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08자) · 보건관리동 옥상

목소리

정오의 방송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전파가 어디서 오는지 찾는 법은 옛날 방식이 제일 정확하다. 루프 안테나. 구리선을 둥글게 감은 고리. 고리를 돌리면 전파가 오는 방향에서 소리가 제일 작아진다. 그 방향으로 선을 긋는다. 다른 자리에서 한 번 더 긋는다. 한 번 더. 선 세 개가 만나는 자리에 송신기가 있다.

정오는 닷새째 깨어나지 않았다. 중환자실 간호사는 뇌파가 나쁘지 않다고 했다. 깨어날 때가 되면 깨어난다고. 수리점 셔터에는 전파관리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수요일 오후 두 시, 옥상 무선 설비 현장 확인. 입회 요망. 장씨가 그 종이를 읽고 셔터 앞에서 혀를 찼다. 「총각이 무슨 방송을 해. 라디오를 고치지.」

토요일 정오. 방송은 이 분 남짓이다. 이 분 안에 세 자리에서 선을 그어야 했다. 혼자서는 못 한다.

떡집 장씨가 첫 번째 자리를 맡았다. 수리점 옥상. 장씨는 방송을 못 듣는다. 그래서 헤드폰 대신 신호 세기 바늘을 보라고 했다. 바늘이 제일 왼쪽으로 떨어지는 방향. 그 방향으로 고리를 멈추고 나침반 숫자를 읽는 것. 장씨는 연습을 스무 번 했다. 스무 번째에 말했다. 「총각, 이거 떡 반죽보다 쉽네.」 옥상 사다리는 어물전 할매가 잡았다. 할매는 사다리를 잡은 채로 장씨에게 잔소리를 했다. 떨어지면 떡은 누가 하느냐고. 장씨는 고리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대답했다. 떨어지면 할매가 가자미로 받으라고.

두 번째 자리는 남산동 경로당 옥상. 정오가 녹음기를 놓던 곳. 지수가 맡았다. 지수는 방송을 멀리서나마 듣는다. 바늘과 소리를 둘 다 보라고 했다. 지수는 알바를 그만두고 이틀째였다. 월세 삼십을 아끼는 일보다 이게 낫다고 했던 사람답게, 경로당 할머니들에게 요구르트를 돌리고 옥상 열쇠를 받아 냈다.

세 번째 자리는 사택 이단지 쓰레기장 옆. 거긴 내가 갔다. 사택 관리소 눈에 안 띄게 쓰레기 봉투 수거함 뒤에 쪼그려 앉아서.

“정오입니다. 오늘의 명단을 알려 드립니다.”

나는 고리를 돌렸다. 목소리가 작아지는 방향. 나침반, 이백십 도. 전화기 너머에서 지수가 불렀다. 「백칠십오 도요!」 장씨가 불렀다. 「이, 이십 도! 아니 이십오! 바늘이 떨려!」

방송은 이 분 십 초에 끝났다. 셋 다 숫자를 적었다. 장씨는 숫자를 떡 포장지에 적어 왔다. 이십오 도. 옆에 괄호로 한마디가 붙어 있었다. 떨렸음.

수리점 작업대에 하평 지도를 폈다. 세 자리에서 세 선을 그었다. 장씨의 선이 조금 떨렸다. 그래도 세 선은 한 자리에서 만났다. 하평화학 공장 담장 안. 본관 동쪽, 삼 층짜리 흰 건물. 지도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보건관리동.

방송은 공장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여덟 시, 나는 공장 정문 경비실 앞에 섰다. 공구 가방을 메고. 경비원에게 말했다. 보건관리동 기상 관측 장비 수리 요청을 받았다고. 경비원이 내선 전화를 걸었다. 보건관리동. 누가 받았다. 경비원이 내 이름을 말했다. 한참 있다가 경비원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올라오시래요. 보건관리자님이.”

공장 안은 냄새가 달랐다. 청산동에서 바람 따라 가끔 오는 달큰한 냄새가 여기서는 공기 전체였다. 플라스틱을 녹일 때 나는 단내. 입안이 금방 텁텁해졌다. 보건관리동 이 층 보건관리실. 문 옆 명패에 이름이 있었다. 보건관리자 윤미.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억양이 없었다. 지치면 사람 목소리도 그렇게 된다.

윤미는 서른여덟쯤. 눈 밑이 검었다. 흰 가운 소매가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다. 책상 위에 모니터가 셋. 벽에는 공장 근로자 청력검사 일정표가 붙어 있었고, 구석에 내 발진기보다 백 배는 비싸 보이는 청력계가 먼지 덮개를 쓰고 있었다. 하나에 표가 떠 있었다. 동별, 주별 숫자. 그녀는 그 모니터를 끄지 않았다.

“한겸 씨죠. 라디오 고치는.”

“기상 장비 고치러 왔습니다.”

“옥상이에요.”

그녀는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옥상 문을 열었다. 바람이 불었다. 굴뚝 여섯 개가 가깝게 보였다. 옥상 한쪽에 하얀 기상 관측함이 서 있었다. 풍속계, 온도계, 강우계. 관측함 밑칸 문에 작은 자물쇠. 윤미는 가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열었다.

안에 손바닥 두 개만 한 검은 상자가 있었다. 전원선 하나, 안테나선 하나. 옆에 작은 컴퓨터. 초록 불 하나가 깜빡였다. 송신기였다.

“고칠 데는 없어요. 잘 돌아가요.”

윤미가 말했다.

“정현 씨가 만든 거예요. 이천이십오 년 일월에. 합성 음성도 정현 씨가 짰어요. 억양 없는 목소리. 누구 목소리인지 알 수 없게. 토요일 정오에 저절로 켜져요. 숫자만 제가 넣어요. 금요일 밤에.”

“숫자는 어디서 납니까?”

윤미는 관측함 문을 닫지 않고 기대섰다.

“제가 만들었어요. 정현 씨랑. 이천십구 년에. 회사가 하라고 했어요. 노출 연관 사망 추정 모델. 굴뚝에서 뭐가 얼마나 나가고, 바람이 어느 동으로 불고, 그 동에 누가 몇 년 살았고, 병원 기록이 어떻고. 그걸 넣으면 이번 주에 공장 때문에 죽은 사람이 동마다 몇인지 나와요. 회사는 그걸 소송 대비 충당금 계산에 써요. 한 사람당 얼마씩. 매주 월요일 이사회 보고서 맨 뒷장에 들어가요. 동별 숫자로.”

그녀는 굴뚝 쪽을 봤다.

“사람을 숫자로 만든 게 저예요. 정현 씨는 그 숫자를 사람들한테 돌려주자고 했어요. 저는 무서워서 반대했어요. 정현 씨가 혼자 시작했어요. 저는 금요일마다 숫자만 몰래 건넸어요. 정현 씨가 죽은 다음 주 금요일에, 저는 숫자를 안 넣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토요일 정오에 저 상자가 켜져서 아무 말도 안 하면, 그 사람이 한 일이 다 끝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넣었어요. 열 달째.”

“이번 주에 혼자 계시지 말라고 한 것도.”

“구태식 실장이 이사회 끝나고 전무님한테 보고하는 걸 들었어요. 청취자 둘. 수리점하고 택배.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어요. 방송에 한 줄 넣는 거.”

“경찰에 말씀하셨으면 정오 씨는 방파제에 안 갔을 겁니다.”

윤미의 얼굴이 굳었다. 그 말이 맞았다. 맞아서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증언해 주십시오. 모델, 이사회 보고서, 정현 씨가 죽기 전에 한 일.”

“못 해요.”

바로 나온 대답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가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여자아이 하나가 헤드폰을 쓰고 웃고 있었다. 머리띠처럼 헤드폰을 쓰고.

“지난달에 제가 재 봤어요. 회사 청력계로. 사천에서 조금 늦어요. 아직 조금. 제 딸이에요. 사택 일단지. 아홉 살. 민준이랑 같은 반이에요. 저 이 회사 그만두면 사택에서 나가야 돼요. 증언하면 그만두는 걸로 안 끝나요. 정현 씨처럼 될 수도 있어요. 저는 숫자를 만든 사람이에요. 그 숫자 안에 제가 들어가는 건 싫어요.”

“따님 귀가 사천에서 조금 늦다고 하셨습니다.”

윤미가 나를 봤다.

“지금 사택동 칸 숫자는 어른들입니다. 삼 년 넘게 공장 연기를 마신 어른들. 따님은 여기서 태어났습니다. 거주 기간이 나이와 같습니다. 선생님 모델에 그 아이들 칸은 있습니까?”

윤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굴뚝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가 가운 소매를 끌어내렸다. 팔꿈치까지 걷혀 있던 소매가 손목까지 내려왔다. 추워서가 아니었다.

“없어요. 회사가 빼라고 했어요. 애들은 소송 금액이 너무 커져서.”

옥상 문이 열렸다. 구태식이었다. 뒤에 경비원 둘. 구태식은 옥상을 둘러보고, 열려 있는 관측함을 봤다. 검은 상자와 초록 불을 봤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관측함, 상자, 그 앞에 선 나. 공구 가방을 멘.

“한겸 씨. 공장 옥상에서 뭐 하세요.”

윤미가 먼저 말했다.

“제가 불렀어요. 풍속계가 고장 나서.”

“풍속계는 멀쩡히 도는데요.”

구태식은 관측함 앞으로 걸어왔다. 검은 상자를 내려다봤다.

“이거 무허가 송신기네요. 88.3. 요즘 동네에 불안 조장하는 그 방송. 우리 공장 옥상에 이걸 누가 달았을까요. 라디오 기술자가 공구 가방 메고 와서 서 있고.”

그는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이번에는 내 얼굴을 가까이서.

“윤미 선생님, 경비원들 따라 내려가 계세요. 선생님은 모르시는 일이죠. 풍속계 고치러 온 줄 아셨던 거고.”

윤미가 나를 봤다. 구태식을 봤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경비원 하나가 따라갔다. 계단 문 앞에서 윤미가 한 번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내려갔다.

구태식이 관측함에서 검은 상자를 뽑아 들었다. 전원선이 뽑히자 초록 불이 꺼졌다.

“한겸 씨. 전파관리소가 수요일에 가게 옥상 보러 간다죠. 이 상자는 그 전에 거기 가 있을 거예요. 원래 있던 자리로.”

“그건 제 게 아닙니다.”

“이 사진엔 한겸 씨 거로 보이는데요.”

그는 휴대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공구 가방을 멘 라디오 기술자. 열린 관측함. 검은 상자. 초록 불. 사진은 정확했다. 틀린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틀린 데가 없어서 거짓말이었다.

경비원이 내 팔을 잡았다. 정문까지 끌려 나오는 동안 나는 굴뚝 여섯 개를 셌다. 셋에서 흰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정문 밖에 내동댕이쳐졌을 때, 공구 가방 옆주머니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접힌 종이. 내가 넣은 게 아니었다. 펴 보니 이사회 보고서 맨 뒷장의 사본이었다. 동별 숫자. 날짜는 지난주 월요일. 맨 아래 결재란에 서명 두 개. 보건관리자 윤미. 전무 백성환.

윤미가 계단을 내려가기 전, 관측함 앞에서 내 공구 가방에 기대섰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녀는 숫자를 만든 사람이었다. 숫자를 건네는 법을 알았다.

정문 앞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나는 지수에게, 장씨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송신기가 뽑혔다고. 다음 토요일 정오에는 방송이 안 나올 거라고. 장씨가 전화기 너머에서 한참 말이 없다가 물었다.

“그럼 총각, 우리 동네 숫자는 이제 누가 세?”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버스가 두 대 지나갔다. 나는 이사회 보고서 사본을 다시 폈다. 청산동 칸에 이번 주 숫자가 있었다. 둘. 그 옆에 윤미의 가는 글씨로 작은 메모가 있었다. 하나는 방파제 건. 추정 제외. 정오였다. 회사 모델은 정오를 세지 않았다. 공장 연기 때문에 쓰러진 사람이 아니니까. 형 때와 같았다. 셈에서 빠진 사람. 셈에서 빠지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정오를 방파제에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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