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12자) · 보일러 점검

열여덟 번째

정오의 방송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석 경위는 토요일 오후 한 시 반에 유치장 문을 열었다. 서류에는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 조사는 계속이라고 적혔다. 경찰서 현관 계단에서 그가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한겸 씨. 저 오늘 제 선배한테 전화 한 통 받을 거예요. 전무님 친한 선배. 왜 풀어 줬냐고. 저는 순경이 녹음한 이 분 십오 초 때문이라고 할 거예요. 사람 목소리였다고.”

“그 사람 이름은 안 물으십니까?”

“안 물어요. 대신 그 사람이 스스로 오게 해 주세요. 제가 가서 잡는 거하고 그 사람이 걸어오는 거하고는 법정에서 무게가 달라요.”

그는 계단을 내려가다 돌아봤다.

“그리고 정오 씨 병실. 오늘 저녁엔 제가 가 볼게요. 누가 먼저 올지 몰라서.”

정오는 병실 침대 등받이를 세우고 앉아 있었다. 창가 쪽 침대였다. 어물전 할매의 라디오가 협탁 위에서 쉬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간호사가 끄려다가 그냥 둔 모양이었다. 얼굴의 붉은 기는 빠져 있었다. 대신 하얬다. 입술이 텄다. 그가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은 이랬다.

“한겸 씨, 방송 들었어요? 오늘 정오.”

“유치장에서요. 순경이 틀어 줬어요.”

“저는 못 들었어요. 간호사님이 라디오를 틀어 줬는데 쉬 소리만 났어요.”

정오는 자기 귀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들리느냐고 묻던 손짓.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일주일 누워 있었는데 칠에서 끊기던 게 이제 아예 안 들려요. 일산화탄소가 귀에도 간대요. 방파제에서 한 번에 삼 년 치를 먹었나 봐요. 저 이제 하평 사람 됐어요. 정식으로.”

그는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지수가 편의점 봉투를 침대 위에 놓았다. 요구르트 다섯 개짜리, 그 밑에 녹음기. 정오는 요구르트를 옆으로 밀고 녹음기를 두 손으로 들었다. 가는 글씨의 이름표. 서정동 원룸, 내 방.

“형 거예요.”

“고쳤어요. 파일이 하나 있어요. 작년 십일월 이십일 일. 네 시간 십이 분. 중간 삼 분이 깨져 있어요.”

“그 삼 분 살릴 수 있어요?”

“제 장비는 전파관리소에 있어요.”

병실 문이 열렸다. 윤미였다. 흰 가운 대신 청바지에 점퍼. 사원증 목걸이가 없었다. 손에 노트북 가방. 얼굴이 부어 있었다. 눈 밑이 더 검어져 있었다. 울어서가 아니라 잠을 못 자서.

“어제 해고됐어요. 청력계 기판 번호로. 사택은 다음 달 말까지 비우래요.”

그녀는 노트북을 침대 식판 위에 펼쳤다.

“음성 복원은 제가 할 수 있어요. 정현 씨가 합성 음성 만들 때 쓰던 프로그램이 있어요. 깨진 구간에서 사람 목소리만 건지는 거. 정현 씨가 저한테 가르쳐 줬어요.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정오가 윤미를 봤다. 한참.

“오늘 정오에 방송한 사람, 당신이죠.”

“네. 정현 씨가 만든 예비 송신기가 제 차 트렁크에 있었어요. 주차장에서 켰어요. 제 목소리로. 합성 음성 프로그램은 회사 서버에 있어서 못 썼어요.”

“형이 죽고 열 달 동안 숫자를 넣은 것도.”

“네.”

“형 죽인 사람들 숫자를.”

윤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오의 손이 녹음기를 쥔 채로 하얘졌다.

“당신이 그 모델 안 만들었으면 형은 그 숫자를 몰랐을 거고, 방송도 안 했을 거고, 안 죽었을 거예요.”

“알아요.”

“알면 왜 이제 와요.”

“어제 사택 이단지에 아홉 살 여자애가 죽었어요. 백혈병. 우리 딸 옆 반 애예요. 제 모델에는 그 애 칸이 없어요. 회사가 빼라고 해서 뺐어요. 그 애는 숫자에도 안 들어가고 죽었어요. 형님처럼요.”

병실이 조용했다. 복도에서 링거 걸이 바퀴 소리가 천천히 지나갔다. 정오가 녹음기를 윤미 쪽으로 내밀었다. 손이 떨렸다.

“살려요. 그 삼 분.”

복원은 사십 분 걸렸다. 병실 창밖으로 해가 기울었다. 굴뚝 여섯 개의 그림자가 의료원 주차장까지 길게 누웠다. 윤미가 노트북 화면에 깨진 구간을 띄우고, 사람 목소리 대역만 남기고, 잡음을 한 겹씩 걷어 냈다. 나는 옆에서 필터 값을 불러 주었다. 삼천 헤르츠 아래를 깎지 말라고. 이번에는 모음이 필요하다고. 지수는 병실 문 앞에 서서 복도를 봤다. 장씨가 보내 준 절편을 한 점씩 입에 넣으면서.

사십 분 뒤, 윤미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초인종. 발소리. 정현의 목소리.

“누구세요.”

문이 열리는 소리. 낮고 평평한 목소리.

“보일러 점검 나왔습니다. 관리 재단에서요. 겨울 오기 전에.”

“이 시간에요?”

“민원이 많아서요. 금방 끝납니다.”

보일러실 쪽으로 가는 발소리. 공구 가방 내려놓는 소리. 쇠붙이끼리 부딪치는 소리. 스패너가 너트를 무는 소리. 한 번, 두 번, 세 번. 너트가 풀리는 쪽으로.

그리고 그 목소리가 전화를 걸었다. 보일러실 안에서, 작게. 복원된 소리는 얇았지만 말은 다 들렸다.

“전무님. 네, 지금 들어와 있습니다. 네. 보일러요. 겨울이니까요. 방송 장비는 안 보이는데요. 노트북만. 네, 들고 나가겠습니다.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발소리가 방으로 돌아왔다. 정현의 목소리.

“다 됐어요?”

“네. 따뜻하게 주무세요.”

문 닫히는 소리. 그다음 한 시간 동안 보일러 도는 소리. 키보드 소리가 점점 느려졌다. 의자가 한 번 삐걱거렸다. 그리고 아주 가까이서, 녹음기 바로 앞에서, 정현의 목소리가 작게 났다. 녹음기를 집어 든 사람의 목소리였다. 숨이 가빴다.

“오야. 머리가 아파. 토요일 정오에 들어. 네가 들어. 형 말고 네가.”

정오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병실 침대가 흔들렸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윤미가 재생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안 되는 소리였다. 그 뒤로 세 시간 동안 보일러 소리만 났다.

한참 뒤에 정오가 얼굴에서 손을 뗐다.

“오야는 형만 불렀어요. 어릴 때 제가 오, 오 하고 울어서. 정오라는 이름도 형이 지어 달라고 엄마한테 떼썼대요. 열두 시에 태어났다고. 형은 이 년 동안 토요일마다 저한테 전화했어요. 오야, 들려? 들려. 그 두 마디 하려고. 저는 그게 귀찮았어요. 택배 한창일 때라.”

그는 녹음기를 가슴에서 떼어 무릎에 올려놓았다.

“형이 마지막에 네가 들어라고 했는데, 저 이제 못 들어요.”

지수가 문간에서 돌아서서 말했다.

“아저씨. 제가 들을게요. 제가 삼 년 이 개월이니까 아직 조금은. 제가 못 들으면 순경 아저씨가 들어요. 그 아저씨 여덟 달이래요.”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지수가 막아서는 소리. 「누구세요!」 구태식이었다. 뒤에 작업복 둘. 구태식은 지수를 옆으로 밀고 들어왔다. 윤미의 노트북을 봤다. 침대 위 녹음기를 봤다.

“그 녹음기, 서정동 재단 원룸 비품이에요. 회수합니다.”

그가 손을 뻗었다. 정오가 녹음기를 가슴에 안았다. 링거 줄이 팽팽해졌다. 나는 구태식과 침대 사이에 섰다.

“방금 들었습니다. 보일러 점검 나왔습니다. 따뜻하게 주무세요. 실장님 목소리였습니다.”

구태식의 얼굴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아주 조금. 놀이터에서 발진기를 발로 밀던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더 뻗었다. 작업복 하나가 내 어깨를 잡았다.

“손 떼.”

병실 문간에서 석 경위가 말했다. 순경 둘이 뒤에 있었다. 석 경위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에 윤미 노트북과 같은 파형이 떠 있었다. 지수가 복원이 끝나자마자 병실 밖에서 파일을 석 경위에게 보낸 것이었다. 지수는 판단을 잘 못한다고 했었다. 이번 판단은 빨랐다.

“구태식 씨. 정현 씨 사망 사건 관련해서 같이 가시죠. 방파제 건도요. 택배 트럭 운전석 영상에 어깨가 넓은 분이 찍혀 있더라고요.”

구태식은 석 경위를 한참 봤다. 그리고 손을 내렸다. 그가 순경들 사이로 걸어 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전무님은 전화 한 통 하셨을 뿐이에요.”

석 경위가 대답했다.

“그 전화 한 통이 파일에 다 들어 있어요.”

저녁 뉴스에 하평화학 본사 앞이 나왔다. 백성환이 기자들 앞에 섰다. 보안실장 개인의 일탈로 보인다고. 회사는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그리고 하평 시민 여러분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다고. 최근 떠도는 불법 방송과 근거 없는 청력 소동이 우리 도시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그는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이가 고르고 하얬다.

석 경위가 병실 밖 복도에서 그 뉴스를 보고 나에게 말했다.

“전화 한 통 목소리로는 아직 전무까지 못 가요. 네, 보일러요. 그 말이 무슨 지시였는지는 구태식이 불어야 돼요. 구태식은 아직 입 다물고 있고요. 저 사람이 버티는 동안 이 도시 사람들은 뉴스만 봐요.”

그날 저녁, 보건소장 조경순이 병실에 왔다. 점퍼 차림으로. 손에 두꺼운 서류철. 그녀는 침대 끝에 서서 서류철을 식판 위에 놓았다. 2019년부터 올해까지. 하평시 주민 청력 선별검사 원자료. 동별, 거주 기간별. 아이들 것까지.

“어제 죽은 아이, 지난봄에 제 도장 받았어요. 정상.”

정오가 서류철을 보지 않고 조경순을 봤다.

“형이 두 번 찾아갔을 때 이걸 줬으면요.”

“줬으면 정현 씨는 신문사에 갔겠죠. 그리고 이 도시는 그해 겨울에 공장 문 닫는 뉴스를 봤을 거예요. 저는 그게 무서웠어요. 사만 명. 저는 칠 년 동안 그 사만 명을 지킨다고 생각했어요.”

“지켰어요?”

조경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꺼내 문자 하나를 보여 주었다. 서희정. 오늘 아침. 소장님, 민준이 다시 재러 보건소 갈게요. 이번엔 소장님이 직접 재 주세요. 도장 말고요.

“민준이 엄마 남편, 어제 반장에서 내려왔대요. 장날 천막 때문에. 그래도 이 문자를 보냈어요. 저한테.”

그녀는 오른쪽 귀의 보청기를 빼서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토요일 정오에 하평 전체에 들리게 할 방법이 있어요. 민방위 경보 스피커. 시내에 백이십 개. 보건소장은 공중보건 위기 때 긴급 방송을 요청할 수 있어요. 한 번. 요청하면 저는 끝나요. 그래도 한 번은 할 수 있어요.”

그녀는 보청기를 도로 귀에 꽂았다.

“한겸 씨, 그 목소리 아래쪽, 깎지 말고 틀어요. 이번엔 다 들리게.”

나는 서류철을 들었다. 무거웠다. 칠 년 치 종이. 거기 적힌 숫자 하나하나가 누군가 헤드폰을 쓰고 손을 들었다가 내린 기록이었다. 나는 서류철을 정오의 무릎 위, 형의 녹음기 옆에 내려놓았다. 정오는 두 손을 그 위에 얹었다. 들을 수 없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증거를 붙잡는 손이었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열여덟 번째 · 정오의 방송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