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02자) · 백이십 개의 스피커

정오의 방송

정오의 방송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민방위 경보 스피커는 하평 시내에 백이십 개가 있다. 학교 옥상, 동사무소 지붕, 시장 입구 전봇대, 방파제 끝. 한 달에 한 번, 매월 십오 일 정오에 시험 사이렌이 운다. 이 분 동안. 어물전 할매는 그 사이렌이 요새 잘 안 들린다고 했었다. 사이렌은 높은 소리다.

금요일 오후 조경순은 보건소장 명의로 공문을 보냈다. 하평시 재난안전상황실 앞. 공중보건 위기 긴급 안내 방송 요청. 일시 토요일 열두 시. 분량 사 분. 내용 주민 청력 실태와 관련 사망 통계. 첨부 칠 년 치 원자료 요약. 공문 맨 아래 결재란에는 그녀 이름 하나뿐이었다. 위로 올릴 사람이 없었다. 올리면 막힐 테니까.

시장실에서 전화가 온 것은 금요일 밤 아홉 시였다고, 조경순이 나중에 말했다. 시장은 한 시간 동안 말했다. 도시의 생계, 공장의 세금, 사만 명, 선거. 조경순은 한 시간 동안 들었다. 보청기를 빼고. 마지막에 한마디만 했다. 「시장님, 제 귀가 요새 잘 안 들려서요. 방송으로 들을게요.」

금요일 밤 수리점 이 층에서 윤미는 원고를 소리 내어 읽었다. 스무 번. 합성 음성처럼 평평하게 읽으려다가 번번이 목이 멨다. 열한 번째쯤에 내가 말했다. 평평하게 읽지 말라고. 이번에는 사람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윤미는 원고를 내려놓고 한참 창밖을 봤다. 굴뚝 여섯 개 가운데 둘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조업 축소. 구태식이 체포된 다음 날부터였다.

“정현 씨는 자기 목소리를 한 번도 안 넣었어요. 합성 음성 뒤에 숨었어요. 저도 열 달 숨었고요. 내일은 안 숨을게요.”

스무 번째에 윤미는 떨면서 끝까지 읽었다. 정오가 병실에서 전화로 그걸 들었다. 휴대폰 스피커로는 아래가 다 살아 있어서 들렸다고 했다. 「누나 목소리 좋네요.」 윤미가 처음으로 웃었다.

토요일 열한 시 사십 분, 하평시청 지하 재난안전상황실. 벽에 모니터가 스무 개. 도시 지도 위에 스피커 백이십 개가 초록 점으로 떠 있었다. 당직 주무관은 스물아홉 살이었다. 책상 위에 식은 커피 두 잔이 있었다. 하평에 발령받은 지 일 년. 유치장 순경처럼, 그는 다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상황실 방송 콘솔 옆에 내 라디오 하나를 붙였다. 전파관리소가 돌려준 유일한 것. 어물전 할매 라디오와 같은 기종이었다. 그 옆에 윤미의 노트북. 화면에 정현의 합성 음성 프로그램이 떠 있었다. 필터 설정 칸. 삼천 헤르츠 아래 차단. 나는 그 칸을 지웠다. 영으로.

“아래를 다 살리는 거예요?”

윤미가 물었다.

“이번엔 다 들리게요. 소장님 부탁입니다.”

열한 시 오십 분, 상황실 문이 열렸다. 백성환이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시청 부시장, 그리고 하평화학 법무팀 둘. 백성환은 상황실 안을 한 번 둘러보고, 당직 주무관 앞으로 곧장 걸어갔다. 조경순도, 윤미도, 나도 보지 않았다.

“주무관님. 고생 많으시네요. 이 방송, 부시장님이 보류하라고 하셨어요. 확인 안 된 통계를 민방위 스피커로 내보내면 공황이 와요. 도시 전체가. 재난을 막으라고 만든 스피커로 재난을 만드는 거예요.”

부시장이 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무관이 조경순을 봤다. 조경순은 공문 원본을 주무관 책상에 내려놓았다.

“공중보건 위기 긴급 안내. 보건소장 요청. 규정상 요청이 오면 상황실은 송출해요. 보류 권한은 시장한테 있고요. 부시장님이 아니라.”

“시장님도 같은 생각이십니다.”

“그럼 시장님이 오셔서 직접 보류 서명하세요. 열두 시까지 십 분 남았어요.”

백성환이 처음으로 조경순을 봤다.

“소장님. 칠 년 동안 도장 찍으신 분이 오늘 이러시면, 그 칠 년은 누가 책임져요.”

“제가요. 오늘부터.”

백성환은 웃었다. 이가 고르고 하얬다. 그는 몸을 돌려 나를 봤다. 수리점 작업대 옆 의자에 앉아 있던 그 자세로 콘솔에 한 손을 짚었다.

“한겸 씨. 월세 싼 데 찾아오셨죠. 이 방송 나가면 그 싼 월세도 없어져요. 여기 집값이 떨어지고, 공장이 멈추고, 한겸 씨 가게에 라디오 고치러 오던 사람들이 다 떠나요. 한겸 씨가 이 도시를 끝내는 거예요.”

“전무님. 이 도시는 칠 년 전부터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상황실 문이 다시 열렸다. 석 경위였다. 순경 둘. 석 경위는 서류 한 장을 들고 백성환 앞에 섰다.

“백성환 씨. 오늘 아침 구태식 씨가 진술했어요. 작년 십일월 이십일 일, 정현 씨 원룸 보일러.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네, 보일러요, 가 무슨 뜻이었는지도. 이번 달 방파제 건도요. 살인, 살인미수 교사 혐의로 체포합니다.”

상황실이 조용해졌다. 모니터 스무 개가 초록 점 백이십 개를 비추고 있었다. 백성환은 서류를 보지 않았다. 벽시계를 봤다. 열한 시 오십구 분.

“열두 시군요.”

그가 말했다. 날씨 이야기처럼.

주무관이 조경순을 봤다. 조경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무관이 송출 버튼을 눌렀다.

열두 시. 하평 전체에서 스피커 백이십 개가 한꺼번에 켜졌다. 짧은 신호음. 그리고 윤미가 마이크 앞에서 입을 열었다. 합성 음성이 아니었다. 아래를 깎지 않은 사람 목소리였다. 떨렸다. 떨리는 채로 또박또박.

“정오입니다. 오늘의 명단을 알려 드립니다.”

상황실 모니터 하나에 시장 입구 방범 카메라가 떠 있었다. 떡집 장씨가 떡 쟁반을 든 채로 전봇대 스피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물전 할매가 좌판에서 일어나 있었다. 나물 할머니들이 고개를 들었다. 편의점 앞에서 지수가 휴대폰을 들고 서 있었다. 장씨의 입 모양이 보였다. 이게 그거야?

“서정동 셋. 남산동 둘. 사택동 하나. 청산동 하나.”

다른 모니터에는 사택 일단지 놀이터가 떠 있었다. 서희정이 민준이 손을 잡고 벤치 옆 스피커 기둥 아래 서 있었다. 아이 몇이 미끄럼틀 위에서 멈췄다. 관리사무소 창문이 열리고 파란 점퍼가 얼굴을 내밀었다. 공장 정문 카메라에는 교대 근무를 마치고 나오던 작업복들이 멈춰 선 모습이 보였다. 장날 천막 기둥을 발로 찼던 사내도 거기 있었다. 그는 안전모를 벗어 손에 들고 있었다.

“이 숫자는 하평화학이 매주 이사회에 보고해 온, 공장 배출물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별 사망자 수입니다. 저는 그 숫자를 만든 보건관리자 윤미입니다. 지난 칠 년 동안 하평에 삼 년 넘게 사신 분들은 높은 소리를 잃으셨습니다. 오늘 이 목소리는 아래를 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들리실 겁니다. 지난 칠 년 동안 매주 토요일 정오, 여러분께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를 처음 만든 사람의 목소리를 틀겠습니다.”

윤미가 노트북 재생 버튼을 눌렀다. 복원한 파일의 마지막 이십 초. 아래를 살린.

“오야. 머리가 아파. 토요일 정오에 들어. 네가 들어. 형 말고 네가.”

같은 시각 하평의료원 칠 층 병실. 창문 밖 주차장 전봇대에 민방위 스피커가 하나 달려 있다. 간호사가 말해 주었다. 정오가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고. 링거 걸이를 끌고. 창문을 열었다고. 그리고 스피커를 향해 대답했다고.

“들려.”

방송은 사 분 만에 끝났다. 마지막 문장은 윤미가 정한 것이 아니었다. 조경순이 공문 맨 끝에 적어 둔 문장이었다.

“이 방송이 들리셨다면, 곁에 있는 분의 귀를 재어 주십시오. 월요일부터 보건소 청력검사를 다시 엽니다. 무료입니다.”

백성환은 순경 둘 사이에 서서 끝까지 들었다. 방송이 끝나자 그는 수갑 찬 손으로 넥타이를 고쳐 매려다 말았다. 나가면서 그는 주무관에게 말했다. 「스피커 음질 좋네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석 경위는 백성환을 순찰차에 태워 보내고 상황실 계단참에서 나에게 말했다.

“한겸 씨 벌금은 못 막아요. 전파법은 전파법이라.”

“압니다.”

“저 오늘 산 너머 집에 가서 우리 애들 귀 재 볼 거예요. 굴뚝 바람 안 오는 데 산다고 좋아했는데, 애들 학교가 서정동이에요.”

그는 계단을 올라가다 돌아봤다.

“그 청력계, 토요일마다 한다면서요. 저도 줄 설게요.”

그 뒤의 일은 천천히 왔다. 하평화학은 공장 절반을 멈추고 역학조사를 받게 됐다. 조경순은 직위해제됐다. 월요일 아침 보건소 청력검사 부스 앞에는 그래도 줄이 섰다. 맨 앞에 선 사람은 조경순이었다. 직위해제 통보를 받은 날 아침, 점퍼 차림으로. 보건소 직원이 당황하며 헤드폰을 씌웠다고 한다. 부스 유리의 먼지에 정오가 찍어 두었던 점 두 개가 그대로 있었다. 윤미는 사택을 나와 청산동 원룸으로 옮겼다. 정오가 살던 방이었다. 재판에서 증언하겠다고 했다. 나는 전파법 위반으로 약식 기소됐다. 벌금 이백만 원. 떡집 장씨가 상인회에서 모금을 했다. 이백삼만 원이 모였다. 삼만 원은 할매가 가자미 판 돈이었다.

그날 오후 시장으로 돌아갔을 때, 어물전 할매가 좌판 앞에서 나를 붙잡았다. 손에 생선 비린내가 배어 있었다.

“총각. 들렸어. 처음으로. 그 아가씨 목소리. 사택동 하나, 청산동 하나. 다 들렸어.”

할매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사십일 년 동안 여기서 뱃날씨만 들었어. 우리 영감 배 나간 날도, 안 돌아온 날도. 근데 우리 동네에서 누가 몇이 죽었는지는 한 번도 못 들었어. 들을 수 있는 건 줄도 몰랐어.”

떡집 장씨가 옆에서 코를 훌쩍였다. 「할매, 나도 들렸어. 손주 목소리보다 잘 들렸어.」 할매가 장씨 등을 때렸다. 「그건 손주가 쪼그만 소리로 말해서라며.」 둘은 또 싸웠다. 이번에는 누가 더 잘 들었는지를 두고.

한 달 뒤 토요일 열두 시, 나는 수리점 작업대에서 라디오를 88.3에 맞췄다. 쉬 소리만 났다. 방송은 이제 없다. 숫자는 보건소 게시판과 시청 누리집에 매주 올라간다. 아래를 깎지 않은 글씨로.

정오가 택배 조끼 대신 점퍼를 입고 들어왔다. 떡집 장씨가 절편을 세 접시 가져왔다. 지수가 요구르트 다섯 개짜리를 들고 왔다. 나는 청력계를 꺼냈다. 윤미가 돌려준 병원용. 이제 수리점 한쪽이 토요일마다 귀 재는 자리다.

첫 손님은 나였다. 순서를 정한 건 지수였다. 헤드폰을 쓰고 정오에게 버튼을 맡겼다. 천, 이천, 사천. 사천에서 손이 조금 늦었다. 지난달보다 한 칸.

정오가 결과지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서랍에 넣었다. 오늘 몇 미터인지는 재지 않았다. 대신 떡집 장씨를 의자에 앉히고 헤드폰을 씌웠다. 장씨가 웃었다. 라디오 디제이 같다고. 나는 그 목소리가 다 들렸다. 아직은.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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