앞섰고 나는 뒤따랐다. 나동 계단은 가동과 같은 서른두 단이었다. 같은 해에 같은 사람이 지은 건물이다. 사 층 복도 끝에서 개가 짖었다. 경위였다. 문이 열리기 전부터 짖었다.

“경위야, 조용. 손님이여.”

영감님은 러닝셔츠 차림으로 문을 열었다. 우리 둘을 보고 셔츠를 한 번 잡아당겼다. 방 안에서 된장 끓는 냄새가 났다. 벽에 달력이 두 개 걸려 있었다. 올해 것과 십 년 전 것. 십 년 전 달력에는 개 사진이 있었다. 누렁이. 이름이 달력 사진 아래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순경.

“전에 키우던 놈이오. 이름이 순경. 이놈은 경위고. 한 계급 올려 줬지.”

영감님이 웃었다. 한수연도 웃었다. 나는 웃음을 참았다. 참는 데 실패했다. 경위가 내 운동화 끈을 또 핥았다.

영감님은 우리를 방에 들이지 않았다. 문간에서 이야기했다. 한수연이 물었다. 십 년 전 오월 열엿새 새벽 두 시에 개가 짖었다고 하셨죠. 영감님의 얼굴이 굳었다. 그 사람은 한참 동안 개 머리만 쓰다듬었다.

“내가 이 집 전세요. 오씨네 집. 이십이 년째. 그 영감 살았을 땐 전세금 한 번도 안 올렸어. 착한 영감이었지. 아들이 문제지.”

“그날 밤 창밖을 보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영감님이 나를 봤다. 창가에 매일 앉아 있던 양반. 그 얼굴이었다.

“순경이가 하도 짖어서 창을 열었지. 내 창에서는 화단이 바로 밑이오. 흰 차가 서 있었고, 그 집 아들이 뭘 들고 나왔어. 둘둘 만 거. 무거워 보였어. 내가 불을 켜니까 그놈이 올려다봤어. 나를. 그러고는 손을 흔들더라고. 영감님 주무세요, 하고.”

영감님은 개 머리에서 손을 뗐다.

“다음 주에 경찰이 왔었소. 순경 하나가. 그 순경이 나한테는 안 물었어. 오 영감한테만 갔다 갔지. 나는 안 물으니까 말 안 했어. 물었으면 말했을까? 모르지. 전세 사는 사람이.”

“지금은 물어도 됩니까?”

영감님은 나를 봤다. 오래 봤다. 이십이 년 치 전세금이 그 눈 안에 있었다.

“당신은 십 년 동안 창에 앉아 있었지.”

“예.”

“나는 십 년 동안 모른 척했고.”

“예.”

“어느 쪽이 더 나빴을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영감님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연필 한 자루를 들고 나왔다. 한수연의 수첩을 달라고 했다. 나동 사 층 왼쪽 칸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연필을 세게 눌러서, 종이가 조금 찢어졌다.

09:40. 나동 401. 권 영감. 그날 밤 02시경 창 개방. 화단, 흰 차, 둘둘 만 것, 남자가 손 흔듦. 창 셋.

10:10. 나동 앞. 계단을 내려오자 공동 현관 앞에 남자가 서 있었다. 쉰 후반. 체크무늬 반팔 셔츠, 목에 선거 운동원 띠. 기호 이 번 오태민. 손에 명함 뭉치. 솔뫼동 통장 박 씨. 나는 그 얼굴을 통장 게시판 옆에서 십 년 동안 봤다. 게시판은 안 보여도 게시판 앞에 서는 사람은 보였다.

“어이구, 가동 가운데 집 선생님. 요새 자주 나오신다더니.”

“누가 그러셨습니까?”

“동네가 다 그러죠. 십 년 동안 안 보이던 분이 화단에 서 계시니까.”

통장은 웃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통장은 명함을 한수연에게 내밀었다. 한수연도 받지 않았다. 통장은 명함을 셔츠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권 영감님 뵈러 오셨어요? 영감님 연세가 있으셔서 기억이 좀 왔다 갔다 하세요. 전세 재계약이 칠월인데 신경을 많이 쓰시더라고요.”

한수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지금 그거 협박이에요?”

“협박이라니, 아가씨. 동네 사정 말씀드리는 거지.”

“동네 사정이 이 층 할머니한테도, 편의점에도 가요?”

통장의 웃음이 조금 얇아졌다.

“아가씨, 우리 동네 사람들 다 오씨네 집에 세 살아요. 이 골목 건물 여섯 채가 다 그 집 거였어요. 오 후보가 당선되면 이 골목 재개발 들어가요. 다들 보상받아요. 그걸 십 년 전 일로, 가출한 아가씨 일로.”

“우리 언니 가출 안 했어요.”

“그건 경찰이 정할 일이고요.”

나는 통장을 봤다. 통장은 한수연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발을 봤다. 오른발이 조금 뒤에 있었다. 김태식 반장과 같은 자세였다. 문이 열리면 비스듬히 트는 자세.

“통장님은 그날 밤 어디 계셨습니까?”

통장이 나를 봤다.

“뭐요?”

“십 년 전 오월 열엿새 새벽 두 시. 통장님 댁은 가동 일 층 오른쪽입니다. 제 창에서는 안 보입니다. 그래서 여쭙니다.”

통장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리고 웃었다. 웃음이 전혀 얇지 않았다. 두꺼웠다.

“선생님, 저는 그 시간에 잡니다. 선생님처럼 밤새 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이상한 거예요. 동네 사람들 다 그렇게 생각해요. 가운데 집 아저씨 이상하다고. 그런 사람 말을 누가 믿어요.”

그 사람은 명함 뭉치로 자기 손바닥을 두 번 쳤다. 탁, 탁. 그러고는 골목 끝 선거 사무소 쪽으로 걸어갔다.

10:10~10:18. 나동 앞. 박 통장(운동원). 권 영감 재계약 언급. 가운데 집 아저씨 이상하다. 동네 사람들 생각. 본인 진술.

11:00. 편의점. 골목 입구. 이 편의점은 이십사 시간이다. 십 년 전에도 그랬다. 내 창에서는 간판의 절반만 보인다. 계산대에 서른쯤 된 남자가 있었다. 한수연이 물었다. 십 년 전에도 여기 계셨어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말했다. 아버지 가게라서 고등학교 때 야간 알바를 했다고. 그해 봄에.

그 사람은 기억했다. 새벽에 오는 손님은 적어서 다 기억한다고 했다. 그날 새벽 세 시 조금 안 돼서 건물주 집 아들이 왔다고. 고무장갑 두 켤레, 락스 두 통, 큰 쓰레기봉투. 현금으로. 거스름돈을 안 받고 나갔다고. 그래서 기억한다고. 열여덟 살한테 거스름돈 안 받고 나가는 어른은 처음이었다고.

CCTV는 없었냐고 한수연이 물었다. 있었는데 한 달이면 덮어쓴다고 했다. 그 사람은 말하다가 창밖을 봤다. 골목 끝 선거 사무소를. 박 통장이 그 앞에서 누군가와 악수하고 있었다. 계산대 뒤 창고 문이 열리고 예순쯤 된 남자가 박스를 안고 나왔다. 앞치마에 편의점 이름. 아버지였다. 그 사람은 우리 이야기를 창고 안에서 다 들은 얼굴이었다.

“재민아.”

“네.”

“그려 드려.”

“아빠, 통장님이.”

“통장이 우리 가게 월세 내 주냐.”

아버지는 박스를 내려놓고 도로 창고로 들어갔다. 문을 닫지 않았다. 그 사람은 한수연의 수첩을 보고 표를 이해했다. 표 바깥에, 골목 입구 자리에 네모를 하나 그리고 동그라미를 쳤다.

11:00. 편의점. 당시 야간 알바. 03시 전 고무장갑·락스·봉투. 현금. 거스름돈 안 받음. 창 넷.

편의점을 나서다가 재민 씨가 우리를 불렀다. 계산대 밑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해 봄 계산대 옆에 붙여 두었던 실종자 전단이었다. 한 번 붙고 다시 안 붙은 그 전단. 떼어서 버리지 못하고 계산대 서랍에 십 년 넣어 두었다고 했다. 모서리가 테이프 자국으로 누렇게 떠 있었다. 한수연은 그것을 받아서 한참 봤다. 전단 속 언니는 사진 속 언니보다 어렸다. 증명사진이었다. 웃지 않았다.

13:00. 가동 계단 이 층 참. 한수연이 사 온 김밥을 먹었다. 김밥을 남이 사 온 것은 십 년 만이다. 한수연은 김밥을 먹다가 내 머리를 봤다. 십 년 동안 거울 앞에서 가위로 자른 머리였다. 뒤쪽이 층이 져 있었다. 뒤쪽은 거울에 안 보이니까.

“아저씨, 머리 뒤에 계단 있어요.”

“뒤는 안 보입니다.”

“우리 언니가 봤으면 난리 났어요. 손님 뒷머리 이렇게 해서 내보냈으면 원장님이 가위 뺏었을걸요.”

그 사람은 웃다가 말았다. 언니, 하고 입 안으로 한 번 더 불렀다. 나는 김밥을 씹었다. 단무지가 달았다. 한수연과 앉아서 수첩을 봤다. 동그라미 넷. 가동 삼 층 가운데, 나동 사 층 가운데, 나동 사 층 왼쪽, 골목 입구. 한수연이 연필로 나동 사 층 오른쪽 칸을 톡톡 쳤다. C창. 서주안 씨. 사 년 전에 온 사람이라 그날 밤은 못 봤다.

“그래도 그려요.”

“그날 밤을 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봐요. 아저씨하고 저하고 같이. 그러면 창이에요.”

한수연이 C창 칸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다섯.

창 다섯.

17:20. 창. 나동 벽. 사 층 아래. 오태민의 현수막 옆에 흰 천 하나가 새로 걸렸다. 마 씨가 사다리에 올라가 끈을 묶었다. 글씨가 굵었다.

나동 화단 정비 공사. 6월 1일(월) ~ 6월 5일(금).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마 씨는 끈을 다 묶고 사다리에서 내려와 화단을 한 바퀴 돌았다. 회양목 하나하나를 발로 툭툭 찼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가동 삼 층 가운데를 봤다. 나는 커튼을 닫지 않았다.

6월 1일. 선거 이틀 전. 공사가 끝나는 날은 선거 이틀 뒤. 나는 그 줄을 일지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화단을 봤다. 회양목 여섯 그루. 한 뼘도 안 되는 흙. 그 밑의 20센티미터.

17:20. 나동 화단 정비 공사 안내 게시. 6월 1일~5일. 남은 날 엿새.

5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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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책상2026.05.11· 5화

    이 작가님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중입니다.

    • 겨울차2026.05.12

      저는 오히려 그 앞 문단이 더 좋았어요.

창 다섯 · 관측자 K의 일지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