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13자) · 사천 헤르츠

멀어지는 소리

정오의 방송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청력계는 병원에서 사면 천만 원이 넘는다. 나는 라디오 부품으로 만들었다. 발진기 하나, 감쇠기 하나, 대전에서 가져온 모니터 헤드폰 한 쌍. 주파수는 천 헤르츠부터 만육천 헤르츠까지 여섯 단계. 소리 크기는 오 데시벨씩. 교정은 내 귀로 했다. 서른넷, 하평 넉 달째, 아직 멀쩡한 귀. 그 귀를 영점으로 삼았다. 정식 기계가 아니니까 진단은 못 한다. 대신 비교는 할 수 있다. 같은 기계, 같은 헤드폰, 같은 방. 조건이 같으면 차이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첫 번째 손님은 떡집 장씨였다. 절편 접시를 든 채로 작업대 앞 의자에 앉았다. 헤드폰을 씌우자 장씨가 웃었다. 「총각, 나 이런 거 처음 써 봐. 라디오 디제이 같네.」 삐 소리가 들리면 손을 들라고 했다. 천 헤르츠에서 번쩍 들었다. 이천. 들었다. 사천에서 장씨는 한참 기다리다가 물었다. 「시작했어?」 나는 소리를 이십 데시벨 올렸다. 그제야 손을 들었다. 팔천. 끝까지 올려도 손을 들지 않았다. 장씨는 헤드폰을 벗고 말했다.

“고장 났나 봐. 아무것도 안 나와.”

“나오고 있었어요.”

장씨는 헤드폰을 다시 써 보고, 벗고, 내 얼굴을 봤다. 웃음이 조금 늦게 사라졌다.

어물전 할매는 장씨보다 세 칸 더 못 들었다. 그런데 할매는 결과를 듣고 좋아했다. 「내가 장씨보다 못 들어? 그럼 내가 더 오래 산 거야. 장씨는 이십칠 년이고 나는 사십일 년이잖아.」 장씨가 옆에서 발끈했다. 「할매, 그게 자랑이에요?」 둘은 누가 더 못 듣는지를 두고 십 분을 싸웠다. 어느 쪽도 이기고 싶지 않은 싸움이었는데 둘 다 이기려고 했다.

일주일 동안 스물여덟 명을 쟀다. 시장 상인, 국숫집 주인, 편의점 알바, 원룸 이웃, 정오. 결과를 모눈종이에 찍었다. 가로축에 하평에 산 햇수, 세로축에 사천 헤르츠에서 처음 손을 든 크기.

점들이 선을 그렸다. 일 년 미만은 다 위쪽에 모여 있었다. 이 년째부터 내려오기 시작했고, 삼 년에서 뚝 떨어졌다. 그 아래로는 바닥에 깔렸다. 삼 년 이 개월 편의점 알바가 그 떨어지는 자리에 딱 걸려 있었다. 정오는 떨어지기 직전 경사 위에 있었다.

그리고 모든 곡선이 사천 헤르츠에서 한 번 푹 꺼졌다. 이천은 멀쩡하고 팔천도 좀 남았는데 사천에서만 골짜기가 파인 사람이 많았다. 나는 그 모양을 안다. 대전 시절 단골 중에 도금 공장 다니던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 귀가 이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그러더라고 했다. 소음이 아니라 약품 때문이라고. 유기용제. 오래 마시면 귀 안쪽 털세포가 먼저 죽는다고.

하평화학이 만드는 것은 스타이렌이다. 플라스틱 원료. 인터넷에 스타이렌을 치자 논문이 몇 개 떴다. 귀에 독이 되는 물질. 사천 헤르츠 골짜기. 소음과 같이 오면 더 빨리.

나는 모눈종이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 방송이 얇은 이유. 삼천 아래를 깎은 목소리는 사천 근처에 기대 산다. 그 자리가 꺼진 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멀쩡한 귀에는 얇게, 꺼져 가는 귀에는 멀게. 높은 소리는 공기 속에서 먼저 죽는다. 그래서 높은 소리를 잃어 가는 귀는 가까운 목소리도 멀리서 나는 것처럼 듣는다. 편의점 알바가 옆 건물에서 누가 말하는 것 같다고 한 말은 비유가 아니었다. 측정이었다.

정오의 곡선으로 계산해 보면 석 달에 오 미터 팔십쯤 멀어지는 셈이었다. 삼 년이면 칠십 미터. 칠십 미터 밖에서 속삭이는 소리는 사람이 못 듣는다.

“형이 만든 방송은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예요.”

정오가 모눈종이를 보며 말했다.

“멀쩡한 귀만 들으라고요?”

“아직 떠날 수 있는 사람만 들으라고요. 이미 삼 년 지난 사람한테 이 숫자를 들려주면 그냥 무서운 거잖아요. 삼 년 안 된 사람한테는 경고고요.”

그리고 방송의 마지막 문장. 이 방송이 들리지 않는 분이 곁에 있다면, 그분의 귀를 재어 보십시오. 들리지 않는 것 자체가 증거였다. 정현은 방송을 증거로 만들어 놓고 죽었다.

편의점 알바의 이름은 지수였다. 스물셋. 결과를 보여 주자 지수는 모눈종이를 한참 봤다. 자기 점이 떨어지는 자리에 걸린 것을.

“그러니까 저 지금 떠나면 안 떨어진다는 거예요?”

“더 떨어지진 않을 거예요. 아마.”

“아마요.”

지수는 계산대 밑에서 컵라면을 꺼내 물을 부었다. 뚜껑을 덮고 나무젓가락을 올려 눌렀다.

“저 여기 온 거 월세 때문이에요. 대학 휴학하고 학자금 갚으려고. 대전은 월세 오십, 여기는 이십. 한 달에 삼십 아껴요. 떠나면 그 삼십이 없어요. 사장님,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거 같아요? 이 동네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월세 때문에 온 사람이었다.

“경고라면서요, 그 방송. 경고 들어도 못 가는 사람한테는 그게 뭐예요.”

지수는 라면 뚜껑을 열었다. 김이 올라왔다. 그 김 너머로 지수가 웃었다.

“그래도 재 줘서 고마워요. 제 귀가 몇 미터인지는 알게 됐네.”

정오는 가게 밖에서 그 말을 다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가 말했다. 「형은 그걸 몰랐어요. 들으면 떠날 줄 알았어요. 형은 떠날 돈이 있던 사람이라.」

그 주 수요일 오후, 사택동 놀이터로 갔다. 전화를 한 사람이 있었다. 하평화학 사택 일단지 사는 엄마. 시장에서 우리 청력계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아홉 살 아들이 학교에서 선생님 말을 자꾸 놓친다고. 병원에서는 나이가 어려서 집중력 문제라고 했다고.

그 엄마 이름은 서희정이었다. 남편이 하평화학 생산이팀 반장이었다. 사택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사택에서만 자랐다. 아홉 해. 놀이터 벤치에 청력계를 펴자 아이 셋이 더 모였다. 사택 아이들. 헤드폰이 신기해서 줄을 섰다. 엄마 둘이 더 왔다. 서희정이 다른 엄마들에게 설명했다. 이 아저씨 라디오 고치는 사람인데 귀도 재 준대.

아홉 살 민준이가 헤드폰을 썼다. 천, 이천. 손이 번쩍번쩍 올라갔다. 사천에서 손이 늦었다. 이십 데시벨을 올려서야 올라갔다. 팔천. 조금 늦게. 만이천. 끝까지 올려도 민준이는 손을 들지 않고 나를 올려다봤다. 「아저씨, 이거 언제 나와요?」

다음은 다섯 살 하은이였다. 사택에서 태어났다. 헤드폰이 커서 머리 위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하은이 엄마가 두 손으로 헤드폰을 받쳐 주었다. 천, 이천, 사천. 하은이는 사천에서 손을 들었다. 조금 늦게. 팔천에서는 엄마 얼굴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은이 엄마가 헤드폰을 받친 손을 떨었다. 다섯 해. 태어난 날부터 하평에 살았으니, 이 아이의 거주 기간은 나이와 같았다. 편의점 알바보다 이 년 가까이 길었다. 하은이가 태어난 방은 굴뚝에서 오백 미터였다. 아이는 이 도시 말고 다른 공기를 마셔 본 적이 없었다.

서희정이 모눈종이를 봤다. 내가 찍은 점을. 아홉 살 민준이의 점은 삼 년 이 개월 편의점 알바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나는 대답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놀이터 입구에서 누가 소리쳤다.

“거기 뭐 하는 겁니까!”

사택 관리사무소장이었다. 파란 점퍼. 그 뒤에 목이 짧고 덩치 큰 사람이 있었다. 백성환의 세단을 몰던 사람. 셔터 앞에서 옥상 안테나를 올려다보던 사람. 가슴에 명찰이 있었다. 하평화학 보안실장 구태식.

“여기 회사 사유지입니다. 허가 없이 의료 행위 하시면 안 됩니다. 애들한테 뭘 씌우는 거예요.”

관리소장이 헤드폰을 낚아채려 했다. 민준이가 헤드폰을 머리에 쓴 채로 뒷걸음쳤다. 나는 관리소장의 손목을 잡았다.

“의료 행위 아닙니다. 소리 들려주고 손 드는 거 봅니다. 애한테서 손 떼세요.”

구태식이 앞으로 나왔다. 서두르지 않았다. 청력계 앞에 서서 발진기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발끝으로 밀었다. 벤치 끝에서 발진기가 떨어졌다. 모래 위에 떨어져 뒤판이 열렸다. 부품이 모래에 흩어졌다.

“아이고, 떨어졌네.”

구태식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평평했다. 방송의 합성 음성처럼.

“한겸 씨, 사택 반장 가족들한테 불안 조장하시면 곤란해요. 서희정 씨, 남편분 반장이시죠. 이런 거 회사에 알려지면 좋을 거 없어요. 애 집중력 문제라고 병원에서 그랬다면서요.”

서희정의 얼굴이 하얘졌다. 다른 엄마 둘이 아이들 손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 하나는 벌써 놀이터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민준이가 헤드폰을 벗어 나에게 내밀었다. 엄마 얼굴을 보고, 스스로.

서희정이 모눈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말했다.

“가 주세요. 죄송해요.”

나는 모래 위에 쪼그려 앉아 부품을 하나씩 주웠다. 모래가 손톱 밑으로 파고들었다. 저항 둘, 콘덴서 하나, 가변 저항 손잡이. 구태식은 내가 다 주울 때까지 서서 지켜봤다. 정오가 옆에 쪼그려 앉아 같이 주웠다. 손가락이 모래에 긁혔다.

놀이터를 나오는데 서희정이 뒤에서 달려왔다. 관리소장이 안 보는 쪽으로. 그녀는 내 손에 뭔가를 쥐여 주고 돌아갔다. 접힌 종이였다. 민준이의 학교 청력 선별검사 통지서. 결과란에 한 줄. 정상. 보건소 도장. 날짜는 이 달. 검사 기관, 하평시 보건소.

민준이는 방금 내 기계 앞에서 만이천 헤르츠를 끝까지 못 들었다. 보건소 도장은 정상이라고 했다.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이었다. 내 기계는 라디오 부품이고, 보건소 기계는 천만 원짜리다. 그래도 나는 알았다. 거짓말을 하는 쪽은 기계가 아니라 도장이었다.

그날 밤 수리점 작업대에서 정오와 나는 청력계를 다시 조립했다. 발진기 뒤판이 휘어서 망치로 폈다. 정오는 부품을 건네주는 손이 서툴렀다. 저항과 콘덴서를 구별하지 못했다. 나는 색 띠를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갈색 검정 빨강. 천 옴.

“한겸 씨. 조경순 보청기 말이에요.”

“네.”

“그거 들고 가서 흔들면 어때요. 소장님, 본인 귀도 이 모양인데 도장 찍으셨어요? 신문사에 사진이랑 같이 보내면.”

나는 인두를 멈췄다.

“그건 협박이에요.”

“알아요.”

정오는 콘덴서를 손가락으로 굴렸다.

“형은 반듯하게 했어요. 청구서 쓰고, 두 번 찾아가고, 방송도 합법이 안 되니까 제일 조용하게. 그래서 죽었어요. 저는 반듯하게 안 할 거예요.”

그는 콘덴서를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작고 가벼웠다.

“한겸 씨가 말리면 그때 말게요. 아직은 안 말렸죠.”

나는 말리지 않았다. 대신 청력계 교정을 다시 했다. 내 귀로. 사천 헤르츠에서 손을 들 때, 아주 조금 늦은 것 같았다. 기분 탓이라고 적었다. 넉 달째였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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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책상2026.05.11· 3화

    인물이 설명 없이 행동으로 드러나서 좋았어요.

    • 겨울차2026.05.12

      저는 오히려 그 앞 문단이 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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