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06자) · 무료 귀 재기
장날
정오의 방송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하평 청산시장은 사흘과 여드레에 장이 선다. 오일장. 그날은 골목 끝 공터까지 좌판이 깔리고, 바닷가 마을 할머니들이 버스를 타고 나물을 이고 온다. 사람이 제일 많은 날이다.
장날 전날 밤, 수리점 셔터 앞에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테이프로 단단히 감긴 상자. 발신인이 없었다. 열어 보니 청력계가 들어 있었다. 병원용. 보건관리실 구석에서 먼지 덮개를 쓰고 있던 그것. 헤드폰 두 벌, 교정 기록지 한 묶음. 상자 바닥에 쪽지가 있었다. 가는 글씨.
장날 하루만. 교정은 지난달에 했음. 일련번호 스티커는 떼었음.
스티커를 뗀 자리에 끈적이는 네모가 남아 있었다. 윤미는 숫자를 건네는 법을 알았다. 기계를 건네는 법도.
장날 아침 여덟 시, 공터 한쪽에 천막을 쳤다. 떡집 장씨가 천막을 빌려 왔다. 상인회 행사용. 지수가 골판지에 매직으로 썼다. 무료 귀 재기. 오 분. 아프지 않음. 그 아래 어물전 할매가 한 줄을 더 쓰게 했다. 할매도 했음.
처음 한 시간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천막 그늘 아래 헤드폰 두 벌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천막 앞을 지나가며 골판지를 읽고, 웃고, 지나갔다. 귀를 왜 재. 멀쩡한데. 열 시에 할매가 나섰다. 나물 파는 할머니들 좌판을 한 바퀴 돌며 말했다. 「저기 총각이 귀를 재 주는데, 나보다 잘 듣는 사람한테는 가자미 한 마리 준대.」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할매는 신문지에 싼 가자미 한 상자를 천막 옆에 갖다 놓았다.
열한 시에 줄이 섰다.
나물 할머니들, 건어물 김씨, 약국 약사, 국숫집 주인, 공장 교대 근무를 마치고 장 보러 나온 작업복들, 아이 손을 잡은 엄마들. 지수가 번호표를 나눠 주고, 장씨가 절편을 돌리고, 내가 헤드폰을 씌웠다. 거주 기간과 결과를 기록지에 적었다. 동네, 햇수, 사천 헤르츠. 이름은 적지 않았다. 적지 말자고 한 것은 지수였다. 「이름 적으면 누가 가져가요. 숫자만 적어요. 숫자는 회사도 좋아하잖아요.」
결과를 들은 사람들 얼굴은 셋이었다. 웃는 얼굴, 모르겠다는 얼굴, 그리고 오래 서 있는 얼굴. 나물 할머니 하나가 결과지를 들고 한참 서 있다가 말했다. 「우리 영감이 공장 삼십 년 다니고 귀가 먹었어. 나는 공장 안 다녔는데 왜 나도 먹었어.」 나는 대답 대신 지도에 핀을 꽂았다. 할머니 집이 있는 동. 서정동. 굴뚝 바람 아래.
열두 시 반에 의료원에서 전화가 왔다. 중환자실 간호사. 정오의 손가락이 움직였다고. 이름을 부르자 눈꺼풀이 떨렸다고. 아직 깨어난 건 아니라고. 나는 헤드폰을 씌우던 손을 멈추고 천막 기둥에 기대 한참 서 있었다. 지수가 다음 사람을 대신 앉혔다. 약사가 옆에서 기록지를 받아 적었다. 약사는 오전 내내 구경만 하다가 열한 시부터 자기 가게 문을 닫고 와서 앉아 있었다. 「약사가 귀 재는 데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좀 믿지.」
오후 한 시까지 백사십 명을 쟀다. 모눈종이가 모자라서 지수가 편의점에서 공책을 사 왔다. 점들이 사택동 놀이터에서 그렸던 선을 그대로 다시 그렸다. 삼 년에서 뚝. 사천에서 푹. 동네마다 바람 방향대로 조금씩 달랐다. 청산동과 서정동이 제일 깊었다. 백사십 명의 점이 한 장에 모이자, 그것은 더는 라디오 수리공의 기분 탓이 아니었다.
나물 할머니 둘은 결과지를 들고 서로 자기가 더 못 듣는다고 우겼다. 한 할머니가 「나는 사천에서 사십이야」 하자 다른 할머니가 「나는 사천에서 아예 안 들렸어」 했다. 첫 할머니가 억울한 얼굴로 나에게 결과지를 내밀었다. 「총각, 나 다시 재 줘. 이번엔 안 들리는 척 안 할게.」 줄 선 사람들이 웃었다. 웃음이 천막 안까지 번졌다. 나는 그 할머니를 다시 쟀다. 두 번째 결과가 첫 번째보다 나았다. 할머니는 그걸 보고 더 억울해했다. 무엇이 억울한지 할머니 자신도 모르는 것 같았다. 모르는 채로 억울한 게, 이 천막 앞에 선 사람들 얼굴이었다.
어물전 할매는 결국 아무에게도 가자미를 주지 않았다. 할매보다 잘 듣는 사람은 많았는데, 할매는 그 사람들이 다 하평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라며 반칙이라고 했다. 가자미 상자는 그대로 천막 옆에 있었다. 장씨가 오후에 그걸 구워서 줄 선 사람들한테 한 점씩 돌렸다.
한 시 반에 보건소 승합차가 공터 입구에 섰다.
조경순이 내렸다. 흰 가운 없이, 보건소 점퍼를 입고. 걸음이 빨랐다. 줄 선 사람들 얼굴을 하나씩 정면으로 봤다. 그 뒤로 보건소 직원 둘, 그리고 석 경위. 조경순은 천막 앞 줄을 한 번 훑어보고, 곧장 청력계 앞으로 왔다.
“한겸 씨. 이거 뭡니까?”
“귀 재는 겁니다. 이름은 안 받습니다.”
“의료기기로 검사하고 결과를 설명하는 건 의료 행위예요. 면허 없는 사람이 하면 불법이고요. 게다가 이 기계.”
조경순은 청력계 옆면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스티커를 뗀 끈적한 네모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병원용이네요. 어디서 났어요.”
“빌렸습니다.”
“누구한테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경순은 석 경위를 돌아봤다.
“이 장비, 출처 확인될 때까지 보건소가 보관하겠습니다. 오늘 검사 기록지도요. 개인 의료 정보가 들어 있으니까.”
“이름 없습니다. 숫자만 있습니다.”
“동네하고 햇수가 있으면 사람이 특정돼요. 제가 말씀드렸죠.”
보건소 직원이 헤드폰을 걷기 시작했다. 줄 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 뒤에서 소리쳤다. 「우리가 재 달라고 한 거야!」 다른 누군가 소리쳤다. 「그만해! 공장 문 닫게 할 일 있어?」 작업복 입은 사내 하나가 줄에서 나와 천막 기둥을 발로 찼다. 「이런 거 소문나면 우리 애들 학교에서 뭐라는 줄 알아? 공장 동네 귀머거리래!」 장씨가 그 사내 앞을 막아섰다. 떡 쟁반을 든 채로. 쟁반의 절편이 흔들렸다.
줄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재 달라는 쪽과 그만하라는 쪽. 둘 다 이 도시 사람이었다. 둘 다 같은 굴뚝 바람을 맞고 살았다.
그때 줄 중간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서희정이었다. 민준이 손을 잡고. 그녀는 조경순 앞에 섰다. 손에 종이 두 장.
“소장님. 이거 보세요.”
한 장은 보건소 도장이 찍힌 학교 청력 선별검사 통지서. 정상. 다른 한 장은 방금 이 천막에서 잰 민준이의 결과지. 사천에서 이십, 만이천에서 끝까지 무반응.
“같은 애예요. 같은 달이에요. 하나는 보건소 거고 하나는 이 천막 거예요. 이 천막 기계가 보건소 기계보다 비싸 보이던데요.”
조경순은 종이 두 장을 받아 들었다. 오래 봤다. 그녀가 종이를 들고 있는 동안 공터가 조용해졌다. 좌판 사이로 바닷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 굴뚝 쪽에서 오는 바람이었다. 달큰한 냄새가 났다.
“민준이 엄마, 이건 조건이 달라서.”
“뭐가 달라요. 애가 달라요?”
서희정의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면서 커졌다.
“우리 남편 생산이팀 반장이에요. 제가 여기 나와서 이러면 남편 반장 못 해요. 알아요. 알고 나왔어요. 소장님, 이 도장 소장님 이름으로 찍혔어요.”
조경순은 종이 두 장을 서희정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오른쪽 귀를 만졌다. 보청기가 있는 쪽. 무의식적인 손짓이었다. 그녀는 그 손을 곧바로 내렸다. 줄 선 사람 몇이 그걸 봤다.
“장비는 가져갑니다.”
조경순의 목소리가 처음보다 작았다. 단단함은 그대로였다.
“기록지는 두고 갑니다. 이름이 없으니까.”
석 경위가 그녀를 봤다. 조경순은 석 경위를 보지 않고 승합차로 걸어갔다. 보건소 직원이 청력계를 상자에 넣어 들고 따라갔다. 석 경위가 나에게 와서 낮게 말했다.
“한겸 씨. 저 기계, 일련번호 스티커 뗐어도 안쪽 기판에 번호가 또 있어요. 보건소가 조회하면 어디 건지 금방 나와요. 빌려준 사람 걱정하세요.”
그는 가려다가 한마디 더 붙였다.
“그리고 내일 오후 두 시요. 전파관리소. 옥상.”
저녁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한 통 왔다. 기판 번호 조회되면 저예요. 괜찮아요. 딸 귀 재 줘서 고마워요. 윤미의 딸은 장날 천막에 오지 않았다. 그런데 문자에는 고맙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기록지 뭉치를 넘기다가 사택 일단지, 아홉 살, 여자아이 한 줄을 찾았다. 오후 한 시 십 분. 엄마 이름 칸은 없었다. 이름을 적지 않기로 한 건 지수였다. 누가 데려왔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헤드폰을 머리띠처럼 쓰고 웃던 얼굴만 떠올랐다.
그날 밤 열한 시, 수리점 이 층 방에서 백사십 명의 기록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천장에서 소리가 났다. 옥상이었다. 누가 걷는 소리. 무거운 발소리. 멈췄다가, 쇠붙이끼리 부딪치는 소리. 스패너가 볼트를 무는 소리를 나는 안다. 십 년 동안 그 소리로 먹고살았다.
나는 옥상 문 앞까지 올라갔다.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내가 달아 둔 적 없는 자물쇠였다. 문틈으로 손전등 불빛이 한 번 스쳤다. 안테나 받침대 쪽에서. 그리고 발소리가 옆 건물 지붕으로 건너가는 소리.
아침에 옥상 문을 뜯고 올라갔다. 안테나 받침대 옆에 검은 상자가 하나 묶여 있었다. 손바닥 두 개만 한. 전원선 하나, 안테나선 하나. 초록 불은 꺼져 있었다. 공장 옥상 관측함에서 구태식이 뽑아 간 그것이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라고 그는 말했었다.
나는 상자를 떼어 내지 않았다. 떼어 내면 내가 만진 게 된다. 두고 보면 내 옥상에 있는 게 된다. 어느 쪽이든 내 것이 되게 만든 사람이 있었다. 대신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 시각이 찍히게. 뜯긴 자물쇠, 옆 건물 지붕으로 이어진 흙 묻은 발자국, 안테나 받침대 볼트의 새 스패너 자국. 반짝반짝했다. 그리고 지수를 불렀다. 지수가 자기 휴대폰으로 같은 것을 다시 찍었다. 두 사람이 찍으면 한 사람이 찍은 것보다 조금은 더 믿는다고.
상자 옆 작은 컴퓨터의 연결 단자 덮개를 열었다. 안에 메모리 카드가 꽂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뽑지 않았다. 대신 내 노트북을 연결해 내용을 통째로 복사했다. 그것이 옳은 일인지 나는 몰랐다. 남의 증거에 손을 대는 일이었다. 그래도 전파관리소가 이 상자를 들고 가면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복사하는 데 사 분이 걸렸다. 폴더 이름이 보였다. 금요일마다 하나씩, 마흔세 개. 그리고 맨 처음 폴더 하나. 2025년 1월. 이름이 정현이었다.
전파관리소 입회까지 다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