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234자) · 3660일차

죽

관측자 K의 일지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3660일차. 오월 이십삼일 토요일. 갬. 실내 22도.

A창: 06:49 열림 B창: 06:40 열림 C창: 07:55 열림

09:12. C창에서 종이비행기. 사 층에서 떨어지면서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한수연의 것보다 날개가 넓었다. 접는 방식이 표준형이 아니다. 앞코를 두 번 접어 무겁게 만든 것. 멀리 날리려고 접은 비행기였다. 비행기는 화단을 넘었다. 나동과 가동 사이 골목을 넘었다. 가동 공동 현관 앞 보도블록에 떨어졌다. 십칠 미터. 한수연의 것보다 삼 미터 더 왔다.

C창 여자가 창틀에서 두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이십이 미터에서 그 동작은 틀림없이 만세였다.

나는 내려갔다. 이번에는 끈을 한 번에 맸다. 서른두 단을 세지 않으려고 했고, 열두째 단까지 세지 않았다. 열셋째 단에서 셌다는 것을 알았다. 공동 현관 앞 보도블록 위에서 비행기를 주웠다. 폈다. 매직으로 큰 글씨였다.

사 년 이 개월 동안 저 봤죠. 저도 봤어요. 아저씨 창 불 켜지는 거. 그리고 죽 끓일 줄 알아요?

나는 그 종이를 보도블록 위에서 세 번 읽었다. 세 번째에 끝줄이 이해되지 않았다. 네 번째에도.

09:20. C창 비행기 회수. 가동 앞 보도. 십칠 미터. 내용 세 줄. 셋째 줄 판단 불가.

11:00. 노크. 두 번, 짧고 세게. 한수연은 노크를 하지 않는다. 이 노크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사슬을 건 채 문을 한 뼘 열었다. 흰 반창고를 붙인 손목이 먼저 들어왔다. 손에 비닐봉지. 봉지 안에 쌀 한 봉지와 참기름 한 병.

“서주안이요. C창.”

여자는 한 뼘 틈으로 봉지를 밀어 넣으려다 사슬에 걸렸다.

“이거 좀 풀어 주시면 안 돼요? 쌀이 안 들어가요.”

“쌀을 왜 가지고 오셨습니까?”

“죽 끓여 달라고요. 비행기에 썼잖아요. 제가 투석하거든요. 병원 다녀오면 아무것도 못 먹어요. 죽은 먹어요. 근데 제가 끓이면 밑이 다 타요. 혼자 사는 사람 죽은 원래 다 타요.”

“저도 혼자 삽니다.”

“아저씨는 안 태울 것 같아요. 사 년 이 개월 봤는데 뭘 태우는 사람 같지 않았어요.”

나는 쌀 봉지를 봤다. 오 킬로그램. 투석하는 사람이 오 킬로그램을 들고 가동 삼 층까지 서른두 단을 올라왔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나는 사슬을 풀었다. 가스 점검 말고는 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서주안 씨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나는 쌀을 씻었다. 죽은 어렵지 않다. 쌀을 불리고, 참기름에 볶고, 물을 붓고, 약불에 올리고, 젓는다. 중요한 것은 젓는 일이다. 젓지 않으면 밑이 탄다. 밑이 타면 위쪽은 멀쩡해도 전부 탄 맛이 난다. 섬에서 십일 년 동안 혼자 끓여 먹은 죽이다. 태운 적이 없다. 태우면 다음 날 먹을 것이 없었으니까.

“계속 젓고 계신 거예요?”

“예.”

“몇 분째요?”

“십일 분입니다.”

“역시.”

“무엇이 역시입니까?”

“아저씨는 다 세시잖아요.”

서주안 씨는 식탁에 팔을 괴고 내 창을 봤다. 안쪽에서 보는 내 창. 창 옆에 세워 둔 사진을 봤다. 오래 봤다.

“B창 언니 언니예요?”

“예.”

“그날 밤 일 저 알아요. 이 동네 오래 산 사람은 다 알아요. 말만 안 하지. 저는 사 년밖에 안 돼서 소문으로만 알고.”

그 사람은 사진에서 눈을 떼고 나를 봤다.

“아저씨는 소문 말고 본 거죠.”

“예.”

죽이 끓기 시작했다. 거품이 올라왔다. 불을 줄였다. 나는 등을 돌린 채 젓고 서주안 씨는 내 등에 대고 말했다.

“저 투석 밤에도 해요. 병원 안 가는 날은 집에서 복막 투석. 밤새 기계가 돌아요. 누워서 창밖 보는 것밖에 할 게 없어요. 사 년 전에 이사 왔을 때 제일 먼저 본 게 건너편 불 켜진 창이었어요. 새벽 세 시에도 켜져 있고 네 시에도 켜져 있고. 저는 그 창이 무슨 야간 경비실인 줄 알았어요.”

나는 젓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알았어요. 사람이 앉아 있는 거. 밤새. 매일. 그다음부터 저 투석 밤에 그 창 보면서 버텼어요. 저기 누가 아직 안 자고 있다. 나도 아직 안 죽었다. 입원해서 사십 일 못 왔을 때 제일 궁금했던 게 뭔지 아세요? 저 창 아직 켜져 있나.”

국자가 냄비 바닥을 긁었다. 이십사 분이었다. 나는 불을 껐다. 돌아서지 않았다. 돌아서면 얼굴을 보여야 했다. 나는 십 년 동안 창을 봤다. 누가 내 창을 보고 밤을 버텼다는 것은 한 번도 계산에 넣지 않았다. 관측원은 관측되지 않는다. 관측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밤을 붙잡고 있을 수 있다는 항목은 규정에 없었다.

“다 됐습니다.”

나는 그릇 두 개에 죽을 펐다. 서주안 씨는 두 그릇을 먹었다. 두 번째 그릇을 반쯤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또 끓여 주실 거죠?”

“또.”

“네. 또요.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나는 삼 초 있다가 대답했다. 서주안 씨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삼 초 셌어요.”

“끓이겠습니다.”

3660일차 11:00~12:40. 방문 1. C창 서주안. 쌀 오 킬로그램. 죽 이십사 분. 두 그릇. 「또」라는 말은 다음이 있다.

3661일차. 일요일. 맑음.

A창: 06:50 열림 B창: 06:40 열림 C창: 09:10 열림

15:30. 초인종. 한 번, 길게. 이 초인종은 셋 중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사슬을 걸고 한 뼘 열었다.

남자였다. 쉰 초반. 짧은 머리, 검은 반팔 셔츠, 허리에 휴대폰 두 개. 경찰이다. 이십이 미터에서도 알았을 것이다. 서는 자세가 그랬다. 한 발을 조금 뒤에 두고, 문이 열리면 몸을 비스듬히 트는 자세.

“솔뫼서 강력팀 김태식입니다. 잠깐 말씀 좀.”

“용건을 말씀하십시오.”

그 사람은 사슬을 봤다. 웃었다.

“십 년 전에 파출소로 종이 한 장 보내신 분 맞으시죠. 1일차 02:10.”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수연 씨가 재수사 요청을 냈어요. 사건 기록 뒤에 붙은 그 종이를 근거로. 그래서 제가 확인차 왔습니다. 보낸 사람이 누군지는 기록에 없는데, 한수연 씨가 이 창을 짚더라고요.”

그 사람은 고개를 돌려 복도 창 너머 나동을 봤다. 그러고는 나를 봤다.

“십 년 전에 제가 솔뫼파출소 순경이었어요. 그 종이 제가 받았어요.”

나는 사슬을 봤다. 일곱 고리.

“받으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확인했죠. 건물주 댁에 가서 402호 세입자 연락되느냐, 이런 제보가 들어왔다. 오 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 아가씨 월세 석 달 밀리고 짐 싸서 나갔다고. 그 아들이 짐 빼 주는 거 도와줬다고. 카펫은 버린 거라고.”

“그걸 누구에게 보여 주셨습니까? 그 종이.”

김태식 반장이 입을 다물었다. 이 초. 나는 셌다.

“오 사장님이 보자고 해서 보여 드렸죠. 누가 이런 걸 보냈는지 아시냐고.”

4일차 23:40. 초인종. 아저씨 창이 참 좋네요.

“사흘 뒤에 오태민이 제 문 앞에 왔습니다.”

반장의 얼굴에서 무엇인가가 한 번 움직였다가 멈췄다. 그는 그것을 누르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건 제가 모르는 일이고요. 선생님, 제가 오늘 온 건 이겁니다. 재수사 요청은 요건 검토를 해야 돼요. 십 년 된 실종이고 당시 가출로 종결됐고, 새 증거가 있어야 해요. 선생님 일지가 있다면 그게 증거가 될지 안 될지 제가 봐야 하고요. 가지고 계신 거 다 주시면 제가 검토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사슬 틈으로. 손바닥이 위로.

나는 그 손을 봤다. 십 년 전 1일차 한 장을 받은 손이었다. 그 손에서 오씨 집으로 간 종이였다.

“드릴 수 없습니다.”

“선생님.”

“반장님께는 드릴 수 없습니다.”

김태식 반장은 손을 거두었다. 천천히. 웃음이 남아 있었는데 눈에는 없었다.

“선생님, 지금 선거철이에요. 동네가 예민합니다. 십 년 전 일 가지고 창문 여닫고 종이비행기 날리고 하시면 선생님만 곤란해지세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죠.”

“압니다.”

“그럼.”

그 사람은 계단을 내려갔다. 서른두 단. 공동 현관 문이 닫히는 소리. 나는 창으로 갔다. 김태식 반장은 골목에서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사십 초.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나동 사 층 현수막을 봤다. 웃는 얼굴 세로 이 미터를. 그다음 이쪽을 봤다. 내 창을.

3661일차 15:30~15:41. 방문 1. 솔뫼서 강력팀 김태식 반장. 10년 전 순경. 1일차 복사본 수령자. 오씨 집에 보여 줌. 본인 진술. 15:44. 골목에서 통화 40초.

나는 그 줄을 쓰고 공책을 덮었다. 창 옆 사진 속 사람은 여전히 창을 등지고 웃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서주안 씨가 두고 간 참기름 병이 있었다. 반쯤 남은. 뚜껑이 조금 샜다. 방 안에 고소한 냄새가 났다. 십 년 동안 이 방에는 종이와 먼지 냄새뿐이었다.

3662일차. 월요일. 흐림.

A창: 06:51 열림 B창: 06:40 열림 C창: 닫힘(병원)

14:00. 서른두 단. 이 층 참에서 멈추지 않는 발소리. 한수연. 사슬, 한 뼘, 의자.

나는 어제 일을 말했다. 김태식. 십 년 전 순경. 그 종이를 오 사장에게 보여 준 사람. 한수연은 끝까지 듣고 나서 벽에 기댔던 등을 뗐다.

“제가 재수사 요청하면서 그 사람 이름을 담당자 칸에서 봤어요. 김태식 반장. 그 사람이 그때 순경이었다는 건 몰랐어요.”

“몰랐으니 요청하셨겠지요.”

“알았으면요?”

“알았어도 하셨을 겁니다.”

그 사람이 나를 봤다. 사슬 너머로, 얼굴의 반으로.

“아저씨. 그 사람한테는 안 준다고 하셨죠. 그럼 누구한테 주실 건데요. 저한테도 안 주시고, 경찰한테도 안 주시고. 그 일지 스물여덟 권, 그 방에서 아저씨랑 같이 늙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맞았다. 십 년 동안 일지는 이 방에서 나와 같이 늙었다. 첫 권 표지는 누레졌다. 볼펜 잉크는 번졌다. 1일차 02:14의 4는 이제 복사본보다 원본이 더 흐리다.

“한 사람 말로는 안 됩니다.”

내가 말했다.

“제가 본 것은 창 하나에서 본 것입니다. 창 하나는 한 방향만 봅니다. 김태식 반장은 그걸 알고 있습니다. 한 창에서 본 것은 한 사람의 착각이 됩니다. 십 년 전에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창이 더 있으면요.”

한수연이 복도 창 너머를 가리켰다. 나동. 사 층만이 아니라 삼 층, 이 층, 일 층. 가동의 다른 집들. 골목의 편의점. 그 밤 두 시에 불이 켜져 있었을지 모르는 모든 창.

나는 그 창들을 십 년 동안 한 번도 세어 보지 않았다. 내 창에서는 사 층만 보였으니까.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으로 쳤다.

3662일차 14:00~15:50. 한수연. 김태식 건 전달. 그날 밤 불 켜진 창이 셋만은 아니었을 수 있음. 이 항목은 추정이다. 지우지 않는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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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곱줄2026.05.10· 4화

    설정이 과하지 않게 깔려서 편하게 따라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