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12자) · 방파제
녹음 092
정오의 방송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정오를 찾은 사람은 어물전 할매의 이웃 노인이었다. 화요일 새벽 다섯 시, 하평항 방파제 끝에 낚시를 하러 갔다가 택배 트럭 한 대가 시동이 꺼진 채 서 있는 걸 봤다고 했다. 창문이 다 닫혀 있었고, 앞 유리 안쪽이 뿌옇게 흐려 있었다. 조수석에 번개탄 화로가 있었다. 운전석에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노인은 낚싯대로 창문을 깼다. 사십 년 배를 탄 손이었다. 유리가 깨지자 매캐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 나갔고, 노인은 그 냄새를 아는 사람처럼 숨을 참고 운전석 문을 열었다.
어물전 할매가 수리점 셔터를 두드린 게 여섯 시 반이었다. 「총각, 그 정오 총각. 방파제. 의료원 갔대.」
하평의료원 중환자실 앞 복도는 소독약 냄새가 났다. 유리창 너머 침대에 정오가 누워 있었다. 택배 조끼는 벗겨져 침대 발치 의자에 개어져 있었다. 입에 관을 물고 있었다. 얼굴이 이상하게 붉었다. 일산화탄소를 마신 사람의 얼굴은 붉다고, 간호사가 말해 주었다. 피가 산소 대신 그걸 붙잡아서 그렇다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속은 숨이 막혀 있는 색이라고.
“깨어날까요?”
“지켜봐야 돼요. 뇌가 얼마나 버텼는지.”
간호사는 그 말을 하고 차트를 들고 갔다. 복도 의자에 앉았다. 플라스틱 의자가 차가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 경위가 걸어왔다. 어제 원룸에 왔던 형사. 손에 비닐봉지 하나. 안에 종이 한 장.
“트럭 안에서 나왔어요. 유서예요.”
종이에는 볼펜 글씨로 세 줄이 적혀 있었다. 형 곁으로 갑니다. 아무도 탓하지 마세요. 정오.
“계약 해지 통보, 퇴거, 작년에 형 사망. 우울감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번개탄도 본인 카드로 샀고요. 토요일 밤 열한 시 이십 분 하평마트.”
“토요일 밤 열한 시 사 분에 그 사람은 편의점에서 요구르트를 샀습니다. 뒤에 검은 차가 따라갔고요. 일요일 밤에 이 층 할머니가 업혀 나가는 걸 봤습니다.”
“한겸 씨, 그 얘기 어제 들었어요.”
“그럼 글씨는요. 정오 씨 글씨 굵습니다. 볼펜을 꾹꾹 눌러요. 이건 가늘고 가볍게 썼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정오 방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청산 이주민 명부 맨 아래 비고 칸. 형 방 녹음기, 찾음. 굵고 무거운 글씨. 석 경위는 두 글씨를 번갈아 봤다. 한참.
“사람이 죽으려고 할 때 글씨가 평소랑 같을까요?”
“카드는요. 정오 씨 카드가 토요일 밤에 누구 손에 있었는지 아십니까?”
석 경위가 비닐봉지를 접었다.
“한겸 씨. 저 이 동네에서 이십이 년 형사 했어요. 이 도시는 겨울이 길고 공장 옆이라 사람들이 많이 지쳐요. 번개탄 사건이 일 년에 열 건은 나요. 그중에 누가 억지로 시킨 거면 좋겠다는 가족이 반이에요. 억지로 시킨 거면 적어도 본인 탓은 아니니까.”
그는 내 옆에 앉았다. 처음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한 가지. 한겸 씨 가게 옥상 안테나, 전파관리소에 신고가 들어왔어요. 무허가 송신 설비라고. 하평화학 계측팀에서요. 수신 안테나라고 하셨죠. 제가 보기엔 그런데, 전파관리소는 올라가서 보겠대요. 송신기 한 대라도 나오면 전파법이에요. 한겸 씨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저는 송신기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석 경위가 일어섰다. 복도 끝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흰 꽃바구니가 먼저 나왔다. 그 뒤로 백성환이 나왔다. 회색 양복. 옆에 구태식이 꽃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석 경위가 백성환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백성환이 석 경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였다.
백성환은 중환자실 유리창 앞에 섰다. 정오를 한참 봤다. 그리고 간호사실에 꽃바구니를 맡겼다. 리본에 금색 글씨. 하평화학 임직원 일동.
“하평물류 기사님이었다면서요. 계열사 식구가 이런 일을 당하다니. 치료비는 회사 복지재단에서 대 드리기로 했어요.”
그는 나에게 걸어왔다. 복도 의자 앞에 섰다. 앉지 않았다.
“한겸 씨, 친구분이시죠.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토요일 밤에 편의점 앞에 검은 차가 있었습니다. 정오 씨를 따라갔습니다.”
“그래요? 경찰에 말씀하셨어요?”
“방금요. 전무님 앞에서 고개 숙이는 형사한테.”
구태식이 한 발 다가왔다. 백성환이 손을 조금 들었다. 구태식이 멈췄다. 그 손짓이 수리점에서와 같았다. 막는 손이 아니라 기다리라는 손.
“한겸 씨, 이 도시는 겨울이 길어요. 보일러 배관이 잘 빠지고, 방파제 바람이 차서 다들 차 안에서 불을 피워요. 정오 씨 형도 그렇게 갔죠. 보일러 사고. 형제가 둘 다 불 때문에. 안타까운 집안이에요.”
그는 그 말을 날씨 이야기처럼 했다. 그리고 나에게만 들리게 덧붙였다.
“귀 조심하세요. 여기 오래 있으면 다들 잘 안 들리게 되니까. 안 들리는 게 편할 때도 있어요.”
그들은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구태식의 오른손이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주머니가 무겁게 처져 있었다.
오후에 시장 사람들이 왔다. 떡집 장씨가 절편 한 접시를 들고, 어물전 할매가 자기 라디오를 들고. 중환자실에는 음식도 라디오도 못 들어간다고 간호사가 말렸다. 할매는 라디오를 복도 의자에 놓고 다이얼을 88.3에 맞췄다. 쉬 소리가 났다. 「총각이 이걸 듣는다며. 나는 안 들리지만 틀어 놓으면 저 총각은 들을 거 아니야.」 토요일도 아니고 정오도 아니었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할매의 라디오는 사십 년 동안 뱃날씨를 틀어 놓고 배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라디오였다.
장씨는 절편을 간호사실에 맡기고 와서 내 옆에 앉았다. 「총각, 나 요새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우리 손주 목소리가 작은 게 아니었나 봐. 내 귀가 작은 거였나 봐.」 장씨는 웃으려고 했다. 잘 안 됐다.
저녁 무렵 지수가 왔다. 편의점 유니폼 위에 점퍼를 걸치고. 손에 편의점 봉투. 안에 요구르트 다섯 개짜리.
“정오 아저씨 거요. 토요일에 사 간 거랑 같은 거.”
지수는 요구르트를 할매 라디오 옆에 놓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보여 주었다. 편의점 카메라 원본 파일. 토요일 밤. 일요일 밤. 월요일 새벽.
“사장님한테 말했어요. 경찰 줄 거라고. 사장님이 처음엔 안 된다고 했는데, 제가 그럼 그만둔다고 했어요. 월세 삼십 아끼는 거보다 이게 나은 거 같아서요.”
그녀는 영상 하나를 틀었다. 일요일 밤 열한 시 오십 분. 편의점 앞 도로. 정오의 택배 트럭이 지나간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의 어깨가 넓다. 정오의 어깨가 아니었다. 뒤에 검은 승용차가 따라간다.
“이거 형사님한테 제가 직접 줄게요. 증인 해도 돼요. 저 여기 삼 년 이 개월 살았어요. 귀는 멀어져도 눈은 멀쩡해요.”
그날 밤 나는 수리점 셔터를 내리고 불을 하나만 켰다. 작업대 위에 녹음기 세 대. 그중 한 대를 켰다. 빨간 불. 나는 마이크 앞에서 목을 가다듬었다. 첫 문장을 열 번쯤 다시 녹음했다. 목소리가 떨려서였다. 열한 번째에 안 떨렸다.
“녹음 092. 화자 한겸. 하평 청산동 거주 넉 달. 라디오 기술자.”
“이 파일은 설명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확인된 것을 순서대로 말합니다. 하나. 88.3 메가헤르츠에서 매주 토요일 정오에 방송이 나옵니다. 둘. 목소리에서 삼천 헤르츠 아래가 깎여 있습니다. 셋. 하평에 삼 년 넘게 산 사람은 사천 헤르츠 부근 청력이 꺼져 있고, 그 사람들은 이 방송을 듣지 못합니다. 스물여덟 명을 쟀습니다. 넷. 사택에서 태어난 아홉 살 아이가 삼 년 넘게 산 어른과 같은 곡선을 보입니다. 보건소 통지서에는 정상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다섯. 방송이 읽는 동별 숫자는 그 주 부고 수와 맞습니다. 여섯. 작년 십일월 셋째 주 서정동 숫자는 열일곱이었고 실제로는 열여덟이 죽었습니다. 열여덟 번째는 이 방송을 만든 정현입니다. 보일러 이음 너트에 새 스패너 자국이 있었습니다.”
“일곱. 정현의 동생 정오가 오늘 새벽 방파제 트럭 안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발견됐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유서 글씨는 정오의 글씨가 아닙니다.”
나는 거기서 멈췄다. 녹음을 끊지는 않았다. 십사 초쯤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십사 초가 파일에 그대로 남았다.
“여기부터는 확인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이 숫자가 하평화학 안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그 숫자를 몰래 읽고 있습니다. 정현이 죽은 뒤에도. 그 사람을 찾겠습니다.”
“이 파일을 듣는 분께. 하평에 오신 지 삼 년이 안 되셨으면 아직 들리실 겁니다. 토요일 정오에 재 보십시오. 목소리가 얼마나 멀리서 나는지. 가까우면 시간이 있습니다.”
“녹음 092. 이상.”
파일을 셋으로 나눴다. 하나는 인터넷 저장소에 올렸다. 하나는 우편으로 대전 수리점 시절 단골에게 보냈다. 도금 공장 다니던 아저씨. 봉투에 적었다. 제가 연락 안 되면 열어 주세요. 세 번째는 작업대 서랍에 넣었다.
녹음을 마치고 나서 청력계를 켜서 내 귀를 쟀다. 매일 밤 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사천 헤르츠. 손을 드는 크기가 한 칸 올라가 있었다. 한 칸. 오 데시벨. 기계 오차일 수도 있었다. 나는 기분 탓이라고 적지 않았다. 숫자대로 적었다. 넉 달째, 사천에서 한 칸.
그다음 형 방 녹음기를 확대경 아래 놓았다. 기판의 죽은 자리를 찾는 데 두 시간 걸렸다. 전원부 콘덴서 하나가 부풀어 터져 있었다. 부품 상자에서 같은 값을 찾아 갈아 끼웠다. 새벽 두 시. 전원을 넣었다. 빨간 불이 들어왔다. 꺼지지 않았다.
파일 목록에 파일이 하나 있었다. 날짜 2025년 11월 21일. 길이 네 시간 십이 분.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한참 방 안 소리가 났다. 보일러 도는 소리. 키보드 소리. 누가 기침을 했다. 그리고 초인종. 의자가 밀리는 소리. 문 쪽으로 가는 발소리. 가는 목소리. 정현의 목소리였다. 처음 듣는데 알았다. 정오와 같은 끝을 가진 목소리.
“누구세요.”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녹음기가 지직거렸다. 기판이 아니라 파일이 깨져 있었다. 그다음 삼 분이 잡음이었다. 나는 볼륨을 끝까지 올렸다. 잡음 속에서 낮고 평평한 목소리가 한 번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의 모양만 들렸다. 나는 그 모양을 알았다. 오늘 오후 의료원 복도에서 들은, 이 도시는 겨울이 길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아니라, 그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사람이 놀이터에서 딱 한 번 했던 말. 아이고, 떨어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