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03자) · 여덟 달짜리 귀

전파법

정오의 방송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전날 밤, 나는 형 방 녹음기를 지수에게 맡겼다. 편의점 봉투에 넣어서. 요구르트 다섯 개짜리 밑에. 지수는 봉투를 받아 들고 무게를 가늠했다. 「사장님, 이거 무슨 일 생기면 어디로 가져가요.」 나는 모른다고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지수가 판단하라고 했다. 지수는 한참 봉투를 보다가 말했다. 「저 판단 잘 못해요. 대학도 판단 잘못해서 휴학했어요.」 그래도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

오후 두 시 정각, 수리점 앞에 차 세 대가 섰다. 전파관리소 흰 승합차, 경찰 순찰차, 그리고 검은 세단. 전파관리소 조사관 둘이 측정 가방을 메고 내렸다. 석 경위가 순찰차에서 내렸다. 검은 세단에서는 구태식이 내렸다. 하평화학 계측팀 민원 대리인이라고 했다.

옥상 문은 아침에 내가 뜯은 그대로였다. 조사관 하나가 안테나 받침대 옆 검은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측정기를 댔다. 전원을 넣었다. 초록 불이 들어왔다. 조사관이 주파수를 읽었다.

“88.3. 출력 이 와트. 무허가 송신 설비 맞네요.”

“제 게 아닙니다.”

나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아침에 찍은 사진들. 뜯긴 자물쇠, 옆 지붕으로 이어진 발자국, 새 스패너 자국, 시각 표시. 지수가 찍은 사진도. 조사관은 사진을 넘겨 보다가 석 경위에게 넘겼다. 석 경위는 한 장씩 오래 봤다.

“누가 밤에 올라와서 설치했다는 거죠.”

“네. 어젯밤 열한 시. 옥상 문을 밖에서 잠그고.”

구태식이 앞으로 나섰다. 휴대폰을 꺼냈다.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화면에 사진이 떴다. 하평화학 보건관리동 옥상. 열린 관측함. 검은 상자. 초록 불. 그 앞에 공구 가방을 멘 나. 지난 월요일 오전 여덟 시 사십 분.

“이분이 공장 옥상에 무단으로 올라가서 이 상자를 만지고 있는 걸 저희 보안실이 발견했습니다. 공장 계측기 간섭 민원이 넉 달째인데, 드디어 설치자를 찾았다 싶었죠. 저희가 상자를 수거했는데, 그다음 날 보니까 사라졌더라고요. 그리고 오늘 이분 옥상에서 나오네요.”

조사관 둘이 사진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공장 옥상의 나와 상자. 내 옥상의 상자. 같은 상자. 틀린 데가 없었다.

“한겸 씨. 공장 옥상에는 왜 올라가셨어요.”

석 경위가 물었다.

“이 방송이 어디서 나오는지 찾으러요. 거기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공장 안에서.”

“그럼 공장 사람이 방송을 했다는 거예요?”

나는 대답을 멈췄다. 윤미의 이름이 목 끝에 걸렸다. 그 이름을 대면 윤미는 무단 송신자가 된다. 그리고 그녀의 딸은 사택에서 나가야 한다. 이름을 대지 않으면 이 상자는 내 것이 된다.

“공장 안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누가 했는지는 모릅니다.”

석 경위는 한숨을 쉬었다. 수첩을 덮었다.

“한겸 씨, 전파법 위반, 업무방해, 건조물 침입. 같이 가셔야겠어요. 장비는 압수합니다.”

조사관들이 수리점 안의 라디오 세 대, 녹음기 세 대, 노트북, 스펙트럼 분석기, 발진기를 상자에 담았다. 노트북에는 어제 복사한 메모리 카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마흔세 개의 폴더와 정현이라는 이름의 폴더. 상자 뚜껑이 닫혔다. 떡집 장씨와 어물전 할매가 골목에 나와 서 있었다. 할매가 소리쳤다. 「그 총각 라디오 고치는 사람이야! 내 라디오 고쳐 준 사람이야!」 조사관 하나가 할매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는 뜻인지 비키라는 뜻인지 몰랐다.

경찰서로 가는 순찰차 뒷자리에서 나는 창밖을 봤다. 시장 골목 입구에 사람들이 나와 서 있었다. 장날 천막에 줄을 섰던 얼굴들. 나물 할머니 하나가 순찰차를 향해 결과지를 흔들었다. 사천에서 사십. 순찰차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그 종이가 흔들렸다.

하평경찰서 진술실 벽은 연두색이었다. 누가 마음이 편해지라고 고른 색일 것이다. 편해지지 않았다. 탁자 모서리가 닳아 둥글었다. 석 경위는 두 시간 동안 같은 질문을 했다. 상자는 누구 것인가. 공장 옥상에 왜 갔나. 방송은 누가 하나. 나는 같은 대답을 했다. 내 것이 아니다. 방송을 찾으러. 모른다. 세 번째 대답이 거짓말이라는 걸 석 경위도 아는 얼굴이었다.

“한겸 씨. 제가 이 동네에서 이십이 년이라고 했죠.”

“네.”

“저 귀 멀쩡해요. 이십이 년 살았는데. 제가 사는 데는 바닷가 반대편, 산 너머예요. 굴뚝 바람이 안 오는 데. 형사 월급으로 거기 집 산 게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에요.”

그는 수첩에 뭔가를 적다가 볼펜을 내려놓았다.

“장날 천막, 저도 봤어요. 백사십 명. 그 서희정 씨 종이 두 장도.”

그 말을 하고 그는 나갔다. 문이 열린 채였다. 복도 저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차분하고 평평한 목소리.

백성환은 진술실 문 앞에 섰다. 혼자였다. 들어오지 않았다. 문틀에 한 손을 짚었다. 수리점 작업대 옆 의자에 앉아 있던 그 자세로.

“한겸 씨. 고생이 많으세요. 저희는 피해 회사 입장에서 진술하러 왔어요.”

“정오 씨는요.”

“곧 깨어날 것 같다고 들었어요. 다행이에요. 깨어나도 기억이 온전하지는 않을 수도 있대요. 일산화탄소가 그렇대요. 형 일도, 방파제 일도 잘 기억 못 할 수 있다고.”

그는 그 말을 날씨 이야기처럼 했다.

“한겸 씨가 이 방송을 했다고 인정하시면, 회사는 고소 취하할게요. 벌금 정도로 끝나게. 대신 하평을 떠나 주시고요. 대전 쪽에 가게 자리 하나 알아봐 드릴 수 있어요. 월세 싼 데로.”

“인정하면 방송은 어떻게 됩니까?”

“끝나죠. 범인이 잡혔으니까. 동네 사람들도 이제 안심하고. 장날 천막 같은 소동도 없고.”

“그 숫자는요.”

백성환은 웃었다. 이가 고르고 하얬다.

“숫자는 원래 있어요. 한겸 씨가 듣든 안 듣든. 들리는 게 다 진짜는 아니라고 했잖아요. 반대로, 안 들린다고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안 들리는 게 편한 거예요. 이 도시 사람들한테는.”

“사택 아이들은요. 모델에서 뺐다고 들었습니다.”

백성환의 웃음이 멈췄다. 아주 짧게. 그는 문틀에서 손을 뗐다.

“누구한테 들으셨을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복도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휴대폰을 꺼냈다. 전화를 거는 손이 빨랐다.

금요일 저녁 여덟 시, 면회실 유리 너머에 지수와 장씨가 앉았다. 장씨는 절편 접시를 들고 왔다가 반입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접시를 무릎에 올려놓은 채로 앉아 있었다.

“사장님, 정오 아저씨 깼어요. 오늘 오후에.”

지수가 유리에 이마를 댈 듯이 다가왔다.

“처음 한 말이 토요일이에요, 였대요. 간호사님이 금요일이라고 하니까 그럼 내일 정오네, 그랬대요. 그리고 형 방 녹음기 찾았느냐고. 제가 찾았다고, 사장님이 고쳤다고 했어요.”

“기억은요. 방파제.”

“토요일 밤 요구르트 사고 골목에서 누가 뒤에서 입을 막았대요. 달큰한 냄새 나는 수건으로. 그다음은 없대요. 근데 목소리 하나는 기억한대요. 아이고, 무겁네. 낮고 평평한 목소리로.”

장씨가 무릎의 절편 접시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총각. 그 녹음기 봉투, 지수가 아직 갖고 있어. 형사한테 줄까 말까 둘이 한참 싸웠어. 형사가 전무님이랑 어깨 두드리는 사이라며.”

“아직 주지 마세요. 정오 씨가 먼저 들어야 합니다. 형 목소리니까.”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편의점 봉투 모서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유치장의 밤은 길었다. 금요일 밤. 나는 벽에 기대앉아 시계가 없는 방에서 시간을 셌다. 방송이 끝나면 숫자는 다시 이사회 보고서 맨 뒷장으로 돌아간다. 윤미의 이름을 대지 않았으니 그녀는 아직 사택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백성환은 누구한테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의 답은 공장 안에 한 사람뿐이었다.

토요일 아침, 유치장 담당 순경이 바뀌었다. 스물여섯 살쯤. 하평에 발령받은 지 여덟 달 됐다고 했다. 서울에서 왔다고. 그는 당직 책상 위에 낡은 라디오를 틀어 놓고 있었다. 전임자가 두고 간 것이라고 했다. 열한 시 오십오 분, 나는 철창 너머로 그를 불렀다.

“순경님. 부탁 하나만 하겠습니다. 그 라디오 88.3에 맞춰 주시겠습니까. 오 분만.”

“그 불법 방송이요? 그거 압수했다던데요.”

“압수한 상자 말고요. 그냥 오 분만.”

순경은 어깨를 으쓱하고 다이얼을 돌렸다. 쉬 소리. 열두 시. 쉬 소리. 순경이 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봐요, 없잖아요.

열두 시 십이 초에 쉬 소리가 끊겼다.

“정오입니다. 오늘의 명단을 알려 드립니다.”

순경이 라디오 앞에서 몸을 굳혔다. 얇은 목소리. 억양 없는. 그러나 조금 달랐다. 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합성 음성이 아니었다. 사람이 합성 음성처럼 읽으려고 애쓰는 목소리였다.

“서정동 둘. 남산동 하나. 사택동 하나. 청산동 없음.”

그리고 한 문장이 더.

“사택동 하나는 아홉 살입니다. 이번 주부터 아이들을 셉니다. 이 목소리는 합성 음성이 아닙니다. 저는 이 숫자를 만든 사람입니다. 이 방송을 듣는 분이 한 분이라도 늘었기를 바랍니다.”

순경이 라디오를 보고, 나를 보고, 다시 라디오를 봤다. 그의 귀는 여덟 달짜리였다. 다 들렸다.

방송이 끝나자 순경은 한참 라디오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했다. 녹음 앱이었다. 그는 열두 시 정각부터 녹음을 켜 두고 있었다. 나를 비웃을 증거로 쓰려고. 이 분 십오 초짜리 파일이 남아 있었다.

“아홉 살이요?”

그가 철창 쪽으로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택 일단지 놀이터. 헤드폰을 쓰고 만이천 헤르츠를 끝내 못 들은 민준이. 헤드폰을 머리띠처럼 쓰고 웃던 사진 속 아이. 둘 다 아홉 살이었다.

석 경위가 오후 한 시에 유치장에 들어왔다. 순경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석 경위는 이 분 십오 초를 두 번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에는 이어폰을 꽂았다. 한참 듣다가 이어폰을 빼고 순경에게 물었다.

“자네 이게 다 들려?”

“네. 좀 얇은데 다 들려요.”

석 경위는 자기 귀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산 너머 집에 사는 귀. 그 귀에도 들린 모양이었다. 그는 철창 앞에 서서 오래 나를 봤다.

“저 목소리, 합성 음성 아니라고 했죠.”

“네.”

“그럼 사람이네요. 이름 대면 그 사람 어떻게 되는지 한겸 씨가 제일 잘 알겠네요. 그래서 안 댄 거고.”

그는 유치장 열쇠를 꺼냈다. 열쇠 꾸러미가 짤랑거렸다. 그 소리가 유치장 벽에서 두 번 되돌아왔다.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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